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전원길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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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5 (13:3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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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무길의 육면체와 끈 그리고 새로움에 관하여

전원길  

2004/9/23 (1:32)

우무길의 육면체와 끈 그리고 새로움에 관하여


이번 소나무 스튜디오 갤러리에서의 전시회를 통하여 우무길은 그의 오랜 관심의 대상인 육면체의 조형적인 변주와 아울러 자신이 포함된 인간사에 대한 관조와 깨달음의 경험을 육면체에 이입함으로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정체성에 대하여 묻고 있다.

외견상 그의 입체물들은 전통적인 모더니즘 추상조각의 문맥 속에서 읽어지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비록 그가 기하세계가 가지고 있는 순수 조형의 가치를 주장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가 구사하고 있는 조형 어법은 조형세계 밖의 인간 현실과의 연결고리를 시각적으로 드러내고 있지 않다. 반면에 작가 자신의 작업에 대한 증언은 오히려 자신의 어릴적 삶의 특수한 경험으로부터 출발하여 현재 자신이 처해있는 현실에 대한 경험적 인식에 비중을 두고 있는것이다.

어쩌면 우무길은 자신의 작업을 진행하는 중에 그가 증언하고 있는 작업의 의미를 생각 한다기보다는 훨씬 작업 자체의 조형적 문제에 고민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작업이 종료된 후에는 작업의 과정에서 작업의 주된 의미를 찾기 보다는 자신의 둘러싸고 있는 삶에서 작업의 의미를 끌어오는 것이다.

대체로 미술의 주된 맥락의 변화 과정을 통해서 창의성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작가의 사적인 경험이 어떻게 형식화 되었으며 그것이 어떻게 새로운가를 흥미 있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개인의 일상의 경험에 대한 증언이나 재주 있는 표현보다는 그것을 도출해내는 표현 형식의 구조가 색다를 때 강한 감흥을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 여기서 형식의 구조란 다양한 표현을 만들어 내는 장치와도 같은 것이다. 아무리 새로운 재료를 집어넣더라도 그 생산구조 틀이 변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것이 나올 수가 없다.

우무길이 이야기 하고 있는 끈이라는 화두를 통해 이 문제를 설명하자면, 우리는 가정과 직장 혹은 지역사회 미술계에 이런 저런 인연을 맺고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때로는 행복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복잡한 갈등구조를 엮어내는 끈이며 서로가 서로를 구속하는 끈끈이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는 미술작가로서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끈에 매달려있다. 그것은 우리가 면면히 흘러내려오는 미술의 전통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고 그 안에서 우리의 위치와 작업의 가치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선배예술가들이 남겨둔 예술적 소산들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생각해야하는 말하자면 보이지 않는 예술계속에서의 연결된 끈의 관계를 인식해야만 작가로서의 자신의 보편적 위치를 확인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선배들이 일구어 정립한 틀을 벗어나면 사회로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고 그 틀 안에 머믈러서는 진정한 의미의 새로움의 발견이란 불가능하다. 이런한 상황을 인식하는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틀은 유지하되 자신의 삶의 색다른 경험을 의미화해서 작업에 가미해 나가는 소극적 방식이다. 이때 개별 경험의 충격이 크면 클수록 작업을 형성해 나가는 형식에 지배받지 않고 강력한 아우라를 뿜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류의 작업도 반복되면 양식화되고 피상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과거의 틀을 벋고 새로워 질 수 있는가? 과연 그것은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사람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작품이 바뀌지 않는다. 즉 이 세상을 바라보는 색다른 방식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는 방식이 달라진다면 과거의 끈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끈을 부여잡고 전진 할 수 있으리라.

인간을 세계를 바라보는 중심에 놓았을 때 가능했던 르네상스의 선 원근법의 발명과 자연의 생생함과 색채와의 관계를 통해 관념적 이미지들의 세계였던 회화를 캔버스 표면의 물질계로 이끌었던 인상주의와 그 후예들, 영상매체를 통해 장소와 시간의 문제에 대한 색다른 제시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예술의 형식으로 발전시킨 비디오 아트 그리고 이러한 테크놀러지를 중심으로 확장되고 있는 방법론과 나란하게 발전하고 있는 자연미술의 생태학적 표현 방식등은 인간과 미술 그 자체에 대한 의문과 재발견 그리고 문명과 자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미술적 혁신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그 실마리를 잡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새로운 위치에 선다는 것은 철저하게 다른 사람으로부터 고립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신 이전부터 있어오던 세계이지만 구석구석이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고 관계한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자리에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새로운 관계 끈을 만들고 그 구조 속에 사람들을 초대하고 안내하는 자로서 그의 새로운 영토는 확장된다.

예지력이 강한 천재가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과거와 현시대 그리고 미래를 동시에 조망하면서 다음 단계를 앞서 전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우무길의 작업의 여정을 통해 그 가능성을 배울 수 있는데 그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쉬지 않고 일한다는 점이다. 쉬지 않고 작업한다는 것은 작업을 통해 자기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꾸밀 수 없는 진정성이 전제가 되어야 가능하다. 나는 이 두 가지 점을 통하여 새로움에 도달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고 있다.

그가 비록 전통적인 맥락하에서 자신을 실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작업의 지속적인 진행 과정을 통하여 자신이 매달려 있는 끈의 실마리를 모두 풀어내고 그것으로부터 벗어 나리라 생각한다. 또한 그 진정성을 통하여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아닌 것으로 알고 자꾸 자꾸 걸러가는 동안 이제 까지 쌓아온 자기 탈출을 위한 내공의 공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리라 믿는다.

그의 전시 작품 이외에 제시하고 있는 드로잉들을 통하여 그는 주체 할 수 없는 창의적 아이디어들을 배태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는 그의 생각들이 작업의 과정을 통해 정립되길 바란다. 잔머리만 굴려서는 진정한 정신을 확립 할 수 없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그의 창작의 몸 놀림이야 말로 그가 새로운 세계로 전진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비록 한 동료작가에 대한 나의 접근이 어쩔 수없는 나의 잣대를 통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저 없이 내 이야기를 쓸 수 있는 것은 최근 소나무스튜디오 갤러리의 작가와의 만남 프로그램을 통하여 작가들이 자신의 위치를 공개하고 그 허약한 곳을 스스로 노출시키는 용기있는 전시문화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이것은 전시문화를 보다 실질적인 방향으로 개선해나가는 의미있는 시도이자 성과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자리를 서슴치 않는 작가들에 의해서 조금치라도 자신의 영역을 확보해 나가는 자를 진심으로 격려하는 분위기가 살아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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