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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04 (20:4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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랴쇼오몬羅生門


1.
해마다 전화(戰禍)와 역병(疫病), 천재(天災)가 계속된 일본의 헤이안(平安) 시대. 한 무사가 어여쁜 아내를 말에 태우고 여행 중이었다. 그런데 산 도적이 산 속에서 이들을 유인한 후, 무사를 속여 큰 나무에 포박한다. 그리고 그 무사가 눈을 부릅뜨고 보는 앞에서 대낮에 그의 아내를 겁탈하며, 그 후 무사는 죽었다. 그러나 사건의 진실은 누구도 알 수 없다.

1950년에 제작된 일본영화 <랴쇼오몬>의 간략한 줄거리다. <랴쇼오몬>은 쿠로사와 아키라(黑澤明, 1910~1998) 감독이 만든 영화로 1951년에 베니스 영화제 그랑프리상(작품상)을 수상했다. 쿠로사와는 이태리의 휄리니와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영화감독 중 한 사람으로 꼽힐 정도로 서구인들에게 동양적 사유의 무한한 깊이와 넓이를 보여 준 영화감독으로 꼽히는데, 특히 <랴쇼오몬>이란 문제작을 제작했기 때문이다.

<라쇼오몬>은 만들어지기까지 그 시나리오만 하더라도 상당한 역사성과 내력을 갖고 있다. 이 영화는 아쿠다가와 류우노스케(芥川龍之介, 1882~1927)의『숲속』(藪の中, 1921, 대정 10년)이란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흑백 영화다. 아쿠다가와의 소설 가운데 원제가 <라쇼오몬>인 소설은 이 영화에 나오는 사건의 줄거리와는 무관하며, 다만 인간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주제 의식과  폐허의 라쇼오몬을 4인의 진술을 얘기하는 장소로 차용하였다.
아쿠다가와의 『숲속』은 일본에서 12세기 초에 성립한 『콘자쿠 모노가타리(今昔物語)』라는 설화집을 재구성하여 쓴 것이다. 설화집의 원래 내용은 한 무사(사무라이)가 아내를 데리고 여행을 하다가 도적에게 속아 숲속으로 유괴되어 포박을 당하고 아내는 겁탈 당하는 데, 도적이 사라진 후 그 무사와 아내는 다시 여행을 계속한다. 그리고 아내는 무사에게 “너는 얼빠진 놈이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쿠다가와는 이 설화에서 힌트를 얻어 사건의 관계자들이 검비위사(檢非違使 :경찰서 겸 재판소)에서 자기들의 죄상을 고백하는 형식으로 만들었다. 이 소설을 당시 무명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 하시모토 시노부(橋本忍)가 시나리오로 만들었고, 그의 시나리오를 본 쿠로사와는 흥미를 갖고 영화화 하면서, 제4의 인물 나무꾼을 첨가하여 시나리오를 보완한다.


2.
다 헐어져버린 폐찰의 입구에 우뚝 선 거대한 랴쇼오몬(羅生門),주1)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비하려 농민이 들어온다. 그곳에는 기묘한 살인사건에 대한 심문에 증인으로 참석하고 나온 한 승려와 나무꾼이 있었다. 나무꾼이 낙수 지는 라쇼오몬의 처마 끝에 움츠리고 앉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르겠어! 모르겠어! 도무지 모르겠어!" 이 신이 <라쇼오몬>의 첫 장면이다.
이로부터 영화는 숲 속에서 벌어진 한 사무라이의 피살사건을 두고 이와 연관된 산적인 타죠오마루, 사무라이의 아내, 사무라이가 서로 다른 증언을 한 것을 각기 다른 영상으로 보여 준다.

먼저 사건의 가해자인 산적 타죠오마루(多襄丸)의 진술은 요약하면, 그는 무사인 카니자와(金澤)의 타케히로(武弘)의 아내 마사고(眞砂)를 겁탈한 후에 그냥 떠나가려고 하는데 마사고가 자신의 소매를 붙잡으며, “내 몸을 버려놓았으니 이젠 너 아니면 우리 남편 둘 중의 하나는 죽어야 한다”고 울부짖었으며, 그래서 그는 무사와 당당히 결투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사고의 진술은 이와 다르다. 그의 말은 대략 다음과 같다. 나는 겁탈당한 후 나무에 묶여있는 채로 자기를 응시하는 남편의 눈초리에서 슬픔도 분노도 아닌 차가운 증오와 경멸감을 느꼈다, 나는 발작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남편은 “날 죽여라!”라고 외쳤다. 그래서 나는 굴욕감과 착란 속에서 남편을 손 가까이 있는 소도(小刀)로 찔러버렸다.

그러나 강신 무녀의 입을 통한 타케히로의 진술은 아내와는 다르다. 그에 의하면 타죠오마루는 아내를 겁탈한 후에 아내에게 결혼하자고 말했으며, 그러자 아내는 타죠오마루와 함께 도망가려고 그에게 아양을 떨면서 “내 남편이 살아 있으면 당신과 함께 갈 수 없어요, 그를 죽여요!” 라고 타죠오마루에게 간청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타죠오마루도 아내의 간악함에 깜짝 놀라 마사고를 밀쳐 던져버리고 자신에게 “이 계집을 죽일까, 살려줄까?”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아내는 자신이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는 동안 숲 속으로 도망쳤으며, 타죠오마루는 자신을 결박한 끈을 풀어 준 후 사라졌고, 자신은 고독과 정적 속에서 소도로 가슴을 찔러 자살했다고.  

그러나 제4의 인물인 나뭇꾼은 3인의 고백은 모두 거짓말이라 한다. 나무꾼에 의하면 타죠오마루는 마사고를 겁탈한 후 마사고를 아내로 삼기 위하여 무사 타케히로의 포승을 끊고 결투를 신청한다. 그러나 무사 남편은 이따위 계집을 위하여 결투하는 것은 너무 하찮기 때문에 싫다고 말한다. 그러자 마사고는 태도를 일변, 두 남자의 용렬함과 비겁함에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두 사람을 흥분시켜 결투를 유도한다. 이 두 사람이 하기 싫은 결투를 하는 동안 여자는 도망친다. 결투 끝에 도망가는 타케히로에게 타죠오마루가 장검을 내려친다.

하지만 행인인 농민은 나무꾼의 이야기도 거짓말이라고 비웃는다. 나무꾼은 단검을 훔쳤다는 것이다.
다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나무꾼은 라쇼오문 뒷켠에서 기르지 못하겠다고 버린 아기를 발견한다. 행인은 버려진 아기의 옷가지를 빼앗아 떠나고, 나무꾼은 이미 기르는 여섯 아이를 기르는 것이나 하나 더 보태 일곱 아이를 기르는 것이나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중얼거리며 비가 그치고 활짝 갠 하늘에 태양이 빛날 때 우뚝 솟은 라쇼오몬을 떠나는 것이 엔딩 장면이다.


3.
과연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물론 사건에 연루된 당사자들은 이 영화에서 자신들의 진술 내용이 확고한 사실임을 주장한다. 타죠오마루의 경우 "당신(심문관)이 날 조만간 죽이리라는 것을 알고 있소. 그러므로 거짓말을 하지 않겠소.""우리는 무려 '23'합이나 싸웠소." 라고 증언하면서, 자신은 거짓말을 하지 않을 충분한 이유가 있다며 진술의 신빙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그의 말은 칼 싸움도 제대로 못하는 겁쟁이면서 자신을 과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뢰할 수 없으며, 가장 객관적인 관찰자로 보이는 나무꾼의 이야기도 신뢰할 수 없음을 그가 사건 현장에서 값비싼 단도를 습득한 사실을 밝히지 않은 장면에서 알게 된다. 결국 진술자 누구나 주관적으로 사건을 진술했다는 것이다. 이는 물론 인식주체의 인식의 틀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 사건 그 자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알 수 없다! 이는 차원에서 <라쇼오몬>의 근본적 주제는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불가지론과 동일하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 의하면 우리는 이 세계를 인식능력의 두 측면의 결합으로 성립시킨다. 이 두 측면이 바로 인간의 감성(sensibility)과 오성(understanding)이며, 감성은 인식의 자료(내용)을 제공하고 오성은 인식의 형식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를 쇠틀에 굽는 붕어빵에 비유할 경우, ‘밀가루 반죽’과 ‘앙꼬’가 감성의 자료라면, ‘쇠틀’이 오성의 형식이다.주2) 쇠틀 모양에 따라 붕어빵 모양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밀가루 반죽이나 앙꼬는 쇠틀에 들어가기 전에는 일정한 형태가 될 수 없다. 밀가루 반죽과 앙꼬는 붕어빵 틀로 찍어내야만 붕어빵이란 존재가 성립한다.    
그래서 칸트의 철학을 주관론(subjectivism : 객관적 세계의 모습이 주관의 틀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인식론의 총칭임)이라 하며, 이를 또 다른 말로 관념론(Idealism)이라고 한다. 이는 경험적 객관세계보다 인간의 주관에 내재하는 관념이 세계를 인식함에 더 본질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주3)
따라서 경험 세계란 나의 인식주관, 즉 ‘붕어빵 틀’이 밀가루 반죽과 앙꼬를 구워낸 모습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우리의 감관에 나타난 이 세계는 붕어빵 틀이라는 조건 속에서 벗어날 수가 없음으로 그 조건을 벗어날 때 우리는 이 ‘세계 그 자체( Ding-an-sich : reality)’에 대해 아무 말도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물자체는 알 수 없는 궁극적 실재의 세계이며, 감성과 오성을 초월한 불가지론(不可知論)의 세계다. 이를 근대철학에서는 불가지론적 실재론(Agnostic Realism)이라 한다. 주4)  
이 때문에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세계는 순수이성의 세계, 즉 감성의 자료에 오성의 형식이 가해져서 구성된 현상(나타난)세계일 뿐이다. 결국 칸트의 주관주의에 의하면 이 세계는 나의 인식주관이 능동적으로 구성한 결과로서의 세계이므로 이 세계는 인간의 주관에 따라 달리 나타날 수 있는 세계다.

그러나 아쿠다가와나 쿠로사와는 이 작품의 이론적 바탕을 칸트의 철학에서 얻은 것이 아니다. 영화 제목 ‘라생(羅生)의 문(門)’이란 불교 용어가 의미하듯, 이는 불교의 유식(唯識) 사상에서 유래한다. 주5)  유식 사상은 생멸(生滅)의 제법(諸法), 즉 모든 현현된 세계는 심상(心象)에 불과하다(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 명제로 집약할 수 있는 사상이다. 주6)  

<라쇼오몬>은 인식론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섬세하면서도 절제된 일본적(동양적) 영상세계로 표현하였다. 그것은 먼저, 여백을 살린 수묵화처럼 절제된 화면을 꼽을 수 있다. 사건의 당사자들이 진술하는 장소인 관청의 모습도 마당과 그 뒤로 담과 하늘이 보일  뿐 나무 한 그루 없으며, 심문관의 모습도 끝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인간의 삶을 빛나는 태양 아래서 명징하고도 집요하게 표출한다. 그래서 나무꾼의 숲 속 진입 장면에서부터 겁탈 장면에 이르기까지 태양을 향해서 죄를 범하고 태양을 향해서 선악의 경계에 대해 회의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피해 당사자들의 비장미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도, 산적 타죠오마루를 극악한 가해자로 보여주고자 한 것도 아니다. 라쇼오몬은 선악 이분법의 경계가 사라진 극적인 사건을 백 일 하에 드러냄으로써 인간의 본성과 도덕성에 대해 근원적 질문을 던진 것이다.  


4.
<라쇼오몬>은 요즘처럼 상업영화 일색인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진지한 영화다.  <라소오몬>은 ‘실제로 있는 것(reality)’도 ‘나타난 것(appearance)’도 시간에 따라 유동적인 삶의 과정상 모두 미확정적이며 비규정적(non-definitive)임을 드러낸 영화다. 영화의 주제는 “인간성에의 불신과 절망, 객관적 진리에의 불신과 회의”다. 우리가 아는 사실 혹은 진리가 얼마든지 기만적(deceptive)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어떠한 문제나 현상에 개인의 가치관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지각과 주관적 인식을 토대로 좀 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인식을 지향한다. 객관적 인식을 통해 우리는 최소한의 컨센서스를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존재론과 인식론을 넘어 삶에 대한 가치론적 성찰의 문제다.
그래서일까 <라쇼오몬>의 마지막 장면은 불가지론으로 끝나지 않고, 실존적 메시지를 제시한다. 이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나 전후 일본의 인간에 대한 절망감을 넘어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 표현으로 해석된다. <랴쇼오몬>은 일본적인, 아니 동양의 오랜 전통이 온축된 서사 구조를 통해 인간의 근원적이고도 보편적 문제를 표현한 영화다.

                                  2007년 11월  4일
                                            도 병 훈  


주1)이 영화를 지난 90년대 말 비디오테이프로 보았는데, 첫 장면에서 보여주는 라쇼오몬의 규모와 위용부터 매우 인상적이었다. 거의 반 이상이 허물어진 건물임에도 우리나라 사찰의 대형 일주문 보다 훨씬 더 큰 건물이었다. 이를 통해 일본의 고대 사찰 규모가 우리나라의 고대의 절들보다 그 스케일이 큼을 알 수 있으며, 이는 고대 일본의 지배층의 권력이 피지배층보다 절대적으로 강력했음을 의미한다.        
주2)오성의 형식을 칸트는 분량(Quantity), 성질(Quality), 관계(Relation), 양상(Modality) 등의  12가지 카테고리, 즉 범주로 설정했다.
주3) 이 영화의 주제에 대한 일부 내용과 칸트 사상을 붕어빵에 비유한 설명은 김용옥의 『새 츈향뎐』, (통나무, 1987년)에 나오는 설명을 참고하여 쓴 것임.    
주4) 서양 철학사를 진리 탐구의 역사로 본다면 감각기관에 ‘나타난 것(현상, phenomena, Appearance)’만 진실하다고 주장이 바로 감각론(sensationalism)이며, 영국 경험론자들이 이러한 주장을 펼쳤다.  
주5)불교의 유식 사상에서는 인식대상을 상분(相分)이라 하고 인식주체를 견분(見分)이라 한다.  
주6)원효의 화쟁 사상은 유식사상과 공(空)사상을 통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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