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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8 (14:54:42)
덕숭산 수덕사, 그 시공간의 체험
지난 8월 15일, 전북 부안 변산반도에 있는 내소사來蘇寺와 개암사開巖寺로 갈 예정이었지만 길이 막혀 시간이 지체되는 바람에 행선지를 바꾸어 예산의 덕숭산 수덕사修德寺로 가게 되었다. 여러 번 가본 곳이지만 최근 사찰 공간이 많이 달라졌고, 또 아이들을 생각해서 탐방장소를 바꾼 것이다. 나직한 산자락에 위치한 사찰 입구는 이전에 비해 크게 달라져 있었다. 일주문을 새롭게 크게 짓는 중이었고, 기존의 일주문을 지나자 고암 이응로 화백의 사저였던 수덕여관이 초가집으로 복원되어 있었다. 이어 금강문, 사천왕문으로 들어서서 황하정루 지하에 있는 성보박물관으로 갔다. 그 곳에서 수덕사 대웅전 건립 700년을 기념하는 <수덕사! 천년의 아름다움>특별전 때 제작된 영상물을 통해 대웅전 짓는 장면을 보여주는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현대적으로 분석한 설계도면을 찬찬히 볼 수 있었다. 수덕사 경내에서 가장 가파르고 높은 계단을 올라서자 넓은 마당 위로 수덕사 대웅전이 한 눈에 들어왔다. 수 년 전에 보았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 거기 있었다. 온갖 풍상과 오랜 세월의 무게를 견딘 대상과 마주한 느낌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수덕사 대웅전은 고려 때 지은 건물이다. 현재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 목조건축으로 현존하는 건물은 없다. 고려시대 목조건축으로는 13, 14세기에 지어진 건물들이 약 10동 정도 남아 있다.(봉정사 극락전鳳停寺 極樂殿, 수덕사 대웅전 이외에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浮石寺 無量壽殿과 조사당, 강릉 객사문, 영천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銀海寺 居祖庵 靈山殿, 봉정사 대웅전, 북한 황해도에 성불사 응진전과 심원사 보광전 2채가 남아 있다) 이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은 봉정사 극락전이며, 수덕사 대웅전은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건물로서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다. 1937년 해체 수리 때 "1308년 4월 17일 기둥을 세우다立柱"라는 묵서명墨書銘이 발견되어 창건 연대가 밝혀진 것이다. 수덕사 대웅전은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며,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구조인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柱心包 형식이다. 앞면 3칸에는 모두 3짝 빗살문 형태의 분합문分閤門을 달았고 뒷면에는 양쪽에 창을, 가운데에는 널문을 두었다. 대웅전의 측면은 원목의 겉만 다듬은 둥근 도리가 앞뒤로 다섯 개씩 뻗쳐 나와 그보다 가는 서까래 여섯 개씩을 받치고 있다. 앞뒤의 보통 기둥平柱 두 개와 그 안의 높은 기둥高柱 둘이 서서 벽면을 이루었는데 높은 기둥 사이가 보통 기둥과의 사이보다 두 배 넓다. 그래서 벽면은 4등분으로 분할되고 종보와 들보, 퇴보 및 각목 형태의 3중 층방(層枋; 기둥과 기둥 사이에 층층이 가로질러 넣어 기둥들을 서로 연결 고정시켜 주는 부재)이 상벽을 11구간으로 나눠놓았다. 이처럼 측면은 기둥과 건물의 구조가 그대로 드러나는 구성미가 두드러진다.(1937년에 찍은 수덕사 전경 사진을 보면 대웅전도 조선시대의 다른 맞배집처럼 측면에 비바람을 막는 역할을 하는 판자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수덕사 대웅전은 내부공간도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구조 부재들이 그대로 노출된 대웅전 안은 용마루 아래 종도리에서 2등변 삼각형을 이루며 앞뒤로 질서정연하게 서까래가 드러나 있다. 수덕사 대웅전 앞 중심마당은 정사각형에 가까운 방형공간이다. 예전에는 이와 다른 구조였다. 양쪽에 승방만을 남기고 대웅전 바로 앞에 있던 선방건물을 철거하여 공간을 비움으로써 수덕사 대웅전의 모습을 한 눈에 들어오게 한 것이다. 이로 인해 수덕사 전체가 개방된 공간이 되어, 마당에서 앞을 내려다보면 멀리 내포평야가 바라보인다. 나는 승방인 백련당 툇마루에 오랫동안 앉아 묵언수행 하듯 수덕사 대웅전을 바라보았다. 일체의 장식이 배제된 장대석을 쌓은 높은 석조石造 기단基壇 , 기둥 위 주심포 형태의 단순 구조를 더욱 극대화시키는 창방과 도리, 맞배지붕 용마루까지의 중층적인 수평선은 일반적인 전통 한옥과는 사뭇 달랐다. 그것은 전통 한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귀솟음이 없고, 또한 현란한 처마인 다포 형식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더욱 인상적인 점은 무엇보다 황색의 벽을 제외하고는 사찰이나 궁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청조차 수 백 년 눈, 비, 바람에 탈색되어 사라져 버리고, 갈라진 뼈처럼 나뭇결들만이 드러나 있는 점이었다. 저처럼 모든 사물, 즉 색色의 세계는 무상한 법이다. 거듭된 생성과 소멸의 역사 속에 그 과정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 땅에서 수덕사 대웅전을 포함한 이 시기의 목조건물이 가치의 유무를 떠나 극히 소수라는 사실은 이 세계가 얼마나 유동적이고 무상한 시공간인가를 입증한다. 다만 지금 이순간 여름날 뜨거운 태양 아래 수덕사는 이 곳 대웅전을 중심으로 멀리 바라보이는 내포평야에서 덕숭산 정상에 이르기까지 층층이 적요寂寥한 시공간으로 빛나는 것이다. 우리의 전통 건축은 단일 건물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지세나 공간에 따른 배치에 따라, 또한 시간 속에서 그 복합적 구조를 드러낸다. 이런 차원에서 돌담하나도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현대의 사찰은 이러한 정신을 망각한 경우가 많다. 수덕사도 얼마 전에 비하면 훨씬 좋아졌지만 아직도 덕숭산이나 대웅전에 걸 맞는 공간으로서는 미흡한 점이 많이 눈에 보인다. 특히 진입로 변에 세운 큰 사적비나 코끼리 석등, 계단 옆에 위치한 거대한 포대화상, 그리고 진입공간의 수많은 계단들이 그러하다. 사실 이는 어느 한 부분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곳 특유의 지세를 바탕으로 진입 공간에서 중심공간까지 모든 공간의 관계성을 세심하게 고려해야 함을 뜻한다. 비움虛과 채움實이 절묘하게 구현되는 다차원적이며 중층적인 구조를 자각함으로써 수덕사 전체 공간은 물론 대웅전도 더욱 깊은 감응의 공간이 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감응의 문제는 단지 미학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어떠한 종교적인 공간도 근본적으로는 항상 변화하는 역사적 공간 또는 실존적 시공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과거와 현재가 동시적으로 새롭게 인연을 맺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에게 가치 있는 체험이란 자연과 역사가 어우러져 생성하는 그 관계를 끊임없이 탐색함으로써 새로운 감응의 미학을 창출하는 일인 것이다.(2009년 9월 4일, 도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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