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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31 (10:3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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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번쩨     뒤엘리. . -(Tiery de Duve)

 

            뒤샹이란 어떤 者인가

 

         예술상의 모더니즘 개념을 만들고 이를 넓혔으며, -.아반가르드와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를 억지로 접속시켜 일관된 이야기를 구성한 그레민트.그린버그는 그 모더니즘의 圈域에서 다다와 마르셀.뒤샹을 사실상 배제하였다.

 

 알프렏.-.주니어는 1936년에 뉴-욕근대미술관에서 열렀던 [-비즘와 추상미술]전의 카다로그에, [이즘]의 상호관계에서 나온 유명한 도표를 실었던바, 여기서는 [다다이즘]에 일정한 문맥적 위치가 주어저 있다. 그러나 실은, 다다는 그냥 다다라 칭하였을 뿐이고, [이즘]는 뒤에서 편의상 덧붙쳤을 뿐이다.

 

 그 다다는, 기성의 [예술] 개념 그 자체를 문제시 한 것이다. [예술]적 몸짓은, 그러나 결국 모더니즘의 조류속으로 회수되어 버렸지만, 다다가 예술의 자율성이나 순수성을 추구하지 안 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1950년대 말에서 60년대에 등장했던 소위 일컬어젔던 네오.다다 이후, 더 이상, [이즘]라는 말로는 포괄시킬 수 없는, .-, 라이트.-, .-, 미니멀.-, 컨셒추월.-, 랜드.-트등등, 그야말로 막연히 [-]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현상이 연이어 일어 났었는데, 이러한 [-]를 담당한 자들은, 많턴 적던 뒤샹을 스승으로 숭상하고 있었다. [에로티시즘도 이즘이다]라고 중얼되며, 그 한에서 [이즘]와 어께를 나란히 한 것으로 보였던 뒤샹은, 그러나, 60년대에 들어서서 [-]의 범람을 앞에 둔 그린버-그의 입을 다물게 할 정도로 힘이 있었던 원흉, 모더니즘의 내부에 터를 잡은 獅子몸속의 벌레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 벌레들이 파먹은 구멍이 60년대에 와서 수상스렵게도 확산되었던 것이다.

 

뒤샹이란 어떤 者인가. 그린버-그적 모더니즘와의 관계에서, 뒤샹을 어떻게 포착해야 하는가. 뒤엘리..듀베는 이 물음을 스스로에게 과한 과제로 삼은 주목해 볼만한 논객이였다.

 

.듀베는 2권의 프랑스어 서책, [繪畵的唯名論 마르셀.뒤샹, 회화와 모델니데](1984) [예술의 이름하에 모델니데의 고고학을 위해](1989)를 상재한 후, 이번에는 영어로 [칸트.아프타-.뒤샹] 1996년에 MIT프레스에서 간행한다. 프랑스어의 저서 두권의 내용을 취사선택하여 새로 꾸며서, 자신이 영어로 쓴 것이었다. 베르지움태생의 드.듀베가 카나다의 오타와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던 사실로 보아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칸트 아프트 뒤샹]이란 타이틀은, [예술의 이름하에서]의 제2 <Kant(d)après Duchamp)]에서 유래함으로, [아프타]에는 [이후의] [에 의한]이란 두나의 의미가 걸려 있었던 것이 되며, [뒤샹에 의한/이후의 칸트]정도로 역해 두어야 할 것 같다.

 

.-베의 논술은 부분적으로 윌리엄.-빈의 [다다와 슈리얼리즘예술](1969)에서 피력되는 견해와 맥을 같이 하는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어나, 무엇보담 뒤상을 칸트미학과 관련시키고 있는 점이다. 이는 모더니즘을 [철학자 칸트에 의해 시작된 자기비판적경향의 강화[(모더니즘의 회화)1960로 잡았던 바로 그 그린버그에의, 그리고 칸트적인 [취미]를 유일한 법정으로 삼았던 바로 그 그린버그에 대한 분명한 그리고 성실한 도전이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베가 무엇보담 문제시 했던 것은 뒤샹에 의한 회화의 [放棄]와 그것과 접속하는 레이디.메이드의 [發明]이라고 하는 사태이다. 뒤샹은 1912년에 <계단을 내려오는 나체 No.2>를 완성하고, 안데판덴트전에 출품하려고 하다가 뷰--의 큐-비스트의 그룹로 부터 공격을 받고, 이를 철회하였다. 이 그룹와 결별을 한 뒤샹은, 그 후 뮨헨에 두달동안 체류하여, 그기서 <처녀>란 題한 두장의 드로-잉와, <처녀에서 신부에의 수행> <신부>의 두장의 유채를 제작했다. 1912 10, 뮨헨에서 돌아 온 그는 자신에게 이렇게 이른다. [마르셀, 그림은 이제 됬다, 일을 찾아라]. 1913년말까지는 <큰유리>의 계획은 거이 다 짜여저 있었다. 그리고 최초의 레이디 메이드, <자전거의 차륜>이 만들어 젔다.

 

뒤샹의 아마도 최상의 회화작품이 뮌헨에서 이루어젔다고 보는 것도, 좀 수상직한 일이기도 하다. 이때 뮌헨에서는, 간딘스키- [추상]회화에의 길을 강하게 발을 내 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린버그가 말한 순수화란, 말하자면, 색채에 의해 화면을 구성하기 위하여, 그걸 내걸고 있는 형상을 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성을 태-마로 선택한 뒤샹은 형상성을 버리지 못했다. 형상성을 버리는 대신 그는 회화를, 말하자면 동시대의 화가들이 어께를 나란히 하여 나아가고 있었던 추상회화를 거부했던 것이다.

 

바로 그가, 왜 레이디메이드로 향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가. 뒤샹 자신에 의하면, 레이디메이드란, 무엇보담 먼저 고를수 있는 것이며, 그점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왜냐 하면, 그림을 그리는 일도, 푸른 화구의 튜-브를, 붉은 화구의 튜-브를 고르는 것이며, 그리고 이들 튜-브는 레이디메이드 이외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으로, 레이디메이드를 선택하는 것은, 일종의 회화제작이기도 하다라는 말이 되는 것이다.

 

뒤샹은 이렇게 회화라고 하는 예술쟝르의 하나를 방기함과 동시, [예술]개념 그 자체를 겨냥하게 되었다. 일례로, <병건조기>(1914), 그림도 아니며 시도 아니며 조각이나 음악도 아니다. 그것은 [예술]이던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것이다. .-베는 이러한 점을 [種적인 것]에서 [類적인 것으로]의 이행이라 불렸다.

 

뒤샹은 사람이 화가도 아니고 조각가도 아니며 시인도 아니고 음악가도 아니면서 그대로 [예술가]기 되는 것을 나타낸 최초의 인물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뒤베는 이러한 [예술가]를 스스로, 특권적인 과제로 맡았던 것이다.

 

약력: 1944년 벨지움 태생. 브랏셀에서 미학과 기호학을 가르친 후, 카나다의 옷다와대학에서 미학미술사 교수, 파리 시립미술학교 교장을 역임.

 

주저: Nominalisme pictural: Marcel Duchamp, La peinture et la modernite, Minuit, 1984. [예술의 이름하에]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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