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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7 (16: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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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올해 하계방학 중 이루어지는 본교 3학년 인문계 논술 주제 중 ‘예술과 대중문화’영역에 대해 의뢰받고 강의를 준비하면서 쓴 것입니다.
                        


대중문화와 현대미술의  단면

                                            

문화란 좁은 의미에서는 예술과 문학을, 넓은 의미에서는 종교, 철학, 역사를 아우른다. 인간이 의식적으로 행하는 것, 인간의 ‘삶 자체를 규정하는 가치체계’가 곧 문화인 것이다.
그런데도 흔히 문화를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로 나누어 고급문화를 일상적인 삶과 유리된 창작자 지향의 문화로, 사용자의 가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을 대중문화로 이해한다. 하지만 이는 근대에서 현대사회로의 이행과정과 문화의 의식적 측면이나 공적 가치를 간과한 이분법적 시각의 전형적 예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의무교육과 매스미디어가 대중 형성의 바탕 및 매개 역할을 하게 되면서 대중은 단지 양적인 의미가 아니라 선거권의 확대와 같은 민주주의의 진전 등에 따른 대중사회로의 진입을 가능하게 한 집단으로서 질적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이 같은 대중사회는 새로운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으며, 특히 상업적 목적으로 조장된 소비지향적 대중문화는 인간소외, 또는 가치 전도 현상이라는 문화적 위기 상황을 초래하는 주원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대중문화를 어떻게 보는가는 곧 현대인의 삶을 어떻게 보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며, 동시에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한다. 근대예술의 성립과정과 현대 대중문화의 속성을 통해 근대 문화의 핵심과 현대인의 삶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으며, 나아가 과연 무엇이 우리의 삶과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2.
역사의 변천 단계에 따르면 고대와 중세 문화의 핵심은 종교였다. 이 시기 인간은 당연히 종교를 삶의 준거로 삼았다. 따라서 소수를 위해 다수가 희생되는 삶도 신이 만든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노예제, 신분제 사회가 가능했다.
이 시기 모든 예술(물론 당시는 근대 이후 개념으로서의 예술이란 말도 없었다)은 당연히 종교에 예속된 수단이었으며, 종교의식의 일부인 성스러운 숭배의 대상이었다.

15세기 이후 중세의 신분제가 해체되고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마침내 근대시대로 진입하게 된다. 그 하나의 계기는 중세 말기 오늘날의 이탈리아 반도에 위치한 일부 해안 도시가 번성함에 따라 상업자본을 축적하게 된 새로운 계급이 출현하면서부터다.
그리고 육지에서도 장원들 사이에 위치한 교역 장소를 중심으로 상인계층을 주축으로 한 근대 도시가 출현한다. 바로 이들 상인들이 돈을 벌어 자식을 교육하게 되면서 대학을 졸업한 그들의 자손들이 성직자, 법률가, 의사가 되는데, 이들이 이른바 부르주아지 계층이다.
이들 중에서 돈 뿐 아니라 지식과 예술에 대한 안목을 가진 사람들이 예술품을 사 모으고 향유하기 시작한다. 근대에 들어 비로소 예술이 문화의 핵심이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이전 예술의 종교적 숭배 가치는 개인적 능력이 반영된 ‘미’의 숭배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당대 화가들이나 조각가들은 이전의 공리적 가치를 제작하던 기능인에서 천재적인 예술가로 그 지위가 격상되기 시작한다. 그들은 당시 지배세력이었던 왕족이나 귀족들의 문화를 모방하려는 부르주아지, 즉 신흥 자본가들의 미에 대한 숭배의식의 표현인 초상화를 그리거나 집안의 정원을 장식하는 조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렘브란트라든가 고야, 쿠르베, 마네와 같은 근현대 예술의 선구자들이 점차 당대 사회 지배계층의 눈높이를 넘어서 자율적인 미적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 이들은 종래의 종속적인 존재였던 예술가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예술을 추구함으로써 시대를 앞서간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서구사회는 획기적으로 변한다. 산업혁명이후 생산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노동자 계급이 새로운 소비계층으로 출현했기 때문이며. 이로써 대중문화가 예술적 구매력을 갖게 된다.
게다가 이 시기를 전후하여 사진, 라디오, TV 등이 발명되어 20세기 중반이후 대량 보급되면서 문화상품을 담아 옮길 수 있는 매스미디어 체계가 구축되었고, 이어 본격적으로 대중문화시대가 전개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대중문화의 특징으로 먼저 과거에 소수 특권층만이 향유할 수 있었던 심미적 욕망을 대중들이 지향하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발달된 복제 기술은 특정인에 의해 독점되던 명작을 대중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주1)
그러나 기술복제 시대의 도래는 원작이 지닌 ‘아우라의 상실’을 야기하였으며, 이에 따라 대중의 심미적 욕망은 인간을 단지 물품을 소비하는 향락적 존재로 전락시키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대중문화의 본질은 대중이 주체가 아니라 대중의 심미적 욕구(취향)를 충족시켜주는 자본주의 산업이다.
이 자본주의 산업은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무한욕망의 구도로 왜곡 변화시키기도 한다. ‘욕구’는 생물학적 사용가치와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이지만 ‘욕망’은 사회 문화적인 취향이라는 것이다. 주2) 그런데도 대중문화는 이 욕망을 마치 인간의 본능적 욕구인양 필요한 것으로 조장하며, 이로써 기존의 것은 끊임없이 용도 폐기하는 유행 현상이 형성된다.  
이처럼 대중문화란 일상성이 사회 전면에 대두된 문화라고 볼 수 있다. 일상성이란 주관과 개성 없이 비주체적으로 남을 따르는 성향을 말한다. 이러한 대중들의 삶은 대중매체를 통해 기업가, 정치가가 좌우하는 삶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대중매체는 지배도구로 쓰이며, 소비자는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복종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관점에서 현대예술의 존재방식과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현대미술은 창작자 중심도, 그렇다고 수요자 중심도 아닌 그 사이에서 형성되는 정신적 가치로서 오히려 그 독자성이 두드러진다. 마르셀 뒤샹의 <샘>주3)이나 <L. H, O, O, Q>주4)을 통해 알 수 있듯, 과거의 예술작품이나 예술가에 대한 우상적 가치를 비틀어버린 뒤샹의 의도(컨셉)와 정신에서 현대미술의 특성을 발견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다시 말해 <샘>의 경우 그 작품의 가치는 ‘소변기’란 기성제품(ready made)에 있는 것이 아니라 뒤샹의 정신에 있다. ‘예술작품’이라는 좁은 의미의 예술에서 벗어나 결국 예술가의 예술적 의도와 감상자의 감상능력이 만나는 접점 속에서 새로운 콘센서스를 형성해온 것이 현대미술의 특성인 것이다.  
  
3.
더 이상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라는 이분법적 틀로는 오늘날의 문화현상을 제대로 이해 할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를 움직이는 실질적 기제는 이윤추구이므로 이러한 시대 속의 대중문화의 속성이나 본질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중요한 것이다.
다다 이래 아방가르드적 현대예술가들은 부르주아지의 눈요기 거리를 만들던 근대적 의미의 예술가로서의 고급문화의 시녀 노릇을 거부해왔으며, 또한 대중문화의 상품적 가치와 획일성도 거부해왔다. 현대예술은 근대 예술의 전통을 계승하는 것도 대중문화의 확산에 편승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역사에 큰 획을 그은 현대미술가들의 예술을 통해 알 수 있듯, 현대미술은 근대예술과 대중문화의 속성을 직시하는 삶과 예술의 진정한 가치에 대한 근본적 물음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현대미술은 이전의 근대예술은 물론 오늘의 일상적 대중문화와도 실로 다른 정신적 지향인 것이다.      
                              
                                    2008년 7월 16일  
                                    
                                          도 병 훈  


주1) 발터 벤야민은 현대의 정교한 복제기술에 의해 예술작품이 숭배가치를 상실했다고 보았으며, 이를 ‘아우라의 상실’이라고 정의하였다.
주2)이러한 문화에 대한 고찰과 관련, 사회문화 이론가인 부르디외(Pierre Bourdieu·1930~2002)의 ‘구별짓기(La Distintion·1979)’를 꼽을 수 있다.
부르디외는 프랑스 정부의 지원을 받아 1970년대 말 전국민을 상대로 음악, 미술, 의상 스타일, 실내장식, 스포츠, 요리, 영화 등 여러 분야에 걸쳐 프랑스인의 문화적 취향 및 생활양식을 연구했다. 부르디외의 주된 관심사는 사회에서 개인 및 집단의 문화적 취향은 무엇에 의해 어떻게 구성되는지, 또 문화가 사회구조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밝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개인이 어떠한 문화적 취향을 갖고 어떤 종류의 문화를 소비하는가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사회적 위치와 계급을 드러내는 실마리가 된다. 이러한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부르디외는 ‘사회공간으로서의 장(場)’ ‘문화자본’ ‘아비투스(habitus)’ 등의 개념을 사용한다.

먼저 ‘사회공간으로서의 장’이란 서로 얼마나 닮아 있는가 혹은 이질적인가에 따라 개개인이 서로 구별되는 공간이다. 특히 이러한 장에선 개개인이 정치, 경제, 문화와 같은 다양한 자본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사실상 사회적 서열이 매겨진다.

문화자본이란 가정환경, 가정교육과 같이 어려서부터 내면적으로 형성되기도 하고 문화·예술 소장품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능력처럼 오랫동안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때 형성되기도 한다. 또 학력과 같이 사회에서 제도적으로 인정해주는 문화자본도 있다. 여기서 부르디외는 계층 간에 불평등한 관계가 유지되는 것은 단지 경제력의 차이 때문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들 사이엔 문화자본 또한 불평등하게 배분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독특한 관점을 보여준다.

개인의 취향과 문화소비 경향이 각기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단지 재능이나 기호가 다르기 때문만이 아니며, 사회문화적 환경이 더 큰 영향을 끼침을 부르디외는 ‘아비투스’란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아비투스’란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특정한 취향을 갖거나 행동을 하게끔 만드는 기제이다. 이는 무의식적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때론 의식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아비투스가 의식적으로 나타날 때는 자신을 남과 차별화시키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 된다. 그러나 문화적 취향 혹은 문화 소비행태가 사회계급과 기계적이고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아니며 이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것이 된다.
이러한 부르디외의 고찰은 현대인의 취향과 소비문화 현상에 대해 개념적 기초를 제공하는 이론으로서 현대인의 소비문화에 대한 마케팅 분석 및 전략 수립의 이론적 근거로도 이용되고 있다.

주3)<샘>이 20세기 미술사상 문제작의 하나로 꼽히는 까닭은 바로 두 가지 사실 때문이다. 하나는 기성품을 단지 선택만 함으로써 과거의 예술에 대한 회의 정신을, 하나는 마르셀 뒤샹이 아닌 'R, mutt'란 익명의 서명을 쓴 것인데, 이는 예술가에 대한 우상화 거부를 의미한다.  
주4) <L. H, O, O, Q>란 작품은 마르셀 뒤샹이 모나리자의 복사본에다 수염을 그리고 밑에다 <L. H, O, O, Q>라 쓴 것으로, 이를 연음으로 읽으면 프랑스어로 그 발음의 뜻이 ‘그녀의 엉덩이는 뜨거웠다’는 말이 되어버린다. 대중들의 모나리자에 대한 우상화를 통렬히 비틀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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