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 8816
2009.11.04 (17:07:25)
extra_vars1:  ||||||||||||||||||||| 
extra_vars2:  ||||||||||||||||||||||||||||||||||||||||||||||||||||||||||||||||||||||||||||||||| 
아래 글은 『불완전성-쿠르트 괴델의 증명과 역설』(2007년, 승산)을 읽고, 지난 2008년 1월 22일에 썼던 마르셀 뒤샹의 말과 불완전성 정리를 다시 수정 보완한 글입니다.




불완전성 정리와 마르셀 뒤샹의 삶과 예술


1.
비인의 논리학자들은 어떤 체계를 엮어낸 것인데, 내가 이해한 바에 의하면 모두 토털로지 tautology 말하자면 전제의 반복입니다. 수학에서는 매우 단순한 정리定理에서 복잡한 정리로 나아가는 데 모든 것은 최초의 정리 속에 들어 있습니다...(중략)...이 블랙커피만 제외하고...(후략)

위 글은 마르셀 뒤샹(1887~1968)이 생을 마감하기 2년 전인 1966년 피에르 카반느와의 대담 중, 신을 믿느냐는 질문에 답하면서, “나는 그대들에게 일요일의 꿀벌들의 삶에 대해서 언급하고 싶지 않다. 안 그런가? 그것은 같은 말이다. 당신은 비인의 기호 논리학자들의 이야기를 아는가?” 라는 말을 카반느에게 되물으며 스스로 대답한 말이다.  
위 글 서두에서 마르셀 뒤샹은 비인의 논리학자들(*선도적 옹호자는 다비트 힐베르트였다. 당시 힐베르트를 중심으로 한 비인 논리학자들의 과제는 형식주의formalism 수학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수학의 영역에서 논리적으로 모순 없는 형식 체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힐베르트의 가정이었다. 따라서 그들에게 수학만큼 확실한 진리체계는 없었다)의 형식주의를 언급하면서 이와 다른 세계의 표상으로서 감각적 지각의 세계인 블랙커피를 예로 들고 있다.
이 대담 부분과 관련, 최근에 출간된 『불완전성-쿠르트 괴델의 증명과 역설』을 읽으면서 그 역사적 배경을 좀 더 소상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괴델의 삶과 학문의 양극적 괴리를 알게 되면서, 마르셀 뒤샹의 삶과 예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2.
1916년 합스부르크 왕국이 무너지고 뒤이어 제1차 세계대전이 종결되는 과정에서 오스트리아의 도시 비인(빈)은 정치적 영향력은 쇠퇴했지만 사상적 ․ 문화적 측면에서 당시 유럽문화의 용광로 역할을 하던 곳이었다. 당시 그곳에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수많은 독창적 사상가들과 예술가들, 곧 과학자, 음악가, 시인, 화가, 철학자, 건축가들이 모였는데, 모두 분야를 넘어 공통의 관심사를 논의하는 대화와 토론의 장에 참여했다고 한다.
토론의 전반적 주제는 윤리적 및 지적 죽음 그리고 다가 올 모든 것의 붕괴였고, 이에 따라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기초와 체계와 방법론을 논의했으며, 새롭고 다양한 문화를 꽃피운다. 그 예로 테오도르 헤르츨이 주도한 시오니즘 뿐 아니라 이와 가장 극단적인 나치즘도 여기서 태동하였고, 프로이트의 무의식, 억압, 히스테리, 노이로제에 관한 이론을 펼친 곳이기도 하고 클림트, 실레, 코코슈카 등의 분리파들이 관능적인 그림을 그렸으며, 쇤베르크와 알반 베르크는 무조주의 음악을, 아돌프 로스는 오직 기능적인 형상을 가진 새로운 건축을 선보였다.

비인에서의 토론의 장은 카페와 서클을 중심으로 일정한 주제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하는 것으로 펼쳐졌는데, 수많은 서클들 가운데 모리츠 슐리크를 중심으로 한 서클이 두각을 나타낸다. 바로 논리실증주의logical positivism라는 사조가 바로 이 서클에서 활동한 사람들로부터 유래했다. 논리실증주의는 ‘모든 철학적 경향을 제거하려는 철학적 경향’이었다.
마르셀 뒤샹이 위의 대화에서 말한 빈의 논리학자들은 바로 이 논리실증주의자들을 말한다.  극단적 엄밀성으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한다” 주1)는 주장으로 언어 안에서 언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거부한 비트겐슈타인의『논리철학논고』주2)도 이 빈 서클의 사고에 큰 영향력을 미친다. 그는 “철학적 저술들에 나오는 대부분의 명제와 질문들은 오류가 아니라 무의미하다.”고 보고 수학적 명제 역시 논리학의 명제와 같이 아무런 사실도 나타내 주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처럼 비트겐슈타인은 어떠한 수학적 발견도 철학을 발전시킬 수 없다고 보았으며, 이런 시각에서 20세기 최고의 수리 논리학자로 꼽히는 쿠르트 괴델(1906~1978)의 불완전성 정리도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의 철학도 결론적으로 말해서 쿠르트 괴델과 생각과 다르지 않다.

쿠르트 괴델도 이 논리실증주의자의 모임에 참여했지만, 사실 그는 논리실증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훗날, “모든 유의미한 생각은 감각지각sense perception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실증주의자들의 생각에는 근본적인 오류가 있다고 말했다.
괴델은 오로지 수학적 접근과 증명을 통해 20세기 사상 획기적인 의식의 전환점인 ‘불완전성 정리Gödel's incompleteness theorems’를 통해 수학의 모순성을 밝힌다.  

괴델이 ‘불완전성 정리’를 발표한 것은 24살 때인 1930년 10월이었다. 그의 논문은 어떤 수학적 결론은 증명될 수 없다는 사실, 곧 수학이 어떤 공리를 채용하든 증명될 수 없는 진리가 항상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그의 증명은 한 해 전에 마쳤던 박사 학위 논문의 요약이었는데, 완전성과 확실성을 전제로 한 수학적 논리, 즉 논리적 진리를 전제로 한다. 수학자·철학자·논리학자들의 모임인 쾨니히스베르크 학회가 발표 장소였다. 괴델은 학회의 마지막 날에 자신의 연구 결론을 아주 짧게 이야기했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는 ‘제1정리’와 여기서 딸려 나오는 ‘제2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제1정리의 결론을 요약하면, ‘모순 없는 수학적 형식체계가 있다고 할 때, 그 체계 안에는 참이면서 동시에 증명이 불가능한 명제가 존재한다.’ 이다. 이 결론에서 따라 나오는 제2정리는 이렇다. ‘체계의 무모순성은 그 체계 안에서는 증명할 수 없다.’

논리적 진리란 ‘항진명제’를 말한다. 예컨대 “모든 아름다운 꽃은 아름답다.” “모든 타당한 논증은 타당하다.” 라는 문장을 들 수 있다. 즉 어떤 대상이 P와 Q라는 두 술어의 특성을 갖는다면 그 중 하나의 술어를 가진다는 것이다. 마르셀 뒤샹이 수학적 정리를 동어반복으로 본 것은 이 때문이다.
이를 논리학 기호법으로 표현하면, 임의적인 개체를 가질 경우, x나 y와 같은 변수를 사용하고, 특정의 개체를 가리킬 경우는 a나 b와 같은 상수를, 개체의 성질은 P나 Q같은 술어상수를 사용한다. 이처럼 가장 간단한 표현은 어떤 개체에 어떤 성질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며, P(a)로 쓴다. 그러므로 “모든 개체는 P라는 성질을 가진다”는 (x)P(x)로 쓰고, “모든 x는 P 이다”라고 읽는다. 또한 어떤 대상이 두 가지의 특정한 술어를 가지면 당연히 그 중 하나의 술어를 가진다는 말은 기호로는 다음과 같이 쓴다.
(x)는 ((P(x) and Q(x)) → Q(x)) (*“모든 x에 대해서, x가 P란 성질을 갖고 Q란 성질도 가진다면 x는 Q란 성질을 가진다”로 읽음)
수학은 이처럼 서술적 내용을 기호로 표시하는 것으로, 일관성consistency과 완전성completeness을 전제로 한다. 먼저 일관성이란 어떤 수학 시스템에서 p가 참이면 p의 부정은 거짓이 되는 것을 말한다. 또한 완전성은 한 시스템에서 참인 모든 명제들이 증명가능 한 것을 말한다.
그러나 쿠르트 괴델의 제1, 제2불완전성incompleteness 정리는 위와 같은 수학의 형식체계에서 틈을 발견한 것이다. 형식체계 안에서 참된 산술명제들 모두는 증명할 수 없으며, 형식체계의 내적 무모순성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괴델의 논리는, ‘지금 이 문장은 거짓이다.’는 '거짓말쟁이 역설liar's paradox'과 같은 모순 명제를 떠올리게 한다. ‘지금 이 문장은 거짓이다.’ 라는 명제는 '지금 이 문장'이 바로 명제 자신을 가리키므로 자기참조self-reference가 나타난다. 이 명제는 참도 거짓도 될 수가 없는 모순 명제이다. 참이라면 자기가 거짓이라고 한 명제가 참인 것이 되므로 모순이고, 거짓이라도 해도 역시 해당 문장은 거짓이 맞으므로 명제가 다시 참이 되어버려 모순이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는 이러한 모순 명제가 근간인데, 대략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이 문장은 이 체계 안에서는 증명 불능이다”에서, ‘이 문장’을 ‘G’라고 할 때 다음과 같은 명제가 성립한다. “G는 이 체계 안에서 증명할 수 없다”라고 한다면, G의 부정은 정반대인 다음의 명제가 된다. “G는 이 체계 안에서 증명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명제는 결론부터 말하면 ‘참’이면서 ‘증명불능’이다. 그 까닭은 다음과 같다.
만약 G를 증명할 수 있다면 G의 부정은(스스로 증명할 수 있다고 말하므로) 참이다.  
그런데 만일 어떤 명제의 부정이 ‘참’이라면 명제 자체는 거짓이므로, 이 관점에서 볼 때 G를 증명할 수 있다면 G는 거짓이다. 그러나 G를 증명할 수 있다면 이는 곧 G가 참이라는 뜻이다.  
이 체계가 무모순이라고 가정할 때(모순이라면 무엇이든 증명할 수 있으므로)이 증명은 이밖에 다른 것을 보여 줄 수 없다. 따라서 이 체계가 무모순이라는 가정 아래에서는, G를 증명할 수 있다면 이것은 참이면서 거짓이라는 모순이 나오며, 이런 뜻에서 G는 증명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이 체계가 무모순이면 G는 그 안에서 증명할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G의 내용 그 자체이므로 G는 참이다. 그러므로 G는 ‘참’이면서 ‘증명불능’이며, 바로 이러한 정리가 불완전성 정리의 핵심이다. 주3)
이처럼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는 가장 확실하고 객관적 지식으로 여겨 온 수학조차 어떤 체계가 안주할 확고부동한 근거는 있을 수 없다는 것으로, 하이델베르크의 불확정성uncertainty 논리와 함께 서구 지성사의 한 획을 긋는 이론이 되었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1930년을 전후로 수학과 과학적 지식의 본질적인 한계를 입증한 양대 이론이다. 불완전성의 정리의 핵심은 무(無)모순성과 완전성을 동시에 갖춘 수학 체계를 만들 수 없다는 점이다. 수학 체계의 무모순성을 유지하려면 증명할 수 없는 정리가 나타나 완전성이 무너지고, 모든 정리가 체계 내에서 증명되는 완전성을 이루려면 모순이 발생한다는 것이 불완전성 정리이다.
불확정성의 원리도 이와 유사하다. 미시 세계에서 입자의 위치를 정확히 정하려면 운동량이 결정되지 않고, 운동량을 정확히 측정하려면 위치가 모호해진다. 즉 미시 세계에서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 괴델과 하이젠베르크는 각각 수학과 물리학에서 두 가지 기준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일이 불가능함을 갈파한 것이다.
그래서 이 양 이론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함께 20세기 지적 체계를 구성하는 세 개의 기둥으로 꼽힌다. 또한 ‘불완전성 정리’로 하여 괴델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가장 위대한 논리학자’, ‘20세기 최고의 수학자’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얻었다.

사실 괴델이 불완전성 정리를 통해 도달한 결론은 비트겐슈타인의 생각과 일맥상통한다.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문장 ‘P는 증명 불가능하다’는 나중에는 상이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이 증명되기 이전과는”, “증명은 어떤(특정한) 상황에 대한 당신의 파악을 인도 한다.” “증명의 과정에서 우리가 바라보는 방식은 변화한다.…우리가 바라보는 방식은 개조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괴델과 비트겐슈타인은 동시대 같은 공간에 살면서도 서로의 의견을 교환할 소통의 기회가 없어 끝내 서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기호로 사유하는 사유의 문제점을 근원적 차원에서 통찰한 공통점이 있다.
그렇지만 괴델의 경우 어디까지나 수학의 영역 안에서 이처럼 탁월한 역설적 증명을 했다. 그래서인지 정작 이러한 역설이 의미하는 인간의 사유체계에 대한 메타적 통찰력은 부족했던 것 같다.
이는 그가 시대착오적이라 할 정도의 플라톤주의자였으며, 심지어 어처구니없게도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한 사람이었던 사실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짐작하게 된다. 또한 그가 심한 정신적 불안정 속에서 자폐적 삶을 살았음을 통해서도 학문과 실존이 극단적으로 분리된 삶을 살았음을 알게 된다.
1940년대 들어 괴델이 천신만고 끝에 비인을 탈출하여 미국에 망명했을 때, 누가 비인의 소식을 묻자 괴델은 “커피가 맛을 잃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러한 답변은 앞의 마르셀 뒤샹의 대화를 다시 생각하게 하지만, 이후 그 자신의 삶 역시 맛을 잃은 커피에 비유할 수 정도로 어이없는 삶을 살았다.  
미국에 도착하여 프린스턴대학의 고등과학원에 정착한 괴델은 같은 처지의 아인슈타인과 유일한 우정을 나눴지만, 1955년 아인슈타인이 죽고 난 뒤 철저한 자폐 상태에 빠졌다. 말년의 괴델은 세상이 자신을 없애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했다. 1978년 1월14일 비극적인 삶을 마감했을 때 그의 몸무게는 겨우 30㎏. 사인은 성격장애로 인한 영양실조와 굶주림이었다.
반면 마르셀 뒤샹은 <큰 유리>작업을 마친 1923년 이후 마치 선승禪僧처럼 평생 유유자적하게 살다 타인의 죽음인 듯, 삶을 마감한다. 모국인 프랑스에선 변변한 개인전 한 번 제대로 못했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그는 자신이 말한 것처럼 일하는 것보다 숨 쉬는 것을 좋아하며 살았던 것이다. 이처럼 이들의 삶과 죽음은 극적으로 대조적이다.

수리논리학에서의 쿠르트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와 또 비트겐슈타인의 논리, 마르셀 뒤샹의 대화 내용은 서로 전혀 다른 맥락 속에서 성립한 것이지만, 학문(사상), 예술과 삶에 대해 메타적 차원에서 생각하게 한다. 특히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는 궁극적으로 불완전성이 세계의 ‘실재’이며 ‘절대적 완전성’ 이 허구임을 방증하는 메타언어이기 때문이다.  
사실 뒤샹은 이미 1910년대부터 수학이라든가 과학적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있었다. 이는 주로 푸앵카레라는 수학자나 퓌토 그룹을 통해서였다. 주4) 특히 퓌토 그룹의 주요 주제 중의 하나가 수학이나 4차원 문제였다. 이 모임을 통해 뒤샹은 일상적 이해와는 전혀 다른 차원을 알게 된다. 바로 이러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마르셀 뒤샹은 완전성을 전제로 한 수학적 공리와 형이상학이나 일상적 문화란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본 것이다.
이러한 근원적 인식과 함께, 뒤샹은 1912년, 독립전에서 <계단을 내려오는 나체>의 출품 거부 사건 통해 근대적 미적 가치에 대해 근원적으로 회의하게 되며, 이후 자신의 말을 빌리면 ‘과거로부터 완전 해방’된다.
그래서 1913년부터 뒤샹은 사실상 관습적인 그림을 그만두게 되며, 이후에는 종래의 예술작품이 성립하는 과정과 전혀 다른 어법의 작업을 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먼저 ‘측량과 시공간의 계산’에 관한 관심을 바탕으로 물리학적이면서도 우연적인 효과를 추구한 작품을 시도하게 되는 데, 이 작품이 바로 <세 개의 표준 정지기Trois stoppages standards>이다. 이 작품은 1m 길이의 실을 1m 높이에서 수평으로 세 번 낙하시켜 고정시켜 놓은 것으로, 자의적이고 우연 hasard/chance적인 새로운 길이 단위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1914년에 뒤샹은 <정지들의 네트워크>라는 그림을 그린다. 이것은 1913년에 제작한 각 표준 장치들을 세 번씩 사용하여 그린 것으로, ‘우연’의 요소를 살린 ‘철도 지도’ 같은 작품이었다. 이 그림은 후에 <큰 유리>그림의 ‘아홉 개의 능금산 주형들(Nine Malic Moulds)’에서 각 인물의 위치를 결정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러한 뒤샹의 ‘삼 세 번’ 전략은 무슨 내기를 할 때 하는 ‘삼 세 판’을 연상케 하는데, 숫자 3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완성과 종결, 또는 잉여를 의미한다. 이러한 신념의 바탕은 불교의 삼신불, 또는 기독교의 ‘삼위일체’와도 연관되는 인간의 잠재의식, 또는 신화적 사고인데, 마르셀 뒤샹은 인류 문화에 깔려 있는 이런 원형무의식을 이용해서 자신의 우연적 작품을 형성하는 어법으로 삼은 것이다.  
이러한 양상은 논증적 진리와 논증을 넘어선 예술적 세계, 그리고 삶의 특성이 논증의 문제를 넘어선 메타적 차원임을 알게 한다. 이런 차원에서도 우리는 삶에서의 논리의 문제와 예술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다.
뒤샹의 작업상의 주요 어법은 우연, 4차원적 세계, 반의미, 또는 무의미, 그리고 일종의 언어게임 등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이 모두는 형식주의 수학이나 논리적, 또는 논증적 진리에 대한 대극적 작업 방식이었다. 요컨대 뒤샹은 삶의 실존적 부조리함을 교란시키는 방법을 예술적 어법으로 삼아 유유자적한 삶을 산 것이다.      
나아가 마르셀 뒤샹은 “살아 숨 쉬는 일을 작업하는 것보다 더 좋아한다. 어쩌면 나의 예술은 산다는 것일 것이다.” 라고 말한 데서 짐작할 수 있듯, 뒤샹에게 삶의 참된 가치는 예술적, 실체적 형식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삶 그 자체의 문제였던 것이다.  

3.
어떤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이 갖는 실제적 의미를 자각하지 못하듯, 쿠르드 괴델은 자신이 발표한 불완전성 정리가 갖는 중차대한 의미와 그 파장을 자각하지 못했음을 그 이후의 불구적, 자폐적 삶을 통해 알게 된다. 이러한 쿠르델 괴델의 삶은 마르셀 뒤샹의 삶과 매우 대조적일 정도로 양극적이다. 실제로 마르셀 뒤샹과 쿠르드 괴델은 교유 관계가 있었던 것도 아니며, 다만 주로 20세기 초반에서 후반에 이르기까지 유럽과 미국이라는 시공간을 무대로 하는 동시대를 살았을 뿐이다.
물론 이 글은 수학적 엄밀성이나 논리적 사고, 또는 논증적 진리가 무용하다는 주장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실 논증적 논리를 통해 지적 엄밀성, 나아가서 논증적 진리 이상의 사실을 자각하는 것은 근현대문명의 바탕이자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찰을 통해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의 내로라하는 지성인과 예술인들이 어떤 문제를 화두로 하여 고민했는지, 또한 논증적 진리와 예술적 진리가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패러다임의 변환시기로서 20세기 초 중반에 일어났던 인류의 정신적, 예술적 비약의 과정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 정신적, 예술적 진화, 특히 마르셀 뒤샹의 삶과 예술은 6세기 신라의 원효가 <판비량론>을 통해 이전의 인도와 중국의 불교인식 논리학의 문제점을 치밀한 논리로 비판하면서, 또한 그 논리를 넘어선 ‘화쟁’론을 펼치고, 나아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都無定檢’,또는 ‘불기不羈’와 ‘무애無碍’, 즉 인습의 굴레를 벗어던진 자유인의 삶을 살았던 삶과도 비견된다고 할 수 있다.  

                      2009년 11월 4일
                            도 병 훈

<각주>
주1) 비트겐슈타인의 유명한 명제 7임.
주2) 명제 6.54 나의 명제는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누구나 결국 나의 명제들이 난센스와 같음을 알게 된다. 비유하자면 나의 명제들은 그보다 위로 올라가려면 딛어야 할 계단이기는 하지만 일단 오른 다음에는 걷어버려야 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주3)제1불완전성 정리는 “수론에 적합한 어떤 형식체계나 결정불능의 식, 곧 그 자체는 물론 그 부정도 증명할 수 없는 식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제2불완전성 정리는 “수론에 적합한 어떤 형식 체계의 일관성(무모순성)은 그 체계 안에서는 증명할 수 없다.”이다.
제1, 2 불완전성 정리의 내용을 좀 더 자세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불완전성 정리>
산술적으로 참인 명제를 증명할 수 있는 임의의 무모순인 계산 가능한 가산 이론에 대해, 참이지만 이론 내에서 증명할 수 없는 산술적 명제를 구성할 수 있다. 즉, 산술을 표현할 수 있는 이론은 무모순인 동시에 완전할 수 없다.
여기에서 "이론"은 명제들의 무한집합으로, 여기에 속하는 것들 중 일부는 증명 없이 사실인 것으로 취급되는 공리이며 나머지는 공리들로부터 유도되는 정리이다. "(이론 내에서) 증명할 수 있는" 명제란 공리에 1차 논리를 적용하여 유도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이론 내에서 모순된 명제가 증명될 수 없을 경우 이를 무모순이라 한다.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은 이론 내에서 해당 명제를 실질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과정이 존재함을 말한다. 또한 여기에서 "산술"은 자연수의 덧셈과 곱셈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정리의 결과로서 존재하는 참이지만 증명 불가능한 산술적 명제를 해당 이론의 "괴델 명제"라 한다.  
<제2 불완전성 정리>
공리로부터 출발한 산술체계가 무모순인지의 여부 자체가 참 또는 거짓인지 결정할 수 없다
제1정리의 증명 과정
1) '논리식 G는 증명 불가능하다'라는 메타 수학적 문장을 나타내는 논리식 G를 구성한다.
2) G의 부정(~G)이 증명 가능할 때, 그리고 오직 그 때에만 G가 증명 가능하게 된다. :왜냐하면, ~G가 증명가능하다는 것은 "G는 증명 불가능하지는 않다"가 증명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3) G가 증명할 수 없는 식이며 동시에 참인 논리식임을 제시한다.
4) G가 참이지만 증명 불가능하므로, 산술체계는 불완전하다는 결론(제1정리)을 도출한다.
<설명>
논리식 G는 이런 뜻이다. "나는 증명불가능한 문장이다". 만약 이 문장이 증명가능하다면 G의 부정, 즉 ~G(나는 증명될 수 있다)가 증명되어야 한다. 즉 G가 틀렸다는 것이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즉, G가 증명가능하다면 ~G가 증명되어야 한다. 이것은 서로 모순적이다. 그러므로 G는 증명불가능하다. 그런데 그것이 G의 내용이므로 G는 참이게 된다. 즉 G는 증명불가능하면서 참인 문장인 것이다. 그리고 이 문장 G가 산술체계에서 구성될 수 있으므로 산술체계는 불완전하게 된다.
제2정리의 증명 과정(제1정리에서 출발)
1) 먼저 논리식 H를 구성한다. H는 "산술체계가 일관적이다"라는 문장이다.
2) "H이면 G이다"가 증명가능하다는 것을 보인다.
3) H가 증명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다.
4) 이로부터 제2정리를 얻는다.
주4)1911년 뒤샹은 엘리 주프레 Elie Jouffret가 쓴 "4차원 기하학 개론 Traite elementaire de geometrie a quatre dimensions (1903)" 을 읽었다.
그리고 뒤샹의 전기를 쓴 사람 중 뒤샹의 성장에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앙리 푸앵카레를 꼽는 이도 있다. “푸앵카레는 물질을 지배한다고 믿었던 법칙이 단지 그것을 이해하는 정신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설명한다. 증명할 수 있는 어떤 일반 원리도 진실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과학은 사물 그 자체에 다다를 수 없다. 단지 사물간의 관계에만 닿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1910년대 당시 상황과 그의 작품의 변천과정으로 보아 푸앵카레의 이런 생각들은 이후 뒤샹 작품의 중심사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103 마르셀 뒤샹과의 체스 놀이를 보고
도병훈
10186 2009-11-20
Selected 불완전성 정리와 마르셀 뒤샹의 삶과 예술
도병훈
8816 2009-11-04
101 몽유도원도 다시 탐색하기
도병훈
24210 2009-10-27
100 미술은 없다? 새로운 방식의 미술과 소통을 꿈꾸는 자들의 화두
도병훈
6323 2009-10-10
99 가장 값지고 귀한 추석 선물
도병훈
6115 2009-10-08
98 덕숭산 수덕사, 그 시공간의 체험
도병훈
7132 2009-09-08
97 문화유적 답사 &#8228; 예술체험을 앞두고
도병훈
6315 2009-09-06
96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 보는 그림 그리기
도병훈
8671 2009-06-03
95 홍랑의 시조와 글씨에 드러난 만남 ․ 사랑 ․ 삶
도병훈
9661 2009-05-15
94 추사 김정희의 &lt;불이선란도&gt;와 서화 다시 보기
도병훈
13274 2009-04-28
93 니체 사상의 주요 단면
도병훈
8151 2009-03-06
92 삶의 다양성은 왜 필요한가?
도병훈
9555 2009-03-02
Tag List
 

17598 경기도 안성시 미양면 이박골길 75-33 | Tel. 031-673-0904 | Fax. 03030-673-0905 | Email: sonahmoo@hanmail.net

Copyright ⓒ 2002- Alternative Art Space Sonahmoo all right reserved.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