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전원길 칼럼입니다.
조회 수 : 3089
2007.06.05 (13:2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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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 20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본 예술작품의 가치

전원길

2004/7/15 (9:48)

Q (길모퉁이); 설치미술은 주변 환경과 독립해서 이해될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반적인 미술작품도 전시 환경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일본에 있는 몽유도원도' 의 가치에는 역사적, 사회적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예술 작품에는 단 하나의 가치(미)만 있는 것인지 궁금해서 질문을 드립니다.


A (전원길); 작품의 가치는 경험하는 자(할 수 있는자)의 것이기 때문에 예술 작품의 가치가 어디까지 이고 또한 그 판단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설득 타당한 답을 내리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설치미술에 관한 풍부한 경험(감상)을 위해서는 설치 미술품이 위치한 외부 환경 뿐아니라 그 속에 깔려 있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 될 때 그 의미가 살아나고, 안견의 그 유명한 '몽유도원도'는 우리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천리대학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아무나 볼 수 도 없게 된 마당에는 정치적 사회적 의미를 부가적으로 취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작품 그 자체의 가치가 다른 영역으로 증폭된 대표적인 예 일 것입니다.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대명제 하에 작품속의 문학성과 환영(illusion)을 지워내려했던 추상미술조차도 그 의도 자체가 외부 사회와 관련을 맺고 어떤 멧시지를 날리고 있기 때문에 사회와의 관련성을 끊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따라서 그 작품의 멧시지 즉 내용이 갖는 의미가 어떤 잣대 즉 사회윤리 혹은 종교에 의해 판단 받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술 작품에 내재된 순수한 미적 형식은 따로 떼어서 생각 할 수 없고 언제나 내용과 더불어 그 가치판단이 이루어질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라고 생각 될 수도 있구요. 그리고 요즘 우리 까페에서 논의되고 있는 상상력이라든가 창의성의 가치에 대해서도 언제나 표현된 내용에 의해 그 가치가 확인된다고 말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러한 판단은 좀더 다른 각도에서 미술의 역사적 흐름을 살펴보면서 생각의 폭을 넓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의 가치에 대하여 많은 미학적 개진이 학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나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기독교 개혁 신앙을 추구하는 자들로서의 예술에 대한 태도일 것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세련된 미감은 주로 예술지상주의를 추구했던 모던 아트의 고상함과 순수함의 추구의 결과입니다. 특히 아파트의 인테리어라든지 가구등 우리의 미감을 사로잡고 있는 모든 것들은 기독교적 입장에서 단순히 따지고 보면 신을 떠난 인간들의 바벨탑적 불순한 의도를 바탕으로 형성되어 온 것들입니다.
인상주의 풍의 편안한 화풍은 종교적 신념의 판단에 부응하는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 할 런지 모르지만, 중립적 순수미술의 세계를 천명한 추상미술의 저 앞자락에는 인상주의가 그 불순한 예술지상주의를 적극적으로 예시를 하고 있다는 것도 생각하여야 합니다.
좀 더 올라가서 사물을 파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리는 사실주의 화법을 보더라도 역시 마찬가집니다. 평면 속에 3차원 가상 공간을 그리는 방법 즉 선원근법과 명암법을 르네상스 시대에 발명되었는데, 역시 불순하기는 마찬가지로 그것은 인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의 반영이며 인간 중심적 사상의 정돈된 미술 형식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이후 현대미술은 때로 합리주의와 이성에 그 근거를 둔 서양 정신 문명에 대응(다다이즘) 하면서도 방향을 돌려 피조물로서의 인간이 생각하여야 할 정당한 사고로 전환하지는 않았고 여전히 인간의 가치를 중심에 놓고 생각하는 사상과 나란하게 그 형식을 유지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따지면 인간의 본성의 타락까지 올라가지 않더라도 현대 예술은 태생적으로 불순합니다. 그 순수한 의도만를 걸러내기가 힘들다는 것이지요. 비록 그 내용이 사회적으로는 의미있으나 기독교적으로는 반 신국적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정신적 신념을 상관치 않고 파고드는 인본주의적 산물인 예술품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즉 극단적으로 말하면 가치 있는 것이 없는데 어떻게 가치를 논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예술품의 가치를 모두 부정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비록 신을 떠난 역사적 패러다임의 한복판에 있는 작가들의 예술 세계일지라도 거기서 느끼게 되는 감동과 미적 공감은 어떤 이들에게 있어서는 피할 수 없는 것이고 그것은 불순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그냥 그런 것이 아니고 의미있는 현상이라는 말이지요. 우리 안에 내재된 미감을 흔들면서 다가오는 이것은 때로 작품의 내용이 아닌 보이지 않는 구조와 관련이 있을 때 더욱 강렬하다는 사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자기를 실현하는 과정을 통해 발휘되는 상상력과 창의성이 새로운 형식으로 자리를 잡을 때 보다 높은 예술적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작품의 대 사회적 관계의 효용성보다는 그 자체의 미적 형식에서 발생하는 생생한 힘에 주목하는 것은 단지 가치 중립적인 미의 세계에 탐닉한다기 보다는 하나님이 내신 그 창조성이 살아 움직임을 기꺼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살아있는 나무는 비록 어디에 쓰여지지 않더라도 자연 속에서 그 자체로서 가치를 지닌다"고 말한 로크마커의 표명이 언제나 새롭습니다.
사실, 좋은 것만 의미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무리 없는 의견 통일을 이룰 수 있겠지만 그것은 우리의 정신을 빈곤하게 할 뿐이고 마땅히 누려야 할 중요한 가치를 상실하는 것이 될런지도 모릅니다. 구태의연한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치열한 예술가들의 삶 통해 발휘되는 창의성을 가려내어 볼 수 있다면 자연의 생명력과 아름다움에 기뻐하듯이 그것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술품의 순수한 미적가치 혹은 상상력과 창의력은 보다 입체적인 사고방식의 틀 안에서 만 자유로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즉 불순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를 넘나들며 생각이 다른 너와 나의 경계를 가리지 않는 지점에서 상상력은 아름다운 만물과 호흡하며 그 지으신 이를 찬송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세련된 감식안을 통해 하나님이 이 세상에 내보이신 그 아름다움을 보다 깊게 향유하길 원하는 것은 자연스런 욕구 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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