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글 수 1,482
조회 수 : 3053
2017.04.28 (10:54:01)
26번쩨 윌리엄. 루빈(William Rubin)
“아메리카 現代美術의 隆盛에 寄與”
미술에 관한 비평적인 입장을 다하는 사람으로 비평가나 연구자만이 아니다. 20세기에서 중요한 미술의 동향은 때때로 전람회라는 모양으로 집약되면서 전람회를 조직하는 큐-레이트가 중요한 역할을 맡는 경우가 있다. 뉴-욕근대미술관(MOMA)의 회화. 조각부문의 수석 큐-레이트라는 요직에서 모더니즘미술을 검증하는 많은 전람회를 조직하고, 커렉선의 충실을 다했던 윌리엄.루빈을 뻬고 미국에서 모더니즘미술의 흥성, 그리고 오늘날의 미술계에서 모마이즘라고도 불리는 압도적인 이니시어티브를 확립한 뉴-욕근대미술관의 발전을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루빈은 유복한 纖維商의 가정에서 태어나서, 컬럼비아대학에서 메이야.샤피로 밑에서 배웠다. 졸업후에는 몇군데 대학에서 교편을 잡는 한편 스스로 현대미술의 수집에 열을 올린다. 레오. 캬스테리.화랑에서의 제스파.죤즈의 초기전의 직후에 그의 작품을 구입했다는 에피소드는 벌써부터 俊敏한 큐-레이트로써의 편린을 보여 주었다. 1967년 루빈은 뉴-욕근대미술관의 초대관장이며 오늘에 이르는 발전의 기초를 구축한 알프레드.바-.주니어의 초청을 받고 회화.조각부문의 큐-레이트에 착임한다. 같은 해, 바-는 제1선을 물려서고 또한 윌리엄.사이쯔, 비-타-.셀프, 도로시.미라-라고 하는 유력한 큐-레이트들도 대학등으로 전신하고 있었다. 루-빈은 과도기에 놓여 있었던 근대미술관에 차세대의 호-프로 영입되었던 것이다. 당시 약관 40세의 루-빈은 이후, 구라파의 모더니즘미술을 적극적으로 소개함과 동시 뉴-욕의 땅에서 그 계승을 노렸던 바-의 기본노선을 탑습하고, 구미의 모더니즘미술의 거점으로써의 근대미술관의 위치를 확립하려는 활동을 개시하였다. 다음해는 동부문의 수석 큐-레이트에 발탁되어, 68년의 [다다.슈리얼리즘와 그 유산], 77년의 [세잔, 후기의 작품], 80년의 피카소의 대회고전, 82년의 [드.키로코]전, 그리고 백조의 노래라 불렸던 89년의 [피카소와 브라크]등 많은 중요한 전람회를 조직하였다. 한편 커랙선에 관해서도 피카소나 시드니.쟈니스란 작가나 갤러리스트와의 친교를 통해 중요한 작품을 연이어 수집하고, 작가에 따라서는 약간의 濃淡이 있었던 바-의 시대와 비해서도 한층 더 충실한 미술관의 커렉선을 형성해 갔었다.
근년에 밝혀진데로, 전시나 수집이란 그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인 제도이며, [모더니즘미술]역시 언설에 의해 假構된 시스템일것이다. 오늘날 유포하는 [모더니즘미술]이란 개념 역시 말하자면 그 일단을 뉴-욕근대미술을 소개하고 개몽에 치중하는 한편, 그 正嫡의 위치에 전후의 아메리카미술을 배치하기 위해 매우 강인한 조작을 보여주고 있다. 모든 것에 루-빈이 관련을 갖고 있었다고는 할 수 없드래도, 피카소나 세잔 이라고 하는 거장과 잭선.포록나 프랑크.스테라, 모-리스.루이스와 같은 동시대의 작가들의 전람회와 평행하여 개최함으로써 유-럽의 모더니즘미술의 전통이 전후의 아메리카에서 최종적인 실현을 보인다는 스토-리가 암암리에 제시되었다. 여기서 부터는 바-가 [큐-비즘와 추상미술]전에 부친 유명한 미술의 系統樹를 연상할 수도 있을 것이며, 루-빈 자신이 영향을 받았다고 술회한 크레민트.그린버거의 모더니즘회화이론과의 관계를 지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뉴-욕근대미술관은 미국의 젊은 작가의 집단전을 몇번이나 유-럽에 순회시켜, 이와 같은 이야기의 周知와 徹底함을 노렸다. 추상표현주의의 화가들의 작품은 이와 같은 문맥에서 널리 수용되었고, 역으로 이 시나리오에서 일탈하는 작품은 억압되었다. 봅.아트나 미니멀.아트가 오히려 유-럽의 미술관에 의해 적극적으로 소개되었다는 사실은 시사적이다. 루-빈에 의해 顯揚되어야 할 작가로는, 피카소이며, 보롴이었다. 루-비은 67년에 보롴의 드립핑회화의 의의를 근대회화와의 관계에서 검증하는 획기적인 논문 [쟠슨.보롴와 근대주의적전통]을 [아-트포럼]지에 연재했었다. 보롴의 평가를 결정지언 이 논문에서는 타이틀이 나타내고 있는 바와 같이, 인상파나 큐-비즘, 슈-리얼이즘 그리고 몬도리언등의 추상회화등을 동원하여 유-럽의 근대회화의 전통이 보롴의 드립핑회화속에서 재통합되고 있는 점이 형식적으로 검증되고 있다. 그리고 루-빈이 [근대주의적전통]이라고 논문속에 예시하는 작품은 그 대부분이 뉴-욕근대미술관의 커랙선에서 나왔었다. 이 논문은 포말리즘비평의 뛰어난 성과인 동시 근대美術史전체를 하나의 미술관의 커렠선으로 수렴시키려는 무서운 교조주의를 내포하고 있음을 우리들은 유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84년에 루-빈과 현재의 회화.조각부문의 칩 큐-레이트인 카-타.뷔아넷도우가 기획한 대전람회 [20세기미술에 있어 프리미티브즘]은 전람회와 카다로그의 충실함에도 불구하고 극열한 비판에 노출되었다. 주로 형식적인 親緣性을 근거로 모더니즘미술과 [프리미티브즘]와의 관계를 탐구하고 있는 수법에 대해 인류학자등에서부터 제기된 그러한 비판의 당부에 관해 여기서 논할 여지는 없지만, 이와 같은 반응이 수상스렵게도 루-빈이 퇴임한 해 본피우-트센터에서 개최된 [대지의 마술사들]전과 같은 전람회를 고려에 넣는 다면, 지금까지 자명한 것으로 보였던 서구, 근대, 발전이라고 하는 개념과 도식에 지금이야 말로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점은 분명하다. 전람회의 조직이나 작품의 수집, 논문이라고 하는 여러가지 수법을 구사하여 [모더니즘미술]의 현양을 기한 큐-레이트, 루-빈의 퇴임은 모더니즘을 지탱한 제도로 기능해 온 문자 그대로 [근대]미술관의 종국과 같은 시기의 것으로 맛 닿아 있어 보이는 것이다.
약력: 1927년 뉴-욕 생. 1949년 컬럼비아대학 졸업. 59년 동대학에서 박사 학위 취득. 58년부터 64년까지 [아-트.인터내셔널]지의 미국에서의 편집자 역할을 맡음. 1967년부터 뉴-욕근대미술관에 근무하여, 크고 중요한 전람회를 조지하였다. 1988년에는 회화조각부문의 명예부장이 되어 89년의 [피카소와 브랔]를 마지막으로 제1선에서 물려섬. 피카소. 보롴. 스테라등에 관한 논문 다수. 뉴-욕시립대학에서도 교편을 잡음.
주저: [20세기미술에 있어서의 프리미티즘] 1995. Frank Stella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1970. Pablo Picasso; Retrospective Little Brown&Company,1981. Picasso and Blaque : Pionerring Cubism Harry N Abrams, 1983. Frank Stella 1870-1987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1992. Picasso and Portraiture : Representation and Transformation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1996.
|
|||||||||||||||||||||||||||||||||||||||||||||||||||||||||
17598 경기도 안성시 미양면 이박골길 75-33 | Tel. 031-673-0904 | Fax. 03030-673-0905 | Email: sonahmoo@hanmail.net Copyright ⓒ 2002- Alternative Art Space Sonahmoo all right reserved.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