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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1 (11: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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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사상과 미술] 씨리-

 

       21번쩨    -.발트(Roland Barthes)

 

                     Signifiant, 혹은 도망가는 알벨치-

 

     -도로 -드렐의 선례를 들 필요도 없이, 프랑스에서는 작가나 시인이 미술비평을 쓰는 전통이 있다. 문예비평을 본래의 필드로 삼고 있던 로-.발트의 미술비평 역시 이러한 례에 따른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의 경우, 미술비평을 傍系의 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1950년대 후반에 있었던 프레히도의 연극평부터 시작하여, 1980년에 발행된 遺著가 된 [밝은 방 사진에 관한 노-]에 이르기 까지, 발트는 미술비평을 일의 중심에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라고 하지만, 발트의 모-든 작업에 대해서는, 類別困難이란 문제가 따라 붙는다. 어떤 것이 본래의 일이고, 어떤 것이 방계의 일인가를 단정할 수가 없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는 본래의 작업의 옆에서 쓰는 일만 했었다고 말할 수 밖에 없을는지 도 모른다. 발트의 최대의 공적은 류별하기 힘든 작품 [택스트], 혹은 [에크리첼]라 부를 수 밖에 없는 것들, - 을 남겨 놓은 것에 있다. 그러함으로 그를 [문예평론가]의 카데고리에 포함시킬 수가 없다. 歿後, 발트의 미술과 음악의 논집 [자명한 의미와 둔한 의미](1982)를 편한 프랑스와.-르는 그의 미술론을,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한 작품] 이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말로 표현하기 매우 어려운 애매함, 이중성, 잡아내기 힘드는 점들은 발트의 결점이라기 보담 그의 현대성의 증표이며, 그의 엣쎈스를 이루고 있는 분명한 美質이었던 것이다.

 

    主著의 하나인 [밝은 방]만 해도 이를 미술비평의 책으로 범주화시키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사진론이며, 죽은 어머니의 상을 추도한 책인 동시에, 자전의 한 단장이다. 바야흐로, 형용할 수 없는 책. 사진이 미술인가 아닌가, 불확실성을 띠우고 있다. 아지에와 같은 매우 심각했던 예술사진家라도 생전에 자신은 그저 예술가에게 자료를 제공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진은 자신의 예술성을 잊으 버릴 때 예술이 되는 성질을 갖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사진은 회화이상으로 출처가 수상한 것이며 바로 이 수상한 출처에 사진의 매력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본래적으로 부유하는 미디어이며 예술이라 하드래도 [복제예술](벤야민-190페이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표류하는 사상가 -.발트가 사진을 좋아 했던 것은 당연하였던 , 그는 사진에 자신을 묘사해 보았다고 할 수 있음으로 그런 의미에서 [밝은 방]은 自傳이라 부르는 것을 허용할 수 있으리라.

 

    죽은 그 해에 발표된 팝.-트론 [이 오래된 것들, 예술.]에서도 위-홀이나 리키덴슈타인의 작품에 관해서, [이러한 작품들의 철학적인 의미]는 라고, 발트는 쓰고 있다, [현대적인 사상은 이를 표현하는 사회적인 코-드 이외 본질을 갖지 않는 것이며, ---- 그 결과ㅡ 실재적으로, 이들 사물은 더 이상 결코 (제조하는 일 없이), 즉자에 [복제되는]것을 말하는 것이다. 복제라고 하는 것은, 현대성의 존재인 것이다. [존재]는 이미 [복제]이며, 기원에서부터 끊켜저 나온 표류하는 것이다. 그것을, 그는 또, [시니휘안Signifiane]이라 명명한다. [시니휘안은 존속하고, 잔존한다, --- 비록 그것이 무로 돌려지는 것으로 보일지라도. 시니휘안이란, 무엇인가? 쉽게 한마디로 말해 본다면, 항간 보여젓던 것이며 어떤 종류의 사고에 의해 增大된 것이다,라고].

         

    [밝은 방]에서는, 당연하게도 전반에는 나다-르부터 메이블쇼프에 이르는 예술사진이 咀上에 올려저 있는바, 책의 중심에 놓이는 것은, 무명의 사진가가 찍은 발트의 모친의 다섯살 된 때의 사진이다. 그는 그기에 막 돌아 가신 어머니의 어김없는 현존과 동시 부재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항간] 보여지는 것이며, 어떤 종류의 사고에 의해 증대된 것], SIGNIFIANT인 것이다.

 

    나타나는 것과 살아지는 것, 발트는 [온실의 사진]에서 모친의 출현과 소멸을 본 것인데, 그가 그 비평활동을 통해 추구해 왔던 것이, 그러한 존재와 부재가 서로 등을 맞덴 표상에 지나지 안 했던 것이었다.  

 

    사진이 그 대표적인 例이다. 그를 생애를 통해 인도해 왔던 작가, 프르스트의 [도망 가 버린 알벨치-]를 따라 [온실의 사진]에 나타났던 모친의 환상을, 바르트는 [알벨치-]라 불려도 무방하리라. 미술논집 [자명의 의미와 둔중한 의미]란 표제가 잡혔던 [에이젠슈태인의 포-트그람에 관한 노-]라고 하는 부제를 부친 논고, [3의 의미]에서는 콤뮤니케이션의 레벨와 의미작용의 레벨에 대해, [3의 의미]가 대치되어, 그것은 자명의 예리한 확실한 의미에 대해서, 둔중한 어리둥절한, 애매한 의미, [도망가는]라고 되 있는 것이다.

 

    발트가 에이젠슈테인의 영화가 아닌, 그 영화의 스틸사진을 비평의 대상으로 한 것은, 사진이 갖는 도망가버리는의미에 대한 기호가 단적으로 나타나 있다. -토그램은 말하자면 단편으로써의 영화이며 스토리가 되는 전의 단계에 머문 [로마네스크]적인 것, 바르트가 좋아 했던 하이구나 일기와 같은 것이다. [3의 의미는 나의 이해력이 미치지 못하는 첨가물supplement와 같은 것으로, (여분으로) 다가 왔던 것으로, 간고하며 잡을 수 없는 매끄려운 동시 도망가 버리는 것으로 이를 나는 둔한 의미라고 부르고 싶은 것이다].

 

    뎃상화가의 에르때에서 그가 본 것도 바로 이, signifiant가 다음의 signifiant를 불려 내고 멈추지 못하는 연속의(도망의) 운동이 였었다.  마찬가지로, 도온브리의 [에크리첼][모라리테]라고 부르는 것 역시 그것이 아무것도 잡아 내려고 하지 않는 것, 멈추고 뜨 다니며 욕망사이로 표류하는] 것이었다. 그가 이들 뎃상, 이들의 에크리치엘속에서 [도망가는 알벨치-]의 환상을 쫒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약력: 1915년 셀불에서 탄생. 생후 2개월에 프랑스의 남서부 바애용으로 옮겨 1924년 이후 파리에서 살다. 1953년 최초의 저작물, [零度의 에크리첼]을 출판. 기호론자. 구조주의자. -벨 크리치크의 비평가로써의 활동을 개시하다. 1973년 택스트의 쾨락]으로 비평가 발트는 斷章형식을 구사하는 작가로 대변신 한다. 이후 [그 자신에 의한 로란 발트] [연애의 디스쿨.단장] [밝은 방] 의 三著는 로마네스크 삼부작]이라 불리기도 함. 1980년 교통사고로 인하여 不慮의 죽음을 당함.

 

주저: [영도의 에크리첼] 1971. [밝은 방] 1985. [3의 의미] 1984. [그 자신에 의한 로-란 발트] 1979. [연애의 디스쿨.단장] 1980. [택스트의 쾨락] 1977. [문학의 기호학] 1981. [기호학의 모험] 1981. [舊修辭學] 1981. [택스트의 출구]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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