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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4 (12:5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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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상과 미술] 씨리즈

 

 

20번쩨      밋셀.레리스(Michel Leiris)

 

             피카소 부터 베-이콘으로 이르는, 창조행위로써의 批評

 

    1984년 파리의 국립근대미술관에서는 [. 와일러-=레리스. 커랙션]전이 개최됬다. 이는 [피카소의 畵商]으로 이름이 높았던 칸-와일러의 歿後, 유산상속인인 밋셀.레리스가 기증한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었다. 피카소, 브라크, 미로, 맛슨, 쟈코메티, 크레-, 베이콘등의 작품, 여기에 더해 아프리카, 오세이어등지의 오브제를 포함한 그 커렉션은, 그 규모나 개개의 예술가의 네임 밸류-란 점에서, 미술관에의 기증의 역사에서 특필할 중요성을 띠우고 있었다.

 

     화가의 아뜨리에란, 프라이베이트한 환경에 있었던 것이, 화랑으로 운반되, 이내 미술관을 무대로 하는 공공의 커랙션으로 변화하는 점에서도 20세기미술의 하나의 운명이 반영 되 있는바, 그기에는, 소위 말하는, 모던과 프리미티브란 두나의 요소가 동시에 포함되 있다는 점에서 주의를 끈다. 거이 같은 시기에 뉴-욕의 MOMA에서 개최되었던 [20세기미술 속의 프리미티즘]展에서, 르불미술관에서의 [-.브르미에]커렉선의 전시에로, 收集과 展示의 原理, 더욱이, 이를 지탱하고 있는 [미술]아라고 하는 서구적 관념 자체의 問題化가 이루어지려는 움직임에 눈을 돌린다면, 레리스도 또한 이 크다란 문제와 마주 했던 존재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레리스는 妻 루이즈를 통해 칸와일러와는 의리의 부자간에 헤당하는 관계였다. 20세기미술의 움직임을 바로 옆에서 봐 왔다는 의미에서 본다면, 매우 합당한 場이라 말해도 좋을 것이다. 레리스가 의부로부터 물려 받은 것은 크다. 그의 피카소론은 그 유산위에서 성립되 있다. 허나, 이 커렉션이 유산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은, 일례로, <밋셀.레리스의 초상>이라고 제한 프랑시스.베이콘의 유화를 보는 것 만으로도 쉽게 상상이 간다. 그기서 우리들이 인정하는 것은 극단적으로 디폴메된 얼굴의 표현인데, 그리는 자와 그려지는 것 사이에 이루어지는 독자의 대화가 있다. 리얼리즘이 아니고 리얼한 것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디폴먼, 이렇게 요약될 수 있는 베이콘의 사고는 [迫眞的인 외침]이라 하는 레리스의 말에 의해 다시 번의된다는 문제가 있었다.

 

    파카소를 포함하여 20세기의 대표적인 화가들의 손에 의해 이렇게 많은 수의 초상화가 그려진 시인=작가도 진귀한 것이다. 더욱이 초상화가 그려내는 것이, 위기에 처한 자의 모습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은가. 쟈코메티는 자살미수직후의 레리스의 모습을 그리고, 맛슨은 턱에 손을 데고 테이블 위에 있는 사이코로(주사위의 일본말)를 던지는 남자의 모습을 그린다. 화가와 작가 시인을 잇는 것은 위기적 순간의 표현이다. 위기속에서만이 극한적인 생의 진실이 계시된다는 발상은 이미 [도큐만]지에 게재되었던 그의 쟈코메티론에 나타나 있다.

 

    레리스는 문자 그대로 화가의 아트리에에서 詩作을 시작했다. 말라르메의 [사이코로 던지기]의 기억을 환기시켜주는 시편을 레리스가 쓰고, 일곱점의 석판화를 맛슨이 제작한다. 여기에 [시뮬라크르simulacrum]]라고 제목이 붙은 소책자가 태어나는데, 시인은 후에 그 성립사정을 감안하여 이를 완전히 맛슨의 아트리에서 쓰여진것이란 것, 더욱이 석판화는 단순히 시에 대한 이르스트로써 삽입된 것이 아니라, 그 소책자는 둘이 대등한 자격으로 이루어진 공동제작이란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화가가 작업을 이루어지는 순간, 켄버스와 연필, 종이와 펜이나 혹은 목탄과 닿는 일순간을 지켜 보며 여기서 일어나는 드라마를 잡아 내려고 하는 시선은 레리스 특유의 것이다. 마찬가지로 화가의 아트리에를 언급함에, -봐레리가 드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보여준 審美家의 특권적인 시선은 레리스에게는 무연한 것이었다.

 

   레리스의 택스트는 소위 말해지고 있는 [미술비평]이란 쟝르에는 맞지 않는다. 이는 어디까지나 그가 그 가치를 인정했던 예술가의 탐구에 접근을 시도하며 그들의 작품으로부터 발상하는 에너지를 나의 몸으로 받아 내면서 그 등가물을 이번에는 자신의 문장행위속에서 만들어 가려는 그 자세에 의한 것이었다. 이것이야 말로 레리스 독자의 [언설]의 참모습이었다 할것이다. [鬪牛鑑] 혹은 [성숙의 년령]의 서문에서 레리스는 문장행위를 鬪牛에 비유하는 것을 바탕에 두고 그러한 위험한 도박적인 성격을 표현하려고 했던바, 그 배후에는 표상이 아니고 작품생성의 과정 그 자체에 육박하려는 의식이 깃들어 있다.

 

    한장의 그림과의 만남이 결정적이라 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이루는 순간은, [성숙의 년령]의 그라낫하가 그린 나체화에서 얻은 자극을 바탕으로 해서 성립하고 있는 점을 위시하여 널리 그의 작품에서 보여지고 있다. 여기서 레리스의 조형적사고와의 만남의 특질을 구지 요약해 본다면 이하의 두점에 환원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핵은 [슈리얼리즘의 혁명]誌 내지 [도큐만]지와의 관련에서 얻은 1920년대 [아방가르드]운동에의 참가의 체험에 있다. 다른것에 앞서 맛슨의 모래그림 혹은 선의 움직임, 쟈코멧티의 夢魔的인 오브제등에 대해 언급함으로 해서 그는 거이 동세대 가운데서 리얼란 것이 疑縮되어 物質化되는 순간을 잡아 내려는 것 같이 보인다. 집착도 또한 하나의 요소가 된다. [어제 움직었던 모래가..]에 나타난 쟈코멧티의 꿈의 기술이 보여주는 독자적인 맛은 잊기 힘든 것이지만, 레리스역시 생애를 통해 꿈의 記述을 이어갔으며, 그기에서는, 말하자면, 그 자신의 꿈의 오브제의 기술도 찾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핵은, 민족지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레리스는 [民族誌家의 눈]이라 제한 문장을 [도큐만]지를 위해 쓰고 있다. 아프리카에로의 민족지조사여행에 앞서 쓰여진 것인데, 여기에는 서구적인 視座를 떠나, 아방가르드예술운동이 체현하는 모던의 외부로 벗어나려는 문제의식이 인지되고 있다. 단 민족지 및 인류학에의 본격적인 작업속에서 프리미티브한 것에 대한 성급한 동경은, 표리의 인종적편견이 아니였었나 라고 하는 반성적인 태도를 포함하여, [] []의 상극을 여하히 잡아 내는가 라고 하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 오-랜 시간이 필요해지는 [도큐만]지와의 상관에서 [흑인아프리카의 미술]간행에 이르기 까지 그가 마주했던 문제는 바로 그러한 것이었다.

 

    略歷: 1901년 파리 생. 초기 슈-리얼리즘운동에 참여함. 바타이유와 다불어 [도큐만]지 편집에 참가. 이후 다갈=지브찌민족지조사여행(31-33)을 거처 민족지를 배우고 이후 파리 인류박물관에서 근무. 전후 한 시기 사르틀 주재의 [..모델누]지와 관계를 갖다. [성숙의 년령]을 시작으로 [게임의 규칙] 4권을 통해 자전적 작품을 쓰다. 詩作과 민족지연구라고 하는 이중활동에서 생기는 갈등이 이 작가의 원동력이었다고 사료된다. 90년 몰.

 

    主著: [셩숙의 년령] [환영의 아프리카] [투우감] [밤없는 밤, 낮 없는 낮] [獸道} [흑인 아프리카의 미술] [피리와 외침] [오람피아의 턱의 리본] [피카소. 쟈코멧티. -이콘] [문화해체의 상상력 -리얼리즘와 인류학적 사고의 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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