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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0 (09:3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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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도널드. 프레찌오-(Donald Preziosi)

 

            [] [科學化] 하려는 近代美術史學의 歪曲을 규탄함

 

      미술사의 위기가 선전되던 1980년대, 제빠르게 미술사학의 이론적 틀이나 방법론적 전제에 관해서 저술을 상제한 것이 도널드.프레찌오-지이다. 당시 미술사학에 대한 비판은 [New Literary History] [Critical Inquity]와 같은 美術專門誌 이외의 곳에서, 미술사 프로바-가 아닌 논객에 의해 전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떠 올린다면, 그의 미술사비판의 서 [Rethinking Art History: Reflections on Coy Science]는 순수한 미술사 내부에서부터의 자기비판이란 특이한 예로 간주할 수 있다.

         실제로, [미술사학의 위기]의 감정이 만연하고 있던 시대, 예를 들면, [Art Bulletin]지의 [미술사학의 위기] 특집호에 제시한 론고가 대부분 [위기]를 정면에서 언급하지 안했다는 사실이 시사하고 있듯이, 그 실체가 무엇인가는 거이 논해 지지 안 했었다. 그런 사이에, 프레지오-지는 [미술사 / 속의 위기] [미술사의 / 라고 하는 위기]를 준별하여, 전자는 미리 결정된 프로그램, 방향이 잡힌, 진로에서 미술사가 일탈, 내지 지연되고 있다는 사태가 전개되고 있었다. 위기의식을 표명하는 상투적인 수사, [막힘] [정체] [일탈]이란 것들은 그러한 방향 내지 진로를 전제하고 있다. 미술사가 일정한 목표를 향한 진보나 발전이란 線狀的 내지 循環的 모델로 표상되기 쉬운 것과 같이, 이것과 표리를 갖는 미술사학 역시, 가지 각색의 문제의 발전적 해결의 連鎖나 普遍的存在의 暫時的 開示의 계열이라고 하는 발전적 방향, 이론이나 방법의 진화적 세련이라고 하는 도식속에 암묵적으로 잡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가 무언가 방향성을 갖는 다는 [歷史主義的]역사는, 가능성으로 항상 [일탈]을 배태하고 있음으로 원래부터 [위기]를 내재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술사라고 하는 위기]는 미술사학이 일련의 모순의 항결에서 태어 나는 긴장에 의해 지탱된다는 사태에 있다.

    19세기에 성립했던 근대미술사학은 동시대의 다른 학에 비해 손색없이 객관적, 논리적이며 엄밀한 학으로써 당시의 과학주의의 틀에 적합하려 했음과 동시에 예술작품이 예술작품이외의 물질사회의 인위적 소산과는 일선을 끗는 존재란 것을 주장하려고 했었다. 이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즉 科學임을 표방하는 미술사학의 대상은 다른 과학의 대상이 되는 일반적사물과는 존재론적으로 다른 [미적대상]이며, 이를 다루는 미술사학은 여타 학문 보담 높은 서열에 속한다, 라고 하는 것이다. 그 위에 당의 [미적대상]은 초시간적 진리의 구현이면서 과학적[역사학]의 시간계열에 배열되, [말하기 어려운 것]이면서 미술사학의 대상으로써는 소통가능한 언어의 레벨에서 처우되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을 내재시키는 미술사학은 비근컨데 견고한 건축물은 아니며, 공중에 뜨 있는 구름다리와 같이 항결하는 힘의 미묘한 균형에 의해 성립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술사라고 하는 위기]인 것이며, 문제시 해야 할 것은 그러한 [위기]를 품고 있으면서 미술사학이 성립하는 과정인것이다.

    헌데, 미술사학이라고 하는 언설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 예술작품은 해독 가능한 기호로 다루어진다. 말하자면, 미술사학은 [보이는 것]을 읽을 수 있는 것으로 전환시키는 장치인것이다. 프레즈이오-지는 이 장치가 르넷상스기원의 다양한 테크노로지에 의해 가능해 젔다는 점을 지적한다. 우선 [보이는 것] [읽을 수 있는]것이 되기 위해 필요한 기호조작은 갈리레오의 천체망원경에 비교된다. 갈리레오에게는 망원경의 공간에 수용되는 것만이 보이는 것=읽힐 수 있는 것이며 망원경의 길이를 조정하는 것은 여하간 보이는 대상을 자의적으로 바뀌는 것이 된다. 주체에서부터 엄연하게 분리되 나온 과학적 조작 가능한 대상으로써 예술작품을 다루는 미술사의 언설은 갈리레오적 파라다임의 산물이다. 더욱이 [의미] [해독]하는 미술사가는 특정한 특권적 입장을 다루는 바, 이는 투시원근법의 가공의 고정된 시점과 같은 것이다.

    미술사가는 이렇게 의미되어진 미적형태를 일정한 입장에서부터 이미 결정된 목적론적인 방향틀 속에서 질서있게 배열하는 것으로 예술작품의 역사를 구성해 가는바, 그의 입장은 16세기의 쥬-리오.카미로의 記號의 劇場의 사용자의 그것과 유사하다. 기호의 극장은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관념을 직접 지각될 수 있는 물질적인 기호로 치환해냄으로써 표현하는 바, 가지 각색의 지식이나 지혜의 相違를 나타내는 압축된 상징적형상/비유가 들어 있는 정보의 중심에 주체는 위치되어 지기 때문이다. 본래 같으면, 불가시적인 배열을 철저하게 가시적으로 만든다는 점에서는 기호의 극장과 나란히, 젤렘미.벤삼의 파노푸티콘도 거론된다. -코에 의해 근대적 학문의 구축과 강력한 인식론적 유대를 지적받은 파노푸티콘은 미술사적배열을 완벽하게 헤알릴 수 있는 것으로 만들면서 인격적존재로서의 기술에는 결코 등장하지 않는, 말하자면, 불가시의 중립적방관자로서의 미술사가를 훌륭하게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기호의 극장도 파노푸티콘도,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주체가 대상의 비교, 식별, 대조, 바리에이선을 이내 看破할 수 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미술사적 전제도 체현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천체망원경, 투시원근법, 기억의 극장, 파노프티콘등 모두가 否曲裝置란 것이다. 이들 모두가 전제하는 고정된 유일한 중심은 주변의 부곡을 필연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술사가란 원래 어떤 특정한 주체가, 불가시의 중립적 서술자로써 특정한 특권적위치에서 특정의 방향성를 갖고 기술된 것의 집대성인 근대적미술사학은 아나몰포-즈적 아-카이브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헌대 그러한 프레쯔이오지의 견해에 대해서 특정한 입장에서 나오는 그의 언설이야말로 當의 비판의 대상이 되 있는 아나몰포-(歪像)적 不曲에 다름 아니다, 라고 하는 의견도 당연히 일어 날것이다. 그가 근년에 편집한 안소로지-[미술사의 技]에서는, 수용된 논문을 종래와는 [달리] 고찰되는 []로써 권두와 권말에 소론을 두고 있다. 앞서 언급한 비판을 역으로 봐야 하는가, 그기서 그는 자신의 논고가 [미술사]를 옆에서 보여주는 아나몰포-즈장치임을 명언한다. 그기서 보이는 것은, 미술사란, 현재의 이데올로기에 맞게 체계시차계열에 歷史的過去를 배열하는 작업이다, 라고 하는 것이다.

 

    약력: 1941년생. 칼리폴니아대학 로스안젤레스교(UCLA)에서 미술사 교수로 교편을 잡고 있다.

    주저: Rethinking Art History: Meditation on a Coy Science, 1989.

          The Art of Art History: A Critical Anthology, ed, by Donald Preziosi. 1998.

          Aegan Art and Architecture. 1999.

          The Ottoman City and its Parts, 1991.

          Minoan Artitechtreal Design, 1983. 

          Artitecture, Language and Meaning, 1979.

          Semiotic of the Baltic Envirement,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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