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글 수 1,482
조회 수 : 1761
2017.03.21 (11:07:06)
[20세기 사상과 미술] 씨리-즈
21번쩨 로-랑.발트(Roland Barthes)
“Signifiant, 혹은 도망가는 알벨치-느”
‘디-도로’ 나 ‘보-드렐’의 선례를 들 필요도 없이, 프랑스에서는 작가나 시인이 미술비평을 쓰는 전통이 있다. 문예비평을 본래의 필드로 삼고 있던 로-랑.발트의 미술비평 역시 이러한 례에 따른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의 경우, 미술비평을 傍系의 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1950년대 후반에 있었던 프레히도의 연극평부터 시작하여, 1980년에 발행된 遺著가 된 [밝은 방 – 사진에 관한 노-트]에 이르기 까지, 발트는 미술비평을 일의 중심에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라고 하지만, 발트의 모-든 작업에 대해서는, “類別困難”이란 문제가 따라 붙는다. 어떤 것이 본래의 일이고, 어떤 것이 방계의 일인가를 단정할 수가 없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는 본래의 작업의 ‘옆에서’ 쓰는 일만 했었다고 말할 수 밖에 없을는지 도 모른다. 발트의 최대의 공적은 류별하기 힘든 작품 – [택스트], 혹은 [에크리첼]라 부를 수 밖에 없는 것들, - 을 남겨 놓은 것에 있다. 그러함으로 그를 [문예평론가]의 카데고리에 포함시킬 수가 없다. 歿後, 발트의 미술과 음악의 논집 [자명한 의미와 둔한 의미](1982)를 편한 프랑스와.바-르는 그의 미술론을,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한 작품] 이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말로 표현하기 매우 어려운 애매함, 이중성, 잡아내기 힘드는 점들은 발트의 결점이라기 보담 그의 현대성의 증표이며, 그의 엣쎈스를 이루고 있는 분명한 美質이었던 것이다.
主著의 하나인 [밝은 방]만 해도 이를 미술비평의 책으로 범주화시키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사진론이며, 죽은 어머니의 상을 추도한 책인 동시에, 자전의 한 단장이다. 바야흐로, 형용할 수 없는 책. 사진이 미술인가 아닌가, 불확실성을 띠우고 있다. ‘아지에’와 같은 매우 심각했던 예술사진家라도 생전에 자신은 그저 예술가에게 자료를 제공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진은 자신의 예술성을 “잊으 버릴 때” 예술이 되는 성질을 갖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사진은 회화이상으로 출처가 수상한 것이며 바로 이 수상한 출처에 사진의 매력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본래적으로 부유하는 미디어이며 예술이라 하드래도 [복제예술](벤야민-190페이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표류하는 사상가” 로-란.발트가 사진을 좋아 했던 것은 당연하였던 바, 그는 사진에 자신을 묘사해 보았다고 할 수 있음으로 그런 의미에서 [밝은 방]은 自傳이라 부르는 것을 허용할 수 있으리라.
죽은 그 해에 발표된 팝.아-트론 [이 오래된 것들, 예술….]에서도 위-홀이나 리키덴슈타인의 작품에 관해서, [이러한 작품들의 철학적인 의미]는 라고, 발트는 쓰고 있다, [현대적인 사상은 이를 표현하는 사회적인 코-드 이외 본질을 갖지 않는 것이며, ---- 그 결과ㅡ 실재적으로, 이들 사물은 더 이상 결코 (제조하는 일 없이), 즉자에 [복제되는]것을 말하는 것이다. 복제라고 하는 것은, 현대성의 존재인 것이다. [존재]는 이미 [복제]이며, 기원에서부터 끊켜저 나온 표류하는 것이다. 그것을, 그는 또, [시니휘안Signifiane]이라 명명한다. [시니휘안은 존속하고, 잔존한다, --- 비록 그것이 무로 돌려지는 것으로 보일지라도. 시니휘안이란, 무엇인가? 쉽게 한마디로 말해 본다면, 항간 보여젓던 것이며 어떤 종류의 사고에 의해 增大된 것이다,라고].
[밝은 방]에서는, 당연하게도 전반에는 나다-르부터 메이블쇼프에 이르는 예술사진이 咀上에 올려저 있는바, 책의 중심에 놓이는 것은, 무명의 사진가가 찍은 발트의 모친의 다섯살 된 때의 사진이다. 그는 그기에 막 돌아 가신 어머니의 어김없는 현존과 동시 부재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항간] 보여지는 것이며, 어떤 종류의 사고에 의해 증대된 것], 즉 SIGNIFIANT인 것이다.
나타나는 것과 살아지는 것, 발트는 [온실의 사진]에서 모친의 출현과 소멸을 본 것인데, 그가 그 비평활동을 통해 추구해 왔던 것이, 그러한 존재와 부재가 서로 등을 맞덴 표상에 지나지 안 했던 것이었다.
사진이 그 대표적인 例이다. 그를 생애를 통해 인도해 왔던 작가, 프르스트의 [도망 가 버린 알벨치-느]를 따라 [온실의 사진]에 나타났던 모친의 환상을, 바르트는 [알벨치-느]라 불려도 무방하리라. 미술논집 [자명의 의미와 둔중한 의미]란 표제가 잡혔던 [에이젠슈태인의 포-트그람에 관한 노-트]라고 하는 부제를 부친 논고, [제3의 의미]에서는 콤뮤니케이션의 레벨와 의미작용의 레벨에 대해, [제3의 의미]가 대치되어, 그것은 자명의 예리한 확실한 의미에 대해서, 둔중한 어리둥절한, 애매한 의미, [도망가는]라고 되 있는 것이다.
발트가 에이젠슈테인의 영화가 아닌, 그 영화의 스틸사진을 비평의 대상으로 한 것은, 사진이 갖는 “도망가버리는”의미에 대한 기호가 단적으로 나타나 있다. 포-토그램은 말하자면 단편으로써의 영화이며 스토리가 되는 전의 단계에 머문 [로마네스크]적인 것, 바르트가 좋아 했던 하이구나 일기와 같은 것이다. [제3의 의미는 나의 이해력이 미치지 못하는 첨가물supplement와 같은 것으로, (여분으로) 다가 왔던 것으로, 간고하며 잡을 수 없는 매끄려운 동시 도망가 버리는 것으로 이를 나는 둔한 의미라고 부르고 싶은 것이다].
뎃상화가의 에르때에서 그가 본 것도 바로 이, signifiant가 다음의 signifiant를 불려 내고 멈추지 못하는 연속의(도망의) 운동이 였었다. 마찬가지로, 도온브리의 [에크리첼]의 [모라리테]라고 부르는 것 역시 그것이 아무것도 잡아 내려고 하지 않는 것, 멈추고 뜨 다니며 욕망사이로 표류하는] 것이었다. 그가 이들 뎃상, 이들의 에크리치엘속에서 [도망가는 알벨치-느]의 환상을 쫒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약력: 1915년 셀불에서 탄생. 생후 2개월에 프랑스의 남서부 바애용으로 옮겨 1924년 이후 파리에서 살다. 1953년 최초의 저작물, [零度의 에크리첼]을 출판. 기호론자. 구조주의자. 뉴-벨 크리치크의 비평가로써의 활동을 개시하다. 1973년 택스트의 쾨락]으로 비평가 발트는 斷章형식을 구사하는 작가로 대변신 한다. 이후 [그 자신에 의한 로란 발트] [연애의 디스쿨.단장] [밝은 방] 의 三著는 로마네스크 삼부작]이라 불리기도 함. 1980년 교통사고로 인하여 不慮의 죽음을 당함.
주저: [영도의 에크리첼] 1971. [밝은 방] 1985. [제3의 의미] 1984. [그 자신에 의한 로-란 발트] 1979. [연애의 디스쿨.단장] 1980. [택스트의 쾨락] 1977. [문학의 기호학] 1981. [기호학의 모험] 1981. [舊修辭學] 1981. [택스트의 출구] 1987.
|
|||||||||||||||||||||||||||||||||||||||||||||||||||||||||
17598 경기도 안성시 미양면 이박골길 75-33 | Tel. 031-673-0904 | Fax. 03030-673-0905 | Email: sonahmoo@hanmail.net Copyright ⓒ 2002- Alternative Art Space Sonahmoo all right reserved.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