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 5242
2007.10.22 (23: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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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를 다녀와서



1.
어제 간송미술관에서 열리는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 1707~1769) 특별전인 ‘현재화파전’을 보러 갔다. 30년 만에 공개된다는 길이 8m가 넘는 그의 절필(마지막 작품) 그림으로 알려진 <촉잔도권>을 실제로 보고 싶었고, 또한 겸재의 제자인 심사정이 왜 겸재 화풍과 확연히 다른 그림을 그렸는지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간송문화』에 실려 있는 「현재 심사정 평전」에 의하면 심사정은 명문가에서 태어났으나 할아버지가 대역죄인이어서 매우 파란만장한 역경 속에서 사연 많은 삶을 살았고, 겸재와의 인연도 아주 어린 유년시절로 한정된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림으로서 겸재이후를 대표하는 일가를 이루었으며, 또한 ‘현재화파’라 칭할 정도로 당시 많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음을 몇 몇 가품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조선인 특유의 거칠면서도 바람이 술술 통하는 듯한 담백한 듯한 화풍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남다른 세파의 영향인 듯 그의 어느 그림도 겸재 정선의 <청풍계도> 이후 그림이 보여주는 당당한 기백에는 미치지는 못한다는 느낌이었다.  


2.
간송미술관에서 나와 근처에 있는 그동안 가보고 싶었던 길상사로 향했다. 이 절은 창건한지 불과 10년 남짓 밖에 되지 않지만 절이 들어서기까지 아름다운 내력을 갖고 있다. 이 절은 법정(法頂) 스님과 인연이 있었던 어느 불교 신자가 1980년대 후반 자신의 전 재산을 법정에게 양도하려 한 것을 그가 고사하면서 그 대신 조계종에서 양도 받게 하여 1990년대 후반에 세운 것이다. 이 불교 신자는 법명이 ‘길상화’인 김영한이란 여자로, 젊을 때 시인(詩人) 백석과 한 때 동거했던 기생이었으며 이후  대원각이란 유명한 요정을 운영한 사람이었다. 물론 조계종으로 재산이 이전되는 과정에서 주변에서 탐을 내는 사람들이 있는 바람에 우여곡절이 없지 않았으나 1980년대 후반 당시 시가 1000억원에 달하는 땅과 재산은 결국 조계종으로 귀속되어 길상사가 세워진 것이다.  

길상사 가는 길 골목길은 매우 부촌이었을 뿐만 아니라, 호주 대사관을 비롯한 각국의 대사관 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청와대 가까운 곳이어서 그렇거니 짐작은 했지만 다른 보통의 골목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집집마다 붉은 벽돌 담 벽과 집안의 정원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러한 골목이 끝나는 막다른 골목 산자락에 길상사가 있었다.

늦은 오후, 길상사 경내는 한적하고 조용했지만 때가 때인지라 이곳도 다른 여느 절이나 교회와 마찬가지로 대웅전에 해당하는 극락전에서는 대입 수능시험을 앞두고 많은 학부모들이 기도 중이었다. 이런 면에서는 이곳도 여느 절과 다름이 없구나 싶었고, 종교가 성행하는 이유도 여전히 기복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런 점보다 더욱 실망스럽고 개탄스러운 것은 어마어마한 크기로 최근에 신축한 지장전 건물의 규모였다. 아름다운 인연을 가능케 한 초심은 잃지 않아야 하지 않은가? 주1) 만약 법정이 직접 양도받아 절을 세웠다면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싶어 착잡했다.
그렇지만 다른 부분은 아직 원래 고급 음식점이 있었던 건물을 개조한 흔적이 남아 있어서, 여느 절과는 다른 특색이 남아 있었다. 무엇보다 대도시 속의 절임에도 계곡과 숲이 있는 산자락에 있어서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단풍이 아름다운 고즈넉한 분위기의 사찰이었다.  


3.
오늘 신문을 보니 어제 오전 법정 스님이 길상사 앞마당에서 행한 가을 정기법회 법문이 소개되어 있었다. 어느 덧 75세를 맞은 법정은 이 법회에서 최근 공주 마곡사와 제주 관음사 등에서 주지 선출과 사찰 운영 문제로 빚어진 분란을 겨냥하여 “같은 옷 입은 사람으로서 세상을 볼 면목이 없다.”고 하면서 법문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논지로 시작된 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출가란 살던 집에서 나오는 것만이 아니라, 온갖 집착과 욕망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안팎으로 정진하고 참선하지 않는다면 비리에 물들기 쉽다.”
또한 승가의 생명은 청정(淸淨)에 있다고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청정성을 잃을 때는 이미 승가가 아니다. 겉으로만 수행자일 뿐, 속으로는 돈과 명예를 챙기는 속물에 지나지 않는다.” “어찌하여 도둑들이 내 옷을 꾸며 입고 부처를 팔아 온갖 악업을 짓고 있느냐”라는 부처의 말을 인용하며 "문제를 일으킨 자는 불자(佛子)도 아니며, 가사(袈裟)를 입은 도둑에 불과하다"  “생각해보라. 아름다움을 소유할 수 있는가. 소유는 욕망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진정한 아름다움이 없다. 참선과 정진만이 거룩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거기에 자유와 평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과 명예를 좇는 이들은 내안의 아름다움을 등지고 있는 이들이다".

그리고 법정은 “저 뜰에 물들기 시작한 단풍은 작년과도 다르고, 내일도 다를 것입니다. 순간순간 내뿜는 아름다움을 허심탄회하게 보지 않고 작년과 비교하거나 하면 지금 저 아름다움을 놓치는 겁입니다.” 고 했으며, 마지막으로 ‘대(竹) 그림자 뜰을 쓸어도 먼지 일어나지 않고, 달이 연못을 쓸어도 물에는 흔적이 없네’ 라는 옛 선사의 시를 소개하고, “ 단 한번 뿐인 이 가을, 내 안에 샘솟는 아름다움을 이웃과 나누어야 한다. 다들 아름다움을 만나고 가꾸면서 행복하시라”고 법문을 끝맺었다고 한다.


4.
나는 궁극적으로 종교적 신심을 삶과 죽음에 대한 경건한 염원으로 보며, 그러한 신심의 긍정적 측면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존적 삶의 진실성은 종교 혹은 신이란 존재 유무와는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마음이나 생각도 생물학적 몸의 조건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어제 길상사에서의 법정의 말은 새겨 봄 직 하며, 특히 와 닿는 부분은 ‘악업’과, 이와 대비되는 ‘아름다움’이란 말이다. 악업을 짓지 않고 살고자 하는 의지와 이를 실천하는 삶으로부터 아름다움을 느끼고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법정이 말한 법문의 요지로 생각된다.
대나무는 곧기 때문에, 국화는 서리 속에 피기 때문에 아름답듯,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미와 도덕, 미와 현실이 공존해왔지만 이는 결코 말처럼 쉽지는 않다. 인간도 욕망의 존재인 이상, 이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면 죽을 때까지 악업을 행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차원에서 나는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한 단서를 발견한다. 죽을 때까지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악업을 짓는 데 열심인 ‘가사 입은 도둑’ 같은 자라면, 오늘 이 순간 맑고 푸른 하늘 아래 형형색색 저 무한한 단풍의 아름다움, 또는 시간의 유일무이한 ‘사이’를 어떻게 느낄 수 있겠는가. 주2)
                    
                                2007년 10월 21일
                                       도 병 훈


주1)길상사 개원식날 법정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절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안으로 수행하고 밖으로 교화하는 청정한 도량입니다. 진정한 수행과 교화는 호사스러움과 흥청거림에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어떤 종교 단체를 막론하고 시대와 후세에 모범이 된 신앙인들은 하나같이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 신앙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습니다. 주어진 가난은 우리가 이겨내야 할 과제지만 선택된 맑은 가난, 즉 청빈은 삶의 미덕입니다. 풍요 속에서는 사람이 병들기 쉽지만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화를 이루게 하고 올바른 정신을 지니게 합니다. 오늘과 같은 경제난국은 물질적인 풍요에만 눈멀었던 우리에게 우리 분수를 헤아리게 하고 맑은 가난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이기도 합니다.
이 길상사는 가난한 절이면서도 맑고 향기로운 도량이 되었으면 합니다. 불자들만이 아니라 누구나 부담 없이 드나들면서 마음의 평안과 삶의 지혜를 나눌 수 있었으면 합니다.”

주2) 법정 스님 하면 평생 ‘무소유’를 실천하고자 한 그의 삶이 떠오르지만, 이는 그의 스승인 효봉 스님의 가르침을 계승한 것이다. 효봉은 성철스님과 함께 20세기 한국불교의 법맥을 이은 정신적 양대 스승으로, 그는 일생동안 이른바 '계 ․ 정 ․ 혜' 삼학(三學)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그의 마지막 열반송이 나의 졸저 『나와 너와 세계 美術』후기에 소개되어 있기도 하다.
그리고 법정은 가톨릭계의 최고 어른인 김수환 추기경과의 아름다운 인연을 맺었다. 스님으로는 최초로 법정은 카톨릭 신자를 대상으로 명동성당에서 법문을 설했으며, 김수환 추기경은 길상사 개원식에 참석하여 축사를 했다.
얼마 전 김수환 추기경은 유성 파스텔로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놓고, 그 밑에다 ‘바보야’라고 써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나는 신문 지면을 통해 그 천진한 그림과 글씨를 보고 담백한 문인화를 보는 듯한 감동을 느꼈다. 이런 분들의 크고 맑은 행보는 자신만의 틀을 세계인양 여기는 이들에게 얼마나 신선한 메시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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