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 6531
2008.07.07 (23:2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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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포에지', 빌 비올라의 비디오 아트  



1.
기독교에서는 요단강이, 불교에서는 도솔천 혹은 삼도천이 삶과 죽음을 잇는 강(물)로 나온다. 또한 『노자도덕경』이나『논어』를 보면 물에 비유하여 세상과 삶을 논하고, 또한 강희안의 <고사관수도>에서도 알 수 있듯, 물은 동양에서 오래전부터 친숙한 관조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서양의 현대 비디오 작가 중에 지난 수 십 년간에 걸쳐 주로 물을 소재로 작업을 하는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빌 비올라다.  

지난 토요일, 우리학교의 미술탐구반과 함께 소격동 국제 갤러리에서 빌 비올라의 개인전을 보았다. 때마침 국립현대미술관은 비올라가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 때 선보였던 영상 설치작품 <Ocean Without a Shore해변 없는 바다>주1)를 특별전 형식으로 상영 중이지만, 국제갤러리에서도 5년 만에 그의 개인전을 연다고 해서 가 본 것이다.
비올라는 1974년 백남준이 <TV부처>나 <TV정원> 등 작품을 선보이던 즈음 그의 조수로도 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현존하는 비디오 아티스트 중 유명한 작가 가운데 한사람이다.
그는 지난 35여 년 간 건축적 비디오 설치, 사운드 설치, 전자 음악 퍼포먼스, 평면 비디오, TV 방송영상 등 다양한 작업들을 해왔다. 알고 보면 어떤 작가든 개인사가 매우 중요하지만 특히 빌 비올라는 자신의 개인사나 다양한 여행체험을 바탕으로 탄생, 삶, 의식, 죽음 등을 주제로 한 작업을 해왔다. 또한 그의 작품은 동서양 미술은 물론 불교의 선종Zen, 이슬람의 수피교Sufism, 기독교의 신비주의Mysticism 등 다양하면서도 종교적 정신적 전통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그의 화면들은 흐리고 뿌연 흑백의 이미지와 고화질 이미지가 공존하지만 매우 세련된 장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전의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1970년대 낡은 흑백 카메라를 사용해 촬영하여 흑백의 영상으로 옮긴 작품 <Lover’s Path연인의 길>에서 확인할 수 있듯, 때로는 흐릿하고 낡은 이미지를 구사하기도 한다.  
  

2.
그의 작업이 대중들에게 특히 어필하는 이유로는, 비디오 테크놀로지를 통해 펼쳐 보이는 종교적 영적 사유때문인 것 같다. 그는 1980년대 일본에서 2년간 살면서 일본 선종의 대가 다이엔 다나카를 만나 불교에 심취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불교와 기독교의 차이를 이렇게 말한다.

밖에서 안을 바꾸는 기독교와 달리 불교는 안에서 밖을 바꾸죠. 이 깨달음은 아티스트로서 큰 변화를 겪게 만들었어요. 카메라가 외부의 이미지를 가져오는 게 아니라 내면의, 자아의 이미지를 끄집어내는 도구라는 생각을 하게 됐으니까요.

이번 전람회의 타이틀은 <Transfiguration변모(형)>’인데, 이는 작가가 “7년 단위로 몸의 세포들도 다 바뀐다 하니 인간은 계속 바뀌고 변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며 붙인 제목이라고 한다.
이번 전시도 그러하듯 그의 작품 대부분은 물을 소재로 하여 삶과 죽음의 문제를 관조적으로 다룬다. 대개 쏟아지는 물줄기가 온몸을 적시는 이미지다. <변모>라는 주제하의 이 작품들은 대개 인간의 형상이 흐릿한 어둠 속에서 밝은 공간으로 나오면서 점차적으로 뚜렷하게 ‘보이다色’가 보이지 않는 문턱(특수 장비로 설치된 물 장막)을 넘으면서 또는 ‘물질화’나 ‘공空’으로 변모한다. (*이러한 과정은 그가 불교사상에 심취한 것으로 보아, 바로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영상화로 보인다.)  여기서 ‘물의 장막’은 삶과 죽음 사이의 간극이자 일종의 보이지 않는 힘 또는 알 수 없는 신비를 표현한 장치이다. 그의 작품에서 물은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매개체인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의 세계는 다시 색의 이미지로 변한다.  
관람객이 바라보는 쪽 삶의 세계는 최신장비로 촬영한 생생한 HD화면이지만 ‘문턱’ 너머 죽음의 세계는 1970년대식 장비로 찍은 뿌연 흑백이다. 경계를 넘나드는 인물의 느린 움직임과 망설임을 그 특유의 어법인 ‘슬로우 모션slow motion’ 으로 보여준다.

그의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은 연기자가 아니라고 한다. 작가는 그들을 만나 죽음에 관한 시를 읽어 준 뒤, 그에 대한 각자의 경험을 들은 후 촬영할 때 자신의 진솔한 느낌을 생생하게 되살리도록 부탁한다고 한다.

이번 전시는 이외에 <해변 없는 바다>를 제작하면서 파생된 작업인 <Acceptance,수락> <Transfiguration 변모> <Three Woman 세 여자> <The Innocent 순결한 자들> <Small Saints작은 성인들> <The Arrangement 배열>등 6점과,  2001년 제작된 그의 대표작 <Five Angels for the Millennium 밀레니엄을 위한 다섯 천사들>등 모두 10점의 영상 작품을 선보인다.
이 중 전시장 2층에 전시된 <밀레니엄을 위한 다섯 천사들>은 5개의 비디오 프로젝터에서 나오는 각각의 영상을 어두운 전시장 벽에 투영하는 작품이다. 캄캄한 어둠 속 물결을 따라 빛이 명멸하는 가운데 옷을 입은 한 남자가 물속에 뛰어들기도 하는 일련의 장면들은 무중력 상태와 같은 공간으로 들어가는 인간의 형상이 음향과 함께 연출된다. 이른바 ‘Departing Angel떠나는 천사’, ‘Birth Angel탄생의 천사’, ‘Fire Angel불의 천사’, ‘Ascending Angel상승의 천사’, ‘Creation Angel창조의 천사’다. 이들은 모두 나타났다 사라진다. 한순간 모든 것이 정지하는 듯한 고요함과 함께.

어린 시절 물에 빠진 경험 이후 그가 19살 때 처음 비디오카메라를 손에 넣고 찍은 작품이 '물'과 '물결로 퍼지는 빛'을 소재로 한 것이었다. 물이 등장하는 그의 작품은 죽은 영혼이 강을 건넜다는 고대의 신화적인 모티브를 한편의 영상물로 만든 것 같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또한 비올라는 1990년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그는 삶과 죽음을 새롭게 인식했다고 한다. “죽으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들은 우리 마음속에서 늘 함께한다. 나는 죽음을 생각할 때 어둠이나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빛을 생각한다.”고 말했듯. 지구에 머무는 시간은 너무 짧고 값진 것이기에 잘 써야 한다는 것이다. “부처는 우리의 행위나 창조물은 우리가 사라진 뒤에도 계속 남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인간의 역사, 새로운 혁신이나 개념은 보이지 않는 인간의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것이 나중에 겉으로 드러날 뿐이다. 내 작품을 보면서 그런 내면의 변화가 일어나면 좋겠다.”는 바람을 그는 자신의 작업에 담고자 한다.

그의 작품 중 인상적인 작품으로 2005년 6월에 덕수궁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원작으로 보는 현대미술 교과서' 전에서 본 <Observance의식儀式>이 기억난다. 이 작품은 여러 사람이 모여서 움직이는 장면을 촬영한 것으로, 매우 느리게 움직이는 사람들은 뭔가 못 볼 것을 본 듯한 표정 같기도, 어떻게 보면 끔찍한 상황을 위로하기 위하여 다가오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침통한 표정으로 '차마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술을 꽉 다물거나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다시 매우 느리게 원래 위치로 돌아가는 장면이 계속되었다.  


3.
이번 전시가 개최되는 갤러리는 특정 취향의 한정된 소수 작가, 그것도 유명세 있는 외국작가들 위주로 전시하는 곳이다.  
비올라 개인전도 수년 전에 이어 2 번째다. 이번에 전시된 빌 비올라의 작품을 보면서, 새삼 비디오 아트의 열린 가능성을 보면서도, 반면 그의 작업이 최근에 와서 전형화 되는 측면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로우 테크놀로지’냐 ‘하이 테크놀로지’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의 화면은 초창기의 전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들의 문제 작품들처럼 그렇게 낯설지도, 관객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도 않는다. 그의 작업은 오히려 매우 서정적이고 서사적이며, 그 영상은 하나같이 잘 만든 다큐 프로그램처럼 아름다운 영상미를 보여준다. 느린 화면을 통해 한껏 서정성과 서사성을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의 작품이 갖는 대중적 공감대는 어쩌면 우리 갖고 있는 삶과 죽음에 대한 신비주의적 선입견에 호소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갖게도 한다. 예술의 ‘진정성reality’이 신비주의적 주제와 보여주는 방식의 세련도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과 인식이 불일치하는 간극 사이의 고뇌어린 모색, 또는 의연한 긍정 속에 성립한다면 측면에서.  

                              2008년 7월  7일

                                    도  병  훈



주1) 이 제목은 이슬람 신비주의 사상가인 ‘이븐 알아라비’의 다음 시에서 따온 것이다.
The Self is an ocean without a shore
Gazing upon it has no beginning or end,
in this world and the next.   -Ibn al'Arabi(1165-1240)

<해변 없는 바다>의 직접적 동기는 20세기 세네갈의 시인인 디옵(Birago Diop)의 다음 시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죽은 이들은 흙속에서 쉬지 않네/그들은 살랑거리는 오두막과 군중 속에 있네/웅얼거리는 숲 속에/흐르는 물과 멈춘 물 속에/ 오두막과 군중 속에 있네/ 죽은 이들은 죽지 않네..

PS: 2008년 8월 3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해변없는 바다>를 보았다. 정면과 양측면에서 약 20여명의 등장인물이 번갈아 가며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듯 물의 세례를 맞으며 등장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는데, 특히 종교적 색채가 더욱 강한 비디오 아트였다.  


주2)시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Hearing things more than beings,
listening to the voice of fire,
the voice of water.
Hearing in wind the weeping bushes,
sighs of our forefathers.

The dead are never gone:
they are in the shadows.
The dead are not in earth:
they’re in the rustling tree,
the groaning wood,
water that runs,
water that sleeps;
they’re in the hut, in the crowd,
the dead are not dead.

The dead are never gone,
they’re in the breast of a woman,
they’re in the crying of a child,
in the flaming torch.
The dead are not in the earth:
they’re in the dying fire,
the weeping grasses,
whimpering rocks,
they’re in the forest, they’re in the house,
the dead are not d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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