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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0 (11: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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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번쩨       한스. 벨딩(Hans Belting)       

 

                    미술사의 파라다임 쉽트

 

   19세기 후반의 유-럽을 지배했던 키-워드의 하나를 든다면, [發展]인 것일까. 다짐하거니와, 년대를 몇 개 복습해 두자. 1848년의 [공산당선언] 발표에 이어, [자본론] 일권 간행이 1867, 한편 [종의 기원] 1859년이다.

 

     미술사에서 말해 본다면, 뷀프린의 처녀작 [르넷상스와 바로크] 1888년으로 [고전미술] 1899. 역사는 일어난 일들의 무작위한 나열이 아니고, 그기에는 질서와 의미가 있다, 라고 하는 사상이 매력적이 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20세기 후반의 知的營爲의 적지 않는 부분은, [발전]이라고 하는 사고법의 속박에서 벗어 나려고 한 것이다. 예를 들어 보면, 그레골리.베이드손 ([정신과 자연])이나 다니엘. C. 데넷([다윈의 위험한 사상])등의 이름을 들어 보면 알것이다.

 

     미술사의 틀안의 [발전]을 비판하는 벨뒹의, 배경을 확인해 두는 것도 무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30대에서 40대에 걸처 벨뒹은 비쟌틴미술이나 서구중세미술에 관한 모노그라프를 연이어 세상에 물었다. 여하튼, [고고학적]이라고도 평할 수 있는, 정치한 수순을 밟은 저작이었다. 비쟌틴과 서구의 중세미술과 변행하여 연구했던 것은, 그에게 무엇을 안겨 주었을까.

 

    비쟌틴의 양식은 6세기 전후에 확립되어 그 이후 15세기의 제국멸망까지, 그렇게 크게 변화하는 일은 없었다. 특히 8,9세기의 이코노크라슴(聖像破壞運動)기의 의론을 거처, 비쟌틴화가들은 입체적인 인체파악, 깊이 있는 공간묘사를 단념하고, 2차원성안에서 聖性의 顯現을 지향했다. 로마네스크, 고씩, 르네상스로 이어지면서 바로크에 이르는 서구미술과 같은 [발전], 비쟌틴미술이 갖지 못했던 서구(서양이 아니다!)미술의 연구자, 내지 애호자의 눈에는 천년 바뀌지 않는 양식을 지닌 비쟌틴미술은, 이상하게 보이는 것 같다. 뷀프린류의 양식사에 이의를 제기하고 사회사적미술사나 수용미학의 방법론을 모방하는 연구자는 적지 않으나, 비쟌틴연구에서 출발한 뷀딩은 서구의 양식[발전]이라고 하는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웠다. 서구를 상대화할 수 있는 視点을 스스로 갖게 되었다고나 할까.

   

  생물과 같이, 미술도 [成長, 成熟, 衰退]의 순환과정을 갖는다. 양식은 유기적, 자립적으로 발전한다. 한때 자명한것으로 여겼던 이 모델은 어쩌면 본질적으로 서구적인 것이다라고 할수 있다. 벨딩은 이러한 파라다임의 기원을, 바자리와 달리 비판한다. 그렇다면, 라고 당연히 이어갈것이다. 미술사가 단순한 작품의 나열이 되지 않기 위해서 어떤 시점이 필요한가, 라고. [직선적인 발전사가 아니고, 무엇이 이미지를 만드는가, 무엇이 그 이미지를 특정한 시점에서 납득이 갈 수 있도록 [진리]의 像이 되도록 하는가. 라고 하는, 줄곧 새로운 문제의 항상 새로운 해법의 역사]가 그의 모범 답이다.

 

벨딩의 방법을 [사회사적미술사]라고 요약해 버리는 것은 너무 안일한 짓이다. 이론주장형이 아니고, 오백페이지, 육백페이지를 넘는 大著를 多産하는 그의 입장의 하나를 지적한다면, 그건 []이란 점이다. 우선 [중세에 있어서의 상과 그 관자](1981)에서는, 그리스도수난과 관계되는 특수한 도상을 만들어 내어서 그 典例상의 기능, 사회사적 역할을 논한다. 하나의 도상을 축으로, 비쟌틴과 서구, 중세말기와 르네상스가 연속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바자리, 뷘겔만, 뷜프린으로 이어지는 양식사관에서 강조해 오던 단절이, 여기서는 가법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극복된다. 이어지는 [상과 예배](1990)는 그 응용편으로, [<미술의 시대>이전의 상의 역사]라고 하는 부제하에, 17세기까지를 시야에 넣은 비쟌틴과 서구의 미술을 논한 것이다.

 

20세기의 2,30년대에, 祈念像이란 장르를 파노프스키등이 규정해 보여 쥤다. 피에타상을 중심으로 [기념]이란 기능을 읽으 냈던 것이나, 이 제법 과다 이념적인 개념을 역사성속에서 전개하려고 한 것이, S. 링그봄의 [이콘에서 나라티브로](1965)였다. 그러나 링그봄은 비쟌틴의 作例를 시야에 넣치 안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서구적인 [발전]의 선을 강조하는 것이 되 버렸다. 벨딩의 二著는, [이콘적인 것][나라티브적인 것]의 상극을, 살아 있는 사회속에서, 발전사적 틀에 떨어지지 않고 잡아 낸 것이다. [이콘][나라티브]의 對槪念은, 현대미술을 생각할때도 중요할것이다. 임달이 주장하는 [이코닉]란 개념도, 벨딩의 []을 거처야만 이해가 간다.

 

文學의 분야에서 [발전]을 바뀌 말해 본다면, [因果律]이란 것이 된다. 바람이 불어서 통집이 돈을 번다. 원인과 여기에 수반하는 결과가 있어, 이야기의 줄거리가 이루어진다. 우리들은 이러한 인과율안에서 안심하고 이야기를 향수할 수 있었다. 소설가들이 이러한 인과율을 약간 불편하게 느끼기 시작한 것도 19세기 후반의 일이다. [무상의 행위]를 엎고 나와서 인과율을 반역하기 시작 했다. 짓드의 [사슬을 벗으난 프로메듀-]가 뷀프링의 [고전미술]과 같은 해에, 라고 하는 것은 매우 시사적이다. 소설가가 화가보담 시대에 예민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세기전환기에 보였던 쟈포니즘나 비쟌틴.리버이블의 동향은 미술에 있어서의 [서구모델]로부터 탈피하려는 예술가의 자각적 시도였다.

 

그러나 그런 한편에서 간딘스키나 몬드리언, 크레-등의 畵業을, 르네상스이래의 발전사속에서 자리잡아서 기술하는 것도 가능한 일일 것이다. [像과 禮拜]이후의 대저, [보이지 않는 명작: 미술이란 근대의 신화](1998), 19세기부터 동시대까지의 미술을 발전사관에서 자유롭게 논했었다. 벨딩류의 스리링한 [槪說]이다. 그리고 최신작이 [상의 인류학: 像 의 學과 관련된 구상]. 앞서 벨딩의 手續을 고고학으로 말했지만, 사람의 얼굴이란 []개념을 고금동서의 시각문화에 적용하여, 서구를 상대화 하려는 그의 방법은, 바로 인류학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것이다. 뷜프린이나 파노프스키의 [解毒劑]로써 邦譯이 기대되는 바다.

 

 약력: 1935년 독일태생. 하이델베르그 대학 교수, 뮌헨대학정교수를 거처, --. 뉴미디어대 

학교수. 비쟌틴미술(후기에 관한 저작 중심), 초기에서부터 고씩에 이르는 서구중세미술

(이태리의 성당의 모노그라프 수점 이외), 르네상스미술(판 아이크나, 죠반니.베르니니)

저서, 논문은 多岐에 걸처 무수하다. 20세기 미술에 관해서는 막스 베그만을 위시하여 시

그마.볼께, 도니--, -마스 슈톨등의 모노그라프를 저술하고 있다.

 

주저: [미술사의 종국?] 일본역. 1991.    [독일인과 독일미술: 난삽한 유산] 1998

      Das illumnierte Buch in der spartbyzantinischen Geselshaft, Heidelberg 1970

      Die Oberkirche von Sanfrancesco in Assisi. Ihre Decoration als Aufgabe und die Genese

      Einer neuen Wandmalerei, Berlin 1977 및 기타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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