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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2 (12:3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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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번쩨            .호스트(Hal Foster)

           

                       抵抗의 포스트 모더니즘

 

     [68년을 증오하며, 그 否認을 정당화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상징계나 상상계에 속한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68년은 결코 상징계나 상상계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순수한 현실계가 침입해 온 것이 68년이니까 요](돌즈의 [기호와 사건]). 카운터. 칼츄가 넘실거리는 레이드.시크스티-즈에는, 일례로, 우드 스토크에서 짐.헨드로크스가 인간의 청각을 폭격하는 현실계의 노이즈를 侵食시키려고 했다. [상상의 공동체]를 유지하는 상징으로써의 [성조기여 영원하라], 전자기-타로 구기는 것과 같은 짓이다. 그런데, --71년의 [Won’t Get Fooled Again]에서 불렸던 것과 같이, 70년대에 들어 가면, 카운트 칼츄에 의한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에는 더이상 속지 않겠다는 의지가 스며 있다. -코가 [性의 역사]의 제1권에서, 섹슐알티는 [억압에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권력의 도구가 될 수 있는 可態性이 크다는 것을 논했던 것이 78, 그와 같은 해에는 쟈.-글즈가 [호텔.칼리포로니아]에서, 사라저 가는 현실계의 아쉬움을, [We haven ‘t had that spirit here since nineteen sixty nine’. And still those voices are calling from far away’ 라고 노래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70년대 후반에 비판가로써의 자신을 만들어 가고 있었던 할.포스트가 [현실계의 회귀] (The Return of the Real), 레이트 식스티-즈에 발표한 카운터.칼츄어의 소리는, 그 스프릿이 [상실된 때]안에서 다시 그것을 찾아 내고저 했던 것인지는 알수 없다. 아니, 미술비평가 호스트- 에게 현실계의 침입이란 레이트.식스티-즈의 카운터 칼츄 보담 오히려, 20세기 초두의 아반가르드라고 하는 카운터.칼츄에 있는 것 같다. 허나 그것의 어느쪽이던 먼데서 들려 오는 카운터.칼츄의 소리를, 이 현재에서 노스탈지어로서가 아니고 다가 오는 것으로 듣고저 했을 때 ----  [꿈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69 노스탈지어로서는 체울 수 없는 러브]Love Psychedelico<노스탈직69’>2001) --- , 포스트의 저작에 끌리는 것이 있는 것은 어쩐일인가. 그것은 아마도 미술비평가 속에서도 호스트-가 가장 명확하게, 끝임없이 저항의 의지를 나타내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그가 생각하는 현대미술史란, 스타일이 순차적으로 바뀌는 平板한 역사가 아니고, (과거로 후퇴해 갔던 사건(아반가르드)이 미래에서 회귀해 오는 것 같은 현재를 조직하는)라고 하는 비틀어진 시간의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한 시간에서는 [반동적인 힘이 아무리 멀리 나아가드라도, 또는 힘의 반동화가 아무리 깊은 것이라 하드래도, 반동적인 힘은 회귀하는 것이 아닐까. 볼품없이 적은 반동적인 인간은, 회귀하지 못할 것이다](돌즈의 (-체와 철학)이 라고 하는 희망을 지우지 않고 지날수 있다.

 

    호스트가 [反美學][序文]에서, [저항의 포스트모더니즘][반동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립시켰던 것은 비교적 잘 알려저 있다. [오늘날의 문화의 정치정세에서는, 모더니즘을 탈구축하고, 현상에 저항할려고 하는 포스트모더니즘와, 모더니즘을 거절하고 현상을 찬양하는 포스트모더니즘와의 근본적인 대립이 존재하고 있다]라고 하는 底意다.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에 유-토피아를 보는 모더니즘에는 복귀하지 않는다. 그러나, 저항의 희망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세계에서도 저항의 희망을 단념해서는 안된다. 이와 같은 끝이 없는 [저항의 실천], [視覺論][서문]에서도 이어저 있다. 그기서 호스트는 [어떻게 사물이 보이는가, 어떻게 볼수 있는 것이 가능한가, 허용되며 강제되는가]를 물어 가는 프로그램, [보이는 것과] [보는 것을] 자명한 것으로 보이게 하는 [視의 제도]에 저항하는 프로그램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허면, 어떤 저항의 원리를 호스트는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저항의 실천]은 性差나 민족이나 도시나 미술관이나 미디어나 테크노로지-등의 복수의 場에서 진행하고 있는바, 아마도, 90년대의 호스트가 [치명적인 매력]을 느끼고 있는 저항의 원리는, -리얼리즘이 침입시킨 현실계의 섬듯한 反復强迫일것이다. 이미 [반미학]에서도, -리얼리즘이라고 하는 카운터 칼츄가 포스트 모더니즘의 예술속으로 회귀한다고 씃던 호스트는 [강박적인 미 (Compulsive Beauty)]에서 슈-리얼리즘의 저항의 원리를 읽고 있었다. 섹슈얼리티에 의한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노래 부르는 공식적인 슈-리얼리즘이 아닌, 섬듯한 반복강박에 의해 침입된 [안쪽의] -리얼리즘. 도라우마성의 숏크를 계기로, 현실계의 반복강박을 침입시켜 버리는 망각된 슈-리얼리즘이다. 호스트에 의하면, [안쪽의] 슈리얼리즘의 망각된 [기원], 의학생이었던 젊은 프루스트가 제1차세계대전중에 신경정신과 병원에서 [스처 지나간] 시엘숏크환자들 참호전의 포탄의 굉음과 진동에 의해 도취감을 맛보는 한편, 숏크를 지속적으로 받은 결과 손발이나 안면의 경련이 그치지 않는 [자동인형]이나, 악몽을 되푸리하여 보게 되는 [기계]과 같이 되버린 병사들 의 반복강박에 있다. 이 망각에 반발하여 현실계의 반복강박을 침입시킨다는 저항의 원리는, 물론 누구든지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그 과혹에서 벗어날수 있는 것은, 섬듯한 것을 여성에 투영시키는 섹시즘에 기울어 지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공식적인 슈-리얼리즘을 품은 해방의 모더니즘이나, 무엇이든지 있다風의 [반동의 포스트모더니즘]이 망각을 지속해 오던 현실계의 반복강박은, [저항의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장 근원적인 저항의 원리이며, 호스트-는 그기에서 미학.비평의 최대의 특이점과 저항력을 찾아 내려고 한 것이 아닐까. 그러한 때, 1차세계대전의 戰場을 [原音響]으로 삼고, 이를 억압함과 동시 회귀시켜 왔던 롯크음악을 호스트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약력: .호스트는 1980년대 후반, [反美學- 포스트 모던의 諸相]의 편자로써 일본에 널리 알려젔었다. 또한 저서,   [기록-예술, 스펙트클, 문화의 정치]나 편저 [시각론]으로 합중국의 비평계에서 영향력을 강화한 호스트는, 코넬대학 준교수 이어 동대학의 교수(미술사.비교문학)에 취임하고, 주저 [강박적인 미][현실계의 회귀]를 출판. 현재는 프린스턴대학교수(미술사)로써, 또한 잡지 [Art in America]의 수석편집자로 활약하고 있다.

주저: Hal Foster, Gordon Hughes, and B.H.D. Buchloh(eds), Richard Serra,2000, October Files, MIT Press.  Hal Foster and Richard Cluckman, Space Framed: Richard Cluckman Architect,2000, Monacelli Press.  Hal Foster, Paul Shimmel, and Robert Gober,1997, Charta.     The Return of the Real,1996 MIT Press.   Compulsive Beauty, 1993, MIT Press. Hal Foster(ed), Discussion in Contemporary Culture,1987, Bay Press.    Hal foster, Recording, Spectacle, Cultural Politics, 1985, Ba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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