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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9 (12:3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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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번쩨     -. 브라이손(Norman Bryson)

 

                       . 아트 . 히스토리의 旗手

 

    브라이손의 특이한 작업에 대해서는 [미술수첩](1996 1월호)에 田中正之의 상세한 해설이 개재되어 있음으로, 本稿와 함께 참조하기 바랍니다. 이는 [미술사를 읽는다]라는 林道郞, 大西廣과의 공동연재의 첫번쩨 것으로, 이 연재는 별도로 R. 크라우스, T.J.크라-, M. 프리드, 이브.아랑.보아, G.보록등을 다루고 있어, 아직도 미술사의 현재에 대해서 일본어로 쓰인 가장 유익한 소개일 것이다. 여기서는 지수도 제한되어 있음으로 간단하게 브라이손의 주저에 대해 언급하기로 한다.

 

    [말과 이미지]는 구체제시대의 프랑스회화를 다루고 있어, 다뷧에서 드라크라까지를 대상으로 하는 [전통과 욕망]을 겹치면서, 18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는 프랑스회화를 논하는 체제로 되어 있다. 여기서 브라이손은, 종래의 양식 교대에 의한 미술사 서술에 대해, 意味의 역사, 다시 말한다면, 기호로써의 멧시-지성을 갖는 회화와 이를 생산하는 시스템의 변천으로써, 이 시대의 미술사를 새로 보고 있다. 이 二著에서는 17세기의 아카데미-의 역사화와 로고고회화가 각각 [디스카십](대화를 불려 일으키는) [휘유규럴]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대비적으로 논하고 있으며, 또한 사제관계에 있었던 다뷧와 앙글의 서양미술의 전통에 대한 태도의 근본적인 상위가 선명하게 설명되 있다. [시각과 회화]는 古代에서 19세기에 이르는 광범위한 회화에 입각하여 저자의 기본적 방법을 이론적으로 심화시킨 저술로, 본서에서 브라이손은, 양식을 시각적 현실과의 거리의 방향과 그 크기를 따라 논하려고 하는 지각주의적양식관에 바탕을 두는 E. H. 콤브릿지의 미술사파악에 공연하게 반기를 들고 있다.

 

   [놓친것을 다시 되돌아 본다]는 것은, 공간속의 물체의 회화에 의한 표현으로써 마냥 지각주의적으로 논해저 왔던 고대부터 20세기에 이르는 정물화를, 그 사회의 일상생활과 접객습관과의 관계에서 논하고 있다. 특히 역사화등의 畵題에 비해 정물화의 지위가 낮았던 이유의 하나를, 그것이 집안에 있는 평범한 정경, 말하자면 여성의 세계를 그리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는 시각은 인상 깊다.

 

    構造主義 이후의 이론을 채용한 브라이손과 같은 미술사가에 대해, 전통적미술사가, [-.아트.히스토리], 이따금 [작품을 잘 보고 있지 않다]거나 [현대적 관점을 과거의 미술에다 밀어 넣고 있다]라고 하면서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예민한 관찰에 의해 작품을 다루며, 그것이 생산된 사회에서 작품이 어떤 멧시지를 발하고 있으며, 후의 사회에서 어떤 기능을 지속해 오는가를 이론적지성을 구사하면서 논하는 브라이손의 저작은 강한 설득력이 있으며, 그러한 표층적인 비판을 되받을 수 있는 존재감을 갖고 있다. 그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미술사에서도 다른 선행분야와 같이, 모든 작품은 하나의 [언설]이며 [작용]인 것으로, 또한 순수한 지각이나 보편적인 미의식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다는 것이, 점차로 인정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개인적인 기억으로 사료되지만, 1993 6, 학습원대학에서 브라이손을 둘려싼 세미나-가 행히지고, 그 사회의 한사람으로 참가한 일이 있다. 저서의 난해함에 비해 평역하게 설명하기를 아끼지 않는 브라이손 자신과 세미나-의 내용에 통하고 있었던 일본인연구자들과 프로의 통역의 협력의 결과, 전원이 내용을 이해하고, 의론에 참가할 수 있었던 이 세미나-, 저자의 연구생활을 통해서도 최량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와 같은 열려 있는 정신의 소유자인 브라이손은, 일본미술이나 현대미술, 사진등에 대해서도 넓은 관심을 갖고, 오리엔탈리즘의 미술, 훼미니즘의 미술사에도 깊은 이해를 나타내고 있다. 그 시야의 넓음은, [Comblidge Studies in New Art History and Criticism] [Envisioning Asia] 두 중요한 씨리즈의 편집을 그가 맡고 있었다는 사실이 말해 주고 있다.

 

    브라이손의 주저에 관해서는 방역(일본역)의 소문이 십년가까운 이전부터 들려 오지만, 아직도 실현되고 있지 않다. 본고모두에 언급한 미술사의 현재를 대표하는 다른 5인의 저작물의 번역도 충분하다고 말할 수 없으며, 이러한 일종의 [쇄국]상태는 유감스럽기 짝이 없다. 하다못해 여기서는 필자에게 있는 브라이손의 논문등의 방역을 적으 놓는다.

 

   약력: 1949년 영국태생. 켐브릿지 대학, 칼리포로니아대학, 런던대학에서 영미문학과 미술사를 배우다. 93년 하버드대학미술사교수로 받아 드렸는데, 99녕에 영국에 돌아 현재 런던대학유니버시티.칼레지.스레이트 미술학교의 미술사. 미술이론교수. 기호론이나 문학비평, 문화사의 최신성과를 반영한 첨예한 방법에 의한 미술논객으로 알려저 있다.

 

   단저: Word and Image: French Painting of the Ancient Regime, Cambridge 1981   Vision and Painting: The Logic of the Gaze, New Haven and London 1983   Trdition and Desire: From David and Delacroix, Cambridge, 1984  Looking at the Overlooked: Four Essays on Still Life Painting, London 1990

    편저: Calligram: Essays in New Art History from France, edited by Norman Bryson, Cambridge, 1988    Visual Theory, Painting and Interpretation, edited by Norman Bryson, Michael Ann Holly and Keith Moxey, Oxford 1991    Visual culture, Images and Interpretations, edited by Norman Bryson, Michael Ann Holly and Keith Moxey, Hanover and London, 1994

    방역: [(오리엔탈리즘) 이후] ([근대화설] 2所收) 1993    [일본근대회화와 性的짜임] ([동아세아 미술에서의 <사람의 모습> 1994    [기호론과 시각이미지의 해석에 대하여] 1996    [제리꼬와 (남성성)] ([미술과 젠드: 비대칭의 시선] 1997    [언설, 형상- [말과 이미지] 1999    [프랑스의 오리엔탈리즘; 회화에서의 <타자>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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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ected no image [20세기 사상과 미술] 씨리즈
1605 2017-06-29
34번쩨 노-먼. 브라이손(Norman Bryson) “뉴 . 아트 . 히스토리의 旗手” 브라이손의 특이한 작업에 대해서는 [미술수첩](1996년 1월호)에 田中正之의 상세한 해설이 개재되어 있음으로, 本稿와 함께 참조하기 바랍니다. 이는 [미술사를 읽는다]라는 林道郞, 大西廣과의 공동연재의 첫번쩨 것으로, 이 연재는 별도로 R. 크라우스, T.J.크라-크, M. 프리드, 이브.아랑.보아, G.보록등을 다루고 있어, 아직도 미술사의 현재에 대해서 일본어로 쓰인 가장 유익한 소개일 것이다. 여기서는 지수도 제한되어 있음으로 간단하게 브라이손의 주저에 대해 언급하기로 한다. [말과 이미지]는 구체제시대의 프랑스회화를 다루고 있어, 다뷧에서 드라크라까지를 대상으로 하는 [전통과 욕망]을 겹치면서, 18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는 프랑스회화를 논하는 체제로 되어 있다. 여기서 브라이손은, 종래의 양식 교대에 의한 미술사 서술에 대해, 意味의 역사, 다시 말한다면, 기호로써의 멧시-지성을 갖는 회화와 이를 생산하는 시스템의 변천으로써, 이 시대의 미술사를 새로 보고 있다. 이 二著에서는 17세기의 아카데미-의 역사화와 로고고회화가 각각 [디스카십](대화를 불려 일으키는)와 [휘유규럴]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대비적으로 논하고 있으며, 또한 사제관계에 있었던 다뷧와 앙글의 서양미술의 전통에 대한 태도의 근본적인 상위가 선명하게 설명되 있다. [시각과 회화]는 古代에서 19세기에 이르는 광범위한 회화에 입각하여 저자의 기본적 방법을 이론적으로 심화시킨 저술로, 본서에서 브라이손은, 양식을 시각적 현실과의 거리의 방향과 그 크기를 따라 논하려고 하는 지각주의적양식관에 바탕을 두는 E. H. 콤브릿지의 미술사파악에 공연하게 반기를 들고 있다. [놓친것을 다시 되돌아 본다]는 것은, 공간속의 물체의 회화에 의한 표현으로써 마냥 지각주의적으로 논해저 왔던 고대부터 20세기에 이르는 정물화를, 그 사회의 일상생활과 접객습관과의 관계에서 논하고 있다. 특히 역사화등의 畵題에 비해 정물화의 지위가 낮았던 이유의 하나를, 그것이 집안에 있는 평범한 정경, 말하자면 여성의 세계를 그리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는 시각은 인상 깊다. 構造主義 이후의 이론을 채용한 브라이손과 같은 미술사가에 대해, 전통적미술사가, [노-멀.아트.히스토리]는, 이따금 [작품을 잘 보고 있지 않다]거나 [현대적 관점을 과거의 미술에다 밀어 넣고 있다]라고 하면서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예민한 관찰에 의해 작품을 다루며, 그것이 생산된 사회에서 작품이 어떤 멧시지를 발하고 있으며, 후의 사회에서 어떤 기능을 지속해 오는가를 이론적지성을 구사하면서 논하는 브라이손의 저작은 강한 설득력이 있으며, 그러한 표층적인 비판을 되받을 수 있는 존재감을 갖고 있다. 그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미술사에서도 다른 선행분야와 같이, 모든 작품은 하나의 [언설]이며 [작용]인 것으로, 또한 순수한 지각이나 보편적인 미의식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다는 것이, 점차로 인정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개인적인 기억으로 사료되지만, 1993년 6월, 학습원대학에서 브라이손을 둘려싼 세미나-가 행히지고, 그 사회의 한사람으로 참가한 일이 있다. 저서의 난해함에 비해 평역하게 설명하기를 아끼지 않는 브라이손 자신과 세미나-의 내용에 통하고 있었던 일본인연구자들과 프로의 통역의 협력의 결과, 전원이 내용을 이해하고, 의론에 참가할 수 있었던 이 세미나-는, 저자의 연구생활을 통해서도 최량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와 같은 열려 있는 정신의 소유자인 브라이손은, 일본미술이나 현대미술, 사진등에 대해서도 넓은 관심을 갖고, 오리엔탈리즘의 미술, 훼미니즘의 미술사에도 깊은 이해를 나타내고 있다. 그 시야의 넓음은, [Comblidge Studies in New Art History and Criticism] 와 [Envisioning Asia] 두 중요한 씨리즈의 편집을 그가 맡고 있었다는 사실이 말해 주고 있다. 브라이손의 주저에 관해서는 방역(일본역)의 소문이 십년가까운 이전부터 들려 오지만, 아직도 실현되고 있지 않다. 본고모두에 언급한 미술사의 현재를 대표하는 다른 5인의 저작물의 번역도 충분하다고 말할 수 없으며, 이러한 일종의 [쇄국]상태는 유감스럽기 짝이 없다. 하다못해 여기서는 필자에게 있는 브라이손의 논문등의 방역을 적으 놓는다. 약력: 1949년 영국태생. 켐브릿지 대학, 칼리포로니아대학, 런던대학에서 영미문학과 미술사를 배우다. 93년 하버드대학미술사교수로 받아 드렸는데, 99녕에 영국에 돌아 현재 런던대학유니버시티.칼레지.스레이트 미술학교의 미술사. 미술이론교수. 기호론이나 문학비평, 문화사의 최신성과를 반영한 첨예한 방법에 의한 미술논객으로 알려저 있다. 단저: Word and Image: French Painting of the Ancient Regime, Cambridge 1981 Vision and Painting: The Logic of the Gaze, New Haven and London 1983 Trdition and Desire: From David and Delacroix, Cambridge, 1984 Looking at the Overlooked: Four Essays on Still Life Painting, London 1990 편저: Calligram: Essays in New Art History from France, edited by Norman Bryson, Cambridge, 1988 Visual Theory, Painting and Interpretation, edited by Norman Bryson, Michael Ann Holly and Keith Moxey, Oxford 1991 Visual culture, Images and Interpretations, edited by Norman Bryson, Michael Ann Holly and Keith Moxey, Hanover and London, 1994 방역: [(오리엔탈리즘) 이후] ([근대화설] 2所收) 1993 [일본근대회화와 性的짜임] ([동아세아 미술에서의 <사람의 모습> 1994 [기호론과 시각이미지의 해석에 대하여] 1996 [제리꼬와 (남성성)] ([미술과 젠드: 비대칭의 시선] 1997 [언설, 형상- [말과 이미지] 1999 [프랑스의 오리엔탈리즘; 회화에서의 <타자> 2000
1409 no image [20세기 사상과 미술] 씨리즈
1379 2017-06-25
33번쩨 폴. 크라우져(Paul Crowther) “포스트모던에 있어 작품의 美的價値論의 蘇生” 포스트모던이라 부르는 시대에 즈음하여, 뉴-.아트.히스토리-나 컬츄럴.스타이트스의 융성을 옆눈으로 노려 보면서, 그러나 크라우져는, 일관되게 칸트미학을 근저에 깔고, 예술작품의 미적가치론을 되살릴려고 노력해 왔다. 그것은, 어떤 한 면에서 보면, 포-마리즘의 시점을 현대적으로 수정하며 소생하는 것과도 일맥 상통하는 것이다. 그의 최초의 單著는 [칸트的崇高](1989)이다. 리오탈이 포스트모던의 특징을 설명하면서, [美]와 대립하는 개념으로 잡는 [숭고]를 내 세운 이래, 포스트모던이스트 사이에서 일종의 [숭고론르 르네상스]라 할 流行現像이 일어 났었는데, 크라우져는, 이들을 아전인수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일축한다. 칸트의 초기논문 [미와 숭고의 감정에 대한 고찰]부터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과 칸트 자신의 발자취를 따르면서, 크라우져는 감성과 이성을 함께 갖고 있는 인간에게 이성의 우위의 자각이 숭고의 감정에 깊이 간여하고 있음을 먼저 확인한다. 칸트는 예술에서가 아니라 주로 자연을 대상으로 이 논을 전개했던바, 압도적인 인상을 주는 작품은 가지각색의 차원에서 이성에 관련되는 영역을 부활하기 때문이다. 또한 칸트가 예술을 문제시 할 때는 작품의 작자측의 능력인 [天才]의 개념을 엮고 있는바 작품에 [천재]가 여하히 표출되고 있는가를 무시할 수 없다. 인위를 넘어서 있는 기량이 보이는가, 예술가의 개성의 표출방식, 그리고 주제 내용에 보편적인 진리를 다루는 경우, 이를 예술가가 여하히 형태화하는가의 표현방법의 탁월함등이다. 특필해야 할 것은, 포스트모던의 숭고론의 대부분이 바-크적인 [不快]와의 관련에서 이를 중시하는 데 반해, 크라우져-는 숭고 또한 미적판단의 하나의 형태라는 점을 강조한 점일 것이다. 이렇게 [숭고론]을 [천재]개념과 같이 봄으로써 모든 예술에 적응 가능해 지게 되었으며, 특수한 포스트모던의 작품군의 성질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칸트미학을 동시대의 예술에도 적용하는 소지가, 여기서 구축되었던 것이다. 이를 받아 1993년의 [비판적미학과 포스트모던이즘]에서는, [천재]에 대한 칸트자신의 기술 안에, 실은, [미술사]의 중요성이 언급되었다, 라고 하는 다소 강인한 해석이 披露된다. 진정한 천재이면 미술의 역사를 참조하여 자신의 사상상의 위치를 작품으로 하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다. 더욱, 말하자면 예술작품의 감동의 원천이 되는 [미적이념]은, 칸트에 의하면, [구상력]을 赋活하는 것임으로 예술에는, 인간의 지각이나 경험이 놓이는 방식 자체를 좌우하는 힘이 있다, 라고 크라우져는 주장한다. 이렇게 칸트미학은 미술사에, 또는 인간의 일상의 지각의 존재방식과 관계되면서 넓혀 간다. 그리고 더욱이 이 지각의 문제를 강화하고, 인간의 신체성에 까지 넓혀, 독자적인 새로운 비판미학을 수립하기 위해, 그는 다음으로, 메를 폰티에 의존하는 것이다. 칸트와 메를 폰티를 支柱로 삼고 더욱 외적인 요인과 예술과 링크시켜, 모던에도 포스트모던에도, 아니, 모-던 시대의 모든 예술에 대응하기 위해 가지각색의 사상가들의 언설이 검증되고, 수정되어 간다. 예를 들면, 모던사회의 자본주의적공업화, 사진이나 영화 같은 복제기술의 등장으로 인해, [아우라]의 경험이 사라저 간다는 벤야민. 그 경험이 더욱 매스 미디어에 의한 정보범런으로 극도로 비대해 진 포스트 모던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실체가 없는 [슈밀러크르]로서 밖에 경험하지 못한다는 보드리야르. 이들은 메를 폰티경유로 물질적인 신체를 갖는 인간의 세계와의 관계방식, 지각의 변용의 문제가 되며, 이렇게 포스트 모던의 현상마저 크라우져의 비판미학의 응용범위안으로 끌여 들어 간다. 이리하여 포스트모던의 예술의 논리는 모던이즘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생각하는 모-든 포스트모던이스트의 견해를 거절하고 크라우져는 근저에 불변의 로직을 세우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동년출판의 [藝術과 具體 --- 미학에서 자기인식으로]에서, 이것이 심화된다. 인간은 신체를 기반으로 하여, 말하자면, 개개의 특수한 [體]를 [갖춘] 존재로써 세계와 관계하면서 경험적으로 모든 지각적 인식을 습득하고, 동시에 자기에 관한 인식도 전지각을 통합하는 것으로 형성 해 가는데, 이 세계와 신체와의 상호관계에서 얻는 자기인식의 존재방식이, 이번에는, 예술작품이 되어 [체]를 [갖추]고, 말하자면 구체화되어 가는 것이다. 이와 같은 예술작품을 관조하는 것은, 인간의 세계인식과 자기인식에 도움이 될 것은 클 것이다. 이리하여 예술의 창조와 수용에 있어, 사람은 세계와의 풍요로운 관계를 길려 가는 것이다. 이리하여 걸국에 가서, 1997년의 [20세기예술의 언설]에서는, 예술작품의 개개의 틀수성과 그것의 미적가치에 착목한 모던이스트들의 포-말리즘와, 과도에 이르는 기호론적인 접근을 보인 포스트모던이스트들의 예술론 사이의 [협의/화해]가 선언된다. 20세기의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 신체와 세계와의 상호관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예를 들어 가면서 해설하는 바, 더욱이, 예술작품의 미적가치가 어떤 시스템으로 창조자로부터 수용자에게로 형성되 가며, 미술사란 것이 형성되 가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이번에 크리우져가 원용하는 것이, 쟉크.데리다의 [반복가능성]이라는 개념이다. 데리다는, 엑추얼뿐만 아니라 生의 충실을 갖춘 바-롤에도 [반복가능성]을 인정했다. 즉, [지금 여기서] 發話한 특수한 주체의 現前性이나 그것의 오리지널.콘택스트가 소실된 후에도 언어표현의 기본적인 기능은 보지된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을, 인간개인의 신체와 예술작품의 특수성, 그리고 그것의, 일회적인 만남에 의한 해석의 특수성을 넘어 작품의 보편적인 미적 측면이 영속하여 [역사]를 형성해 가는 시스템의 설명에 응용되 가는 것이다. 약력: 영국, 옥스포드의 보리올 . 칼래지의 철학, 세인트.안드리뉴스대학의 미술사, 옥스포드 대학의 미술사의 강의를 담당하고, 칸트철학, 미학을 기반으로 한 포스트모던이즘에 관해 교편을 잡아 왔다. 센트럴.란커서 대학, 윤리학전문센트의 철학과교수를 거처 2002년도부터 브레-민 국제대학예술철학교수에 착임. 주저: The Canitan Sublime: From Morality to Art, Oxford Philosophical Monographs No.1, The Clarendon Press, Oxford 1989 Critical Aesthetics to Self Consciousness, The Clarendon Press, Oxford 19993 Art and Embodiment; From Aesthetics to Self Conciousness, The Clarendon Press, Oxford,1993 The Language of Twentieth Century Art; A Conccept History, Yale Univrsity Press,1997 편저서: New Art from Eastern Europe: Conflict and Identity, Art and Design Profile no. 35. April 1994 Contemporary Sublime; Sensibility of Transcendence and Shock, Art and Design Profile, no.40, February 1995
1408 no image 김수철전 '육화정신 - 환상방황'
2884 2017-06-19
2017예술정치 – 무경계 프로젝트 Exhibition, “Art Politics – Border Crossings” 실험공간 EXPERIMENTAL SPACE uz 김수철 展 - [肉化精神 – 幻想彷徨] 2017.5.27 – 6.25 頌詩-- “심술궂은 아이들이 파리를 놀리듯 신은 사람을 놀리며 장난삼아 죽인다…..” 세익스피어의 패시미즘…. - 이것은 결국 인생의 불확실성을 말하는 것이며, 지금 들이킨 숨을 다시 뿜어낼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면서 사람이 어찌 목적이나 신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냐…라고, 하는 의문을 던진 것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런 허무주의적인 사유의 끝자락에서부터 이 세상에 대한 눈부시게 새로운 긍정의 비전너리가 탄생해 나온다. 작가 김수철의 인생과 예술적 고뇌와 각성의 역설적 비전너리에 주목하는 이유다. 序 “열외자의 고뇌와 에레혼(Erewhon=Nowhere=상상적 유-토피어)” 열외자(Outsider) 김수철은 그의 전시 선언문에서 매우 이색적인 화두를 내 걸었다. [육화정신 – 환상방황], 이란 것으로, 먼저 ‘육화정신’을 풀어 보면, 정신이 물질화하여 나옴으로써 일어 나는 것으로 <탁신(託身)>이라고도 하며 이는 영어로는 Incarnation 에 헤당하는 말이다. 『요한복음』 1장 14절의 <말(로고스)이 살이 되어서 우리들 안에 머물렀다>라는 구절에서 유래하며,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서 구원을 이루었다는 그리스도교의 근본 敎義를 나타내고 있다. 신체가 있음으로 해서, 이를 살아 있는 제물로 받쳐질 수 있는 것이며, 代贖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완전한 역설이기 때문에 그 이해를 둘러싸고 많은 논쟁이 이루어졌다. 그노시스파에 의하면 이는 인간이 육(肉) 속에 숨겨진 神性을 발견하는 것으로 보았으며, 그 때문에 육체는 영혼의 임시숙소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를 <가현설(假現說)>이라고 하였다. 요한은 이에 대해서 육화를 십자가와 부활의 전제로 했을 뿐만 아니라, 로고스로서 意味 지어서 상징화했다고 할 수 있다. 후에 아타나시오스(Athanasius)는 肉化에 의한 肉體의 淨化를 주장하고, 안셀무스(Anselmus)는 육화없이는 인류는 멸망을 피할 수 없다고 그 필연성을 주장했다. 포사이스(Peter Taylor Forsyth)는 육화를 종말론적인 구제와 결부시켜서 이해하였는데, 이들은 모두 로고스 중에 創造와 救濟의 통일을 두고 신학적 의미를 밝힌 것들이다. 불교권에서도 육화설에 헤당하는 개념이 있는데, 一과 多의 상관성, 物質的인 것(事)과 精神的인 것(理)의 상관성, 本體와 現像과 事物의 관계항으로 보는 것이, 그것이다. 이들 개념들을 따로 놓고 그기에 집착하지 말고, 화엄의 理事無碍정신으로써, 서로 창조적으로 융합하라는 당위성을 이끌어 내고 있다. 묘하게도 이 대비는, 예술이 성립하는 기본인, 시니휘에(Signifie 기호)와 시니휘안(Signifiant 의미), 오브제와 이미지의 상관등식과도 부합한다. [幻想彷徨]이란 화두는 한 평범한 家主로써 살아 가는 어려움뿐 아니라, ‘예술’을 한다는 사람으로써의 지적 고뇌를 직유하고 있으며, [事]적 세계에 헤당하며, 산만함을 특징으로 하고 있는 세계다. 작가는 이 [事]에서 카오스를 경험하고, 앞의 [理]에 헤당하는 [육화정신]을 통해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본다. 그 상호 모순되는 등식에서 축출해 낸 나름의 답이 바로 [나는 작동이다]이라는, 매우 근조하고 중립적인 제스처이며, 작가의 인생관이자 예술관의 키-워드로 간주해도 무방 할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전시 선언문에서도, 혼란스려운 세상과 그 속에서 제정신으로 살아 가려는 어려움과 당혹스려운 상황을 남의 일같이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 [작동]이란 말은 작가의 예술정신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고 보는데, 이말은 초시공적 우주적 생성의 묘를 암유하고 있다. 이는 질 들뢰즈의 찰학의 주 모티브적 게념과도 상응한다. “우리는 차이 자체를, 즉자적 차이를 사유하고자 하며 차이소들의 상호 관계를 사유하고저 한다. 이는 차이 나는것들을 같음으로 환원하고 부정적인 것들로 만들어버리는 재현의 형식들에서 벗어 나야 가능한 일이다.” 김수철의 육화정신과 그의 작품들의 格에는, ‘差異素들의 非還元性’ 이란 치명적인 특성이 공유한다. 이는 바타이유의 [非知]개념과 맥락을 같이 하는 차원의 개념들로, 불교권에서 언급되고 있는 [即非]의 논리,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공통적으로 쓰이고 있는 [非]는 세상을 양단논법으로 단정하는, 肯과 否의 논리가 아닌, 초월론적인 작동의 변증, 야생적 매트릭스(matrix)의 위상에 잡히는 토포로지컬한 관계소들을 전제하는 존재론적 원소 개념이다. “A는 A가 아니다. 고로 A이다.” 로 요약되는 이 역설은, 마지막 “A”는 처음의 A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넘으 선(초월) 다는 의미가 함축 되 있다. 넘어 선다는 것은, 다시 태어난다라는 更生의 의미가 들어 있으며, 갱생은 救援으로 이르는 필수 과정이기도 하다. 異常한 山水畵의 誕生 自然의 繪畵 1 그의 작품 [자연의 회화] 1은, 거대한 만화경의 구조물을 이용하여 외부의 개입을 차단해 놓고, 인조 머리카락을 핀센트로 집으 올려 고정시키는 수법으로, 동양 산수화가 ‘작동’되 나온 것이다. 그리는 것이 아닌, 작동으로 표현한 것은, 여기서 보이는 산수화의 ‘이미지’가 사람의 손에 의해 그려진 것이 아니라, 작가의 손을 빌린 머리카락이 그 섬세함으로 해서 동양화의 필획을 능가하는 선들로 弛緩 重疊의 반복을 통해 흰 벽면에 부조와 같은 山의 형상들을 만들어 놓는 [작동]이 연출됬디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작가의 미학적 키-워드인 [작동]이 만들어 낸 물질의 즉자적 [작동]의 흔적이다. 작가는, 이를 통해, 잠시 동안이나마 분실된 예술에 대한 회한을 삼키고 순수한 예술의 가능성을 엿 볼 수 있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自然의 繪畵 2 작품의 주류를 나타내고 있는 [만화경] 주변에서는 주 관념의 파생물로써, 하나는, 회화의 형태로, 다른 한가닥은, 행위(퍼포먼스)로, 니타내 보여주고 있는 두 [작동]이 연출되었다. 그 하나가, ‘만화경’ 옆 전시장 벽면에 걸려 있는 평면 회화, [불,물,공기]다. 이 작품은, 아주 오랜 기간(6개월 이상) 판위로 조금씩 떨어지는 연통에서 흘려 나오는 그으름이 썩인 연기와 물을 받아, 저절로 층을 이루며 침전하면서 진한 황갈색으로 다양한 무늬를 남겨 놓은 이미지 물이다. 인간의 행위가 전혀 개입되지 않는 그야말로 사물의 자연스려운 변용의 결과물을 그대로 판위에 받아 낸 것으로, 그 나타난 이미지는 인간 지성의 상징물로 제시되고 있는 추상회화와 전혀 구별되지 않으며, 그 이미지가 품어 내는 아우라(氣)는 또 다른 氣勢의 야생성이 풋풋하게 전해지고 있다. 시장바닥에서 팔고 있는 상품인 [便器]를 그대로 전시 작품으로 제출한 뒤샹의 “샘”과는, 또 다른, ‘현대미술의 否定’의 한 획이 이루워지고 있는 장면이다. 퍼포멍스 “燒紙” 그의 [만화경]이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구조물 바로 앞에서, 작가는, 우리 나라의 전통 의례의 한가닥으로 불 수 있는 ‘燒紙’를 행한다. 작가가 바닥에 깔아 놓은 종이 위에 붓으로 글을 쓰 넣고 이를 불에 사르는 [작동]이다. 여기서 김수철의 예술적 키-워드인 [작동]은 非視的 믿음의 세계, 신앙의 세계인 [기원]으로 바뀐다. 그 남은 재를 하늘위로 날려 보내는 아주 짧은 퍼포먼스 였지만 관객들은 불길과 연기가 보여주고 있는 해프닝에서 燒盡과 還元의 攝理를 통해 우주만물의 변환의 묘를 듸색인다. 이는 앞서 선 보인 선언문에서 나열해 놓은 두서 없는 ‘낱말’들과 같은, 살아 가면서 만들어 지는듯한 생각의 파편들을 無化시키는 제스처이기도 하다. 진정 무엇을 보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불사르여야 한다. 에피로그 墨과 線의 感性으로 민족의 마음을 읽게 하는 김수철의 예술 그의 작품은 어떤 기준으로 분류된 ‘種’의 위상에 놓여 있다. 종은 개를 품고 있으면서 개적인 요소들을 들어 내지 않으며, ‘共同 進化’해 가는 특성을 갖고 있다. 사물의 원소 차원에서 차용해 나온 일군의 작품들이 모두 黑을 공유하고 線적인 감성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점에 주목한다. 이는 이웃나라인 중국의 회화예술의 일반적인 형상이 ‘모양’이나 ‘형태’에 치중하고 있는 점이나, 일본의 색의 선호와는 달리 유교적 덕성을 상징하는 우리민족의 마음을 상징하는 요소들이다. 선은 민족의 내적 창조의 섬세함이 묻어 나온 美로 놀라운 직관으로 발휘된다. 작가는 자신의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섭리에 귀 기울이며 그 사이에서 흘려 나오는 사물의 마음으로 그림을 [작동]시켜려고 한다. [개]의 차원이 아니라, [종]의 매트릭스적 망에 편입된 差異素라고 볼 수 있을까.
1407 no image [20세기 사상과 미술] 씨리즈
1867 2017-06-09
32번쩨 T. J . 클라크(T.J. Clark) “진정한 의미에서의 藝術의 社會史” 미술작품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諸條件이란 무엇인가. 다시 말해서, 작품은 이들 제조건과 어떻게 상관하고 있는가. T. J. 클라크의 방법이란, 궁극적으로는, 작품을 둘려싸고 있는 이러한 문제들을 밝히려고 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마르크스주의적, 사회사적인 콘택스트論이란, [예술의 자율성]을 근저에 깔고 있는 모더니즘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것으로, 그 이후의 近現代미술을 둘려싼 언설에 지대한 영향을 입혔다. 그러나, 왜 [製作]이나 [創造]가 아니고 [生産]이며, [鑑賞]이 아니고 [消費]인가. 이 말의 선택이야말로 클라크의 방법적 태도가 가장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며, 이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예술의 사회사] 라 스스로 부르고 있는 그의 議論의 핵심에 가 닿을 수 없을 것이다. 클라크가 [타임즈 문예부록]에 보낸 [예술창조의 제조건]이라 부른 一文에는, 왜 [예술의 사회사]란 방법이 필요한가, 또한 [생산]이란 개념이 강조되지 않으면 안되는가, 가 설명되 있다. 아로이스.리-글 이나, 막크스.도뷜쟉 혹은 엘빈.파노브스키등 한때의 미술사가들은 미술작품을 탐구함에 있어 근본적으로 중요한 문제, 즉 작품의 제작과 수용등이 그 토대에서 조건 지우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라고 하는 大問題를 피해 건널수 없다는 것을, 계속해서 되묻고 있었다. 클라크는 그러한 제조건에의 되물음을 다시 돌려 놓는 것이 미술작품을, 그 심층에 숨겨 두고 있는 제문제에로 깊이 파고 들어 가는데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예술가는 의식하고 있던 없던 상관없이 가지 각색의 문제들을 자기 자신의 [資源]으로 안고 있다. 그것은 제작기술일 수도 있고, 예술적 전통이기도 하고, 혹은 동시대의 사상이나 관념이기도 한다. 예술응호자나 회화거래, 화가의 사회적지위, 예술작품의 용도등도 들 수 있다. 이러한 제조건과, 예술작품이나 이를 만들어 내는 작가와는 긴밀하게 서로 연결되 있으며, 그것들이 짜 내는 복잡한 넷워-크에서 도망할 수가 없다. 이들 제 조건과 작품이 서로 어떤 거래를 하고 있는가, 라고 하는 것을 문제시한다. 크라크가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었던 것은 이와 같이 작품이 품고 있는 다이나믹한 양상을 기술해 내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양상을 찾아 내는데, 무엇보담 작품의 제작을 [創造]라고 부름으로써, 눈을 흐리게 하는 일을 피해야 한다. 예술가를 [데미울고스](創造神)와 같이 보는 태도는, 예술가가 사회적인 존재란 당연한 사실을 손쉽게 감추어 버린다. 물론, 예술가가 [데미울고스]였었던 시대, 그러한 사상이 예술가의 지위를 형성했던 시대가 있었는지는 모르나, 그러한 사실자체는, 예술가가 [데미울고스]로써 사회적으로 구축되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을 뿐, 진리는 아니다. 작품은 [데미울고스]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인 예술가가 [생산]하는 사회적 구축물로 간주함으로서 작품의 제작은 사회적인 제조건과 응답하면서 행해지는 하나의 [사회적 실천]이라고 인식되어 지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인식을 갖음으로써, 작품이 다하는 사회적인 활동도 照射되 나온다. 생산물로써의 작품은, [감상]이라고 하는 뉴-트랄하개 수용되는 것이 아니라, [소비]됨으로써 사회에 영향을 입히고 그 힘을 세계에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작품의 생산과 소비의 제조건을 밝혀 가는 과정에서는, 예술을 둘려싸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문제, 그리고 그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 계급의 문제가, 시야에 들어 오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예술과 이데올로기와의 상관관계를 여하히 잡아 내는가, 이것이 클라크가 스스로 課한 과제라 말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그러한 과제를 스스로 떠맡는 클라크가, 스스로의 고찰대상으로써 우선 선택한 것은, 1848년의 2월 혁명기의 프랑스미술이며, 이어서 제2제정하의 파리의 미술이였다. 이들의 논고에서, 일례로, 그루베-의 <올란의 매장>이나, 마네의 <올람피아>나, <1867년의 파리만박의 광경>등의 작품에서 여하히 작품이 농촌이나 도시를 잇는 이데올로기의 총체와 거래를 하며, 이를 받아들이면선도, 동시에 이를 [異化]하고 있는가를 부각해 보였다. 그리고 그 탐구는 혹종의 주제를 수반한 19세기미술에 머물지 않고 전후 미국의 추상미술로 향하고 있었다. 클라크는 추상표현주의 회화를 계급의 문제와 연결지움에 있어, 요 수년간 왕성하게 논해저 왔던 냉전구조와의 상관과는 전혀 다른 접근을 취한다. 그는, 그러한 거대한 정치적 콘택스트가 아닌, 보다 일상적인 미국의 부찌브로조와의 삶과의 연계속에서만이, 즉 실제적인 소비의 콘택스트속에서 찾아 내 보여 준다. 이것이 농촌이나 도시에서의 생활이란 가까운 인간의 활동영역의 시점에서 그루-베나 마네의 작품을 논해 보여준 것과 꼭 같은 동일선상에 놓인 것은 분명하다. 클라크는 추상표현주의의 작품을 [불가리디-Vulgarity](클라크자신이 정의곤란으로 본 이 말의 [통속성] 혹은 [속됨]으로 쉽게 역해버리는 것에 주저가 있다)에 형상을 부여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불가리디-]라고 하는 말이, [본래는 좋은 취미의 나쁨을 노정해 버림]이라고 하는 뉴-앙스를 갖고 있음을 지적한 위에 이 말이 갖는 [폭로성]이라는 함의야말로 중시하며, 추상표현주의의 작품이 부치.블조아의 취미나 [개인주의]라고 하는 이데올로기-의 [폭로berrayal]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는 점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이 또한 예술작품이 갖는 이데올로기-의 [異化]작용을 잡아 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의논을 통해 그린버-그적인 [예술의 자율성]을 근저에서부터 부정해 보인 클라크는, [미적가치]만을 중시했던 모더니즘와는 달리 미술작품이 여타의 제가치와의 관련성을 나타내며, 인간의 영위란 보다 큰 마트릭스안에서 예술작품을 되잡아 내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약력: 영국 브리스톨 태생. 켐브릿지대학, 고돌드.인스티튜-드. 오브. 아-타 수학. 에색스 대학, 캄파웰스 미술학교, UCLA, 리-스대학에서 교편을 잡음. 1980년, 하-바드대학의 교수(미술사)에 취임. 87년 이후에는 칼리포로니아대학 바크레-교 교수직. 주저: The Absolute Bourgeois; Artist and Politics in France,1948-51 Thames and Hudson, London and New York Graphic Society, New York 1973 Image of the People; Gustave Courbet and the 1948 Revolution, 1973 The Painting of Modern Life; Paris in the Age of Manet and his Followers, 1985 Jackson Pollock; Abstraktion and Figuration, 1994 Farwell to an Idea : Episodes from a History of Modernism 1999
1406 no image [20세기 사상과 미술] 씨리즈
1700 2017-05-31
31번쩨 뒤엘리. 드. 듀-베(Tiery de Duve) “뒤샹이란 어떤 者인가” 예술상의 모더니즘 개념을 만들고 이를 넓혔으며, 유-럽.아반가르드와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를 억지로 접속시켜 일관된 이야기를 구성한 그레민트.그린버그는 그 모더니즘의 圈域에서 다다와 마르셀.뒤샹을 사실상 배제하였다. 알프렏.바-.주니어는 1936년에 뉴-욕근대미술관에서 열렀던 [큐-비즘와 추상미술]전의 카다로그에, [이즘]의 상호관계에서 나온 유명한 도표를 실었던바, 여기서는 [다다이즘]에 일정한 문맥적 위치가 주어저 있다. 그러나 실은, 다다는 그냥 다다라 칭하였을 뿐이고, [이즘]는 뒤에서 편의상 덧붙쳤을 뿐이다. 그 다다는, 기성의 [예술] 개념 그 자체를 문제시 한 것이다. 반[예술]적 몸짓은, 그러나 결국 모더니즘의 조류속으로 회수되어 버렸지만, 다다가 예술의 자율성이나 순수성을 추구하지 안 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1950년대 말에서 60년대에 등장했던 소위 일컬어젔던 네오.다다 이후, 더 이상, [이즘]라는 말로는 포괄시킬 수 없는, 밥.아-트, 라이트.아-트, 옵.아-트, 미니멀.아-트, 컨셒추월.아-트, 랜드.아-트등등, 그야말로 막연히 [아-트]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현상이 연이어 일어 났었는데, 이러한 [아-트]를 담당한 자들은, 많턴 적던 뒤샹을 스승으로 숭상하고 있었다. [에로티시즘도 이즘이다]라고 중얼되며, 그 한에서 [이즘]와 어께를 나란히 한 것으로 보였던 뒤샹은, 그러나, 60년대에 들어서서 [아-트]의 범람을 앞에 둔 그린버-그의 입을 다물게 할 정도로 힘이 있었던 원흉, 모더니즘의 내부에 터를 잡은 獅子몸속의 벌레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 벌레들이 파먹은 구멍이 60년대에 와서 수상스렵게도 확산되었던 것이다. 뒤샹이란 어떤 者인가. 그린버-그적 모더니즘와의 관계에서, 뒤샹을 어떻게 포착해야 하는가. 뒤엘리.드.듀베는 이 물음을 스스로에게 과한 과제로 삼은 주목해 볼만한 논객이였다. 드.듀베는 2권의 프랑스어 서책, [繪畵的唯名論 – 마르셀.뒤샹, 회화와 모델니데](1984)와 [예술의 이름하에 – 모델니데의 고고학을 위해](1989)를 상재한 후, 이번에는 영어로 [칸트.아프타-.뒤샹]을 1996년에 MIT프레스에서 간행한다. 프랑스어의 저서 두권의 내용을 취사선택하여 새로 꾸며서, 자신이 영어로 쓴 것이었다. 베르지움태생의 드.듀베가 카나다의 오타와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던 사실로 보아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칸트 아프트 뒤샹]이란 타이틀은, [예술의 이름하에서]의 제2부 <Kant(d’)après Duchamp)]에서 유래함으로, [아프타]에는 [이후의]와 [에 의한]이란 두나의 의미가 걸려 있었던 것이 되며, [뒤샹에 의한/이후의 칸트]정도로 역해 두어야 할 것 같다. 드.듀-베의 논술은 부분적으로 윌리엄.루-빈의 [다다와 슈리얼리즘예술](1969)에서 피력되는 견해와 맥을 같이 하는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어나, 무엇보담 뒤상을 칸트미학과 관련시키고 있는 점이다. 이는 모더니즘을 [철학자 칸트에 의해 시작된 자기비판적경향의 강화[(모더니즘의 회화)1960로 잡았던 바로 그 그린버그에의, 그리고 칸트적인 [취미]를 유일한 법정으로 삼았던 바로 그 그린버그에 대한 분명한 그리고 성실한 도전이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드.듀-베가 무엇보담 문제시 했던 것은 뒤샹에 의한 회화의 [放棄]와 그것과 접속하는 레이디.메이드의 [發明]이라고 하는 사태이다. 뒤샹은 1912년에 <계단을 내려오는 나체 No.2>를 완성하고, 안데판덴트전에 출품하려고 하다가 뷰-티-의 큐-비스트의 그룹로 부터 공격을 받고, 이를 철회하였다. 이 그룹와 결별을 한 뒤샹은, 그 후 뮨헨에 두달동안 체류하여, 그기서 <처녀>란 題한 두장의 드로-잉와, <처녀에서 신부에의 수행> 및 <신부>의 두장의 유채를 제작했다. 1912년 10월, 뮨헨에서 돌아 온 그는 자신에게 이렇게 이른다. [마르셀, 그림은 이제 됬다, 일을 찾아라]. 1913년말까지는 <큰유리>의 계획은 거이 다 짜여저 있었다. 그리고 최초의 레이디 메이드, <자전거의 차륜>이 만들어 젔다. 뒤샹의 아마도 최상의 회화작품이 뮌헨에서 이루어젔다고 보는 것도, 좀 수상직한 일이기도 하다. 이때 뮌헨에서는, 간딘스키-가 [추상]회화에의 길을 강하게 발을 내 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린버그가 말한 순수화란, 말하자면, 색채에 의해 화면을 구성하기 위하여, 그걸 내걸고 있는 형상을 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성을 태-마로 선택한 뒤샹은 형상성을 버리지 못했다. 형상성을 버리는 대신 그는 회화를, 말하자면 동시대의 화가들이 어께를 나란히 하여 나아가고 있었던 추상회화를 거부했던 것이다. 바로 그가, 왜 레이디메이드로 향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가. 뒤샹 자신에 의하면, 레이디메이드란, 무엇보담 먼저 고를수 있는 것이며, 그점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왜냐 하면, 그림을 그리는 일도, 푸른 화구의 튜-브를, 붉은 화구의 튜-브를 고르는 것이며, 그리고 이들 튜-브는 레이디메이드 이외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으로, 레이디메이드를 선택하는 것은, 일종의 회화제작이기도 하다라는 말이 되는 것이다. 뒤샹은 이렇게 회화라고 하는 예술쟝르의 하나를 방기함과 동시, [예술]개념 그 자체를 겨냥하게 되었다. 일례로, <병건조기>(1914)는, 그림도 아니며 시도 아니며 조각이나 음악도 아니다. 그것은 [예술]이던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것이다. 드.듀-베는 이러한 점을 [種적인 것]에서 [類적인 것으로]의 이행이라 불렸다. 뒤샹은 사람이 화가도 아니고 조각가도 아니며 시인도 아니고 음악가도 아니면서 그대로 [예술가]기 되는 것을 나타낸 최초의 인물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드 . 뒤베는 이러한 [예술가]를 스스로, 특권적인 과제로 맡았던 것이다. 약력: 1944년 벨지움 태생. 브랏셀에서 미학과 기호학을 가르친 후, 카나다의 옷다와대학에서 미학미술사 교수, 파리 시립미술학교 교장을 역임. 주저: Nominalisme pictural: Marcel Duchamp, La peinture et la modernite, Minuit, 1984. [예술의 이름하에] 2002년.
1405 no image [20세기 사상과 미술] 씨리즈
1600 2017-05-26
30번쩨 로쟈린트. 크라우스(Rosalind Krauss) “20세기 美術의 歷史 그 自體를 再檢討한다” 로쟈린트.크라우스의 비평의 이론적 입장의 변천은, 대국적으로 보면, 60년대 후반의 미국 포말리즘비평의 실추와 70년대의 프랑스의 구조주의사상의 미국유입을 계기로 포스트모더니즘비평의 융성과 궤를 같이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보롴을 중심으로 한 추상표현주의를 배경으로 한 60년대까지의 그린버-그의 비평이 [미디움의 순수성] [평면성]이라고 하는 개념을 중심으로, [모더니즘]비평의 수비일관한 분석 도구를 配備하여 압도적인 영향력을 가진 시대를 받아, 크라우스는 프리-드와 더불어 포-마리즘의 비평가로써 출발하였다. 데이빗.스미스에 관해 쓴 박사논문은, 상세한 작품분석에 의해 포-말리즘비평의 눈부신 성과가 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60-70년대에 크라우스가 寄稿했던 [아-트 포럼]誌는, 미국의 미술비평의 무대에서 매우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同誌의 편집자들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로-랜스.알로웨이는 항상 나와 아-넷을 포마리스트이면서 에릿드이고 예술의 사회적 사명을 모르고 있다고, 놀리고 있었지. 막스.코즈롶도 厭味의 감으로, 항상 존대하게 굴었었지. …. 그도 자신 이외는 예술의 至高한 사회적 역활을 모르고 있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지. 아-넷나 나도,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예술의 포-말한 창조와, 사회적인 사명이라는 단순한 대립을 믿지 않았었다. 우리들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예술의 사회적 운명이나 책임은, 반드시, 예술이 그것에 의해 기능하게 되는 혹종의 포-말한 인테리젠스와 같은 것과 적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대립을 설정하는 자체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지. 그런건 바보스려운 것이 였어… . 1976년에 크라우스가 마이켈슨과 함께, 현재도 90호를 넘어 이어가는 이름 높은 비평이론지 [옥토-버]를 창간했을 때, 그기에는, 그린버-그 비평과의 결별뿐만 아니라, “아-트폴럼.마피아”와의 결별의 의사도 포함하고 있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린-버그비평에서는, 단순히 60년대이후에 등장하는 많은 작품에 대해서는, 수비일관한 분석툴로써 기능하지 못했다. 예를 들면, 그녀는, 동지 一號의 [비디오; 나르시즘의 미학]이라는 아곤찌론을 실고 있다. 미니멀즘이후의 전개를 예술의 타락으로 본 그린-버그=프리-드적인 입장으로 부터는, 비디오 아-트와 같은 영역은 처음부터 고찰의 밖에 놓여 있었다. 크라우스는 작품의 [평가]를 유보하고, 所與의 작품의 구조의 분석에 집중한다. GOOD/BAD 의 평가적판단으로는, 동시대의 작품을 헛잡는 것으로 그녀는 생각했던 것이다. 초기의 [옥토버]에 실린 것들을 총괄한 [오리지널티와 반복]은 [전위예술]이 표방하고, 그 이론적핵심부를 이루고 있는 [오리지널티]나 [유-니크네스]나 [순수성]등이 [신화]였었다고 하고, 그것들을 벤야민적인 [복제기술시대의 예술]의 이론권으로 다시 세우는 필요성을 다시 설했다. 또한 [지표론]은, 사진을 이콘이 아닌 지표[인택스]로 삼는 바-스의 기호론에 의거하면서 70년대이후에 특징적인 작품의 구조를 사진=인텍스=흔적과의 관계로 자리 매김하는 획기적인 시점을 제시하고 있다. 동시에 그것은 슈-리얼리즘의 [사진적 조건]으로써의 [무의식]의 영역과도 통저해 간다. 더욱 35년 이전의 쟈코멧디의 해석을 통해, 고귀한 하이.아-트의 높이로, 바타이유적인 [오탁]의 세계를 대치하고, 복제나 진거러운 것이 跋扈하는 카오스를 불려내어, 80년대의 예술과 호응하는 이론적 영역을 암시한다. 略歷: 1940년생. 62년 웰즈리大卒, 69년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 취득. 동대시대는 강사의 그린버-그, 학우 머이켈.프리-드로부터 영향을 받고, 모드니즘/포말리즘의 비평가로써 데뷰. 그러나 포말리즘 비평의 한계를 느껴, 76년 僚友 어-넷.마이켈슨과 더불어 미술비평지 [옥터-브]를 창간, 同誌를 중심으로 정력적으로 집필하며, 미국에서의 포스트 모더니즘 바평을 대표하는 미술비평가로써 활약한다. 컬럼비아대학의 근현대미술사. 미술이론교수. 主著: [오리지널티와 반복] 1994년. [피카소론] 2000년. 이상 일본번역. Terminal Iron Works ; Sculpture of David Smith, MIT Press, 1971. Passages in Modern Sculpture, Viking Press,1977. Optical Unconcious, MIT Press 1993. The Bachelors, MIT Press 1999. A Voyage on the North Sea : Art in the Age of Post Medium Condition, Thames and Hudson, 1999. <Curation, Catalogue text> Robert Morris; The Mind / Body Problem, The Solomon and Guggenheim Foundation, 1994. Cindy Sherman; 1973-1993, Rizzoly, 1993. I’nform; mode d’employ, edition de Centre Pompidou,1996(Yve –Alain Bois와 共著)
1404 no image [20세기 사상과 미술] 씨리즈
1792 2017-05-23
29번쩨 마이켈. 프리-드(Michael Fried) “포-마리즘비평에서 最上의 成果” 를 걷우다 크리멘트. 그린버그 문하에서 많은 훌륭한 비평가가 배출 됬다. 중에서도 그와 개인적으로 친교가 있으며, 1960년대 후반, 그린 버-그와 더불어 모더니즘미술을 응호하는 논진을 펄첬던 마이켈.프리드는 그의 후계자로 간주되어 왔었다. 당시 프리-드가 발표한 논문은 모더니즘미술에 관한 형식적인 비평의 규범을 구성하고, 그기서 제기된 문제는 오늘에 이르기 까지 미술비평의 틀을 거이 규정하다 싶이 한다. 그린버-그의 [포-마리즘]비평은 작금에 와서는 오히려 비판적으로 언급되는 일이 많으며, 프리-드 자신도 오늘날 미묘한 거리를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작품의 형식에 관한 치밀한 기술, 작품이 실현되는 모체에 대한 관심, 작품의 질에의 끊임없는 물음이란 점에 있어서는 프리-드의 비평은 그린 버그로부터 유래하는 미국의 포-마리즘비평에서 최상의 성과로 자리 매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후 1970년경을 고비로 프리-드는 현대미술의 비평에서 착실히 물려서고, 80년의 [몰입과 연극성 디-도로 시대의 회화와 觀者]로 시작하여, 미술사 삼부작으로 결실하는 19세기프랑스회화에 관한 연구에 들어 간다. 근년 간행된 현대미술에 관한 평론집에 부친 서문 속에서 프리-드는 이 轉身의 이유로 스스로 현대미술에 관해 논할 일들은 60년대서 이미 다 했음으로, 그 이후의 미술의 주류가 된 작품은 미술에 관한 스스로의 확신으로부터는 평가하기에는 멀다고 말하고 있다. 모더니즘미술의 절정에 동반한 비평가에 어울리는 말이 아닐 수 없다. 프리-드가 현대미술의 비평에 적극적으로 기여했던 시기는 불과 10년 정도였다는 점은 주목해 볼만 하다. 60년대 후반, 프리-드는 [아-트 인터나쇼날]지에 바-바라.로-즈등과 함께 [뉴-욕 레터-]라고하는 展評을 연재하면서 최신의 상황을 리포-트함과 더불어 휠맆.라이타의 에티트쉽하에, 황금시대에 놓였던 [아-트.포럼]지를 무대로 연이어 중요한 논고를 발표한다. 당시의 뉴-욕의 미술계는 전성을 구가하는 모더니즘미술의 그늘에서 이를 내부에서부터 무너털이는 위협이 잠행하는 매우 크리티컬한 시기였으며 이 긴장이야 말로 프리-드가 이들 일련의 논문을 집필히는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고 본다. 이들 논문에서 프리-드의 입장은 일관해 있다. 즉, 모-리스.루이스, 케네스.노-란드, 프랑크.스테라, 그리고 안소니-카로라고 하는 모더니즘미술을 잇는 작가들을 높이 평가하는 한편, 당시 발흥하기 시작하던 미니멀.아-트에 대해서는 부정해야 할 동향으로 엄하게 비판하였다. 그러나 미니멀.아-트의 한 기원으로 볼 수 있는 스테라에 대한 높은 평가가 시사하는 바와 같이, 프리-드의 입장은 그린버-그의 그것과는 미묘한 차이를 보여준다. 그린버-그가 회화나 조각과 같은 표현매체의 본질에로 향하는 환원적인 과정으로써 모더니즘미술의 전개를 잡는 데 대해, 프리-드는 그러한 본질을 부정하고 모더니즘의 화가의 책임이란 스스로가 놓인 시점에서 회화가 그 아이덴티티를 확립하기 위한 요건을 발견하는 것이란 점을 주장한다. 프리-드에 의하면, 이러한 요건이란, 시대와 더불어 변화한다. 구체적으로 60년대 후반이란 특수한 상황하에서의 프리-드는, 그린버그가 말하는 평면성 대신, 形態란 문제에 모더니즘회화의 가능성을 본다. 스테라나 노-란드에게는, 회화의 리터럴한 형태와 그 위에 그려지는 형태와의 갈등이 회화의 주제를 구성하고, 그 질을 확신하게 하는 것이다. 스텔라의 不整多角形 씨리즈에 관한 논문에서, 프라-드는 보롴이나 뉴-먼이라고 하는 선례를 참고하면서, 양자의 갈등에 의해 생성하는 시각적 이류-전이즘이 물체로써의 형태를 극복하고 있는 점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한편, 이류-전을 패기하고, 작품의 물체성을 단순히 리터럴하게 제시하는 미니멀.아-트에 대해서 프리-드는 작품의 擬人的인 스케일, 관자를 포함한 상황전체가 작품화되어 있는 점, 지속적인 시간속에서 향수되는 점등을 지적하고, 이것이 미술이 아니고, 연극의 일종이라 간주하고, 연극이란 가지 각섹의 표현매체의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며, 모체의 순수화를 겨냥했던 모더니즘미술과 어울릴 수 없다. 그리하여, 프리-드는 [예술은 연극의 상태에 가까워질수록 타락한다]라고 하는 태 - 제를 제출하여 미니멀.아-트를 전적으로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미니멀.아-트는 시각적순수성이나 의미의 자율성이라고 하는 모더니즘미술의 이상을 극한까지 추구한 결과, 기대치 않았던 그것의 불가능성을 노정시켰다. 작품이 자신을 전적으로 표명한다는 기적과 같은 순간, 즉, 현재성이란 은총을 동경하는 모더니스트로써의 프리-드가 미니멀.아-트에 대해 쌓았던 적의는 당연한 것이나, 프리-드의 적확한 분석은 범백한 미니멀.아-트 응호의 논문을 휠씬 넘어선 예리함을 갖고 그 특성을 적출하였다. [예술과 객체성]은 오늘날 아직도 미니멀.아-트에 관한 결정적인 논문으로써 위치를 확보하고 있으며, 로자린트.크라스는 이 논문을 미술의 언설에 이론적인 쐬기를 박고, 시대를 이분한 현대미술의 사브택스트라 평하고 있다. 演劇性이란 개념은 80년대 이후에 발표한 미술사 연구중에서도 沒入에 대한 對槪念으로써 중요한 의미를 맡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의 미술비평과 미술사연구를 안익하게 단락시켜서는 안될것이다. 그 자신 [프랑스의 반연극적 전통에 선 미술사가로써의 나와 [예술과 객체성]을 집필한 미술비평가로써의 私의 사이에서는 넘기 힘든 심연이 퍼저있는 것 같이 보인다]라고 적고 있다. 그의 비평은 모더니즘미술이 일종의 한계에 달한 60년대 후반의 뉴-욕라 하는 특정한 場과 밀접하게 맺으저 있으며, 그럼으로, 오늘날 다시 읽으 보면, 일종의 시대성까지 느끼게 한다. 그러나 그것은 프리-드가 항상 구체적인 국면에서 성실하게 작품과 대화를 하고, 그기서 평가되어야 할 가치를 찾아 냈을 때는, 그 의미를 역사에 묻는 데서 유래하고 있으며, 이러한 자세부터는 비평의 논리라 말하기 보담 윤리에 더 기울어저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약력: 1937년 뉴-욕 태생. 프린스톤 대학 대학원 재학중에 동기의 프랑크.스테라와 교류하며, 크리민트.그린버그의 강한 영향아래 미술비평의 길을 걷다. 1959년부터 3년간 영국에 유학하여 조각가 안소니.칼로를 알게 되다. 뉴-욕 귀향후에는 포-크미술관에서의 [3인의 미국인 화가]전의 조직이나 전람회평의 집필등 동시대의 미술상황과 적극적으로 관게하면서, [아-트 폴럼]지등에 연이어 논문을 발표한다. 70년대 이후에는 주로 근대 프랑스 회화연구의 분야에서 풍요로운 수획을 걷우다. 주저: [예술과 객체성] 1995. Morris Louis Harry N. Abrams 1970 Absorption and Theartricality; on Painting and Beholder in the Age of Diderot University of Chicago Press,1980 Courbet’s Realism University of Chicago Press Realism, Writing, Disfiguration: on Thomas Eakins and Stephen Crane University of Chicago Press,1989 Manet’s Modernism: or the Face of Painting in the 1960s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8
1403 no image [20세기 사상과 예술]
1661 2017-05-22
28번쩨 크레민트 .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 “포-말리즘 批評의 確立者” 20세기의 미술은 모더니즘이라 부른 원리를 둘려 싼 갈등의 역사라 말해도 좋으리라. 보다 정확하게는 크레민트. 그린버그가 미술사를 기술하기 위해 채용했던 포-마리즘 라 하는 방법이 [모더니즘미술]을 실정적으로 규정했던 것이고, 그러함으로 그의 저작은 20세기 미술의 비평의 핵심을 형성하고 있다. 작품의 형식적 요소에 착목하여 분석을 가하는 포-말리즘은 오늘날에 와서는 오히려 비판적으로 언급되는 경우가 많은데, 마이켈.프리-드에서 로쟈린드.크라우스, 이브.아랑.보아에 이르기 까지 그에 의해 촉발된 많은 비평가들의 다양한 작업들은, 그린버-그를 계승하던, 비판하던 금세기후반에 있어 가장 중요한 미술비평의 계보를 이루고 있으며, 포-말리즘비평의 생산성을 웅변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비평가로써의 그린버거의 기본적인 입장은 스스로가 편집장을 겸했던 [파-티쟌. 레뷰-]지에 발표한 초기의 논문에서 이미 밝혀저 있다. 1939년의 [아방가르드와 킷치]에서 그는 마르크스주의적 문화론을 배경에 깔고 대중화에 대항하는 아방가르드를 찬양하고, 이의 산모격인 부르죠아지-와의 착종된 관계를 논한다. 후년, 디-모시-.크라크에 의해 엘리옷적인 도롯키즘라고 야유되는 독특한 관점에서, 그린-버거는 아방가르드의 존재이유를 예술의 자율성에 구한다. 더욱 40년에는 [새로운 라오콘을 향하여]에서 그는 이러한 자율성을 역사적인 문맥에서 파악하는 모습을 나타내며, 미술사를 모더니즘라는 문제권으로 접속시킨다. [나는 추상미술의 우월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역사적 공정화 이상으로 가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의 저술은 추상미술의 역사적변명이다] 라고 맺을 때, 비평가의 문제의식은 명확해 진다. 그리고 그는 후년의 유명한 논문 [모더니즘의 회화]에서 이와 같은 자율화의 과정을 더욱 정치하게 이론화한다. 그에 의하면, 모더니즘이란 표현매체에 있어 비본질적인 요소를 방기해 가는 환원적인 프로세스이며, 역사적, 형식적으로 검증이 가능하다. 그는 하인릿히.뷀프린이 [미술사의 기초개념]에서 제기한 [彫愓적]인 시각형식과 [회화적]인 그것의 교대라고 하는 도식을 여기에 응용하여 동시대의 뉴-욕에서 미술의 결정적인 전개가 생기해 간다고 논한다. 즉 [조상적]인 유-럽의 큐-비즘회화를 대신하여 미국의 [회화적]인 추상회화가 발흥하며, 더욱이 그가 창조하는 [포스트.페인터리.아브스트럭선]이 이를 덥친다. 그린버-그는 [네이선]지에서 길게 미술비평을 담당하여, 현장에서 직접 본 보롴를 위시한 동시대의 작가들의 작품의 질을 진지하게 묻고, 그기에, 프랑스의 근대회화와의 형식적공통성을 착정함으로써 그런 이론에 상도했었다. 그러나 회화라고 하는 매체의 환원불능한 본질을 평면성에서 보는 그의 모더니즘회화이론은 일종의 결정론적인 성격도 품고 있었다. 화가들의 스타지오 방문이나 1964년에 로스앤젤르스.카운티미술관에서 스스로 기획한 [포스트.페인터리.아브스트럭선]전을 통해 그린버-그는 이 이론에 현실의 모양을 부여한다. 루이스나 노-란드가 그린버-그를 통해 핼렌.프랑켄사라-의 스테이닝기법을 알았다는 에비소드가 암시하고 있는바 와 같이, 그린버-그는 색면추상회화가 등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다했다. 비평이 작품을 선도한다는 희유한 사태가 일어 났었다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보롴등에 대해서는 거이 동등한 입장에서 비평을 가하고, 작품과의 대화를 통해 스스로 비평을 도야한 그린버-그는, 젊은 세대의 작가들에게는 강력한 아드바이저이며, 60년대중반에서는 작가뿐만 아니라, 비평가나 미술관, 겔러리에 대해서도 압도적인 형향력을 행사하여 미국의 미술계에 군립한다. 신문이나 잡지를 통한 비평, 전시회의 출품, 미술관에의 수장이라고 하는 가지 각색의 수준에서 행사한 그린버-그의 은연한 권력에 대해서는 당연히도 격한 반발도 일어 났었다. 모더니즘의 계부에 들어 가는 작품과 밥.아트나 미니멀.아트 이후의 반포-말리즘의 동향이 격정을 벌렸던 60년대 후반의 미국의 활발한 미술상황을, 그린버-그라고 하는 거대한 존재를 둘려싼 투쟁이였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비평의 영역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둘려싼 마이켈.프리-드의 [예술과 객체성]이나 레오.스타인버-그의 [타의 비평기준]이라고 하는 훌륭한 논문이 차례 차례로 발표되어, 80년대에도 그린버-그의 비평이론 자체를 둘려 싼 프리-드와 크라-크사이의 격한 의론의 응 수가 있었다는 점이 기억에 새롭다. 70년대 이후, 포-마리즘비평의 정치성을 논한 셀쥬.길보-등의 일련의 사회적비평, 잡지 [옥토-버]를 통한 로쟌린드.그라우스등의 탈구축파의 작업들, 모더니즘미술의 부권주의를 규탄하는 훼미니즘비평, 노-먼.브라이선의 회화기호론등, 다양한 입장에서 포-마리즘에의 근저적인 비판이 제기 되고, 형식이나, 취미, 평면성이나 시각성등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젔었다. 이러한 의론을 통해 우리들은 비평이론을 둘려 싼 근년의 知的發展의 여러가지 양상을 일람할 수 있다. 그렇게 많은 비판을 받으면서도 오늘날에 이르기 까지도 포-말리즘비평의 비상한 영향력과 가능성을 품고 있는 비평이론이 미술비평사상으로써 군림하고 있으며, 그 평가는 20세기를 관통하고 있는 모더니즘이라고 하는 프로젝트의 귀환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1994년, 그린버-그는 시카고대학출판국을 통해 간행된 全4권의 저작집의 완결을 보면서 몰했다. 몰후에도 평전이나 연구서가 차례 차례 간행되었고, 그린버-그 재평가의 기운은 높아 갔다. 略歷: 1909년 뉴-욕 브롱크스 생. 아-트 스튜던트 리-그와 시라큐어즈 대학에서 수학. 세관에 근무하는 한편, [파-티전.레뷰]지등에 기고하며, 40녕에서 42년에 걸처 동지의 편집장을 맡다. 42년부터 49년까지 [네이선]지에 비술비평을 기고한다. 추상표련주의의 화가들과 교류하면서 독특한 모더니즘회화이론을 구축, 미국의 미술게에 크-다란 영향을 입히다. 미국내외의 많은 대학에서 교편을 잡다. 죤 오브라이언의 편집에 의한 86년부터 간행되기 시작한 전4권의 저작집은 93년에 완결되었다. 92년에는 두번쩨 도일을 하였고 동경도 미술관에서 강연을 했다. 94년 몰. 主著: [예술과 문화] [모더니즘의 회화] [추상표현주의 이후] [포스트 페인터리 아브스터럭선] 이상 일본번역판 Art and Culture Beacon Press, Boston,1965 Perception and Judgements; Collected Essays and Criticism 1939-1944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6 Arogant Purpose: Collected Essays and Criticism 1945-1949 University of Chicago Press,1988 Affirmation and Refusals: Collected Essays and Criticism 1950-1956,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3 Modernism with a Vengeance: Collected Essays and Criticism 1957-1969 Homemade Esthetics: Observation on Art and Taste Oxford University Press, 1999
1402 no image [이건용 오프닝 퍼포먼스]
1814 2017-05-16
예술정치 – 무경계 프로제트 씨리즈 2017 . 2차展 experimental 실험공간 S P A C E UZ 이건용 오프닝 퍼포먼스 2017. 5.6 – 5.21 UZ에서 實演한 이건용의 [달팽이]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세계적 행위예술의 달인 이건용이 ‘예술정치 – 무경계 프로젝트 씨리즈 2017 . 2차전에 초빙되어 실험공간 UZ에서 일련의 레파토리를 실연해 보여주었다. 붉게 칠해진 폭이 1미터 남짓 되는 매트(mat)가 전시공간의 대각선을 가로 지르면서 길게 깔려 있다. 발에 푸른 색칠을 담북 무친 작가가 한쪽 끝에서 이 길게 뻗은 ‘대지’를 바라 본다. 매트의 붉은 색과 발에 무친 푸른 색은 [태극]을 암유한다. 마치 휴전선을 바라 보는 우리들의 불편한 마음을 읽고 있듯이. 실연에 들어 가기 직전의 잠간동안의 시간의 틈 사이에서, 작가는, 박수 무당(An Exorcist)이 눈에 보이지 않는 허공을 향해 어굴하게 죽은자의 혼을 불려 내는 주문을 외운다. 보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전행위는 엄숙한 未知的 儀式의 전주곡으로 다가 온다. 그리고 멧트위로 첫발을 내 딛고 아주 천천히 앉은뱅이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면서 손으로 푸른 색칠을 한 위로 발바닥으로 그려지는 길고 거친 線彫를 탄생시키면서, 소리를 지른다. 이건용의 전매특허 작품, [달팽이]이다. 작가는 이 실연에서 [장소의 논리]와 [신체 드로일]등 다양한 페퍼토리의 마임극들을 혼합하여 연출해 보여 주었다. [律呂]의 굿판에서 [頓]을 가지고 노는 이건용의 퍼포밍철학 이건용의 퍼포먼스 예술의 原風景이 그렇다. 그의 몸짓예술의 安胎 고향은, [律呂]와 [頓]의 세계다. 율려는 음양오행의 주역 철학에 기초를 두고, 相生과 相剋의 상관관계에 대한 통합적 이해를 바탕으로 조화점을 얻어 내는 우주 칭조신화이며, 현대의 기철학의 뿌리에 헤당 한다. [頓]은, 자신을 비우는 오랜 수행을 통해 순간적으로 참을 깨치게 하는 우주적 각성을 가르키고 있다. 이들 野生과 古代 精神의 파편들이 모여, 현대를 살아 가는 우리들 바로 앞의 “여기”서, 나아가는 길목의 “저기”서, 삶의 의미를 탐색하는 “어디 어디” 란 화두로, 예술적 키-워드가 되어 되살아 나왔다고 본다. 그 소리는 전적으로 언어이면서 前言語的, 우주적 카오스의 세계와 닿아 있는 존재자의 근원적인 물음이며, 聖域의 呪文으로 울려 퍼진다. 퍼포밍 아-트는, 서구에서 발흥한 예술양식으로, “[思考의 진정한 기능을……..표현하기 위한 ……. 순수한 정신의 오-토마티즘]으로, 理性에 의한 지배를 마다 하고, 미학적, 도덕적 선입견 밖에서, 기술되는 사고에서 탄생해 나온 예술 행위이다.” 라고 선언한 슈-리얼리즘의 선언문을 통해 처음으로 이 세상에 태어 나왔다. 1924년의 일이다. 이건용의 보디 페인팅은 이러한 서구의 아방가르드 예술에서 착목한 것으로, 점차 동양의 사상적 문맥을 접하면서 ‘이건용의 마임 예술’로 진화해 온 것으로 본다. 현대 서구 퍼포밍 아-트의 내재적 논리를 철학적으로 해석 한, 질 듸로즈는 그의 주저 [차이와 반복]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差異 자체를, 即自的 차이를 사유하고자 하며 차이素들의 상호 관계를 사유하고자 한다. 이는 차이 나는 것을 같음으로 환원하고 부정적인 것들로 만들어 버리는 재현의 형식들에서 벗어나야 가능한 일이다.” “차이 자체를, 즉자적 차이로 사유한다” 라는 말은, 차이 나는 것을 개별적으로 한정시키면서 실존적으로 個化함으로써 재현의 소재로 삼는 것이 아니라, 차이소들을 種이나 類의 개념으로 파악하며 비동일성을 강조한다. 비동일적인 차이소들은 ‘관계’를 통해서만 범주속으로 편입될 수 있고. 차이에서 관계로 변화하는 것은 진화해 온 것이며, 그 과정에서는, 物이나 實體들은, 토포로지컬(생태학적 구조)한 생명력을 견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고체계가 즉자적이란 존재태로 하강해 온 것을 말하는 것으로, 차이 난 것들이 ‘개념의 차원에서 물질적 차원으로 변화’ 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행위를 통해 차이를 만들어 가야 하는 퍼포밍 아트 역시 차이를 만든다. 행위의 차이가 만들어 내는 다름을 기호화하여 이를 시니휘안(의미소)으로 잡아 내기 보담, 차이 나는 것들의 각기 다른 됨됨을 사유하면서 그기서 자연스렵게 울어 나오는 상호 관계항을 밝혀 낸다는 것이다. 이것을 즉자적 사유라 부르고 있으며, 예술의 진정한 창조성이 촉발되 나오는 토포로지-컬 넷워킹이(Topological Net-working)라 부를 수 있다. 이건용의 [달팽이]을 포함한 대표작 [장소의 논리]와 [신체 드로잉] 등의 소리나 행위의 마디들이 소리의 기호성을 무시하거나 행위의 목적성을 상실한듯 한 인상을 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관람객들은 그의 마임극에서 어떤 당혹감 같은 것을 느끼지만, 무언가 전혀 새로운 세계를 예감케 되는, 불안과 즐거움을 동시에 맛보게 된다. 어떤 구체적인 것으로 한정되지 않고 포괄적으로 다가 오는 존재는 우리들 현대인들의 사고문법으로는 익숙하지 않다. 관념적인 사고체계는 ‘환원’ 논리가 가능하지만, ‘물질적인 차이’에서 파생되 나오는 차이소들은 요지부동 비 동일적이기 때문에 환원이나 재현이 불능하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서 사물에 대한 상호관계항을 살펴 보는 즉자적 사고 자체를 사고하는 사고훈련을 해 봄직하다. 아래, 사고 훈련 개념 비교 도표. 서구식 사고경향 동양적 사고경향 對極的(대상들이 확정되 있다) 對座的(대상들이 놓여 있는 자리가 비확정적이다) 對稱的 변증법적 Matrix적(網狀) 死=消滅 死=更生 現代的 古代的 無化 空化 反倫理的 非倫理的 知的 理性的 非知的 神話的 科學的 思考 生態學的 思考 실존주의 氣철학 風土的 救援 正覺 怨 恨 무의식 아뢰야식 交換 贈與 知. 그리고 旣知 非知 사랑 慈悲 현대건축양식 가우디의 ‘사구라다 훼멜리아 교회’ 일신교 신화적 사고. 샤-먼이즘 절대성 대칭성. 이원성 발전 변화 진화 생성 이러한 대비는 특징적이고, 공간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時間상에서는 서로 같은 계렬에 속한다. 그 효과는 문명의 全領域에 이르며 시작도 끝도 부재하다. 同 대비개념들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임으로, 오늘날에 와서, 서구는 동양적 우주관을 수용하고 있으며, 동양은 서양의 합리적 사고를 받아 들이고 동서문명이 하나로 통합(systhesizing)되 가려는 움직임을 보여 주고 있음을 참고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이러한 대비는, 이번 전시 작가 이건용의 퍼포밍 아-트의 철학적 배경을 살펴 보는데 일조가 되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비교 개념과 함께, 인건용의 퍼포먼스 예술의 핵심적인 개념들을 대입시켜 풀이해 본다면, 바로, 그것이 이건용의 예술언어의 문법이 될 것이고, 예술적 精神素가 될 터이다. 진정한 사고의 훈련이란 이러한 순도 높은 예술작품의 개념 대비를 통해 신세사이징(synthesizing)해 가는 훈련을 통해 이루지는 것이다.
1401 no image [20세기 사상과 미술] 씨리즈
1683 2017-05-02
27번쩨 하롤드. 로-젠버그(Harold Rosenberg) “액선 페인팅의 命名親” 전후의 뉴-욕에서 발흥한 추상표현주의는 미국에게는 최초의 세계적인 영향력을 지닌 미술운동이었다. 이 운동이 보롴, 디쿠-닝, 뉴-먼등의 뛰어난 화가들뿐만 아니고 재능이 있는 비평가들에 의해 지탕되고 있었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하롤드. 로-젠버그는 추상표현주의를 응호하며 그 비평에 의해 이후의 미술의 전개에 커-다란 영향을 입힌 점에서 크레민트.그린버그와 어께를 나란히 한 결출한 비평가였었다. 두 사람은 세대적으로도 가깝고 최초의 [파-티전.리뷰-]紙를 근거하여 좌익적인 입장에서 상황에의 발언을 행하고 있었다는 점에서도 서로 공통 되 있다. 兩者는 모더니즘미술의 首都로써의 파-리의 몰락과 이를 대신한 뉴-욕의 발흥이란 도식이나 추상미술의 우월이란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던 바, 구체적으로 비평의 방법에서는 서로 대극하고 있었다. 그린-버그는 작품의 비평의 대상으로, 형식적 관점에서 미술사의 메커니즘을 탐색하였다. 그 비평언어는 기본적으로는 큐-비즘 미학에 근거하였다. 여기에 대해서 시인으로 출발하여 실존주의의 강한 영향을 받은 로-젠버그가 쓰는 비평언어는 문학이나 다다이즘에 입각하여 창조의 주체로써의 작가가 前景化된다. 로-젠버그는 1952년, [아-트 뉴-스]지에 [미국의 액선페인팅]이라 제한 엣세이를 발표하여, 전후의 뉴-욕에서 일어 나고 있었던 새로운 세대의 화가들의 등장을 독특한 각도에서 기술하였다. [어느 때, 일군의 미국 화가들에게는 켄버스가 실제의 혹은 상상상의 대상을 재생하며 재현되고 분석되는, 혹은 [표현하는] 공간이라기 보담, 오히려 鬪技場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켄버스위에 일어나야 할 것들이 그림이 아니라 사건이었다] 라고 한 언급은 수없이 반복 인용되면서, 액선페인팅이란 호칭은 인구에 膾炙化되어 갔다. 이 스테이트멘트는 한스.네이므스에 의해 촬영된 描畵되는 보롴의 사진을 염두에 둔 말이었었나, 로-젠버그가 제기한 [액선]이란 개념은 단순히 묘화의 행위라고 하는 차원에 수렴된 것이 아니다. 그는 희랍비극에서부터 사르트르에 이르는 넓은 대상을 다루면서 행위의 현대적 의미를 탐색한다. 그의 탁월한 버넷.뉴-먼論에서, 로-젠버그는 현대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허무감과 대치되는 화가의 행위 자체를 [액선]이라 규정하고, 뉴-먼이 그린 거대한 색면에 [생성의 순간]이라고 하는 독자의 의미를 부여한다. 회화를 하나의 사건으로 잡는 것으로 하여 그는 컬러휠드.페인팅도 포함한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의 창조에 현대적인 의미를 보는 것이었다. 로-젠버그는 회화에 있어, [물질]에서 [행위]에로 시점을 옮김으로써 여태 신봉하던 마르크스주의적 미학을 상대화했다고 볼 수 있다. 로-젠버그는 [액선]이라 하는 개념을 착상함에 다다이즘, 특히 휘율젠버그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있었고, 보레밐한 자세도 다다이스트들과 공통되고 있었다. 양자를 嫫介하는 계기로서는 알프렡.바.주니어가 1936년에 뉴-욕근대미술관에서 기획한 [환상미술. 다다, 슈-리얼리즘]전이나, 로버트.마쟈웰등에 의한 자료집의 간행등을 들 수 있다. 유-럽의 모더니즘미술의 特異点이라 불릴 다다이즘이, 로젠버그라는 비평가를 얻어 좌익사상이나 실존주의와 교배되어, 전후의 뉴-욕에서 액선이라는 개념을 탄생시킨 것은 흥미롭다. 그린버그가 큐비즘나 몬드리언과 추상표현주의회화의 연속성을 강조한 것에 대해, 로젠버그는 유럽의 근대회화와의 단절을 강조한다. 보기에 추상표현주의의 회화는 종래의 회화와 비교하여 너무 독특함으로 전통과의 연속을 주장하기에는 곤란해 보인다. 로젠버그의 비평에서는 회화로서의 가치는 불문에 부치고, 대신, 작가, 그리고 그 생의 발로써의 [액선]에 의미가 요구되고 있다. 예술과 생의 경계를 해소한다는 발상은 드.쿠닝을 거처, 라우젠버그등 네오 다다의 작가들의 작품에 반영되어, 행위에의 관심은 신체나 시간, 환경이라고 하는 문제에로 접속되었다. 그의 비평은 아랑.카프로의 해프닝이론을 위시하여 60년대 이후, 미니멀.아-트나 밥.아트로 이어지는 작가들이 빈번하게 시도한바 있는 일련의 행위예술에도 큰 시사를 안겨 주었다. 바바라.로-즈가 지적한데로, 액선페인팅은 회화가 아니고 사진에 의거하는 개념인바 사진을 비평의 대상으로 삼는 가능성은 일례로 쟝.크레이나 로자린트.크라우스의 비평으로 계승되어 도큐멘테이선에 작품의 가능성을 찾아 내려는 발상은 어-스.워크나 컨셉추얼.아-트에서 더욱 활말히 전개되어 갔다. 그린버그의 포말리즘비평이 60년대에 많은 뛰어난 후계자를 얻고 풍요로운 성과를 얻은 반면, 로-젠버그의 비평은 사용된 개념의 독자성으로 하여 비평의 레벨에서는 큰 전개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모더니즘미술이 색면추상회화에 의해 하나의 圓環을 닫고, 일종의 패쇠상태를 야기한 70년대 이후, 로-젠버그의 비평이 잠재적으로 품고 있던 가능성이 많은 작가들의 실천을 통해 착실하게 구체화되었다. 구조주의나 후-코를 경유한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작가=실존적영웅]이란 발상은 너무나 낙관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모더니즘/포말리즘미술이 상대화되어 가는 현재, 로-젠버그의 비평이 품고 있는 가능성은 아직도 재평가될 여지를 갖고 있다. 약력: 1906년 뉴-욕 태생. 뉴-욕 시티 컬레지, 브르크린. 로. 스쿨에서 배우다. 1938년에서 1942까지 WPA(공공사업촉진국) 에서 아-트. 에디트를 맡다. 40년대 후반부터 [파-티젼.레뷰]나 [아-트 뉴-스]에 기고, 52년에 [미국의 액선 페인팅]라 제한 유명한 엣세를 발표한다. 추상표현주의의 화가들에 관한 모노그라프 다수. 60년대 후반부터 주로 [뉴-욕카-]지상에서 많은 비평을 발표하다. 1966년 시카고대학교수로 미술과 사회사상을 講한다. 1978년 몰. 저술: [새로운것의 전통] 1965. [황야는 병에 삼켜젔다] 1972. [행위와 행위자] 1973. Anxious Object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6. De-finition of Art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2. Discovering the Present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3. Art on the Edge University o Chicago Press,1975. Barnet Newman Harry N. Abrams 1978.
1400 no image [20세기 사상과 미술] 씨리즈
1779 2017-04-28
26번쩨 윌리엄. 루빈(William Rubin) “아메리카 現代美術의 隆盛에 寄與” 미술에 관한 비평적인 입장을 다하는 사람으로 비평가나 연구자만이 아니다. 20세기에서 중요한 미술의 동향은 때때로 전람회라는 모양으로 집약되면서 전람회를 조직하는 큐-레이트가 중요한 역할을 맡는 경우가 있다. 뉴-욕근대미술관(MOMA)의 회화. 조각부문의 수석 큐-레이트라는 요직에서 모더니즘미술을 검증하는 많은 전람회를 조직하고, 커렉선의 충실을 다했던 윌리엄.루빈을 뻬고 미국에서 모더니즘미술의 흥성, 그리고 오늘날의 미술계에서 모마이즘라고도 불리는 압도적인 이니시어티브를 확립한 뉴-욕근대미술관의 발전을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루빈은 유복한 纖維商의 가정에서 태어나서, 컬럼비아대학에서 메이야.샤피로 밑에서 배웠다. 졸업후에는 몇군데 대학에서 교편을 잡는 한편 스스로 현대미술의 수집에 열을 올린다. 레오. 캬스테리.화랑에서의 제스파.죤즈의 초기전의 직후에 그의 작품을 구입했다는 에피소드는 벌써부터 俊敏한 큐-레이트로써의 편린을 보여 주었다. 1967년 루빈은 뉴-욕근대미술관의 초대관장이며 오늘에 이르는 발전의 기초를 구축한 알프레드.바-.주니어의 초청을 받고 회화.조각부문의 큐-레이트에 착임한다. 같은 해, 바-는 제1선을 물려서고 또한 윌리엄.사이쯔, 비-타-.셀프, 도로시.미라-라고 하는 유력한 큐-레이트들도 대학등으로 전신하고 있었다. 루-빈은 과도기에 놓여 있었던 근대미술관에 차세대의 호-프로 영입되었던 것이다. 당시 약관 40세의 루-빈은 이후, 구라파의 모더니즘미술을 적극적으로 소개함과 동시 뉴-욕의 땅에서 그 계승을 노렸던 바-의 기본노선을 탑습하고, 구미의 모더니즘미술의 거점으로써의 근대미술관의 위치를 확립하려는 활동을 개시하였다. 다음해는 동부문의 수석 큐-레이트에 발탁되어, 68년의 [다다.슈리얼리즘와 그 유산], 77년의 [세잔, 후기의 작품], 80년의 피카소의 대회고전, 82년의 [드.키로코]전, 그리고 백조의 노래라 불렸던 89년의 [피카소와 브라크]등 많은 중요한 전람회를 조직하였다. 한편 커랙선에 관해서도 피카소나 시드니.쟈니스란 작가나 갤러리스트와의 친교를 통해 중요한 작품을 연이어 수집하고, 작가에 따라서는 약간의 濃淡이 있었던 바-의 시대와 비해서도 한층 더 충실한 미술관의 커렉선을 형성해 갔었다. 근년에 밝혀진데로, 전시나 수집이란 그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인 제도이며, [모더니즘미술]역시 언설에 의해 假構된 시스템일것이다. 오늘날 유포하는 [모더니즘미술]이란 개념 역시 말하자면 그 일단을 뉴-욕근대미술을 소개하고 개몽에 치중하는 한편, 그 正嫡의 위치에 전후의 아메리카미술을 배치하기 위해 매우 강인한 조작을 보여주고 있다. 모든 것에 루-빈이 관련을 갖고 있었다고는 할 수 없드래도, 피카소나 세잔 이라고 하는 거장과 잭선.포록나 프랑크.스테라, 모-리스.루이스와 같은 동시대의 작가들의 전람회와 평행하여 개최함으로써 유-럽의 모더니즘미술의 전통이 전후의 아메리카에서 최종적인 실현을 보인다는 스토-리가 암암리에 제시되었다. 여기서 부터는 바-가 [큐-비즘와 추상미술]전에 부친 유명한 미술의 系統樹를 연상할 수도 있을 것이며, 루-빈 자신이 영향을 받았다고 술회한 크레민트.그린버거의 모더니즘회화이론과의 관계를 지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뉴-욕근대미술관은 미국의 젊은 작가의 집단전을 몇번이나 유-럽에 순회시켜, 이와 같은 이야기의 周知와 徹底함을 노렸다. 추상표현주의의 화가들의 작품은 이와 같은 문맥에서 널리 수용되었고, 역으로 이 시나리오에서 일탈하는 작품은 억압되었다. 봅.아트나 미니멀.아트가 오히려 유-럽의 미술관에 의해 적극적으로 소개되었다는 사실은 시사적이다. 루-빈에 의해 顯揚되어야 할 작가로는, 피카소이며, 보롴이었다. 루-비은 67년에 보롴의 드립핑회화의 의의를 근대회화와의 관계에서 검증하는 획기적인 논문 [쟠슨.보롴와 근대주의적전통]을 [아-트포럼]지에 연재했었다. 보롴의 평가를 결정지언 이 논문에서는 타이틀이 나타내고 있는 바와 같이, 인상파나 큐-비즘, 슈-리얼이즘 그리고 몬도리언등의 추상회화등을 동원하여 유-럽의 근대회화의 전통이 보롴의 드립핑회화속에서 재통합되고 있는 점이 형식적으로 검증되고 있다. 그리고 루-빈이 [근대주의적전통]이라고 논문속에 예시하는 작품은 그 대부분이 뉴-욕근대미술관의 커랙선에서 나왔었다. 이 논문은 포말리즘비평의 뛰어난 성과인 동시 근대美術史전체를 하나의 미술관의 커렠선으로 수렴시키려는 무서운 교조주의를 내포하고 있음을 우리들은 유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84년에 루-빈과 현재의 회화.조각부문의 칩 큐-레이트인 카-타.뷔아넷도우가 기획한 대전람회 [20세기미술에 있어 프리미티브즘]은 전람회와 카다로그의 충실함에도 불구하고 극열한 비판에 노출되었다. 주로 형식적인 親緣性을 근거로 모더니즘미술과 [프리미티브즘]와의 관계를 탐구하고 있는 수법에 대해 인류학자등에서부터 제기된 그러한 비판의 당부에 관해 여기서 논할 여지는 없지만, 이와 같은 반응이 수상스렵게도 루-빈이 퇴임한 해 본피우-트센터에서 개최된 [대지의 마술사들]전과 같은 전람회를 고려에 넣는 다면, 지금까지 자명한 것으로 보였던 서구, 근대, 발전이라고 하는 개념과 도식에 지금이야 말로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점은 분명하다. 전람회의 조직이나 작품의 수집, 논문이라고 하는 여러가지 수법을 구사하여 [모더니즘미술]의 현양을 기한 큐-레이트, 루-빈의 퇴임은 모더니즘을 지탱한 제도로 기능해 온 문자 그대로 [근대]미술관의 종국과 같은 시기의 것으로 맛 닿아 있어 보이는 것이다. 약력: 1927년 뉴-욕 생. 1949년 컬럼비아대학 졸업. 59년 동대학에서 박사 학위 취득. 58년부터 64년까지 [아-트.인터내셔널]지의 미국에서의 편집자 역할을 맡음. 1967년부터 뉴-욕근대미술관에 근무하여, 크고 중요한 전람회를 조지하였다. 1988년에는 회화조각부문의 명예부장이 되어 89년의 [피카소와 브랔]를 마지막으로 제1선에서 물려섬. 피카소. 보롴. 스테라등에 관한 논문 다수. 뉴-욕시립대학에서도 교편을 잡음. 주저: [20세기미술에 있어서의 프리미티즘] 1995. Frank Stella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1970. Pablo Picasso; Retrospective Little Brown&Company,1981. Picasso and Blaque : Pionerring Cubism Harry N Abrams, 1983. Frank Stella 1870-1987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1992. Picasso and Portraiture : Representation and Transformation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1996.
1399 no image [20세기 사상과 미술] 씨리즈
1597 2017-04-23
25번쩨 쟝=프라소와.리오탈(Jean-Francois Lyotard) “포스트構造主義에서 포스트모던에로..시대를 漂流” 리오탈의 사고의 스타일, 그건 표류라고 하는 말로 대변할 수 있으리라. 그 자신, [프로이드와 마르크스로 표류]란 책을 내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표류란, 岸邊의 모습조차 변형시킬 정도의 센 강물의 흐름을 의미한다. 이 철학자는, 그런 흐름들을 여러가지로 그려 보인바 있었어나, 70년대 중경까지 리오탈에게 그를 위해 안변을 제공해 준 이들이 바로 프로이드고 마르크스였다면, 70년대 말에서 80년대에 걸쳐서는, 칸트와 뷔트겐슈타인이 였다. 그에 따라서 이 철학자를 형용하는 말도 바뀌어 간다. 전자의 시기의 리오탈을 포스트구조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다면, 후자의 시기의 리오탈은 포스트모던의 사상가라고 부르게 되는 것이, 그것이다. 포스트구조주의자 리오탈에게 매우 큰 단초를 제공해 준 것이 프로이드의 리비드槪念이 었다. 리비도-, 말하자면 무의식의 욕망에 관해서, 프로이드는 획기적인 사상을 제시하면서도, 중요한 점에서는 구래의 연극장치에 말려 들어 가버린 것이 아닌가. 연극장치란 부재한 것을 재현=표상하는 장치를 가르키는 것으로, 이 세상을 그리스토교적 연극장치로 내세운다면, 니힐리즘의 바탕이 되는 아주 강한 장치를 가르킨다. 프로이드는 예술작품을, 꿈과 같은 것으로, 무의식걱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장치로 봄으로써 예술을 연극장치로 보려고 했었다. 리오탈이 프로이드에서 많은 것을 얻었으면서도, 그기서 표류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이점에 있었다. 이 표류를, 리오탈은 프로이드와 동시대의 세쟌이나 슌베르그등을 위시한 현대예술의 탈연극장치적 실천과 접속시켜면서 시행하였던 것이다. 포스트구조주의는, 구조주의에 대한 무엇인가 비판을 전제하지 않고는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리오탈의 경우 이 비판은 주로 무의식을 언어구조화하려 했던 라칸적인 입장에로 향하게 한다. 무의식의 탈언어적 모습을 가르키기 위해, 리오탈은 ‘휴기유-‘ 란 말을 사용한다. 언어학의 모델을 무의식과 예술에 적용시키는 구조주의적인 방식에 대해, 이 독자적인 휴기유-개념으로 저항을 나타내는 [디스쿨,휴기율]은 이 철학자의 최초의 주저가 될 것이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프로이드부터의 표류라고 하는 스타일을, 리오탈은 70년대 말경에, 일견하건데 주저 없이 放棄해 버린 것 같다. 그와 함께, 언어관도 구조주의적인 관점에서 뷔트겐슈타인에 의한 언어게임론적인 견해로 전환해 갔다. 포스트모던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이루어진 것은 그러한 입장에서부터 였다, 고 본다. 문학과 역사서술의 영역에서 제각기 단발적으로 쓰여 왔던 포스트모던이라고 하는 말을 철학적인 수준까지 끌어 올린 것, 이것 역시 리오탈의 특필해야 할 공적의 하나일 것이다. 리오탈은 70년대 말에 모던을 아주 ‘크다란 이야기’에의 신뢰에 의해 정의한 위에 포스트모던을 크다란 이야기에의 불신에 의해 정의하였던 것이다. 커다란 이야기란, 역사가 인류전체의 행복을 향해 나아간다고 하는 이야기를 일컫는다. 실천적인 프로그램로써는, 공산주의적인 역사철학과 자본주의적인 역사철학의 두가지가 저상에 올려진다. 리오탈의 불신의 염이란, 현실적.이론적 양면에서 커다란 이야기를 향한 것이었다. 따라서 뒤에 일어났던 베를린의 벽의 붕괴, 쏘연방의 붕괴에 의한 공산주의적 커다란 이야기의 실추와 단락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동시에, 자본주의적인 커다란 이야기를 재확인하려고 하는 움직임에 의해 부정해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리오탈의 문제 제기는 오히려 모던을 철저하게 再思考하려는 시도로 계승해 가야 할 것이다. 이는, 바-크나 칸트의 숭고개념에 의한 아방가르드 평가에서 분명하게 들어 난다. 포스트모던이라고 하는 말은 철학에서부터의 문제 제기와 相前後하여 건축, 디자인, 예술, 문학이라고 하는 분야에서 모더니즘에의 불신을 나타내는 말로서도 빈번히 쓰였던 바, 이 종류의 포스트모던적인 예술에 대해서 리오탈은 비판의 자세를 멈추려고 하지 안했다. 그에게 포스트모던에 어울리는 예술이란 모던의 전제를 철저히 되물어려고 하는 아방가르드예술에 다름 아니였기 때문이다. 제시해 낼 수 없는 제시로 해석된 숭고야 말로 그런 의미에서의 아방가르드의 이념이라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리오탈에게 숭고개념을 칸트적인 초월론적 입장에서 어떻게 해독해 냈는가가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칸트부터의 표류가 야기된 소위다. 허면, 이와 같은 몇 단계의 안변을 변형해 갔던 표류의 철학이란 어떤 것이 었을까. 구지 한마디로 요약해 말해 본다면, 그것은 差異의 哲學이 었다. 그리고 이 차이의 철학은 빈번히 그때 마다 매우 긴장된 관계를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포스트구조주의 시기에는 무의식의 욕망에 따라, 포스트모던론의 시기에는 언어게임에 따라, 차이의 철학이 그리고 언어와의 긴장된 관계가, 논해저 왔다. 그러면서 함께 차이의 철학자로 특징지워진다고 하드래도 이 언어와의 관계에 의해 리오탈은 드뢰즈와 명확하게 구별될것이었다. 차이의 철학은 차이에 민감하도록 요구 받는 철학이다. 언어학에 모델을 구하는 구조주의가, 대충 이항대립에 모든 것을 해소하고, 무의식의 욕망도, 언어와 같이 구조화된 것으로 세운다면, 그것은, 차이에 대한 민감함과 무연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근대(모던)가 전인류가 공통의 행복으로 향한다는 크다란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면, 그것은, 언어게임의 차이에 대한 둔감함과 無緣하지 않타. 그럼으로 차이의 철학자, 리오탈은, 그때 마다 격렬하게 반발하고 저와 같은 매력적인 사고의 궤적을 그려 보였던 것이다. 略歷: 1924년 프랑스 베르사이유 태생. 사회주의 잡지 [사회주의인가 야만인가] 신문 [노동자정권]의 편집위원이 되어, 68년의 5월혁명에 적극적으로 참가. 포스트구조주의 사상가로써 [리비도경제학]이란 책을 저술함. 후에 포스트모던사상을 제창하고 큰 반향을 불려 일르켰다. 50-60년대에는 마르크스주의그릅의 정치활동가였어나, 80년대에 와서는 비마르크스주의철학가가 되었다. 파리 제8대학의 철학과 교수로 89년까지 근무했다. 98년 몰. 主著: [현상학] 1965. [표류의 사상] 1987. [리비도- 경제] 1997. [포스트보던 통신] [포스트 모던 총서 16] 1986. [포스트.모던의 조건] 1986. [文의 抗爭] 1989. [경제의 殺戮] [포스트 모던 총서 17]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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