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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0 (14:38:28)
마르셀 뒤샹과의 체스 놀이를 보고
1. 지난 11월 7일, 김성배 선배님이 마르셀 뒤샹을 찍은 기록영화documentary film가 있다며, MPG 프로그램으로 보내주었다. 이 동영상은 1963년에 장 마리 드로Jean Mary Drot가 제작한 <마르셀 뒤샹과의 체스 놀이>라는 기록영화로서 흔히 볼 수 없는 귀한 자료였다. 뒤샹은 생전에 몇 번의 인터뷰와 함께 다수의 영상물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간 국내에서는 그에 대한 영상자료가 거의 소개되지 않았다. 이 다큐 프로그램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에 위치한 파사데나 미술관에서 개최된 회고전을 중심으로 해서 촬영하고 기록한 것이었다. 마르셀 뒤샹은 당시까지 그룹전이든 개인전이든 전시회를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회고전이 사실상 첫 개인전이었다. 마르셀 뒤샹과 진행자의 말은 프랑스어로 진행되었으며, 화면 아래 영문 자막이 나왔다. 이 기록영화는 오늘날의 수준 높은 다큐멘터리 필름에 비하면 화면 구성이나 전개도 단순하고 화면의 질도 좋지 않은 편이고, 게다가 대부분이 흑백영상이었다. 그렇지만, 이 기록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마르셀 뒤샹 만년의 풍모를 그것도 생생한 육성과 함께 볼 수 있었다. 주1) 무엇보다 나는 이 기록영화를 보면서 마르셀 뒤샹 특유의 지적이고도 유유자적한 풍모와 함께 그의 삶과 예술의 단면을 좀 더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2 약 40여 분간 진행되는 이 기록영화의 주 이미지는 마르셀 뒤샹이 체스를 두는 장면과 함께, 회고전에서 전시된 그의 작품들과 20세기 초의 마르셀 뒤샹의 행적이 드러나는 사진들을 회고전 당시의 현장 안팎을 배경으로 해서 재구성한 형식이었다. 그래서 촬영 당시 로스앤젤레스의 거리 모습과 함께, 1917년 뉴욕에서 뒤샹의 상반신 사진이 여러 번 나오는 장면도 보였으며, 특히 이 사진 장면은 거울에 뒤샹의 모습이 정면 측면 등 마치 다양한 각도에서 찍은 듯한 모습이어서 화면에 한 장면씩 부분적으로 클로즈업되어 나오기도 했다. 이 영화의 서두 부분은 “해답이 없는 것은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주2)는 마르셀 뒤샹의 말로 시작되었으며, 뒤샹과 거의 같은 시기인 1차 세계 대전 와중에 미국으로 건너 와서 전위음악가로 활동한 에드가 바레즈Edgard Victor Achille Charles Varèse(1883~1965)와의 인터뷰로 진행되었다. 뒤샹이 체스를 두는 장면이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이 기록영화는 주로 전시장에서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지만, 또한 마르셀 뒤샹이 과거를 회고하면서 미국에서 시민권을 얻게 되는 과정이나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가족 소개 등이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마르셀 뒤샹의 삶과 예술세계에 대해 미술비평가인 조르주 스탬플리Georges Staempfli, 빌 코플리Bill Copley, 니콜라스 칼라스Nicolas Calas, 그리고 다다이스트로도 유명한 한스 리히터Hans Richter 등에 의한 증언이 이어졌다. 이 중 빌 코플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빌 코플리 : 사람들은 그(마르셀 뒤샹)가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아마도 그는 결국 마지막으로 캔버스를 벗어나 이 시대의 그림을 그린 유일한 사람일 것입니다. 점차로 마르셀 뒤샹은 그의 예술이 캔버스를 떠남으로써 삶이 되는 삶을 추구했습니다. 진행자 : 그래서 마르셀은 그의 삶이 그의 예술의 캔버스가 되었나요?. 빌 코플리 : 예, 그 자신의 삶으로… 주3) 이어진 다음의 주요 장면은 마르셀 뒤샹이 1902년 처음 인상주의 화풍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서 야수파인 마티스와, 그리고 세잔을 거쳐 입체주의와 미래주의까지 조금씩은 영향을 받다가 마침내 과거로부터 해방되어 이전의 미술과 존재방식을 달리하는 예술세계에 이르는 과정이 그의 초기 작품들과 함께 전개되었다. 이 중에서도 특히 마르셀 뒤샹이 입체주의로부터 자신이 어떻게 영향을 받고, 또한 이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비중 있게 다룬 것을 볼 수 있었다. 다음으로 이런 초기작품들을 전부 지금 다시 보면 당신께서는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 마르셀 뒤샹은<초콜릿 분쇄기>란 작품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작품들은 상처의 일종인 흉터와 같다, 그러나 건강한 상처… 이는 탯줄을 자르는 것과 같다. 나는 내가 참으로 이전대로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삶은 지금 시작이다. 나는 많이 해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것은 중요할 것이다. 당신 또한 공동의 통로 앞에서 고독을 선택해야 한다. 주4) 그리고 최초의 오브제인 <자전거 바퀴>라는 작품이 화면에 등장하면서 이에 대한 뒤샹의 말이 나온다. 다음 장면은 그 유명한 ‘소변기’가 전시되지 못한 상황에 대한 뒤샹의 증언이 이어졌다. “심사위원회에 의해 어떤 것도 결정 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색정적 경향의 포르노를 제외하고는 그런 일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주5) 이어 <왜 재채기를 하지 않지?>라는 작품에 대해 묻자, 자세히 설명하는 대목이 나온다. 뒤샹 : 설탕과 새장이 함께 있는 것이 바로 <왜 재채기를 하지 않지?>라는 작품이다. 나는 당신이 설탕 조각과 재채기 사이에 아무런 연관이 없기 때문에 타이틀의 이상함을 발견하리라 확신한다. 게다가 그 설탕은 설탕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그것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다른 것이다. 당신이 그 새장을 들어보면 예기치 않은 무게에 깜짝 놀라게 된다. 또한 (새장)구석에 있는 온도계는 대리석의 온도를 측정하고 설탕이 아님을 입증한다. 등등… 이 작업은 내가 1923년에 했던 일이며, 그것이 내가 관심을 가졌던 부분이다. 진행자 : 당신은 사람들을 조롱하는 것을 시도하였습니까? 뒤샹 : 아니다. 나는 무엇보다 나 자신을 조롱한 것이다. 그것은 자발적인 재채기가 아니기 때문에 왜 재채기를 하지 않지? 와 ‘재채기’란 관념 사이에는 역설이 있다. 왜 재채기를 하지 않지? 왜냐하면 우리가 재채기를 내가 마음먹은 대로(의도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문학적인 표현이다. 나는 진부하고 어리석게 보이더라도 문학적으로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충분할 것이다. 대리석의 차가움이 거기에 있을 때… 그것은 실제 차가움이 아니라 차가움의 대한 관념이다. 주6) 그리고 <큰 유리>라는 작품 앞에서 걸어 나오는 장면과 함께 이 작품의 제작 과정에 대한 마르셀 뒤샹의 설명이 이어졌다. 주7) 기록영화가 거의 끝나가는 부분에 이르자, 화면 첫 머리에서 화두로 제시된 말에 대한 뒤샹의 말이 자막으로 나왔는데, 이 말은 죽는 날까지 평생지기였던 만 레이의 말을 한 단계 더 변형시킨 말이었다. 문제가 없으므로 답도 없다. 나는 이 말을 매우 흡족하게 여긴다. 만 레이는 이를 다르게 제안했다. 문제는 없다 다만 답이 있을 뿐이라고. 이러한 만 레이와 뒤샹의 말은 마치 신수神秀(606?~706)와 혜능彗能(638~713)의 유명한 일화를 연상케 한다. 주8) 이어 진행자가 “당신이 언짢게 생각할 것을 알지만 나는 당신께 마지막 질문을 할까요?” 라고 하면서, “나의 느낌은 우리가 예술가와 함께 이 영화를 시작했지만 철학자로 끝났다”고 하자, 뒤샹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철학자는 좋은 낱말이다. 그러나 그 말은 신중하게 언급되어야 한다. 모든 교육, 학교, 제자에 대해, 나는 아직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나는 항상 생각한다. 또한 “예술은 무엇보다 사기다”라는 브랑쿠지의 말이 나의 결론이다. 여기에다 나는 또한 예술은 신기루와 같다는 생각을 덧붙이게 된다. 나는 한 개인으로서 사람으로서 예술가를 믿는다. 그러나 예술은 신기루다. 주9) 마지막 부분에서는 나중에 따로 추가한 부분인 듯, 뒤샹이 죽고 난 뒤 1969년에 공개된 <에탕 돈네(주어진 것)>란 작품이 소개되는 장면이 나왔다. 이 기록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뒤샹의 다음과 같은 말이었다. 뒤샹 : 예술가인가 예술가가 아닌가, 우리들은 우리의 동료들을 도울 수 없다. 각각의 개인은 그 자신을 스스로 꾸려가야 한다. 나는 미래의 개미탑 사회를 믿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난파선처럼 각각의 개인을 믿는다. 진행자 : 마지막 말입니까? 뒤샹 : 그렇다. 주10) 3. “우리는 아직도 마르셀 뒤샹을 모르고 있다.” 이 말은 지난 1985년 김성배 선배님이 수원에서 다른 지인들과 함께 일본에서 간행된 『뒤샹과 카반느와의 대화』(*2002년에 『마르셀 뒤샹 -피에르 카반느와의 대담』이란 제목으로 이 책이 처음 국내에서 출간됨)를 직접 수고로 번역하면서 책 표지에 쓴 말이다. 나는 이 복사본을 통해서 마르셀 뒤샹의 작품 세계를 심층적으로 들여다보게 되었고, 비로소 현대미술의 특성을 이해하는 단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주11) 그리고 이번에 다시 한 번 마르셀 뒤샹의 ‘정신적 지층a mental stratum’을 탐구하는 것이 목적인 이 동영상을 통해 마르셀 뒤샹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다. 이 기록영화는 철저하게 뒤샹이란 한 현대예술가의 삶과 작품세계에 초점을 둔 것이지만, 매우 의미 있는 자료로 보인다. 특히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의 주요미술사조와 이러한 여러 경향들을 모방한 마르셀 뒤샹의 초기 회화의 비약적 변천과정과 1910년대 초반에 이르러 결국 이러한 모방적 경향에서 벗어나 전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미적 가치에 대한 근원적 성찰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뒤샹의 생애에 집약된 이런 비약적이고 획기적인 변천과정은 현대미술의 태동과정을 이해하기에 매우 좋은 자료인 것이다. 이러한 예로 이 기록영화에서 뒤샹은 반복적인 예술활동보다 체스 두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체스는 침묵의 학교다.”는 말을 들 수 있으며, 또한 “반예술은 예술이 아닌 그 무엇이므로 예술이다.” 라는 금언을 꼽을 수 있다. 그러므로 마르셀 뒤샹의 예술과 삶을 이해하는 길은 단지 현대미술이란 영역의 이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한 텍스트이자 통로이며, 이런 차원에서 뒤샹의 삶과 예술은 여전히 의미 있는 화두가 될 수 있다고 본다. 2009년 11월 20일 도 병 훈 <각주> 주1)이 기록영화를 찍을 당시 마르셀 뒤샹은 75세였다. 주2)"There is no solution because there is no problem." 주3)People say he didn't paint for many years, That's not true. Perhaps he's the only who realised that in this century painting has finally left the canvas. Gradually, Marcel pushed it to a point where his art left the canvas to become life. So his life become the canvas of his art? Yes, his own life… 주4)And now, Marcel Duchamp, what do you think when you see it all again? It is like a scar, s sort of wound, but a healthy wound… It is like cutting the umbilical cord. I do not think I really lived before that. My life starts now. I might not do much, but it will be important. You also chose solitude, before the collective path. 주5)Since nothing was supposed to be judged by a jury there was no reason to reject such work, except in cases of eroticism or pornography. 주6)I am sure you find the title odd because there is no connection between the pieces of sugar and sneezing. What's more, the sugar isn't made of sugar. It's made of marble. So it's something else. When you lift the cage you're surprised by its unexpected weight. There's also a thermometer in a corner for measuring the marble's temperature to prove it's not sugar, and so on… That‘s what interested me in this work which I did 1923. Were you trying to poke fun at people? No, I was poking fun at myself most of all. There is a paradox between the notion of sneezing and why not sneeze since sneezing is not a voluntary act. Because we can not sneeze at will. That was the literary aspect. I say literary although it sounds trite and silly. But it will do for now… There's the coldness of marble… It is not literally cold but there's the idea of coldness. It allows for all sorts of associations… The more, the better. That is what I meant. 주7)이 작품은 율프 린드라는 사람이 재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8)신수가 “몸은 보리의 나무요,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은 것, 때때로 부지런히 닦아서 먼지가 끼지 않게 하라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勤拂拭 勿使惹塵埃.”는 게송을 지었을 때, 혜능은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 또한 틀이 아니더라,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어디에 티끌이 끼일 것인가?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라고 말했다. 주9)진행자 : I know you hate giving advice but may I ask you one last question? 뒤샹 : What is it? 진행자: My impression is that we started this film with an artist but we've ended it with a philosopher. 뒤샹 : Philosopher is a nice word but it has to be treated with caution. All that is teaching, school, followers, never interested me and still doesn't. I always thought, or rather I came to the conclusion that, as Brancusi put it, "Art is above all a fraud." I'd add that it's a mirage as well. I believe in artists as persons, as individuals. But art is a mirage. 주10)Artist or not, we can't help our fellow men. Each individual fends for himself. I don't believe in the anthill society of the future. I still believe in the individual and every man for himself, like shipwreck. -Is that the final word? -Yes. 주11) 미대 재학 중이던 1985년에 발간한 『현대미술연구』란 소책자에「마르셀 뒤샹의 샘에 대한 소고」라는 글을 실었는데, 당시 그에 대한 변변한 텍스트 한 권 구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쓴 것이었다.
http://www.sonahmoo.com/1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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