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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30 (14:2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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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를 마감하는 아래 글을 올립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뜻하시는 일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2008년을 보내며-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읽고



2008년도는 미국 발 금융 위기 상황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그 여파로 우리나라에서도 금융 불안과 함께 환율이 치솟고, 주가는 곤두박질쳤으며, 경제는 더욱 어려운 지경에 처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래서 이러한 경기침체로 극심한 생활고를 겪는 사람들은 지난 외환위기 때보다 더한 불안감을 갖게 된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2008년도에는 GMO, AI, 광우병, 멜라민 파동과 관련한 먹거리 불안, 남북관계 불안, 정치 불안, 교육 불안 등으로 인해 집단 최면에 걸린 듯 많은 사람들이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래서 어떤 언론매체에서는 ‘불안’을 2008년도의 열쇠말로 선정하였다.  
그러나 역사를 돌이켜보면 그 참상으로 보아 지금보다 훨씬 엄혹한 시기도 있었다. 현대는 과학지식, 경제적 기회와 부, 식량, 소비 물자, 기대 수명 등의 면에서 이전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진화한 시대이다. 당분간 경기회복이 되지 않는다 해도 근대 이전의 선조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부와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많은 현대인들이 그 어느 시대를 사는 사람들보다 더한 불안감을 갖고 산다는 것은 역설적인 일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많은 현대인들에게 불안은 숙명이 되었을까?


“불안은 욕망의 하녀다”라는 말로 유명한《불안Status Anxiety》의 저자인 영국의 젊은 철학자 알랭 드 보통에 의하면 중세 때의 인간은 현대인이 갖는 불안감이 없었으며, 불안은 근대사회이후 지위에 대한 불안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본다. 태어날 때부터 운명이 정해진 신분계층 사회였던 중세사회는 어떤 지위도 신이 정해준 불가피한 것으로 생각했지만,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근대, 특히 18세기 이후 경제적 능력과 유용성만이 사회적 위상을 결정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불안감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알랭 드 보통은 현대인들이 겪는 끝없는 불안의 징후는 사회적 지위의 추구로 인해 야기된다고 본다. 그리고 높은 지위를 구하려는 동기는 돈, 명성, 영향력에 대한 갈망 때문이며, 이 세 가지가 있으면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 존경을 받고 다른 사람보다 더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차원에서 저자는 불안의 원인을 크게 사랑결핍과 속물근성snobbery, 기대(심), 능력주의 그리고 불확실성이라는 다섯 가지로 분류한다. 이를테면 우리의 ‘에고’나 자아상은 바람이 새는 풍선과 같아, 늘 외부의 사랑이라는 헬륨을 집어넣어 주어야 하고, ‘무시’라는 아주 작은 바늘에 취약하기 짝이 없으므로 불안하며, 사회적 지위와 인간의 가치를 동일시하면서 남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고 싶은 것이 속물근성이다.
또한 이전보다 많은 것을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달라지지 않는데서 오는 끊임없는 불안, 현대 사회의 능력주의에 의해 인간은 좌절하고 불안해하며, 예측 불가능한 요인 중 예를 들어 고용주는 피고용자를 불안하게 하고, 고용주는 경제의 불확실성 탓에 불안하다. 이 때문에 현대사회는 불안의 연속이며 성장과 후퇴를 반복하는 유동적인 세계경제의 특성 때문에 지위를 얻으려는 노력은 그 결과가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 장에서부터 알랭 드 보통은 불안에 대한 해법을 기술한다. 그가 제시한 다섯 가지 해법이란 ' 철학', '예술', '정치', '종교(기독교),' ‘보헤미아(보헤미안의 삶)’이다.

이러한 그의 해법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구 역사에서 삶에 대한 다른 길을 제시한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서 찾은 것이다.
이 중에서 ‘예술’이란 장에서 알랭 드 보통은 예술을 '삶의 비평'으로 정의한 시인이자 비평가인 매슈 아널드의 말을 인용한 후 우리의 삶이 비평이 필요한 현상임을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타락한 피조물로서 가짜 신들을 섬기고,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남의 행동을 오해하고, 비생산적인 불안과 욕망에 사로잡히고, 허영과 오류에 빠질 위험에 처해 있는 인간에게 소설, 시, 희곡, 회화, 영화 등 예술작품은 은근히 또 재미있게, 익살을 부리기도 하고 근엄한 표정을 짓기도 하면서 인간의 조건을 설명해주는 매체 역할을 한다. 예술작품은 세상을 더 진실하게, 더 현명하게, 더 똑똑하게 이해하는 방법을 안내해준다.
우리가 지위와 그 분배의 문제에 접근할 때만큼 비평이 필요한 순간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시대를 막론하고 아주 많은 예술가들이 어떤 식으로든 사회가 사람들에게 등급을 부여하는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을 창조한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예술의 역사는 지위의 체계에 대한 도전, 때로는 풍자나 분노가 서려 있기도 하고, 때로는 서정적이거나 슬프거나 재미있기도 한 도전으로 가득하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보헤미아’(*보헤미안들의 사회 또는 집단이란 뜻임)란 장에서 19세기 초에 생겨나 경제적이고 능력주의적인 지위체계에 맞선 보헤미안의 삶에 대해 기술한다. 예컨대 윌든 호숫가에서 산업문명을 등지고 자연과 함께 산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시인 채터튼의 죽음, 보헤미안의 삶을 선원에게 붙잡힌 새로 비유한 샤를 보들레르의 시 <앨버트로스>, 모나리자에 콧수염을 그린 후 L,H,O,O,Q(그녀는 엉덩이가 뜨겁다)라 서명한 마르셀 뒤샹의 작업 등이 그가 꼽은 예인데, 이를 통해 ‘세상의 지배적 관념에 맞서 독자적 가치’를 추구해온 보헤미안의 가치체계를 드러낸다. 보헤미안들은 자신의 자유로운 삶으로서 근대적 문화와 예술의 주류계층인 부르주아지에 온 몸으로 맞섰다는 것이다.
이들 보헤미안들은 문화와 예술을 회의한 아방가르드, 즉 진정한 의미에서 현대예술의 선구자들이기도 하다.(*현대예술사에서는 이들은 대개 아방가르드 현대예술가로 자리매김 된다) 이런 의미에서 보헤미안에 대해 쓴 장은 알랭 드 보통이 쓴 불안이란 책의 핵심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보헤미안의 정신은 선불교의 용어로 표현한다면 집착을 내려놓는다는 의미의 ‘방하착放下着’을, 원효의 사상과 삶에 비견하자면 ‘무애無碍’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이 말의 참 뜻은 많은 사람들이 잘못알 듯 모든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경지를 뜻하는 말은 아니다. 인간이 살아 있는 한 절대로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그 욕망이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직시하는 일이며, 이런 의미에서 오히려 통념적 삶을 거부하는 의미로서만 이 말은 진정성을 가질 뿐이다.  


자본주의 시대이후 삶의 조건이 그 이전의 시대와 근본적으로 달라졌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위정자들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위기를 겪게 되었다면 이는 분명히 시정되어야 할 문제다. 그러나 최근의 경제 위기는 여러 정황으로 보아 쉽게 극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차원에서 현대인이 느끼는 불안감은 이러한 경제 논리로만 해결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불안》의 저자에 따르면 현대인의 불안은 근대 이후의 사회적 욕망에서 기인한다. 사실 오늘날의 소비사회는 근대의 부르주아지 문화의 연장선에 있다. 따라서 부르주아지의 문화는 곧 그들의 욕망의 흔적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러한 근대적 유산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한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아도 불안감은 지속될 것이다. 모든 불안은 욕망의 문제이며, 욕망은 무한하나 삶은 유한하므로 그 끝은 좌절과 무력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상은 읽혀지거나 설명되는 것이 아니고, 다만 살아낼 수밖에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어떠한 현실 속에서도 정작 중요한 문제는 ‘쪽박의 현실’도 ‘대박의 꿈’도 아닌 삶의 근본적 가치를 새롭게 설정하는 문제이다. 보헤미안은 낭만적 현실도피주의자가 아니었으며 오히려 가장 치열하게 현실과 맞선 자들이었다. 그들은 ‘다수의 가치를 비판하는 새로운 가치에 기초하여 새로운 위계를 세우려 했으며, 그것은 지위나 명예, 돈에 지배당하는 삶이 아닌 다른 방식의 삶이였다.


                               2008년 12월 30일
                                     도 병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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