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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2 (10:4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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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데오돌. 아도르노 (Theodor W. Adorno)

  

      資本主義下의 文化批判의 先驅者

 

   轟然하게 돌아 가는 메루쉬트램의 소용돌이 속으로 삼켜지는 漁師의 체험이던가, 部下의 귀를 막고 스스로 帆柱에 묶으면서 세이렌들의 위험한 유혹을 벗어 났던 오딧세스의 僞計라 해도, 아도르노가 市民主體의 경험을 그려내기 위해 들고 나온 나라티브는, 어느것도, 지금은 불가사의하게, 아드르노자신의 수용상황을 그려 내는데 어울리는 것으로 사료된다. 먼저 외면적인 수준에서 반드시 거론되는 택스트의 뜹뜰함과 논리의 역설적인 구성, 그 안에서 내용으로 간신히 축출해 낸 同一性支配로부터의 유-토피어적 救濟의 圖式, [아우스뷧치 以後]의 모-든 지식인과 예술인에 대한 도의적 부채의 요청, -즈를 위시하여 대중문화에 대한 경직된 태도, 하이데카나 아렌트, 쇼렘와의 言及關係에 있어, 논리와 怨恨의 混, 이러한 것으로부터 이루어진 言說의 磁場은, 이론적 관심보담은 휠씬 에모셜한 환기력으로 우리들을 그 영역속으로 끌어 넣고, 배들에 대한 조류의 저 압도적인 위력을 갖고 집어 샘키려는듯 하며, 혹은 그 유혹적인 歡聲으로 우리들을 끌어 당겨 죽어 버릴려고 하는 듯 하다.  

 

 대저 20세기의 미술비평을 대표하는 사상가의 한 사람으로써 아도르노를 든다는 것 자체에 의문을 갖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확실히 그의 비평의 本領은 음악이나 문학의 영역에서 발휘되는 것으로 미술비평 자체에 대해서는 그가 직접 자극을 주는 일은 없었다. 허나 문화를 둘려싼 20세기의 언설전체에 대해 그의 사상이 주는 영향에는 심대한 바 가 있다. 그 영향력의 보다 구체적인 가능성을 잡아 보기에는, 그러나 [미메시스][비동일성]이라고 하는 아도르노讀解의 쟈-(jargon)에 대해서도, 우수에 찬 비관적지식인이라고 하는 이미지에 대해서도, 일단 우리들의 귀를 초로 막고, 漏斗狀의 소용돌이의 안쪽을 떠 내려 가면서도 기묘한 호기심으로 중대한 관찰을 해 냈던 漁師를 닮고, 사태에 대해 깨어 있는 관찰의 눈을 돌리는 것이 필요하다.

                                                       

아도르노의 언설에서 사람을 냉정하게 두지 못하게 하는 최대의 요인은, <진보> <반동>의 대비에 입각한 독특한 道義的 고발의 가락이다. 억압이나 현상긍정의 계기와 비판적 해방과의 긴장관계를 탐색하면서 곤란한 해결을 희구하는 바로 그 가락을 갖고서 그는 오늘날에도 누구도 그 맺음을 묘색하지 않는 큰 대비관계(그자신은 변증법적관계라 부르겠지만)를 탐구했던 것이다. 도데체 그의 이후 누가 슌베르그와 루이.암스토롱에 대해 동일한 이론적 척도를 적용하여 어느것이나 반동적인 것이다라고 논할려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 이후 누가 문화의 총체를 전시하의 대량학살의 야만과 [공범관계]에서, 말하자면 어떤 필연적인 결합에 있어, 폭로하려고 했갰는가. 전자의 시도는, 아도르느를 하이.칼추어의 진정성에 고집하는 전형으로써 야유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고, 후자는 그를 독일관념론 최후의 양심의 대사상가로 영웅화했다.  그 어느 것도, 시민사회의 이상상으로부터 낙차에 의해 문화의 현상을 단죄하는, 좋은 의미에서나 나쁜 의미에서나, 고풍스러운 그의 사고의 스타일에서 유래하고 있는 것이다.

 

허나 우리들의 관찰점은, 지금이야말로 역사에 의해 대 소용돌이의 외연을 직시하게 하는 위치로 밀려 나가게 하는지도 모른다. 실은, 아도르노의 스타일을 고풍스렵게 보이게 한 것은, 그 이후, 하이.-트와 사브칼처등이, 또는 문화일반과 야만이라던가, 몰가치적으로 애매하게 공존해 왔던 상황이 였던것이 아니였을까. 이러한 상황을 단순히 아메리칸 웨이 오브 라이프(미국식 생활 방식) 의 세계페권의 時期로써 본다면, 사태는 달리 보이게 되지 않을 까. 아도르노는 미국이 초대국으로 발흥하던 시기에 그 문화적 변영의 상징이기도 했던 허리웃에, 유대인 궤멸의 국가구상을 실행했던 독일의 암울한 기억과 더불어 옮겨 와서 살았다.  복제와 소비와 오락에 있어 세계의 최첨단에 놓였던 로스엔젤르스에, 전래의 예술전통이 섬세와 농후의 극치로 숙성해 갔던 직후의 윈(Vienna)의 기억과 더불어 옮겨 왔었다. 20세기 전반에 있어 아마도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二極間의 이동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는, 새로운 문화의 형태에 거부반응을 보이고, 기괴할 정도로 공격적인 대중문화비판을 행했던 것은, 무리가 아니 였을것이다.  그러나 그가 암담한 기분으로 그 등장을 바라 보던 새로운 세계시스템이, 인류전체를 번영과 행복의 환상속으로 영구히 덮허 시울수 없고,   그럴수 없다는 것이, 지금에 와서 더욱 선명해 젔다.  그런 상황속에서 萌芽期의 고도소비사회로 향했던 아도르노의 문화비판은 자본주의시스템에 대한 實直한 抵抗의 선례로 다시 읽으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아도르노의 비판의 가능성을 보다 직접적. 구체적으로 뽑아 내려면, 우리들의 시야를 한정시키고 1930년대의 벤야민과의 매우 생산적인 공동작업의 시기에 초점을 맞추워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시간적 계기를 강진한 변증법적논리로 처리하는 아도르노의 사고와, 공간적대비의 선명함을 통해 예상치 못했던 몽타-쥬의 사고를 가능케 하는 벤야민의 사고의 풍성한 영향관계는 두사람의 왕복서간과 당시의 논문의 교정과정과 더불어 자세하게 살펴 볼 수 있다. 그래서 아도르노가 라구로나 뷔리에==리라단에 관해 가르키고, 벤야민이 호크너나 벨빌에 관해 가르킨다는 서간속의 자세한 逸話는 두사람이 행복한 공동작업을 이어 갔다면 이루웠을 작업의 크기에 대해 우리들의 역사적 상상력을 크게 자극하는 바가 있다.

 

 그러나, 미국에 망명한 이후의 아도르노는, 30년대에 보였던 유연성을 그 비판으로부터 빼았겨, 숨막히는 사색에 묵묵히 전념하게 된다. 이 고독한 집필에서는 20세기비평전반에 대한 그의 또 하나의 공헌이 이루어젔다. 비평언어로서의 엣쎄이의 스타일이 태어 나기도 했다. 그러나 변화무상한 현실에 대한 변증법적비평의 살아 있는 적용은 오히려 그의 사후, 프레디릭.제임슨과 같은 비평가에 의해 계승되어 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도르노를 실망시키고, 이내 고독한 사색활동에로 침잔시킨 미국문화의 토양에서 그 제임슨의 예민한 비평이 나타 났던 것을, 우리들은 역사의 익살로 불려야 할지, 아니면, 辨證法的展開로 불려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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