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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6 (12: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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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크라이브.(Clive Bell)

 

              바뀌어친 포말리즘의 [敎義]

 

크라이브.밸은 항상 로쟈.프라이와 더불어 거론된다. 특히 포말리즘의 페혜를 이야기하는 1960년대말이후의 문헌에서는, 자주 [프리아=벨의 포말리즘비평은……] 하고 말해젔었다. 하지만, 양자간에는 무시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크라이브.벨은 켐브릿지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당초에는 미술이나 미술사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 학생이었었다. 도욱이, 프라이가 자신도 화가로써의 경

                     력을 갖는데 비해 벨은 작품제작에 손을 데지 안 했다는 사실은, 이미 양자간의 차이를 알 수 있는 단서가 되고 있다. 벨이 브름즈벨리.그룹에 참여하는 계기는 급우 

                  안에 후에 브름즈벨리의 멤버가 있 크라이브.(Clive Bell)

 

었기 때문이다. 허나, 한때는 프라이도 적을 을 두고, 타의 급우들도 적을 두었던 [使徒會]에서는 벨만 빠져 있었다. [사도회]란 겜브릿지의 특별히 선발된 비세속적인 세례를 몸에 지닌 학생들만이 모이는 조직이었다. 전형적인 [속인]이었던 벨은 입회가 허용되지 안 했던 것이다. 벨은 정치학의 자료조사로 찾았던 파리에서 모-.아트와 만나고, 수년을 파리에서 보낸 후 귀국하여 브름즈.벨리의 중심적 화가 붸넷사에 구혼을 한다. 이 혼인이 벨에 브름즈벨리에서 중앙에 자리를 잡게 한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1910년에, 로쟈.프라이가 브름즈벨리.그룹에 들어 와 일약 그 주도자가 되었을 때 벨은 자신이 프라이의 최량의 이해자이며 후계자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기에 프라이는 벨 보담 15세 년상이다. 이해 프라이가 [마네와 포스트인상파전]을 개최할 때 벨은 협력을 아끼지 안 했으며, 12년의 [2회포스트인상파전]에서는, 프라이로부터 영국부를 맡긴다.

 14년에 벨은 [-]를 출판했는데, 이것 역시 多忙을 이유로 프라이가 출판사로부터의 의뢰를 벨에 양도했기 때문이었다. 그 내용은 말하자면, -말리즘을 극한까지 밀어 올린 것으로, 이하에 그 몇 개소를 인용해 본다.

 [미적인 감동을 환기하는 모든 객체는 어떤 성질을 갖고 있는가. ..가능한 답은 오-직 하나 -- 의미 깊은 포름(significant form)이다. 가기 다른 예술작품에서는 선과 색채는 어느 고유한 방식으로 맺으저 있으며, 어떤 포름, 혹은 포름끼리의 관계성이 우리들의 미적 감동을 끌어 내는 것이다. 이 관계와 선과 색채의 조합, 즉 이들 미적인, 사람을 감동시키는 포름을 나는 [의미 깊은 포름]이라 부른다. 그리고 [의미 깊은 포름]이란 시각예술의 전 작품에 공통되는 하나의 質일 것이다] [재미있게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 자극적인 그림이라도, 우리들을 감동시키지 못하는 것을 나는 [기술적회화]라 부른다. 그기에는 포름은 감동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감동을 암시하던가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으로써 받아 들여진다. 그들은 나의 가설에 따르면, 예술작품이 아니다. 포름이 아니고, 그것이 전달하는 관념이나 정보가 사람을 끌어 들일뿐이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을 향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포름와 색채와 삼차원의 공간에 관한 지식 이외는 아무것도 없다].

벨 본인은 프라이의 의도를 대변한 것으로 생각했다. 후에 가서 포말리즘비판의 전반적인 최대의 결함으로 지적되었던 것으로 이 [의미깊은 포름]이란 추상개념 역시 프라이에 의거했었던 것이라고, 친절하게도 서장에서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그 이론의 단순성으로 인하여] 대단한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실제, 출판 직후부터 再版이 이어지면서 같은 해 뉴-욕에서도 출판되어 미술계에서는 비구상회화가 연이어 나타나면서 또한 수년후에는 타국에서도 변역자가 넓혀진다. 프라이는 직후에 서평의 모양으로 수정을 시도하는 것으로, 이렇게 [프라이=]란 해석이 스스로 걷기 시작해 버린다. 한편, 벨은 이 후에도 [의미깊은 포름]에 집착해 갔다. 단지 벨에 대한 연구서를 낸 W. 바이 워터 주니어에 의하면 [-]이후, 벨 자신도 [의미깊은 포름]의 개념에 대폭적인 수정을 가해, 프라이를 따라 예술가와 관자와 회화간의 복잡한 상호관계를 주장하는 [-머니즘]쪽으로 변모해 간다. 그러나 벨의 주저는 지금도 여전히 바로 그 [-]라고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정치학 출신의 벨은 그 분야의 일도 손을 데면서 그기서도 프라이의 일관된 사회주의와는 본질적으로 대립해 간다. 벨도 1910년대에서는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내 걸었던 활동가였었나 28년에 [문명]을 출판할 때 즈음에는 독재자를 문명의 [구세주]로 간주하고 대중(노동자)에게 자기 분수를 헤알리게 하고 소수의 문명인에게 안락을 제공하는 것을 이상으로 내 걸며, 30년대에에서는 반유대인사상을 공언하기 까지 이른다. 오늘날 미술에 있어 포-말리즘비평의 [엘리트 주의][배타주의]라 불리는 것은 벨의 정치상의 자세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헌데, -리스.도니의 [한장의 회화는 ---- 군마, 나부 혹은 어떤 종류의 일화이기 이전에 그 본질에 있어 어떤 일정한 질서 아래 뫃아 진 색채로 덮어 씨운 평면이다] 라고 하는 말이, 추상에로 나아가는 모더니즘의 예언이라고 하는 정설도, 실은 벨의 날조한 것이다. 벨이 처음으로 도-니의 오리지널 문장을 읽은 것은 19266, [십구세기회화의 도표]의 집필중이었다. 각주에서 벨은 [그것은 현대의 동향의 기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도 매우 중요한 문헌이다. 부끄럽지만 고백하건데 --- 나는 이 최종장을 쓰는 도중에 가까스로 손에 넣었다. 그러나, 이 책은 내가 이미 굳게 保持하고 있던 확신을 더욱 굳게 해 주었을 뿐이다]. 그리고 도-니의 [금언]으로 하여 [이것이 이제 와서 포스트인상파의 것이다]라고 단정케 했던 것이다. 이렇게 도-니가 약관 19세였던 1890년에 나비파와 상징주의를 응호하기 위해 쓴 [신전통주의의 정의]의 모두 부분이 도-니의 사상전체의 소개도 없이 도-니 자신의 의도도 무시한 모양새의 단순한 포-말리즘의 [교의]로 바뀌처 버렸던 것이다.

 

略歷: 1881, 영국 바쿠샤 생. 켐브릿지의 트리니티 대학에서 정치학을 배움. 수년간의 파리 滯在나, 15세 년장의 로쟈.프라이등과의 교유를 통해 미술연구의 길로 나아 감. 영국에서 포스트 인상파를 알리는 데 공헌함. 1914년에 출판된 [-]는 포말리즘의 이론가로써 널리 읽혔다. 64년 몰.

 

主著: Art, Chatoo & Windus, 1914.

      Since Cezanne, 1922.

      Landmarks in Nineteen-Century Painting, 1927,

      An Acount fof French Painting,1931.

      Enjoying Pictures,1934.

      Peace at Once, 1916.

      On British Freedom, 1923.

      Civilization,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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