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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9 (10:3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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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로쟈.프라이(Roger Fry)

            

            포말리즘 批評家로써의 神話

 

      로쟈.프라이는 오늘날에는, [포말리스트/모더니스트]의 典型 혹은 元祖로 간주되고 있다. 실제로 반세기후 미국에 등장하는 크레멘트.그린버그類의 [포말리스트/모더니스트]도 프라이를 모범적 선구자로 간주해 오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프라이는 완전한 포마리즘을 관철해 왔던 것은 아니고 純然한 모더니스트라고도 부르기 힘들다. 오히려 그를 [포말리스트/모더니스트]라고 하는 일종의 神話를, 그의 주변에 있었던 브름즈.베리 그뤂, 더욱이 크라이브.벨이 창작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라이가 가장 포말리즘의 경향을 띠웠던 것은 그가 주최했던 [마네와 포스트인상파전](1910), [2회포스트인상파전(1912)의 전후가 된다. [포스트인상파(Post-Inpressionist)]란 프라이의 조어이며, 이때 처음으로 쓰이기 시작했던 말이다. 그의 의도로써는 [안티 인상파]에 가깝다. 당시 영국에서는, 가까스로 인상파가, R.A.M.스틴븐슨이나, D.S.맛골 이라고 하는 비평가의 盡力에 의해 世間에 받아 들여젔던 시기였다. 이들 인상파응호진쪽이 오히려 철저한 포말리즘을 기반으로 하여 내용중시의 왕립아카데미로부터 주권을 빼았었던 것이다. 미술계의 중요한 포스트는 대부분이 인상파풍의 화가들에 의해 점하기 시작했다. 실은 이러한 상황아래서의 프라이는 르넷상스 미술사가. 감정가로써의 명성을 얻고 있었지만, 화가로써는 불우했다. 초기 르넷상스의 거장풍이라고 평해젔던 건축적 구성과 뎃상을 득의로 했던 그의 화면은 인상파 우세의 시대에 맞지 안 했던 것이다.  당시 일반적으로 인상파로 간주되었던 세쟌이나 고-갱의 화면에, 프라이는 수동적인Im-presssion이 아닌 능동적인 화면구성의 의지Ex-pression 를 읽으 내어 자신의 화풍과의 공통성을 발견하였다. 학생시대 죠반이.모렐식의 형태학적 공헌을 배웠던 프라이는 그 감정안을 갖고 인상파론진에 도전하게 되는 [포스트 인상파]를 말하기 위해 스스로 포말리즘을 전략적으로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급속히 모던.-트를 독일의 마이야.그레훼와 프랑스의 모-리스.도니의 저작에서 배워, 이를 바탕으로 1910년의 전람회를 열었다. 그러나 마이야.그레훼는 순수한 포말리즘이 아니고 화가의 내면표출.자기표현을 존중하는 비평가이다. 또한 盛期 르넷상스 이전을 의미하는 [프리미티브]란 말을 이전부터 선호했던 프라이는 도니를 따라 이를 [無碍한 표현력]을 가르키는 것으로 다용하였다. 관자의 눈[]으로 포름을 분석한다기 보담 이 時点에서 프라이는 제작자의 입장에 時点을 두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인상파진으로 부터는 당연히 실랄한 공격을 받는다. 이것들에 대한 반론을 시도하는 중 프라이는 서서히 포말리즘의 [辯術]의 기술을 몸에 익히고 권토중래를 도모하여 1912년의 전람회를 개최했던 것이다.

여기에 이르러 프라이는 [포마리스트/모더니스트]의 동료가 된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그는 본질은 그렇치 안했다. 켐브릿지의 학생시대 프라이는 아-트 앤드 그라프즈 운동에 깊이 간여하며, 스스로도 아-트 워-크즈.길드에 들어가 있었다. 학우 Ch.R.아슈비등과 더불어 라스킨의 예술론.경제론에 감명받아, 윌리암.모리스의 강연회에 나가기도 했다. 아슈비라고 하면, 후에 貧者구제를 위한 [수공업길드] [수공업학교 및 길드]를 설립하는 인물이다. 프라이 역시 사회주의자로써 휘에비언협회에 이름을 언고 죠-지 버너드 쇼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었다. 10년에는 [포스트 인상파]의 기치를 내 걸 때 프라이는 명목상으로 길드를 탈퇴한다. 그렇치만 프라이를 모더니스트로써 신봉하는 브름즈베리.그룹의 젊은 화가들의 [빈곤을 구제]하기 위해 13년에 오메가공방을 개설한 프라이의 근저에 있었던 것은 모더니스트들에게는 금기시되는 전시대의 정신이며, 길드제도였던 것이다. 오메가공방에서는 陶器나 家具등의 공예품을 제작.판매하고 있었는데, 공예품 자체를 만드는 것을 험오하며 기성품에 그림을 그려 넣기만 하는 여타의 화가들과는 달리 프라이는 13년부터 열심히 작도를 배워 스스로 길드의 [직인]과 같은 행세를 하였다. 오메가제품에는 서명을 넣는 것 조차 금지했다. 이로 인해 여타의 [예술가]와충돌을 하기도 했다. 또한 프라이는 그라이붸.벨의 반대를 무릎쓰고 에릭.길의 석조작품을 12년의 [2회 포스트인상파전]에 출품시켰다. 길드는 예술가로써의 교육을 받지 않았던 [석공]이었으며, 지금은 타이프그라피로 이름을 남기고 있는 인물이다. 길은 모리스를 비판적으로 계승하면서 [성요셒.성도미니크길드]를 주최하며, 질박경견한 생활모범속에서 [직인]으로써 살아 왔었다. 프라이는 이 [경견한 신앙심의 출현] [직인기질]울 이유로 길을 찬양하였고 모던 아-트의 세계로 그를 끌어 넣었던 것이다. 파인.-트의 자율성.순수성을 존중하고 포름이외의 요소를 비판기준에서 제외하는 것이 [포마리스트/모더니스트]의 정석이라 한다면, 프라이의 자세는 이와는 확연하게 먼 것이다.

이 가장 포마리즘에 근접했던 시기를 지나, 프라이의 관심은 더욱 더 여기서부터 벗어난다. 예술작품이란 예술가와 관자와의 심리적. 감정적인 교류의 []이라고 강조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24년의 [예술가와 심리분석]에서는, 예술가의 미적 표현의 욕구와 관자의 심적인 공명 수용을 말하기 위해 프로이드의 심리분석을 비판적으로 검증하는 시도가 이루어진다. 사후에 편찬된 [최종강의]에 이르러서는 곤브릿지가 뒤에 가서 적절히 [봉마고]라 말한 바와 같이 [로망주의적] [共理論]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프라이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무선기와의 유비로 말해 본다면 예술가는 발신기이며, 예술작품은 묘체가 되며 그리고 관자는 수신기일것이다. 작품의 멧시지는 예술가의 잠재의식속에 숨어 있는 경험의 총체를 응축한 것이다].

 

略歷: 1866년 런던생. 런던대학에서는 처음에는 자연과학을 전공하였는데, 이내 회화로 전향하여 미술사연구를 한다. 영국에서의 포스트.인상파의 소개자. 1905-10년 메토로.포리탄미술관(-)관장. 1910년 런던의 그라프톤화랑에서 개최한 [마네와 포스트인상파전]을 조직했다고 알려젔다. , 그림버그와 더불어 포말리즘의 이론가의 한 사람으로 간주된다. 34년 몰.

主著: Giovanni Bellini, at the Sign of the Unicon, London, 1899.

     Manet and the Post-impressionist Exhibition, Clafton Gallaries, 1910.

     The 2nd Post Impresssionist Exhibition 1912

     Vision and Design, Chatto and Windus, London, 1920

     The Artist and Psycho-Analysis ,1924

     Art and Commerce, 1926

     Cezanne: A study of His Development. London,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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