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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3 (08:4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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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번쩨     =프라소와.리오탈(Jean-Francois Lyotard)

 

            포스트構造主義에서 포스트모던에로..시대를 漂流

 

  리오탈의 사고의 스타일, 그건 표류라고 하는 말로 대변할 수 있으리라. 그 자신, [프로이드와 마르크스로 표류]란 책을 내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표류란, 岸邊의 모습조차 변형시킬 정도의 센 강물의 흐름을 의미한다. 이 철학자는, 그런 흐름들을 여러가지로 그려 보인바 있었어나, 70년대 중경까지 리오탈에게 그를 위해 안변을 제공해 준 이들이 바로 프로이드고 마르크스였다면, 70년대 말에서 80년대에 걸쳐서는, 칸트와 뷔트겐슈타인이 였다. 그에 따라서 이 철학자를 형용하는 말도 바뀌어 간다. 전자의 시기의 리오탈을 포스트구조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다면, 후자의 시기의 리오탈은 포스트모던의 사상가라고 부르게 되는 것이, 그것이다.

 

        포스트구조주의자 리오탈에게 매우 큰 단초를 제공해 준 것이 프로이드의 리비드槪念이 었다. 리비도-, 말하자면 무의식의 욕망에 관해서, 프로이드는 획기적인 사상을 제시하면서도, 중요한 점에서는 구래의 연극장치에 말려 들어 가버린 것이 아닌가. 연극장치란 부재한 것을 재현=표상하는 장치를 가르키는 것으로, 이 세상을 그리스토교적 연극장치로 내세운다면, 니힐리즘의 바탕이 되는 아주 강한 장치를 가르킨다. 프로이드는 예술작품을, 꿈과 같은 것으로, 무의식걱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장치로 봄으로써 예술을 연극장치로 보려고 했었다. 리오탈이 프로이드에서 많은 것을 얻었으면서도, 그기서 표류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이점에 있었다. 이 표류를, 리오탈은 프로이드와 동시대의 세쟌이나 슌베르그등을 위시한 현대예술의 탈연극장치적 실천과 접속시켜면서 시행하였던 것이다.

 

         포스트구조주의는, 구조주의에 대한 무엇인가 비판을 전제하지 않고는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리오탈의 경우 이 비판은 주로 무의식을 언어구조화하려 했던 라칸적인 입장에로 향하게 한다. 무의식의 탈언어적 모습을 가르키기 위해, 리오탈은 휴기유- 란 말을 사용한다. 언어학의 모델을 무의식과

예술에 적용시키는 구조주의적인 방식에 대해, 이 독자적인 휴기유-개념으로 저항을 나타내는 [디스쿨,휴기율]은 이 철학자의 최초의 주저가 될 것이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프로이드부터의 표류라고 하는 스타일을, 리오탈은 70년대 말경에, 일견하건데 주저 없이 放棄해 버린 것 같다. 그와 함께, 언어관도 구조주의적인 관점에서 뷔트겐슈타인에 의한 언어게임론적인 견해로 전환해 갔다. 포스트모던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이루어진 것은 그러한 입장에서부터 였다, 고 본다.

 

         문학과 역사서술의 영역에서 제각기 단발적으로 쓰여 왔던 포스트모던이라고 하는 말을 철학적인 수준까지 끌어 올린 것, 이것 역시 리오탈의 특필해야 할 공적의 하나일 것이다. 리오탈은 70년대 말에 모던을 아주 크다란 이야기에의 신뢰에 의해 정의한 위에 포스트모던을 크다란 이야기에의 불신에 의해 정의하였던 것이다. 커다란 이야기란, 역사가 인류전체의 행복을 향해 나아간다고 하는 이야기를 일컫는다. 실천적인 프로그램로써는, 공산주의적인 역사철학과 자본주의적인 역사철학의 두가지가 저상에 올려진다. 리오탈의 불신의 염이란, 현실적.이론적 양면에서 커다란 이야기를 향한 것이었다. 따라서 뒤에 일어났던 베를린의 벽의 붕괴, 쏘연방의 붕괴에 의한 공산주의적 커다란 이야기의 실추와 단락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동시에, 자본주의적인 커다란 이야기를 재확인하려고 하는 움직임에 의해 부정해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리오탈의 문제 제기는 오히려 모던을 철저하게 再思考하려는 시도로 계승해 가야 할 것이다.

 

         이는, -크나 칸트의 숭고개념에 의한 아방가르드 평가에서 분명하게 들어 난다. 포스트모던이라고 하는 말은 철학에서부터의 문제 제기와 相前後하여 건축, 디자인, 예술, 문학이라고 하는 분야에서 모더니즘에의 불신을 나타내는 말로서도 빈번히 쓰였던 바, 이 종류의 포스트모던적인 예술에 대해서 리오탈은 비판의 자세를 멈추려고 하지 안했다. 그에게 포스트모던에 어울리는 예술이란 모던의 전제를 철저히 되물어려고 하는 아방가르드예술에 다름 아니였기 때문이다. 제시해 낼 수 없는 제시로 해석된 숭고야 말로 그런 의미에서의 아방가르드의 이념이라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리오탈에게 숭고개념을 칸트적인 초월론적 입장에서 어떻게 해독해 냈는가가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칸트부터의 표류가 야기된 소위다.

 

        허면, 이와 같은 몇 단계의 안변을 변형해 갔던 표류의 철학이란 어떤 것이 었을까. 구지 한마디로 요약해 말해 본다면, 그것은 差異의 哲學이 었다. 그리고 이 차이의 철학은 빈번히 그때 마다 매우 긴장된 관계를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포스트구조주의 시기에는 무의식의 욕망에 따라, 포스트모던론의 시기에는 언어게임에 따라, 차이의 철학이 그리고 언어와의 긴장된 관계가, 논해저 왔다. 그러면서 함께 차이의 철학자로 특징지워진다고 하드래도 이 언어와의 관계에 의해 리오탈은 드뢰즈와 명확하게 구별될것이었다.

 

         차이의 철학은 차이에 민감하도록 요구 받는 철학이다. 언어학에 모델을 구하는 구조주의가, 대충 이항대립에 모든 것을 해소하고, 무의식의 욕망도, 언어와 같이 구조화된 것으로 세운다면, 그것은, 차이에 대한 민감함과 무연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근대(모던)가 전인류가 공통의 행복으로 향한다는 크다란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면, 그것은, 언어게임의 차이에 대한 둔감함과 無緣하지 않타. 그럼으로 차이의 철학자, 리오탈은, 그때 마다 격렬하게 반발하고 저와 같은 매력적인 사고의 궤적을 그려 보였던 것이다.

 

     略歷: 1924년 프랑스 베르사이유 태생. 사회주의 잡지 [사회주의인가 야만인가] 신문 [노동자정권]의 편집위원이 되어, 68년의 5월혁명에 적극적으로 참가. 포스트구조주의 사상가로써 [리비도경제학]이란 책을 저술함. 후에 포스트모던사상을 제창하고 큰 반향을 불려 일르켰다. 50-60년대에는 마르크스주의그릅의 정치활동가였어나, 80년대에 와서는 비마르크스주의철학가가 되었다. 파리 제8대학의 철학과 교수로 89년까지 근무했다. 98년 몰.

 

    主著: [현상학] 1965. [표류의 사상] 1987. [리비도- 경제] 1997. [포스트보던 통신] [포스트 모던 총서 16] 1986. [포스트.모던의 조건] 1986. [文의 抗爭] 1989. [경제의 殺戮] [포스트 모던 총서 17]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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