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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6 (20: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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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여름, 청하를 다녀와서  



들어가는 말

1990년대 후반, 어느 지역 중학교의 교지를 보다가 그 학교 재단이사장이면서 향토사학자인 이삼우(芽村 李森友)  선생이 쓴 <겸재 정선의 이 고장에서의 발자취>를 읽은 적이 있었다.
이 논문은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이 50대 후반에 지금의 경상북도 청하현감으로 재임하면서 그림을 그린 행적을 현지답사를 토대로 간결하게 쓴 글이었다.  
이후 언젠가 이삼우 선생을 찾아뵙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어언 십 년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올 여름 우연히 이삼우 선생의 논문을 다시 읽다가 꼭 만나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논문에 실린 선생의 얼굴사진으로 볼 때 연로한 모습이어서 지금 만나지 않으면 못 뵐지도 모른다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집사람에게 알아보라고 했더니, 아는 선생님께 연락을 해보겠다고 했다.

며칠 후 집사람의 소개로 청하중학교 박창원 교감 선생님을 알게 되었고, 8월 19일 저녁, 포항시 흥해읍에 위치한 호리 저수지 가의 한 찻집에서 박 선생님을 만났다. 이삼우 선생의 근황을 물었더니 요즘은 식물원장으로서 이와 관련된 활동을 주로 하신다고 했다.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삼우 선생은 서울대 농대에서 임학을 전공한 식물학자였다)
나는 박 선생님께 이삼우 식물원장을 알게 된 사연과 만나려는 이유를 말했다. 박 선생님은 논문집 2권을 내 놓았다. 그 중 한 권에는 내연산 폭포 주변에 새겨진 인명을 연구한 박 선생님의 논문이 실려 있었다.(박 선생님이 약 1년 동안 내연산 계곡을 샅샅이 답사하여 이곳을 다녀간 역사적 인물에 대해 행적을 정리한 논문이었다)  

박 선생님도 이 지방에서의 겸재의 행적이나 발자취, 그리고 그동안 궁금했던 겸재의 <청하성읍도>의 현재 장소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겸재의 <내연삼룡추도>와 관련, 수 년 전 몇 차례 시도하다 포기했던 선일대 올라가는 길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더니, 그 까닭을 알 수 있었다. 이외에도 다른 몇 가지 질문도 하고, 대화 중, 이 고장에 겸재 그림이 남아 있는지도 물었는데,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1980년대에, 이 지역 어느 마을에 화첩이 있었는데, 그 화첩이 대구의 누군가에게 넘어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겸재는 물론 화첩이 무엇인지도 잘 모를 때라 누구 그림인지 알 수 없었고, 화첩을 소장했던 분도 지금은 작고했기 때문에 확인할 길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이 지역 특유의 보수적 유교문화권 풍토상 다른 지역에 비해 조선시대의 그림이 드문 편이므로, 단일 족자도 아닌 화첩이라면 겸재의 그림일 가능성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겸재가 이 내연산 계곡에 어떻게 갔을까 궁금했는데, 박 선생님의 얘기를 들으면서 그 의문이 풀렸다. 계곡 입구에 위치한 보경사의 스님들이 관찰사나 현감들을 가마인 ‘남여’에 태워 올라갔다는 것이었다. 겸재 정선도 승려들이 멘 가마 위에 앉아 산천을 유람하고 구경하였던 것이다.(이런 풍습과 관련, 조선 말기에 어떤 보경사 스님 한 사람이 가마를 매고 올라가다가 당시 고을 현감을 계곡 물에 일부러 빠뜨린 사건이 있었고, 이 사건 이후 이러한 관습이 없어졌다고 했다. 사실 조선 후기 많은 벼슬아치들이 금강산 갈 때 당시 장안사 중들이 그들을 가마에 태우고 올라갔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박 선생님을 통해 이곳에서도 이러한 일이 있었음을 생생한 일화로 알게 된 것이다.)  
또한 박 선생님은 향토의 민속이나 민요, 민담 등도 관심이 많은 분이어서 여러 가지 흥미진진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지만, 밤이 늦어 다음날 이삼우 원장을 만나기로 약속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1.이삼우 기청산 식물원장 방문기

8월 20일, 집사람과 함께 아침 8시 40분 집에서 출발해서 박 선생님의 안내로  9시경에 기청산 식물원에 도착했다.
기청산 식물원은 그 이름과 달리 산 속이 아닌 평지에 있는 식물원이었으며, 노송림이 둘러싼 청하중학교 옆에 위치하고 있었다.
박 선생님은 이 곳의 넓이가 약 3-4만평의 크기라고 했다. 나무가 우거진 곳에 원장님의 집이 있었다. 집 근처에 이르러 야외에 있는 벤치에서 잠시 기다리는데, 수수한 회색 개량 한복 차림을 한 원장님이 집에서 나왔다. 인사를 나누고 가까이서 지켜보니 청수(淸秀)한 기품이 감도는 단아한 동안(童顔)이었지만 강직한 기품이 느껴지는 눈빛으로 인해 조선 사대부의 모습 같았다. 원장님의 일정상 대화를 나눌 약속시간이 길지 않다고 해서 준비해 간 나의 책을 드린 후 곧바로 질문을 했다. 아래 글은 주요 대화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도병훈(이하 도) : 삼복더위의 계절에 바쁘신 가운데도 귀한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대학 재학시에는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지난 90년대 초 간송미술관에 들린 일이 인연이 되어 겸재 정선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후 겸재 그림에 대해 공부하면서 겸재 특유의 독자적인 화풍과 이 곳 청하에서의 삶이 커다란 상관관계가 있음을 그의 전 후기 그림들과 이 곳 행적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1990년대 후반에 원장님의 글도 처음 보게 되었고, 꼭 만나 뵙고 싶어 오늘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사실 원장님이 임업을 전공하시고 또 식물원장이신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만, 언제부터 겸재 정선의 그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까?

이삼우 원장(이하 이) : 정확히 언제부터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대략 1990년대초 무렵, 간송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인 최완수씨가 TV에 나와 보경사와 겸재 정선의 '탐승각자'(명승지 바위에 새기는 이름을 말함)에 대해 말하는 것을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옆에서 박 선생님이 1993년경이라고 했다)  

도: 원장님의 글을 보면 <의송관폭도(倚松觀瀑圖); 소나무에 기대어 폭포를 본다는 뜻임>에 나오는 소나무가 실제 이곳 비하대 위의 실재하는 소나무라고 하셨는데, 사실 이 그림에 나오는 소나무는 중국의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 화보를 바탕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의송관폭도>에 그려진 소나무를 이른바 <겸재송>으로 단정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이: 먼저 이 그림의 화제(畵題)가 삼룡추폭하 유연견남산(三龍湫瀑下 悠然見南山)입니다. 즉 삼룡추폭포 아래에서 멀리 남산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이 삼룡추는 이 곳 내연산 계곡에 있습니다.
삼룡추 옆의 절벽이 비하대인데 이 절벽 위에 수령 약 400년으로 추정할 수 있는 소나무가 두 그루 있습니다. <의송관폭도> 소나무는 이 두 그루 중의 하나를 그린 것으로 보입니다. 소나무는 50~60년까지는 금방 자라지만 그 다음부터는 잘 자라지 않습니다. 또 절벽 위 바위틈에서 자란 생육조건을 감안하면 현재 비하대 위의 두 그루 소나무는 수령이 약 300~400년 정도로 추정할 수 있고, <의송관폭도>에 나오는 소나무 그림과 수형도 비슷하다는 것입니다.(대담과 나중에 자료를 통해 알았지만 이 원장은 나무 전문가로서 나무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을 바탕으로 지역 노거수(老巨樹) 회를 이끄는 분이었다)    

도 : <내연삼룡추도>를 보면 관음폭포에서 연산폭포로 올라가는 바위에는 사다리가 놓여 있습니다만. 지금은 그 위에 다리가 놓여 있는데 이 다리는 언제 설치한 것입니까?

이 : 내가 고등학교나 대학 다닐 때만 해도 나무로 만든 사다리가 놓여 있었습니다. 대학 다닐 때는 비하대 아래에서 야영도 했는데, 당시만 하더라도 야영하는 며칠 동안 겨우 몇 사람이 올라 올 정도로 한적했습니다.  사다리로 올라가려면 관음폭포 바로 위 냇가 좁은 곳에 돌이 놓여 있어 그 위를 딛고 건넜는데, 그 돌을 딛고 건너다가 미끄러져 계곡 물에 빠져 죽는 사람도 더러 있었습니다. 다리는 1960년대 중반이후 박정희 대통령 때 만들어졌습니다.  

도 : 원장님께서는 정선이 그린 <청하성읍도>에 대해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은 봉송정이란 정자에서 그렸다고 하셨는데..

이 : 봉송정은 지금 7번 국도와 청하에서 나가는 국도가 교차하는 사거리 부근에 있었던 정자로 옛날에는 이곳에 숲이 울창했습니다. 이 숲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한 숲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 중에는 수고 20~30M 나무를 심는다고 해서 무슨 바람 막는 효과가 있느냐고 하는데, 잘 모르는 얘기 입니다.  나무 한 그루만 심어도 공기의 기류가 바뀔 수 있습니다.
이 식물원 주변도 이 숲 덕분으로 이 주위의 공기가 다르며, 한 여름에도 다른 지역보다 훨씬 시원합니다. 이곳에 숲이 있는 한 자손만대까지 그 혜택을 보는 것이지요.  

도 : (준비해 간 겸재 정선 특별전 도록을 펼쳐 보이며) 겸재 정선이 그린 <청하성읍도>에 나오는 성곽이라든가 건물들의 위치, 그리고 뒤에 보이는 산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이 : 이곳 오른 쪽 상단에 보이는 성문이 청하 읍성의 서문이고, 현재 동사무소 근처입니다. 그리고 이곳 하단 성곽 모퉁이에는 옹성이 있는데 겸재는 이 옹성은 그리지 않았습니다. 이곳에 있는 누각은 해월루 입니다.
그림 성 읍 위에 보이는 산 중 윗부분은 덕성산이고, 아래는 호학산 자락을 그린 것으로 봅니다. 이 호학산이 청하의 진산입니다.

도 : 저도 겸재의 그림에 관심을 갖다 보니 그와 관련된 자료는 알게 되면 어떻게든 구해 보는데요, 원장님이 쓰신 글 중 참고문헌으로 나오는 최완수 선생의 글인「겸재 정선의 청하현감시절의 화력고」를 아직 못 읽어 보았습니다. 혹시 그 자료를 지금도 갖고 계십니까?    

이 : 지금은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어요. 요즘은 워낙 다른 일에 몰두하다 보니.... 잘 기억은 나지 않는데, 최완수 선생의 글에 내연산 폭포 하단 굴 부분에 대한 설명이 잘못되어 있어 그 글에다 표시해서 다시 보냈는지도 몰라요.  

도 : 조금 전에 드린  책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도 최 선생의 글에서 그러한 오류를 발견하고 주석에다 그러한 오류를 밝혀 놓았습니다.

이 : 그랬군요.

도: 한국인들은 소나무와 특별한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매우 소나무를 좋아합니다만..

이 : 소나무는 ‘제왕수’입니다. 물론 목재로서 유용하지만 소나무는 토양을 척박하게 합니다. 땅을 산성화해서 냇물과 강물은 물론 바다까지 산성화시켜 어족까지 변화될 수도 있습니다.
실제 나무로서 좋은 나무는 역시 참나무 입니다.    

도 : 그렇군요. 오늘 바쁘신 가운데 시간을 내 주시고 두서없는 질문에도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 (박 교감 선생님께) 모처럼 오셨으니, 식물원을 견학을 할 수 있게 안내해드리고 청하읍성도 안내해주세요.(대담이 끝난 후 이 원장의 서재에 비치된 방명록에 기록을 남겼다. 이 원장께서는 식물원 관련 홍보가 실린 지역 신문 1부, 청하중학교 팜플렛, 당신의 수필이 실린 수필집과 이 지역에서 있었던 겸재 정선 관련 행사와 관련한 팜플렛 등을 담은 봉투를 주었다. 그리고 식물원을 견학하기 전해 벌레에게 물릴 수 있다면서  벌레를 쫓는 천연 약물이 들어 있는 분무기로 손수 몸에 뿌려주었다. 식물원을 관람 후 우리는 그곳을 나왔다)


2. 겸재 정선의 <청하성읍도> 현장 탐방기

기청산 식물원을 나와 박 선생님의 안내로 <청하성읍도>를 그린 현장으로 이동했다. 먼저 동사무소에 도착해서 차를 주차해놓고 내리니 송덕비들이 보였다. 박 선생님이 겸재 정선의 송덕비는 없다고 했다. 이 곳에 재임하는 동안 그림만 그려서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 싶었지만 이러한 송덕비 중에는 억지춘향 식으로 강요해서 세워진 비도 있다. 이런 얘기를 박 선생님께 했더니, 맞는 얘기라고 했다.
동사무소 앞마당에 수령 500년은 됨직한 회화나무가 있었다. 겸재 정선이 이곳에 재임하던 기간에서 살아있던 나무인 것이다. 박 선생님은 <청하성읍도>에 나오는 나무 중 두 그루를 가리키며 이 둘 중 하나의 나무일 것이라 했다. 과연 수형이 비슷했다.  
우리는 그곳을 나와 성벽이 있는 곳으로 걸었다. 청하초등학교 울타리 동쪽 울타리 아래 성이 성벽이 남아 있었다. 성이 높지는 않았지만 장방형의 큰 돌을 다듬어 쌓은 것이었다.
갑자기 박 선생님이 성돌을 감싼 덩굴을 걷어내니 ‘예안(禮安)’이란 한자가 보였다.('안' 자는 글자의 획이 훼손된 부분이 있어 젊을 '소'자처럼 보였다)박 교감선생님도 처음에는 이 글자가 무슨 자이며 어떤 뜻인지 몰랐는데 경주박물관에 근무하는 성(城) 전문 연구자에게 물었더니, 이 성은 지금의 안동 인근인 예안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 쌓았다는 표시라고 했다는 것이다. 성은 규모와 기술적 문제로 지방의 일반 장정들이 축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각 지역에서 온 기술자들이 구역을 할당해서 쌓았음을 이 글자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어 서문 성벽 바깥에 위쪽의 향교 근처로 갔다가 다시 청하초교 쪽으로 걸어 나왔다. 그날따라 워낙 더운 날이어서 도로 옆 동네 슈퍼에서 생수를 산 후 청하초교로 들어가 나무 밑 벤치에 앉아 박 선생님으로부터 청하읍성에 대해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청하초교의 자리가 성내의 반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특이하게도 옛 성곽의 3면이 청하초교의 울타리였다. 그림을 놓고 펼쳐보니 해월루 자리도 바로 청하초교 안이었는데, 회재 이언적 선생의 기문에 이곳 해월루 주변의 풍광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고 했다.    

우리는 다시 동사무소 앞마당에서 집사람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봉송정 근처로 갔다. 그곳에는 수령 300년은 됨직한 몇 그루의 소나무와 별장 같은 현대식 건물이 있었다. 이곳은 청하 읍성에서 다소 먼 거리였다.
이어 7번 국도를 타고 조금 내려가니 청하 읍성과 덕성산 호학산 등을 전체적으로 관망할 수 있는 장소가 국도 변에 있었다. 박 교감 선생님은 손으로 산자락과 성 위치를 일일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장소를 가르쳐 주었다.
다시 동사무소에 도착하여 보경사 아래 한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한 후 박 선생님과 헤어졌다.


맺는 말

여말선초에는 사시도류와 소상팔경도, 조선 중기에는 옛 현인의 행적이 암시된 고사인물도, 무이구곡도 등 전통적 주제를 많이 그렸다. 이어 조선 후기에 명망 높은 안동김씨 가문의 김창협(金昌協,1651~1708), 김창흡(金昌翕,1653~1722) 형제가 새로운 유람 문화의 선구자로 등장하면서 18세기 전반기부터 문인들의 산수 유람이 유행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18세기 조선의 산수화가들도 자기체험의 공간을 담아낸 실경산수화를 그렸다. 이런 실경을 탁월하게 잘 그린 화가가 바로 겸재 정선이며 그는 당시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그의 화풍의 독자성(까칠하면서도 굳센 필력으로 대상을 대담하게 생략하고 강조한 청명한 화풍을 말한다)은 후기 그림에서 두드러지며, 특히 청하 현감 부임 이후의 그림들은 그 필력이 이전과 확연히 다르다. 겸재 정선은 1733년 청하에 현감으로 부임하여 절경인 내연산 계곡을 오르내리며 그린 <내연삼룡추> 연작과 관동의 명승을 그리며 진경산수화풍을 확립한 것이다. 내가 그간 청하에서의 겸재의 행적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삼우 식물원장은 이러한 겸재의 행적을 향토사학자이자 임학자로서 주목하여 겸재 예술세계를 탐색하였으며, 이 지역이  문화적 뿌리가 있는 곳임을 드러낸 분이다. 이번에 나는 이삼우 원장과 박창원 교감 선생님과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그동안 궁금했던 여러 가지 겸재의 행적들을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물론 <의송관폭도>의 경우 그 소나무가 실제 그 소나무인가 하는 사실 여부와 화풍의 독자성은 엄밀히 말해서 별개의 문제다. 그러나 이 소나무가 <의송관폭도>에 나오는 그 소나무가 아니라 할지라도 생육조건으로 보아 지금부터 약 270 여 년 전 겸재 정선의 생존시에도 있었던 소나무임은 틀림없으므로 겸재의 그림세계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
또한 <청하성읍도>의 소재인 청하읍성과 관련한 사실들은 이 지역에 사는 분들의 증언 없이는 결코 알 수 없으며, 따라서 그 사료적 가치가 높다.
집으로 돌아와서 두 분의 글을 찬찬히 읽어보니 이 분들의 삶이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이삼우 원장의 단아한 풍모가 눈앞에 선명하게 보이는 듯하다. 또한 삼복더위 땡볕 아래서 청하 읍성과 그 주변을 직접 친절하게 안내 해 준 박창원 교감 선생님에게도 다시 한번 심심한 감사의 뜻을 전한다.        

                            2007년   8월  25일
                                           도 병 훈


2007.08.27 (21:13:10)
전원길
더운 여름 작업실에서 헉헉거리고 있는 동안 도선생님께서는 의미있는 나들이를 하셨군요. 겸재의 작품과 관련된 행적을 발로 더듬어 나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분들과 이야기는 살아있는 공부법을 일깨워줍니다. 땡볕 더위의 끝자락에 시원하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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