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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8 (11: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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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번쩨     . 들뢰즈(Gilles Deleuze)

 

                差異와 表層의 哲學

 

20대의 후반에 [經驗論과 主體性 흄에 있어 人間的自然에 관한 試論](1953)이란 저작을 물음과 동시에 들뢰즈는, 그 이후, -, 베르그송, 칸트, 스피노자등, 위대한 철학자들을 개별적으로 저상에 올려 놓고, 그 철저한 讀解속에서, 자신의 哲學的營爲에 어울리는 제 개념들을 추출해 내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일련의 哲學史的硏究를 끝낸 후, 들뢰즈는 1968, 최초의 주저 [차이와 반복]을 간행했다. 이는 同一性과 矛盾이란 개념을 대신하여, 差異와 反復이란 개념으로 철학사를 재 기술하려고 하는 反헤겔적인 시도로, -든 동일성의 철학의 근본에 있는 프라토니즘을 轉倒하는 것을 노렸다. 프라톤은 이디아와 그 직접적인 복사물인 에이콘과, 거울이나 물위에 비친 그림자와 같은 판타스마와를 존재론적으로 구별하였던 바, 들뢰즈는 이 코피-=에이콘과 시물러쿨라=판타스마 사이의 존재론적 = 가치론적 서열을 제거하려고 한다. 궁극의 근거로 군립하는 이디아를 인정치 않으며, 코피-에 대한 오리지널의 우위, 시물러쿨에 대한 코피-의 우위를 부인하고, 환영의 [載冠한 아나-키의 상태]를 찬미하는 것이다. -든 것은 겉보기이며 밀려서 다시 나오는 範型,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 以上, 겉보기는 스스로의 안에서 차이를 품고, 그때 마다 반복으로 나타나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차이를 차이답게 만들고 있는 것이 [强度]인데, 말하자면, 차이, 반복, 강도는 동의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전통적인 西歐形而上學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는 놀라운 아나-키즘의 등장이라 할 것이다. 동일성의 철학의 전면적인 부인은, 이성의, 데칼트적 자아의, 그리고 神의 부인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물론 모-든 권력을 부인하는 아나-키즘로써 나타나는 것이다. 이미 니-체가 착수했던 그 가치전도의, 이는 라디컬한 프랑스版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차이와 반복] 익년에 간행되었던 [의미의 논리학], 루이스. 캬롤의 [거울의 나라 아리스]를 狂言돌림과 같이 쓰면서, 또한 스토어철학을 언급하면서, 의미의 장으로써의 표층을 주제로 한다. 들뢰즈가 여기서 주장하고 있는 것은 [깊다는 말이 찬사가 아니게 됬다] 라고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표층의 효과에 지나지 않는다.

 

 1970년에 간행된 [프르스트와 시니휘에], [차이와 반복] [의미의 논리학]에 의해 거이 확립했다고 볼 수 있는 들뢰즈철학의 응용편이라 볼 수 있는 저작으로써, 여기서 들뢰즈는 차이를 산출하는 [文學機械]라고 하는 개념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1981년의 [프란시스. 베이콘 감각의 논리] [나는 공포 보담 외침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다]라고 하는 그 영국의 화가를 다룬 특이한 회화론이다. 감각에 직접 호소하는 형상적인 것을 베이콘의 작품에 특권적이라 보고 있던 들뢰즈는, 힘의, 밀도의, 강도의 現前化로써의 에술을 논한다. 힘이란, 우주적인 힘을 말하는 것이며, 그것이 形으로써가 아니라, 形象的인것이 되어 現前하고 있는 것이, 베이콘의 작품이라 하는 것이다. 베르그송적이거나 니-체적이라고 까지 말할 수 있는 주목해 볼 회화론이다.

 

들뢰즈는 1983년에는 [映像=運動], 1985년에 [映像=時間]을 저술했다. [영화]가 總題라 볼 수 있는데, 이들은 영화론인 동시에 베르그송론이기도 하다. 왜 영화론이 베르그송론인가. 그것은 영화가 발명된 것과 베르그송의 사상이 형성된 것이 동시대이며, 개념에의 운동의 도입과 영상에의 운동의 도입이 궤를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베르그송 자신은 영화적 지각이라 하는 말을 긍정적인 의미에서 쓰지 안했다. 그 베르그송의 택스트를 적극적으로 원용하면서 많은 영화작품을 구체적으로 논하고 있는 것이, 이 著作들의 재미있는 점이다.

 

1988년의 [주름 襞()] [라이프닛치와 바로크] 라 하는 부제가 나타 내고 있는 바와 같이, 라이프닛치철학과 바로크예술이 [주름]이라고 하는 形象으로, 동등하게, 언급되고 있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차이와 표층의 철학의 面目躍如라 볼 수 있는 시도이다. 미분이나 적분에서 단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바와 같이 작게 매듭을 지으면서 나아가는 라이프닛치철학과 무한히 주름을 만들어 가는 바로크예술과의 유연성. 허나, []은 드뢰즈에게는, 단순히 17세기의 철학이나 예술을 지칭하는 특권적형상일 뿐 아니다. []은 일반적으로, 반복하는 차이로써의 표층을 가르키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로, 드뢰즈는 현대를 네오.바로크시대 라고 부르고 있기도 한다.

 

드뢰즈는 이러한 그의 개인의 저작 이외도, 정신분석가 훼리크스.가다리와의 공저의 모양으로 몇권의 책을 내고 있다. [안티. 오이드프스](1972), [카프카](1975), [천의 프라토-](1980). [카프카] [안티오이드프스]의 개별응용편인데, [안티오이드프스] [천의 프라토] [자본주의와 정시분열병]이란 總題하에 저술된 大著이다. 무의식은 극장이 아니고 공장이며, 생산이 행해지는 욕망의 기계이다 라고 하는 것이, 드뢰즈=카타리의 테제이다. 시작도 없거니와 끝도 없는, 무한히 연쇠되어 가면서 분열하는, 문자 그대로 반복하는 차이로써의 저작물. 이를 두고 보프철학이라 평한 사람도 있었어나 보프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탈속적인 세계가 그기에는 펄쳐지고 있다. 끊임없이 유동하며 변용하는 사막, 파도의 포말이 이어지는 망막한 바다, 혹은 거대한 주름으로써의 우주. 그기서는 인간의 삶이, 하나의 작은 에피소드, 마치 유동하는 모래와 같은, 바다의 거품과 같은 접혀저 있는 주름과 같은 것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시대는 언젠가 드뢰즈의 것이 될것이다]라고 말한 사람은, 맹우 밋셀.푸코였다. 드뢰즈는 그를 위해 [-](1986)라는 책을 씃는데, 그 푸-코는 에이즈로 죽는다. 드뢰즈는 오랫동안 페를 앓았고, 車椅子의 신세를 지고 있었는데, 1995, 자댁의 아파-트의 창문에서 뛰어 내려 70년에 걸친 그의 생애를 스스로 끝냈다.

 

약력: 1925년 파리 태생. 파리대학에서 철학을 배우고, , 베르그송의 연구로 학구생활을 시작함. 69년 파리 제8대학 교수. 70년대부터 훼리크스.카타리와의 공동저술의 모양으로 저작활동을 행하던바, 80년대 와서는 단독으로 집필을 하기 시작하여, 회화나 영화에 관환 통찰을 전개했다. 87년에 대학퇴관. 95년 몰.

주저: [차이와 반복] 1992(년수는 일본에서 번역 출간된 해). [-] 1999. [-라이프니치와 바로크] 1998. [의미의 논리학] 1987. [베르그송의 철학] 1974. [칸트의 비판철학] 1984. [흄 혹은 인간적자연] 1980. [마솟호와 사드] 1973. [-] 1998.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 1991. [안티.오이드프스] 훼릭스.키티리와의 공저. 1986. [카프카 --- 마이너-문학을 위하여] 1978. [천의 프라토-자본주의와 분열병] 훼릭스.카타리와의 공저.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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