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 5824
2008.06.23 (23:5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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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셰’와 새로운 예술




프랑스어로 ‘클리셰’란 판에 박힌 것들, 혹은 ‘진부함’을 의미한다. 소설가인 D.H. 로렌스는 세잔의 ‘사과(성)’을 진부함 부수기, 즉 클리셰를 부수기 위한 고투의 단서로 보고 세잔에 대한 글을 썼다. 그는 세잔의 일생을 진부함과의 싸움(전쟁)의 과정으로 보았던 것이다.
로렌스에 의하면 인물화에서의 클리셰란 “인간성, 개인성, 유사성”이며, “우리가 모두 알고 있고, 인내의 한계를 넘어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즉 우리가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파악하는 개인의 모습이다.
반면 “한 대상의 ‘사과성’이란 직감적 감지나 본능적인 깨달음에 의해 인지될 수 있는 어떤 것”이라고 설명한다. 로렌스는 세잔의 그림을 이러한 사과성을 포착하고. 그것의 상투성을 배제하려 한 것으로 보았다. 요컨대 로렌스는 ‘클리셰의 배제’와 ‘사과성의 구축’이라는 이중구조로 세잔의 그림을 파악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로렌스는 세잔의 마지막 수채화들도 진부함으로부터의 탈출이며, ‘텅 비었다는 것은 진공이고, 그것이 세잔이 진부함과 대적한 최후의 언어였다’고 보았다. ‘텅 빈 종이위에 몇 개의 터치로 이루어진 세잔의 마지막 수채화 풍경들은 그 자체로 풍경에 대한 하나의 풍자’로 본다.


질 들뢰즈는 이러한 로렌스의 클리셰 개념을 수용하여 그의『감각의 논리』란 책에서 베이컨의 작품을 다루면서, 그가 ‘구상’이란 클리셰를 어떻게 극복하고자 했는지 탐색한다.
들뢰즈는 ‘구상’적인 것의 특성을 서술적이며 삽화적인 것으로 보며, 회화에서 구상이나 재현(representation)이 위험한 것은 외계, 즉 바깥세상의 이미지가 그 화면내의 이미지와 연관되고, 그 때문에 시각(the eye)이 재인(recognition)의 모델에 종속되면서 감각의 직접성과 강도(intensity)를 상실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런 관점에서 들뢰즈는 “회화는 재현할 모델도 전해주어야 할 스토리도 없으며, 그림 그 자체는 감각, 우연히 마주친 기호”로 설명한다. 그러므로 회화는 구상과 재현을 피해야 하는데, 이는 두 가지 방식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본다. 한 가지는 추상(abstraction)을 통해 순수한 형태로 나아가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추출(extraction) 혹은 고립(isolation)을 통해 순수하게 형상적인 것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이 중에서 베이컨의 방법은 바로 두 번째의 것인 고립(격리)을 택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들뢰즈는 추상회화와 액션 페인팅을 비판하는데, 전자의 경우 시각적이며, 후자는 손의 행위로 가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들뢰즈는 베이컨의 그림을 통해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며, 그가 어떻게 이러한 세계를 드러내는지 설명한다.
먼저 화가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캔버스를 마주할 때, 실제로 화가는 순백의 화면 앞에 있지 않다고 설명한다. 즉, “화가는 자기의 머리 속에, 자기 주변에, 혹은 화실 안에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가 자기 머리속이나 자기 주변에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다소간 ‘잠재적’으로, 다소간 ‘현실적’으로, 그가 작업을 시작하기 이전에 이미 화폭 속에 가지고 있다. 따라서 화가는 이처럼 이미 주어진 이미지를 전제로 그리기 시작한다. 이것은 ‘판에 박힌 것’, 즉 클리셰다.
그러므로 이 클리셰를 어떻게 파괴해야 할 것인가?가 화가의 핵심 과제가 된다.  이에 대해 들뢰즈는 그려진 이미지 내부에 ‘자유로운 표시’들을 아주 빨리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우연’한 것으로 돌발적인(accidental) 것이며, 전혀 재현적이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우연적인 표현(터치, 헝겊으로 문지르기, 물감 뿌리기 등)을 베이컨은 ‘디아그람’(돌발 흔적)이라 한다.
그러나 이 디아그람은 새로운 질서와 리듬을 위한 싹이어야 한다고 베이컨은 말한다. 이러한 베이컨의 생각을 언급하며, 이어 들뢰즈는 베이컨이 자신의 회화에서 근본적인 세 요소를 구분하고 있음을 설명한다. 바로 살로 구성된 형상(세워진 이미지), ‘윤곽’(동그라미-트랙, 평행육면체) 단색의 커다란 색인 물질적인 ‘구조’(아플라)이다.
그래서 베이컨의 그림을 촉각적이고도 광학적인 눈으로 만지는 그림으로 본다. 바로 이것이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다.


클리셰란 우리의 인식과 지각에서 우선적으로 비워야 할 어떤 것이다. 즉 클리셰란 표면적 구조나 정해진 형태에 대한 인식을 말하는데, 사실 클리셰가 통념으로 지배하는 현실에서 이를 떨쳐버린다는 것은 쉽지 않다. 아무리 클리셰에 저항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문제는 클리셰이기 때문이다.
들뢰즈가 그림의 ‘탈형태’와 관련하여 세잔과 베이컨에게서 공통적으로 포착하는 것은 보이지 않은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것은 ‘힘’으로 나타나며, 이 힘은 힘이 작용한 대상의 상태를 통해 나타난다는 것이다.
나는 수년 전부터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가 동양의 ‘기운생동론’이나, 남․북종화론을 극복하려 한 석도의 ‘일획론’과 유사하다는 점이 있음을 흥미롭게 생각해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동양화론이 절대적인 강령의 ‘클리셰’가 되어 전통회화를 진부하게 만든 원인이 된 면도 없지 않았음을 느껴왔다. 역시 문제는 ‘감각’인가 보다.


                            2008년 6월 23일 10시 30분 경

                                    도 병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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