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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9 (12:3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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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예술정치 무경계 프로젝트

Exhibition, Art Politics Border Crossings

실험공간 EXPERIMENTAL  SPACE  uz



김수철  - [肉化精神 幻想彷徨]

 2017.5.27 6.25

 

頌詩--

      심술궂은 아이들이 파리를 놀리듯

      신은 사람을 놀리며 장난삼아 죽인다..   세익스피어의 패시미즘.

 

-         이것은 결국 인생의 불확실성을 말하는 것이며, 지금 들이킨 숨을 다시 뿜어낼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면서 사람이 어찌 목적이나 신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냐라고, 하는 의문을 던진 것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런 허무주의적인 사유의 끝자락에서부터 이 세상에 대한 눈부시게 새로운 긍정의 비전너리가 탄생해 나온다.

 

작가 김수철의 인생과 예술적 고뇌와 각성의 역설적 비전너리에 주목하는 이유다.

 

 

 열외자의 고뇌와 에레혼(Erewhon=Nowhere=상상적 유-토피어)

 

열외자(Outsider) 김수철은 그의 전시 선언문에서 매우 이색적인 화두를 내 걸었다.

[육화정신 환상방황], 이란 것으로, 먼저 육화정신을 풀어 보면, 정신이 물질화하여 나옴으로써 일어 나는 것으로 <탁신(託身)>이라고도 하며 이는 영어로는 Incarnation 에 헤당하는 말이다. 『요한복음』 1 14절의 <(로고스)이 살이 되어서 우리들 안에 머물렀다>라는 구절에서 유래하며,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서 구원을 이루었다는 그리스도교의 근본 敎義를 나타내고 있다. 신체가 있음으로 해서, 이를 살아 있는 제물로 받쳐질 수 있는 것이며, 代贖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완전한 역설이기 때문에 그 이해를 둘러싸고 많은 논쟁이 이루어졌다. 그노시스파에 의하면 이는 인간이 육() 속에 숨겨진 神性을 발견하는 것으로 보았으며, 그 때문에 육체는 영혼의 임시숙소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를 <가현설(假現說)>이라고 하였다. 요한은 이에 대해서 육화를 십자가와 부활의 전제로 했을 뿐만 아니라, 로고스로서 意味 지어서 상징화했다고 할 수 있다. 후에 아타나시오스(Athanasius)는 肉化에 의한 肉體의 淨化를 주장하고, 안셀무스(Anselmus)는 육화없이는 인류는 멸망을 피할 수 없다고 그 필연성을 주장했다. 포사이스(Peter Taylor Forsyth)는 육화를 종말론적인 구제와 결부시켜서 이해하였는데, 이들은 모두 로고스 중에 創造와 救濟의 통일을 두고 신학적 의미를 밝힌 것들이다.

불교권에서도 육화설에 헤당하는 개념이 있는데, 一과 多의 상관성, 物質的인 것()과 精神的인 것()의 상관성, 本體와 現像과 事物의 관계항으로 보는 것이, 그것이다. 이들 개념들을 따로 놓고 그기에 집착하지 말고, 화엄의 理事無碍정신으로써, 서로 창조적으로 융합하라는 당위성을 이끌어 내고 있다.

 

 묘하게도 이 대비는, 예술이 성립하는 기본인, 시니휘에(Signifie 기호)와 시니휘안(Signifiant 의미), 오브제와 이미지의 상관등식과도 부합한다.

 

 [幻想彷徨]이란 화두는 한 평범한 家主로써 살아 가는 어려움뿐 아니라, 예술을 한다는 사람으로써의 지적 고뇌를 직유하고 있으며, []적 세계에 헤당하며, 산만함을 특징으로 하고 있는 세계다.  작가는 이 []에서 카오스를 경험하고, 앞의 []에 헤당하는 [육화정신]을 통해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본다. 그 상호 모순되는 등식에서 축출해 낸 나름의 답이 바로 [나는 작동이다]이라는, 매우 근조하고 중립적인 제스처이며, 작가의 인생관이자 예술관의 키-워드로 간주해도 무방 할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전시 선언문에서도, 혼란스려운 세상과 그 속에서 제정신으로 살아 가려는 어려움과 당혹스려운 상황을 남의 일같이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다. [작동]이란 말은 작가의 예술정신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고 보는데, 이말은 초시공적 우주적 생성의 묘를 암유하고 있다. 이는 질 들뢰즈의 찰학의 주 모티브적 게념과도 상응한다.

 

우리는 차이 자체를, 즉자적 차이를 사유하고자 하며 차이소들의 상호 관계를 사유하고저 한다. 이는 차이 나는것들을 같음으로 환원하고 부정적인 것들로 만들어버리는 재현의 형식들에서 벗어 나야 가능한 일이다.

 

 김수철의 육화정신과 그의 작품들의 格에는, 差異素들의 非還元性 이란 치명적인 특성이 공유한다. 이는 바타이유의 [非知]개념과 맥락을 같이 하는 차원의 개념들로, 불교권에서 언급되고 있는 [即非]의 논리,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공통적으로 쓰이고 있는 []는 세상을 양단논법으로 단정하는, 肯과 否의 논리가 아닌, 초월론적인 작동의 변증, 야생적 매트릭스(matrix)의 위상에 잡히는 토포로지컬한 관계소들을 전제하는 존재론적 원소 개념이다.

 

A A가 아니다. 고로 A이다. 로 요약되는 이 역설은, 마지막 A는 처음의 A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넘으 선(초월) 다는 의미가 함축 되 있다. 넘어 선다는 것은, 다시 태어난다라는 更生의 의미가 들어 있으며, 갱생은 救援으로 이르는 필수 과정이기도 하다.

 

異常한 山水畵의 誕生

 

自然의 繪畵 1

 

그의 작품 [자연의 회화] 1, 거대한 만화경의 구조물을 이용하여 외부의 개입을 차단해 놓고, 인조 머리카락을 핀센트로 집으 올려 고정시키는 수법으로, 동양 산수화가 작동되 나온 것이다. 그리는 것이 아닌, 작동으로 표현한 것은, 여기서 보이는 산수화의 이미지가 사람의 손에 의해 그려진 것이 아니라, 작가의 손을 빌린 머리카락이 그 섬세함으로 해서 동양화의 필획을 능가하는 선들로 弛緩 重疊의 반복을 통해 흰 벽면에 부조와 같은 山의 형상들을 만들어 놓는 [작동]이 연출됬디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작가의 미학적 키-워드인 [작동]이 만들어 낸 물질의 즉자적 [작동]의 흔적이다. 작가는, 이를 통해, 잠시 동안이나마 분실된 예술에 대한 회한을 삼키고 순수한 예술의 가능성을 엿 볼 수 있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自然의 繪畵 2

 

작품의 주류를 나타내고 있는 [만화경] 주변에서는 주 관념의 파생물로써, 하나는, 회화의 형태로, 다른 한가닥은, 행위(퍼포먼스), 니타내 보여주고 있는 두 [작동]이 연출되었다.

 

 그 하나가, 만화경 옆 전시장 벽면에 걸려 있는 평면 회화, [,,공기]. 이 작품은, 아주 오랜 기간(6개월 이상) 판위로 조금씩 떨어지는 연통에서 흘려 나오는 그으름이 썩인 연기와 물을 받아, 저절로 층을 이루며 침전하면서 진한 황갈색으로 다양한 무늬를 남겨 놓은 이미지 물이다. 인간의 행위가 전혀 개입되지 않는 그야말로 사물의 자연스려운 변용의 결과물을 그대로 판위에 받아 낸 것으로, 그 나타난 이미지는 인간 지성의 상징물로 제시되고 있는 추상회화와 전혀 구별되지 않으며, 그 이미지가 품어 내는 아우라()는 또 다른 氣勢의 야생성이 풋풋하게 전해지고 있다. 시장바닥에서 팔고 있는 상품인 [便器]를 그대로 전시 작품으로 제출한 뒤샹의 과는, 또 다른, 현대미술의 否定의 한 획이 이루워지고 있는 장면이다.

 

퍼포멍스 燒紙

 

그의 [만화경]이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구조물 바로 앞에서, 작가는, 우리 나라의 전통 의례의 한가닥으로 불 수 있는 燒紙를 행한다. 작가가 바닥에 깔아 놓은 종이 위에 붓으로 글을 쓰 넣고 이를 불에 사르는 [작동]이다. 여기서 김수철의 예술적 키-워드인 [작동]은 非視的 믿음의 세계, 신앙의 세계인 [기원]으로 바뀐다. 그 남은 재를 하늘위로 날려 보내는 아주 짧은 퍼포먼스 였지만 관객들은 불길과 연기가 보여주고 있는 해프닝에서  燒盡과 還元의 攝理를 통해 우주만물의 변환의 묘를 듸색인다. 이는 앞서 선 보인 선언문에서 나열해 놓은 두서 없는 낱말들과 같은, 살아 가면서 만들어 지는듯한 생각의 파편들을 無化시키는 제스처이기도 하다. 진정 무엇을 보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불사르여야 한다.

 

에피로그

 

  墨과 線의 感性으로 민족의 마음을 읽게 하는 김수철의 예술       

                                         

 그의 작품은 어떤 기준으로 분류된 의 위상에 놓여 있다. 종은 개를 품고 있으면서 개적인 요소들을 들어 내지 않으며, 共同 進化해 가는 특성을 갖고 있다.

사물의 원소 차원에서 차용해 나온 일군의 작품들이 모두 黑을 공유하고 線적인 감성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점에 주목한다. 이는 이웃나라인 중국의 회화예술의 일반적인 형상이 모양이나 형태에 치중하고 있는 점이나, 일본의 색의 선호와는 달리 유교적 덕성을 상징하는 우리민족의 마음을 상징하는 요소들이다. 선은 민족의 내적 창조의 섬세함이 묻어 나온 美로 놀라운 직관으로 발휘된다.


작가는 자신의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섭리에 귀 기울이며 그 사이에서 흘려 나오는 사물의 마음으로 그림을 [작동]시켜려고 한다. []의 차원이 아니라, []의 매트릭스적 망에 편입된 差異素라고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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