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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3 (12: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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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테카..가섿 (Jose Ortega y Gasset) 



                                      先驅的인 20세기 藝術論 

  1.     思想家로서의 올데카..가섿의 방대한 작업에서 예술론이 차지하는 위치는 결코 크지 않다. 크지 않다고 하나, 그 중요성은 각별한 점이 있다. 적어도 20세기 예술을 저상에 올려 놓으려고 한다면, 올데카가 제시한 논점을 무시할 수 없다.

         올데카는 [베라스케스론]이나 [고야론]을 쓰고 있지만, 여기서 각별히 거론해야 할 것은, 두편의 논고, [미술에 있어서의 視点에 대해](1923) [예술의 非人間化](1925) 일것이다.

         [미술에 있어서의 시점에 관해]는 실로 대담한 주장이 들어 있는 논고이다. 올데카는 [화가의 시점]에 의해 [서구회화가 취한 6세기에 걸친 움직임을 해명할 수 있다] 라고 말한다. [죳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회화의 움직임은 실은 시작과 끝을 갖고 있는 오-직 하나의 단순한 움직임이란]사실을 알게 된다. 서구세계의 회화예술의 변천을 그토록 단순한 하나의 법칙이 지배하고 있었음은 이외이다. 그리고 더욱이 가장 기묘한 일로, 우리들의 관심을 불려 일으키지 안고 자나 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법칙과의 유사성이다] 라고 올데카는 말한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이런 것이다. 올데카는 먼저 사물을 보는 방식을 [근시법] [원시법]으로 구별한다. 근시법이란 시점을 대상 그 자체에다 두고 이를 꼼꼼하게 보는 것을 말한다. 대상은 기폭과 부피가 있는 상태로 보이며 그 주변에서는 막연하게 보이는 영역, [배경]이 펄쳐저 있다. 이는 觸覺的인 관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원시법이란 시점을 어느 한점에 집중하지 않고 시야의 전체를 포함하려고 하는 시점을 말한다. 그러면, 시야전체가 굴곡있는 공간으로써 나타난다. 근시법과 원시법이라고 하는 표현에서 오해하기 쉬운것으로, 역설적이게도 원시법으로 보는 대상은 근시법의 경우 보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우리들의 각막이 기점임으로 해서 가깝게 있는 것이다. 순연한 원근법에서는, 우리들의 주목은 보다 멀리 향해지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근접함으로 후퇴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두개의 관점을 구별한 후에, 올데카는 구라파미술사를 통해 화가의 시점이 근시법에서 원시법으로 이행했다고 주장한다. 죳드에서 부피가 있는 회화로 출발한 회화는, 空洞의 회화로 바뀌 갔다고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한다면, 서구회화의 발전과정은 객체에서 주체인 화가쪽으로 진로를 바뀌어 갔다고 본다. 이렇게 하여 올데카는 구와도로첸코에서 라파엘로, 뒨 도랫도, .그레고, 베라스케스, 그리고 인상파, 세쟌느, 큐비즘에의 [단순한 움직임]에 대응하는 듯, 서양철학이, 단테의 실체적 실재론에서 데칼트, 라이프닛치를 경유하여 아베나리우스와 맛하의 감각주의에로 이행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올데카는 최후에는 [주관내적인 것]에 눈을 돌리는 철학의 등장을 시사하고 있는 데, 확실한 이름을 거론하지는 안코 있지만, 이는 다분히 현상학을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표현주의나 큐비즘와의 대응을 염두에 둔 것으로 생각된다.    

       1924년이라고 한다면, [-리얼리즘선언]이 쓰여젔던 해다. 표현주의도 큐비즘도 추상미술도, 아직 이 단계에서는 이론적인 定位가 되지 안코 있었다. 그런 때 []에 의한 이론화의 시도이다. 독일에 유학을 하고 있던 올데카는 아마도 독일-스위스계의 미술사학, 특별하게도 뷜브린의 시각형식설로서의 미술사를 알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미술에 있어서의 시점에 관해]서는 뷜브린이 말하고 있는 크라식에서 바롴에의 이행이 이루어진 6세기의 스판(span)으로 확대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1925년의 [예술의 비인간화], 20세기 초두의 [신예술] [非大衆的]이었을 뿐만 아니라 [反大衆的]이기 까지 하는 성격을 [비인간화]란 개념으로 설명 하고저 했던 논고였다.

       그는 이런 예를 들고 있다. 어는 고명한 사나이가 죽으 가고 있었는데, 그기에 남자의 처와 의사와 신문기자와 화가가 함께 있었다. 올데카에 의하면 이 순서로 인해 事象에의 感情的인 개입도가 약해진다. 말하자면, [살아 있었던] 현실로부터 [바라 보이는] 현실에의 移行이다. 슬프해야 할 일에 깊이 들어 가서 그 일부가 된 처부터, 마냥 무대에 눈을 곶고, , 그림자, 색가만 주목하는 화가에 이르기 까지 점점 [정신적 거리]가 증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적 시점이란, 상황, , 사물을 [사는] 시점이라 할 수 있음으로, 임종의 현장에서 태연하게 임한 화가는 [비인간적]으로 보이게 된다. [비인간화]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인간적] 현실로부터의 거리화의 작용을 가르키는 것이다.

       기욤 아포리넬 역시 그의 [큐비즘의 화가들](1913)에서 이따금 [비인간적]이란 형용사를 쓰고 있다. 현상적으로는 화면에서 살아 있는 인간적형상이 살아저 가며, 무기적인 것, 결정화된 주제에의 기호가 강하게 느껴지는 사태를 가르키는데, 보다 일반적으로는 라디컬한 [양식에의 의지]와 관계가 있다. 아포리넬의 직관과 올데카의 이론은 通底한다. 더욱이 올데카는 [신예술]이라고 하는 말속에서 뒤빗시 이후의 음악, 말라르메이후의 시, 비란델로이후의 연극도 포함시키고 있다. 미술에서는 무엇보담 표현주의와 큐비즘이 문제시 되고 있으면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올데카는 이렇게 쓰고 있다. [신예술은 오늘에 이르기 까지 무언가 가치 있는 일을 탄생시키지 목하고 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와 근접한 의견을 갖고 있는 한 사람이다. ………. 허나, 이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는 신양식이 놀라운 열매를 맺지 못할 거라고 누가 보증할 수 있을까. 신예술이 노리고 있는 사업은 거대하다. 무에서부터 창조를 일꾸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장래에, 신예술이 너무 욕심을 부리지 안코 보다 적격한 과일을 탄생시킬 것으로 믿고 있다], 리고. 올데카는 이 예측. 희망에 대해 우리들은 이미 해답을 할 수 있는, 혹은 해답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점에 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덧붙혀 말한다면, -프랑스와.리오탈은 그의 모더니즘논집에서 [비인간적인 것](1988)을 타이틀로

    내 세우고 있다.

     

    약력: 1883년 스페인 태생. 스페인 국립대학에서 학습한 이후에, 독일에 유학하여 신칸트학파에서 연구를 함. 귀국후 마드리드대학의 교수가 되어 저술활동을 정력적으로 행하다. 좌우의 정치세력의 분권화가 심해젔던 당시의 스페인에 강한 위기감을 느끼고, 스페인전쟁의 징후가 보일 지음 1936년에 프랑스로 망명을 하면서 이후 45년까지 망명생활을 보낸다. 저작 [대중의 반역]은 구라파의 사상계를 중심으로 아주 큰 반향을 불려 일으킨다. 55년 몰.

    주저: [올데카 저작집]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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