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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0 (10:59:31)
소쇄원, 자연과 호흡하는 풍류(風流) 공간
1. 지난 10월 13일, 전남 담양에 위치한 소쇄원(瀟灑園)을 다녀왔다. 경상도 태생이다 보니 주로 경북 내륙 지방을 답사하다 모처럼 큰 맘 먹고 전라도에 있는 소쇄원에 간 것이다. 가는 길이 지방 국도와 같은 88고속도로라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지만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고 특히 경남 거창 일대의 풍광은 매우 수려하면서도 장대했다. 소쇄원을 다녀 온지 수일이 지났다. 바쁜 일상의 와 중에서도 잠시 머물렀을 뿐인 그곳 한 부분 한부분과 전체공간이 이상하게도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자꾸 생각난다. 아니 생각한다. 2. 소쇄원 입구는 대숲이었다. 굵은 대나무들이 하늘 높이 죽죽 뻗은 모습이었다. 워낙 장거리에다 이전에 먹은 점심이 마음에 들지 않아 오는 내내 지루해하고 투덜거리던 딸과 아들 녀석도 놀란 눈으로 대숲을 바라보았고, 집사람은 연신 감탄사를 발했다. 올라가는 동안 대숲의 청신함이 온 몸을 휩싸는 것 같았다. 길지 않은 대숲이 끝나면 계류를 사이에 두고 그 양쪽으로 소쇄원이 있다. 먼저 길다란 담장과 초가 정자인 ‘대봉대(待鳳臺’)와 그 아래로 나무속을 파낸 홈 대로 물길이 이어지는 작은 연못 두 개가 나란히 있다. 대봉대를 지나 길게 이어진 담장 길을 따라 들어가면 애양단(愛陽壇)이라 새겨진 판이 박혀 있다. 애양단을 지나면 긴 담장은 ㄱ자로 꺾인다. 그 담 밑 물이 흐르는 곳에 오곡문(五曲門)이 있다. 담 아래로 돌을 쌓아 다리를 만들어 계곡 물을 흐르게 하였는데, 그 계류가 암반 위에서 다섯 굽이를 이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오곡문 아래에 위치한 외나무다리를 통해 계류를 건너면 가파른 언덕에 만든 매대(梅臺, 매화를 심은 곳)인 두 단의 꽃 계단(花階)이 눈앞에 펼쳐진다. 매대 뒤 담에는 소쇄처사 양공지려(瀟灑處士 梁公之廬,소쇄처사 양공의 조촐한 집이란 뜻임)라는 송시열이 썼다는 석판 글이 보인다. 매대 앞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면 제월당(霽月堂)이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두 칸은 마루이고 한 칸은 방이다. 제월당에서 조금 아래로 내려가면 계곡 축대 위에 자리 잡은 건물이 광풍각(光風閣)이다. 1755년 조선 영조 때의 목판화인 <소쇄원도>를 보면 이외에도 건물이나 문이 더 있었음을 알 수 있지만 지금의 소쇄원은 계류를 중심으로 세 건물과 담장 화계, 계류가 어우러진 공간이다. 제월당과 광풍각이라는 이름은 중국 송나라 때 명필인 황정견이 주돈이의 인물됨을 평하여 흉회쇄락 여 광풍제월(胸懷灑落如光風霽月, 가슴에 품은 뜻의 맑고 맑음이 마치 비 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명한 바람과도 같고 맑은 날의 달빛과도 같네라는 뜻임)이라고 말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 신발을 벗고 광풍각 마루로 올라섰다. 삼면이 마루이고 가운데만 방이었다. 3면으로 처마 밑 걸쇠에 걸 수 있는 분합문을 달아 개방성을 강조한 방이다. 두 세 사람 정도 겨우 앉을 만한 공간인 방안에도 들어가 앉아보고 마루에 앉아 바위 위로 흐르는 계류를 지켜보았다. 작은 폭포가 매우 아기자기해서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인데도 마치 인공적으로 조성한 듯 바위 홈 위를 계곡물이 한 줄기로 흐르기도 하고 두 갈래로 흐르기도 하였다. 다 둘러보니 소쇄원은 오기 전 상상보다 훨씬 작은 아담한 공간이었지만 공간의 높낮이라든가 건물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진 구조적 짜임새는 현장을 와 보지 않고는 알 수도 없고 체험할 수 없는 공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역마다 다른 우리 전통문화의 이러한 ‘차이’에 특히 흥미를 느끼다 보니 시간을 내서 즐겨 답사하는 버릇이 생겼다. 3. 소쇄원은 소쇄공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은둔자적을 위해 지금의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지은 별서정원(別墅庭苑)이다. ‘소쇄’라는 말은 본래 공덕장(孔德璋)의 북산이문(北山移文)에 나오는 말로 ‘깨끗하고 시원함’을 뜻한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이런 말이 순전히 아름다운 말로 그 의미가 와 닿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슬픔과 좌절이 배여 있는 역설적인 말이다. 조광조가 중심이 된 사림의 혁신적인 꿈이 조광조의 죽음으로 좌절된 후, 그 산물이 소쇄원이기 때문이다. 양산보는 바로 조광조의 제자였고 스승이 사약을 받는 현장에서도 함께하다가 낙향했던 인물이다. 조선시대에는 양반계층으로 태어나도 뜻을 펼칠 수 없을 때는 자연과 함께 하며 학문을 닦기도 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이는 바로 이 지역에 살았던 송강 정철의 양극적 삶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정철은 자연으로 돌아오면 그가 지은 <관동별곡>이나 <성산별곡>처럼 아름다운 가사를 노래하던 사람이었지만 중앙 정치 무대에 서면 가장 잔혹한 사람으로 평가될 만큼 많은 사람을 죽인 사람이었다. 공간과 사람의 만남이 이렇듯 전혀 다른 삶을 살게 하는 것이다. 이곳 소쇄원도 이곳을 드나든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다른 욕망의 공간이었다. 소쇄원은 고경명, 김인후, 송순, 정철, 김성원, 기대승, 백광훈, 송시령 등 당대 이름 있는 호남과 충청권 문인, 선비들이 자주 드나든 곳이며, 또한 이 일대는 이외에도 많은 누정이 존재하는 호남 누정 문화의 본향이며, 이 중에서도 소쇄원은 그 대표성을 갖는 원림이었던 것이다. 소쇄원이 호남의 누정(樓亭, 누각과 정자)을 대표한다면 영남에는 경북 영양군에 위치한 서석지(瑞石池)가 있다. 석문(石門) 정영방(鄭榮邦, 1577~1650)이 1613년에 조성한 서석지는 사각형 연못을 중심으로 연못의 북쪽의 경정(敬亭, 공경하는 마음의 정자)과 동편에 서재인 주일재(主一齋,한 뜻을 받드는 곳)와 운서헌(雲棲軒)이 한 건물로 있다. 주일재 앞에는 연못 쪽으로 돌출한 석축단인 사우단을 만들고 소나무, 대나무, 매화, 국화를 심었다. 서석지엔 연못 안에 돌들이 있는데, 이는 연못을 조성할 때 드러난 돌을 그대로 둔 것이며, 서석지란 연못 이름도 이 돌들에서 유래한다. 정영방은 이 돌에 상당한 애착을 가진 듯 각각 이름을 지었으니, 기평석(基枰石, 바둑을 두는 돌) 관란석(灌?石, 물결을 쳐다보는 돌), 상경석(尙絅石,높이 존중받는 돌) 낙성석(落星石, 떨어진 별 돌) 탁영반(濯纓般), 토예거(吐穢渠, 더러운 물을 쏟는 돌)등이다. 그러나 정자의 이름이나 사우단을 통해 알 수 있듯, 서석지는 주로 학문과 마음 수양에 정진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이곳은 소쇄원에 비해 훨씬 단조로운 공간이지만 간결미가 돋보인다. 그러나 양산보가 조성한 소쇄원은 학문의 공간이라기보다 풍류(風流)의 공간이다. 빛과 바람과 물소리 새소리, 문 하나로 공간과 공간이 닫히고 이어지고, 안과 밖이 열리고 닫히는 자연과 소통하는 공간이다. 이처럼 자연과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만나는가(배치)에 따라 공간의 의미도 달라진다. 심지어 같은 공간일지라도 어느 시대 누구와 만나는가에 따라 그 공간은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지 않는가? 오늘날 효율성 위주의 공간 개념의 기원은 근대 철학자인 데카르트에서 찾을 수 있다. 데카르트 공간에서는 모든 점이 어떤 이질성도 갖지 않는다. 그게 산 위에 있던 도시 한 가운데 있든 길이든 나무줄기든 동일한 선일 뿐이다. 좌표로 표시되는 공간상의 위치만이, 그 위치를 직선으로 연결하는 추상적 ‘선들만이 세계를 효율적으로 분할함으로써 나와 너를 격리시키고 분화한다는 것이다. 서구의 현대 문명은 이러한 극단적인 동질화의 척도적 공간에서 성립한 것이다. 이처럼 현대문명은 모든 질들을 전부 추상하여 위치로 양화시키는 면이 있다. 우리의 전통 건물이 있는 공간은 동질적 공간이 아닌 다질적 공간이며 시각적 공간이 아닌 질감이나 촉감적 공간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공간으로의 진입은 질감이나 촉감 등 오감으로 느끼는 과정이다. 국지적 공간은 시선이 근접한 경우 공간은 시각적이지 않으며, 눈 자체가 촉감적이고 비시각적 기능을 갖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서 다시 영조 때의 <소쇄원도>를 보다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진입 공간의 담장 길이부터 계류를 건너 나선형으로 안으로 계곡에까지 이르는 체험 동선이 대략 황금비가 적용되는 앵무조개의 비례를 닮았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공간적 유사성을 통해 ‘상속된 회상의 침전물’같은 인간의 무의식적 푸로토타입이 느껴졌다. 동 서양을 막론하고 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비례나 공간에 심취하는가는 역시 보편적 심리적 근저가 저마다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도 이러한 사실도 어디까지나 느끼고 발견하는 자의 몫이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경험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같은 사람이라도 경험의 시간이 다르기만 해도 세상은 늘 새로운 경험의 공간으로 변모하지 않는가. 4. 소쇄원을 다녀와서 김인후의 ‘소쇄원 48영’을 비롯해서, 많은 소쇄원 관련 시문을 읽었다. 또한 소쇄원을 연구한 논문들도 수없이 많음을 알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쇄원에 대한 나의 몸의 느낌과 생각일 것이다. 이제 소쇄원은 조선시대 호남 문인들만 드나들던 곳이 아니라 21세기에 사는 사람들도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곳이다.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통해 소개된 이래 소쇄원은 내가 간 날도 관광버스로 단체관광을 오는 코스가 되어버릴 정도로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주1) 그런데 한편으론 주변에 대형 음식점과 입장료를 받는 대형 주차장이 있는 데서 확인일 수 있듯, 천박한 상업자본주의의 속내가 들여다보여 씁쓸하다. 소쇄원은 그 규모로 보나 그 특성으로 보나 결코 관광객의 눈요기 거리로만 머물 수는 없는 공간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미세한 바람의 차이와 계절의 차이와 물길의 차이와 순간순간 머무는 장소마다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며, 나와 세계의 관계를 오감(五感)으로 음미할 수 있는 자들이 조용히 드나들 때 더 의미있는 공간이 되지 않을까. 주2) 2007년 10월 20일 도 병 훈 주1) 사실 전국 어디서나 지방의 특색을 살린 유적을 관광 상품화 하는 데 혈안이 된 시대다. 소쇄원 가는 길목에 있는 가사문학관도 특히 본관 건물의 경우 전시된 유물과 너무도 어울리지 않았다. 규모만 거대하게 만들어 유물의 빈곤함을 더 강조한 그 몰지각함에 한심하다는 느낌과 실망감을 금할 수가 없었다. 주2)돌아오는 길, 잠시 송강 정철이 성산별곡을 썼다는 식영정에 들렀다. 소쇄원과 더불어 일대의 정자로 유명한 환벽당과 자미탄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식영정에서 내려오다 굽 부분에 매화피(유약이 물방울 모양으로 오톨도톨 맺힌 부분으로 16세기 이후 일본에서 이도 차완으로 불리는 찻잔의 한 특성으로서 그 소박함과 자연스러움으로 일본의 차인들을 매료시킨 부분이다)가 있는 사금파리 한 조각을 주웠다. 국내에서는 매화피가 있는 도자기가 거의 없다. 특정지역에서 한 때 특수한 목적으로 만든 것인데, 일본에서 이러한 도자기가 귀한 찻잔으로 대접받는 바람에 국내에서는 사금파리조차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사금파리 한 조각도 나에게는 뜻밖의 소득인 것이다. 여행은 때때로 이렇게 예기치 않은 발견의 기쁨을 누리게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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