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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7 (11:5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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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비 수원산책 

 

                  실험공간 UZ -2017.2.11-2.26

               

[UZ], 전시공간'이라 하기 보담, 어떤 음밀한 결사체가 비밀리에 뫃여 時流에 逆行하는 내밀한 음모를 획책하는 지하 동굴과 같은 장소(아지-underground)이다.

 

그 아지트의 명칭으로 쓰고 있는 UZ란 엠브렘(emblem), 우주란 한국말을 알파벳으로 소리 나는 데로 u-zu로 표기한 것이다. 그 앞에 붙어 있는, 실험공간(experimental space)이란 말은 진부한 감이 없지 않으나, 매우 열려있는 場 개념으로 읽힌다. 열려 있다는 것은 모-든 것으로 향하고, -든 것이 혼융되면서, 물음이 있을 뿐 답이 보이지 않는 수수꺼기 같은 [현대미술]을 실험해 보는 장소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미술전시관 치고 매우 거대담론적 명칭이다.

 

이 별난 소우주 에서, 대구로부터 원정 나온 작가 11명을 포함하여 수원에서 아웃사이드적인 별자리를 지키고 있는 작가 12명이 영합해, , 나비 수원산책 이란 전시 가 연출되고 있다.

 

 전시제목 역시 우주의 카오스적인 프랙털한 점을 떠 올리게 하면서, 상징 기호의 명칭으로는 애매하게 다가 오는데, 방문객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이번 전시는 보기에 따라서는, 보는 사람의 관점에 서서, 미술작품을 觀賞하는 실험도 요구하고 있다. 전시 공간과 작품이 명확하게 따로 분리되 있지 않기 때문이다. 館主는 관주대로 展示方法을 놓고 하나의 새로운 형태의 전시공간을 획책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캄캄한 동굴과 같은 지하실로 발을 옯겨 놓으면, 전기불을 켜야 한다. 주변 경광은 소위 화이트 큐-브로 알려저 있는 깨끗하고 질서가 잡혀 있는 미술전시장과는 거리가 멀다.  마치 공사중인 現場과 같이 벽면에는 색칠한 안료가 건조하면서 입을 벌리고 있고, 이전에 전시했던 작품들의 잔영들이 지금 전시되고 있는 작품들과 나란히 이곳 저곳에서 얼굴을 내 밀고 있기도 한다. 이는 중첩그리기도 아니고 新舊가 혼재하고 있는 것임으로, 관람을 고의적으로 혼란스렵게 하는 어떤 의도가 숨어 있는듯 하다.

 

뿐만 아니라, 접수대로 쓰이는 테이블이나 의자들, 벽에 붙어 있는 게시물들이 작품인지, 비품들인지 구분 짖기 어렵고, 이런 상례를 벗어난 기이한 同居로 인해 분명해 지는 것은, 전시공간을 하나의 으로 간주함으로 해서, 총체적으로 모순이나 애매함을 배제하지 않고 삼키고 있다는 인상이다. UZ의 전시공간 자체가 모순을 삼키며 이를 창조적으로 되살려 내는 하나의 작품으로 간주한다는 의도 말이다. 그래서 , 나비 수원산책展에는 23인의 작가들의 작품 23개가 선을 보이고 있는 위에 추가로 전시장이란 작품이 덧붙혀저서 24개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추가로 나온 작품은, 23개의 작품들을 모두 나름의 위치로 자리를 잡아 주면서 자신은 무대의 뒷켠으로 숨어 버리는 매트릭스적 網역할을 하는 실험공간 [우주]임은 말할 것도 없다. 

 

작가들도 대구 작가 가 반수를 차지하고 있어니, 이건 집단 遠征이다. 전시 작가들을 큐-레이팅하는 것도 실험하기 시작한 것 같다. 수원작가들이 여반을 채우고 있다고 명시되어 있어나, 모든 작가들이, 자기 작품의 됨됨에 따라 자유롭게 그 자리를 찾아 안착해 있다. 어떤 작품은 천정 석가레 위에 얹혀저 있고, 게시판 위에 예쁘잔하게 얹혀 있는, 이영길이란 작가의 패가 마치 숨박꼭질하듯 숨어 있다. 그의 작품은 이름을 보지 않아도 짐작을 할 수 있는 낮익은 이미지로 초현실적인 팬던트(pendunt)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한쪽 구석에 쓰레기 뭉치와 같이 버려저 있는 말라 비트려진 포도나무 가지들은 館主 김성배의 작품이다. 자칫 쓰레기로 오인하여 갓다 버리지 못하도록, 작가는 빛을 내고 있는 금색으로 가지에다 덧칠을 해 놓았다. 김성배의 작품은 우리 생활주변의 물체들을 그대로 전시장으로 옮겨 놓기 때문에 이 또한 쉽게 아이덴티화이가 된다. 그의 物 오브제도 평범한 물을 가장한 초현실적 (mirror)으로 풀이해 봐야 맛이 난다.

 

           전시장 한 가운데, 무수히 많은 깨진 유리병의 파편들이 바닥에 깔려 있고 그 한 가운데 이 또한 무수한 못질을 해 놓은 통나무 기둥이 세워저 있는 작품은 대구의 김결수 작가의 작품이다.

 

            [내 가슴에 못을 밖는 구나!]

            [산산히 뿌셔진 이름이여! 부르다 내가 죽을 이름이여!] 이러한 절규로,

 

구제할 길이 보이지 가 않는 현실을 그대로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인데, 스윗치를 누르면 바닥밑에 설치해 놓은 불빛이 작품의 중심부에서부터 동심원으로 빛이 흐른다. 이로 인해 작품이 갖는 산만한 가학(sadism)적 이미지가 하나의 전체로 통합되는 아름다운 조화로운 느낌을 안겨 주는 광경으로 바뀌면서, 마음을 평안하게 해 준다. 이 작품은 참가 모-든 작가들의 내적 필연으로 와 닿는 의미와 공유하면서

        조형미술의 세계에서 속죄구원의 문제를 직설적으로 풀어 내고 있다.

 

이러한 무질서해 보이는 전시 방식은, 일종의 狀況美學이나 矛盾論理의 증표로 간주할 수 있는데, 演繹的 사고가 아니라, 일즉다의 歸納하는 파라다임으로 不一不異로 잡히는 방식으로, 전시공간의 특이성과 함께, 합리성을 넘은 二元性一元論이라고 하는 자체적으로 모순된 구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모순을 병치 대극하는 것이 아니라 삼킨다. 皆是皆非나 호모몰피즘homomorphism의 논리가 그렇다. 여기서는 23인의 작가와 작품들이 만들어진 축을 心으로 보고 이를 分介하면, [異體同形]의 고리가 생성되 나오도록 획책하는 것이다. 모두가 옳고 또한 그르다. 모두가 서로 다르면서 같다. 라고 하는, 主客未分化된 環境一體적 [매트릭스Matrix]적 고리 개념이다.  시간과 공간, 주체와 객체의 구별을 넘어 서는 Matrix적 차원사고와 동시에 대칭성적 사고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독해가 불가능 하던가 불완전해 진다. 불교권에서도 화엄경에서 이와 같은 귀납적 인식론이 정립되 있는데, 一即多나 개시개비를 體現하는 [] [] 眞如로 잡아 보는 우주관이 바로 그것이다.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세계다.

 

 

               매트릭스란 것은 인류의 사물 인식의 원초적인 胎와 같은 개념으로 명석한 논리로 분석할 수 없는 [애매성] 이나 인식의 [미분화]상태를 품고 있는 존재태를 일컫는 말이다. 갓 태어난 어린애기는 모체에서 일단 분리해 나오기는 했지만, 아직도 배곱의 교감상태를 벗어 나지 못함으로 모-든 것을 모체에 의존하는 유아적 상황속에 놓여 있는 것과 비슷하다. 이러한 경우는 미개사회의 자연친화적 미분화의식에서도 볼 수 있다. 이는 개체가 타자와 완전히 분리되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으며, 매트릭스상에 잡히는 개체는 타자와 매우 끈끈한 정서적 유대감을 갖게되고, 운명공동체적 상황에 놓인다. 앞서 언급했던 미술전시관 UZ의 장소적 논리가 바로 그러한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뇌의 우뇌측 작용태는 단선적인 좌뇌의 백털(관점)과는 달리 複線的인 사태를 받아 들일 수 있는, 기능을 하는데, 매트릭스는 이 非單線的 소용돌이와 같은 카오스적(혹은 모순적) 사태와 대응하는 사유에서 나온다.

 

矛盾은 여기서는, 우리의 마음속에 수시로 생성하는 心의 가상시공(버추월리티vituality)의 軋轢의 機制에서 생성되는 것이다. 우리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이 세계속에서 質的인 것, 개별독립된 요소가 존재한다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는데서 일어 나는 것이다. 질과 량을 동시에 삼킬 수 있는 세계에서는 알력보담 새로운 창조의 깃틀이 잡히면서 불교권에서 일컫는 돈[]이라 부르는 상태에 놓인다. 돈이란, 일순간에 깨달음을 얻는다는 뜻이다. 매트릭스의 장에서는 시작과 끝이 없으며, 나의 것과 타자의 것의 엄격한 구별도 의미가 없다. -직 과정으로 치닫는 찰나적인 좌표의 흔적만이 보였다 사라질 뿐이다. 이러한 차원에서는 미술이 []에 귀속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 개념, 아우라를 일컫는 [聖性]개념으로 나아가며, 궁극에 가서 信心을 불려 일으키며 초월적인 세계까지 상정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만이, 진정 인간의 속죄가 이루어지면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류학적 관점에서는, [미술]  [신 인류]의 탄생과 동시에 발생하고 초월자에 대한 숭상의 의식에 동원된 유일한 인식론적 콘텐츠임을 밝힌다.

 

[,나비 수원산책]에 동원된 23인의 작가들과 추가로 첨부된 [UZ]란 작품 모두가  위와 같은 공동환상의 내적 필연의 파라다임에 의해서 탄생해 나온 오마-쥬이면서 동시에 뢰켐(requiem 진혼곡)임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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