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 2083
2017.01.11 (11:4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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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E.H. 곰브릿지(E.H. Gombrich)

 

    心理學, 社會理論을 援用하면서 미술을 讀解한다

 

   곤브릿지의 학식의 넓음은 간단한 요약을 허용하지 않는다. 뷘대학에서 傳統的인 美術史의 훈련을 받았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미술관에서의 실습 동안 엘런스트.그리스와 알게 되어 일찍이 예술과 심리학과의 미묘한 관계에 눈을 뜨게 된 것도 그의 연구의 넓음을 알게 된다. 곤브릿지가 미술사를 배운 유리우스..슈롯사는 뷘학파의 중진이며, 미술품을 동시대의 精神風土와 관련 지워 해석하려는 방법을 철저하게 講習했었다.

그러함으로, 이 위대한 미술사가로부터 다양한 학자가 태어나, 예를 들면, -롯사의 뒤를 이어 뷘대학교수가 된 한스.제돌마이어 역시 독자적인 심리주의적 입장을 취하는바, 그는 말하자면 곤브릿지의 으뜸 弟子였었다. 곤브릿지는 나치스의 대두와 더불어 영국에 건너가 이미 함브르그에서 런던으로 옯겨진 워버그연구소에 들어 가는 것으로 되는데, 이 역시 엘른스트.그리스나 옷또.구르쯔란 친구들과 함께 결행했던 행동이 였었다. 그리고 곤브릿지는 전적으로 새로운 세계와 마주 치게 되는 것이다.

잘 알려진바와 같이 독일의 미술사가 아비.뷜브르그로 시작하는 워버그연구소는 [워버그의 방법]이라 불리고 있던 이코노로지(도상해석학)를 상제하고 있었고 가지 각색의 응용도 시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곤브릿지는 저작집 [신보리그. 이미지]의 서설로 [이코노로지-의 목적과 한계]를 두고, 이 방법의 풍요로운 미래를 확인할 뿐 아니라 오해에 입각한 安益한 응용에 경종을 울리고 있기도 한다. 이때 그는 정신분석의 방법과 일종의 의미론적인 분석방법의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는바, 항상 해석의 한계를 뀌뚫어 보는 감성의 필요를 강조하고 있다. 아마도 이를, 그는 붤브르그이 남겨놓은 방대한 초고에서 배운 것이 아니였을까.

워브그연구소에 착임한 당시, 연구소장은 휘릿즈.쟉슬 이었다. 독일군의 공폭에 시달리고 있던 런던에서 쟉슬은 연구소와 그 문고들을 지키기 위해 바쁘게 뛰어 다녔는데, 문고의 관리는 붤브르그의 비서를 맡고 있었던 겔돌트.빙그에 맡겨저 있었다. 그녀는 붤브르그의 유산관리인이기도 하였는데, 곤브릿지는 그녀의 조수가 되어 초고의 정리를 도우고 있었던 것이다. 쟉슬은 전쟁의 종결을 보고, 평생의 책무로 여겨왔던 붤브르그의 전기에 착수하는데, 1948년 돌연의 죽음으로 메모만 남기는 것으로 멈추게 되었다. 그래서 이 일은 빙그에 게승되었는데, 그녀 역시 완성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게 되었다. 그래서 곤브릿지가 전기를 완성하게 되는 것은, 1970의 일이다.

이러한 경위를 자사하게 적은 것은, 연구소의 이러한 고투속에 곤브릿지가 말려들어갔던 것, 아니 뛰어 들어 갔던 것이야 말로 그의 광범위한 학식을 기초해 주는 것이 였기 때문이다. 붤브르그와 면식이 없었던 곤브릿지는 [아비. 붤브르그傳]의 집필은 매우 고통스려웠던 것이었어나, 어떤 의미에서 이 書는 그 자신의 變成을 증좌해 주는 이정표가 된다.

곤브릿지의 작업은, 이와 같은 붤-브르그의 思想圈과의 만남에서 크다란 의미를 갖는 것인바 한편 지각심리학의 분석에의 높은 관심이라고 하는 독자적인 영역에서도 많은 성과를 남긴다.

[예술과 幻影] 내지 [裝飾藝術論]이 이 영역에서의 주저들이며, 인간과 지각과 形狀의 인식에 있어, 방대한 자료를 구사하여 분석을 시도하고 있어나, 한편, 그는 심리학자나 인류학자와의 공동작업을 통해 영역의 확대를 도모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는 종래의 미술사라고 하는 범주를 벗어났다고도 볼 수 있어나, 청년기에서 얻은 착상을 일관되게 추구하여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추구해 갔디고 할 수 있다. 또 한편, 곤브릿지는 이러한 시각적 경험경험을 사회의 가치판단 안에서 비판적으로 새롭게 보는 시스템이 있으며, 이것이 역사 안에서 가지각색의 비판감각을 탄생시켜왔음을 주장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는 가지각색의 문화현상을 개인의 지각과 사회의 운동이라고 하는 측면에서 잡아 보려는 자세가 엿보인다. 미술사가로서의 곤브릿지의 작업은 르네상스연구에 그 핵심이 놓여 있는데, 그것 역시 심리학적 연구나 사회이론적인 연구와 따로 떨어저서 볼 수 없으며 오히려 그 전체적 총합으로써 결실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르네상스연구로는 [규범과 형식] 내지 [심보릭.이미지]가 邦譯되어 있으며, 더욱, [아베레스의 유산] [새로운 빛으로 조명되는 과거의 거장들]이라고 하는 저작이 있다. 최초의 [규범과 형식]이 사회심리학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면, [심보릭.이미지]는 이코노로지적인 방법에 의한 르네상스의 상징표현의 분석이며, [아베레스의 유산]은 지각의 심리학의 응용편이라 볼 수 있다. 서로 다른 시대의 반영이라 볼 수 있으나 곤브릿지는 가지각색의 관심은 서로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항상 다각적인 관심속에서 이미지의 비밀을 밝혀 가야 한다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捧馬思考]는 어린이의 놀이개인 말을 위시하는 고찰등이 수용되어 있는 바, 이 역시 매우 학재적인 관심을 반영하는 논문집이다.

공브릿지의 저작에는, 이따금 불가사의한 유-모어가 나타나는데 이것들을 읽게 되면, 강연의 달인이라고 한 말이 납득이 가게 된다. 또한 젊은이를 위한 미술사 안내로 쓰인 [미술의 걸음]은 개몽서이지만 그의 視点을 가깝게 하기 위한 적당한 안내서이기도 하다. 더욱 곤브릿지의 저작은 잘 정리된 시리즈로 재편집되어지고 있다. 언젠가 그 전모를 볼 수 있을 것이다.

 

略歷: 1909년 뷘에서 태어남. 뷘대학에서 유리어스..슈롯사밑에서 미술사를 배움. 후에 나치대두하의 런던으로 이주하여 워바그연구에 들어감. 그는 아비.붤브르그의 초고를 정리하는 일을 맡고 있었는데, 소장인 쟉슬, 이어 소장이 된 빙그가 세상을 등지는 바람에 이 유지를 이어 받아 [워버그傳]을 저술하였다. 59-79년 사이 연구소의 소장을 맡았고, 많은 저서를 냈다. 구미각지의 교육기관에서 교편을 잡았다.

主著: [아비 붤브르그전] [이미지와 눈] [규범과 형식] [예술과 환영] [예술과 진보] [수단과 목적] [심보릭. 이미지] [장식예술론] [미술의 발자취] [봉마고] [양식](메이야.샤피로와의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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