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 8671
2008.06.19 (11: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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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가 그린 <한국에서의 학살>의  진실





6월이 되면 생각나는 이상한(?) 그림이 하나 있다. 바로 피카소가 그린〈한국에서의 학살〉이란 그림이다. 이 그림은 1951년에 피카소가 한국전쟁을 소재로 그렸으며, 그래서 그림의 제목도〈한국에서의 학살〉이다. 이 그림에 대해 국내 일부 평자들은 미군에 의한 양민 학살로 알려진 신천리 학살을 모티브로 한 그림으로 기술하지만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 신천리 학살 자체가 미군이 신천에 당도하기 전에 그 지역의 좌우익간 다툼에서 빚어진 사건이라는 설도 있듯, 아직 이 사건에 대한 정확한 실상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제목을 보지 않는다면 이것이 당시 극동의 한반도 전쟁에서의 살육 행위인지 아니면 다른 데서 일어난 살육행위인지를 전혀 알 수가 없다. 단적으로 말해서 중세풍의 갑옷, 또는 외계인 로봇 같은 군인들이 여자와 어린이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장면으로 이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자들이나 아이들도 전혀 한국인의 모습이 아니다. 그래서 한국 전쟁의 리얼리티는커녕 사실 이도 저도 아닌 그저 우스꽝스런 그림으로 보인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진지함도 고뇌도 없는 것이 이 작품의 실상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그림에 대해 많은 국내외 비평가들이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며, 심지어 혹자는 이 그림이 한국에서 그다지 평가되지 못하는 것은 반미적인 그림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림을 보면 피카소에게 한국 전쟁은 단지 감성적인 그림의 ‘소재’일 뿐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세계대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당시 한국전쟁의 특성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그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20세기에 일어난 여러 큰 전쟁 중 한국전쟁만큼 복잡한 이해관계를 내포하면서도 비극적인 전쟁은 없다. 그만큼 특수하면서도 복잡한 내막이 있는 전쟁이 한국전쟁이었다. 한국전쟁은 요컨대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진실은 물론 해방공간의 역사마저 바로 보지 못하게 하는 자기 배반의 전쟁이었다. 그래서 아직도 남북 공히 여전히 한국전쟁이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피카소가 이러한 한국전쟁의 실상을 제대로 알았을 리 만무하다. 무엇보다 한국전쟁이 과연 한 개의 캔버스를 채우는 그림의 소재가 될 수가 있는 지도 의문이라는 점에서 그의 그림은 전쟁의 리얼리티와 거리가 멀다.  

물론 어떤 이는 이 그림에 대해 특수한 지역의 전쟁을 다룬 것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전쟁의 참상을 다룬 그림이며 그래서 피카소가 천재라고 말하지만 이는 현대미술의 본질적 특성이라든가, 이 그림과 관련된 전 후 사연을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일 뿐이다. 이 그림을 그리기 몇 년 전  피카소는 당시 프랑스 지식인들의 친공산주의 분위기에 부화뇌동하여 공산주의자가 되었으며, 소련은 이러한 피카소를 선전, 선동에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이 그림은 어디까지나 소련의 프로파간다(공산당)를 돕는 선전용 포스터였던 것이다.

그리고 피카소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이 있었던 시기에 살았던 사람이지만 단 한 번도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겪은 일이 없었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그의 동료였던 브라크는 보병으로 참전하여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고, 피카소를 유명하게 만드는 데 일조를 한 시인 아폴리네르는 참전 부상 후유증으로 죽었으며, 이외 많은 예술가들이 전쟁으로 인해 죽거나 상처를 입었지만, 그는 이러한 시대를 방관하며 살았던 사람이었다.  

이런 차원에서 그동안 피카소의 대표작 중 하나로 전쟁과 파괴에 대항하여 그림이라는 표현수단으로 예술적 항거를 강렬하게 보여주었다고 서양 미술관련 책마다 흔히 칭송되는 <게르니카>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게르니카>는 1936년 피카소의 고향인 스페인에서 내란이 발발했을 때 피카소가 프랑스에서 그린 것이다.  

그래서 이 그림에 대한 한결 같은 극찬―‘비극성과 상징성에 찬 복잡한 구성 가운데 전쟁의 무서움, 민중의 분노와 슬픔을 격정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상처 입은 말, 버티고 선 소는 피카소가 즐겨 다루는 투우의 테마를 연상케 하며, 흰색·검정색·황토색으로 압축한 단색화에 가까운 배색이 처절한 비극성을 높이고 있다. 극적인 구도와 흑백의 교묘하고 치밀한 대비효과에 의해 죽음의 테마를 응결시켜 20세기의 기념비적 회화로 평가된다.’는 따위―에도 불구하고 찬찬히 들여다보면 전혀 이러한 상찬을 받을 작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림의 내용도 상징과 알레고리적 측면에서 소나 부러진 칼 같은 시대착오적인 진부한 상상력을 벗어나지 못하고, 표현기법은〈아비뇽의 아가씨〉에도 못 미치는 평면적이고 구성적인 상투성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보여준다. 요컨대 〈게르니카〉는 전쟁의 참상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그림에 지나지 않는다.


피카소에 대한 미술사적 평가는 20세기 초 입체주의자로서 한정된다. 제1차 세계대전이후 현대미술사는 이전과 그 차원을 달리하여 전개되는데, 피카소는 이러한 현대미술의 길과 동떨어진  퇴행적이며 동어반복적인 양식의 작품을 양산한 사람이었다. 요컨대 피카소는 전쟁을 소재로 한 그림을 그릴만한 인품도 지성도 갖추지 못한 인물이었다. <게르니카〉와〈한국에서의 학살〉에 대한 찬사는  ‘천재 작가’로 우상화된 피카소의 작품이라는 이유가 주된 것이다.  




                                 2008년 6월 19일




                                  도 병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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