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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5 (20: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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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 추모 현상에 대한 단상  



얼마 전,《무소유》란 책의 저자로서 남다른 외모로서 대중적 인지도를 가진 법정 스님(이하 존칭 생략)이 길상사에서 입적했다. 그는 생전 사리도 찾지 말고, 탑도 세우지 말고, 그간의 ‘말빚’을 언급하며 모든 자신의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라는 유언을 문도들에게 남겼다고 한다.
그가 입적한 이후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각계각층의 지식인들이 관심을 표하거나, 약속이나 한 듯 한결 같은 목소리로 망자를 기리는 글들을 대중매체를 통해 발표했다. 또한 각 언론 방송 기자들도 그의 삶과 저서들에 나오는 글의 내용들을 화제로 삼아 연일 대대적으로 그의 삶과 죽음에 대해 큰 뉴스로 다루거나 칼럼으로 다루었다 .  
이런 현상 속에서 그간 법정이 출간한 모든 책들은 독자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른바《무소유》를 소유하려는 아이러니한 현상까지 벌어졌으며, 심지어 그가 만년에 거처한 강원도 산골짝의 오두막집까지 사람들이 찾는 기현상까지 생겨났다.
나는 최근 이런 사회현상을 지켜보면서 이 땅에서의 대중매체의 속성과, 요즘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주로 언급하는 ‘관점perspective’, 또는 他者性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법정은 생전 많은 저술을 남겼다. 나는 대학재학시절부터 그의 저서인《무소유》,《산방 한담》,《텅 빈 충만》,《서 있는 자리》등을 읽으며, 때로는 그러한 생활을 동경하기도 했다. 또한 수년 전엔 겸재 정선 그림이 전시된 간송미술관에서 짧게나마 직접 그를 대면한 적도 있다. 그 후 법정의 무소유 정신으로 인한 인연이 계기가 되어 세우게 된 길상사에 얽힌 이야기도 쓴 적이 있다. 주1)
그는 저술을 통해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와 같은 글을 썼다. 이런 자신의 언급을 입증하듯, 그는 실제로 자신이 수행하는 장소에서 계절마다 대면한 자연이나 식물, 꽃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적지 않은 예찬의 글을 남겼다.
그리고 그는 "빈 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빈 마음이 곧 우리의 본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 있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러한 법정의 글과 삶 이면엔 동양의 전통사상이나 한국 불교의 전통이 있으며, 특히 그의 스승인 효봉 주2)스님(이하 존칭 생략)이 있다. 효봉은 특히 ‘계戒 .정定. 혜慧’ 삼학三學을 매우 엄격하게 실천하고자 한 고승으로서 근현대 한국 불교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계.정.혜’란 고려의 보조 지눌이 제창한 정혜쌍수‘定慧雙修’의 근간이다. 먼저 ‘계’란 계율의 준말로 규칙적인 생활을, ‘정’은 ‘선정’ 즉 고도의 집중을 뜻하며, ‘혜’는 ‘지혜’, 곧 ‘바른 앎’, 또는 ‘깨달음’을 의미한다. 요컨대 계정혜란 불교의 수행(공부)과정이 집약된 말이다.
법정은 이러한 한국불교의 전통적 사상과 다른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거나 스승의 생각을 넘어선 다른 사상을 제창하지 않았다.
법정의 ‘무소유’ 정신 또한 동양에서만 독특하게 형성된 삶의 가치가 아니다. 중세 수도원에서의 수도사들이나 미국의 헨리 데이빗 소로우, 《소유나 존재냐》의 에리히 프롬은 무소유의 삶을 지향하거나 역설하였다. ‘무소유’ 정신은 법정만이 새롭게 주창한 가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무소유’ 하면 법정을 떠올리는 것은 순전히 그의 대중적 인지도 때문이다.  

‘앎과 삶의 괴리’라는 실존주의적 부조리에서 자각할 수 있듯, 인간은 누구나 근본적으로는 자신이 가진 일정한 틀(관점)으로 자연이나, 인간, 사상 및 예술을 인지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이런 차원에서 우리는 엄밀한 의미에서 그 누구도 타자성他者性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 바로 이 때문에 어떤 대상이나 사람에 대한 이미지는 그렇게 바라보는 자의 욕망과 인식의 틀에 의해 ‘구성’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현시대는 대중매체의 영향이 워낙 지배적인 시대여서 대중들의 의식에 직 간접적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최근 법정 스님에 대한 대중들의 큰 관심은 실제 법정의 삶과는 거리가 먼, 즉 타자의 삶에 대한 자신의 피상적 견해와 대중의 욕망이 결부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자신이 알고 있는 선입견으로 타인을 규정하고 심지어 함부로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례로 지난 2007년, 장애인 자녀에게 성장 억제 호르몬을 투여한 미국 부모 이야기가 뉴스로 나와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해 윤리적 여부를 떠나 부모 당사자가 아닌 이상 무조건 비난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져본다면, 우리가 자신의 잣대로 타자를 규정하는 일이 도리어 무지와 오만의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임을 자각할 수 있다.      

법정 사후의 추모 현상은 법정의 삶의 실체보다 그러한 현상에 의문을 갖게 한다. 개개인들의 느낌과 생각의 틀을 구성하는 바탕은 욕망이며, 이는 타자의 고유성이나 정체성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그 어떤 대상에 대한 아쉬움도 허전함도 실제로는 그 존재의 부재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결국 그러한 마음을 가진 이들의 욕망이 반영된 현상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현대는 대중매체에 의해 개인의 욕망조차 확대 재생산되는 시대이다. 우리가 아는 타자는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가공의 이미지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모든 타자는 타자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가 대하는 ‘타자는 과연 무엇이며 누구인가’라는 근본적 물음이 중요하며. 이는 결국 ‘나’, 즉 자기 자신의 문제인 것이다.
                                        
                                  2009. 3. 25
                                    도 병 훈

주1) 지난 2007년에 ‘길상사를 다녀와서’란 글을 쓴 바 있다.
주2)효봉(曉峰, 1888년~1966년)은 평안남도 평양에서 출생하였으며 평양고보를 거쳐 일본 와세다 대학 법과를 졸업하였다. 그 후 판사가 되어 6년간 법관 생활을 하였다. 이때 한 죄수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것이 잘못으로 밝혀지자, 양심의 가책과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전국을 방랑하다가, 1925년 금강산 신계사로 들어가 승려가 되었다고 한다. 1929년 순천 송광사에서 불교 최고의 과정인 대교과를 공부하였다. 그 후 상원사 등 여러 절을 돌아다니며 불법을 편다. 1954년 불교 종단 정화 준비위원이 되어 불교 정화운동에 앞장섰으며, 1958년 대한민국 불교계의 최고 지도자가 되어 여러 파로 갈라져 있는 불교계의 통합을 위해 노력했으며, 1966년 밀양 표충사에서 입적하였다. 그의 열반송은 아래와 같은데, 나는 법정의 그 어떤 책이나 글도 이 열반송이 주는 임팩트의 강렬함에는 못 미친다고 생각한다. 나의 졸저,《나와 너의 세계, 미술》에필로그에도 이 시를 인용한 바 있다.

내가 말한 모든 법
그거 다 군더더기
누가 오늘 일을 묻는가
달이 일천 강에 비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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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no image 사물, 이미지, 개념과 불확실한 정체성 탐색 -로니 혼의 전시회를 보고
도병훈
7142 2010-09-27
사물, 이미지, 개념과 불확실한 정체성 탐색 -로니 혼의 전시회를 보고 지난 9월 18일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 신관에서 로니 혼(Roni Horn 1955~)전 (2010.08.31-10.03)을 보았다. 원래는 다른 전시회를 보러 갔으나 민족의 명절인 추석 직전이라 그 갤러리는 문이 닫혀 있었다. 그래서 뜻밖에도 그 주변에 있는 전시관에서 그의 작업을 보게 된 것이다. 로니 혼은 70년대 중반부터 사진, 조각,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로 작업을 해온 세계적 명성을 지닌 작가이다. 미술관 자료에 의하면, 그녀의 작업은 자연의 순환적 주기와 그 영원한 흐름의 현상을 조명하면서 같음과 다름(유사성과 상이성), 성과 양성성, 언어와 텍스트 등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며, 이때 작가가 일관되게 관심을 가지는 주제는 특수한 장소와 특수한 시간, 그리고 그것을 경험하는 인간의 기억과 관련된 것이었다. 주1) 로니 혼의 개인전은 2007년에 이어 한국에서 두 번째였으며, 이번 전시에서는 그녀 특유의 개념적 막대(?) 작업과 <이자벨 위페르의 초상>이외에도 형태를 해체하고 오려붙여 또 다른 형태를 만든 3점의 대형 드로잉 작품을 함께 볼 수 있었다. 1. 전시장에 들어서자 먼저 두 개의 얼음 덩어리를 나란히 바닥에 놓아 둔 조각 작품을 볼 수 있었는데, 제목이 'Two pink tons'이었다.(*집에 와서 보니 사진이나 조각을 이란성 쌍둥이처럼 만드는 것이 그의 작업에서 매우 중요한 형식이었다) 이 작품은 유리로 만든 것으로 은은하고 옅은 연한 핑크 빛 얼음덩어리를 연상케 하면서도 그 투명한 존재감이 낯설었다. 가장 가변적인 사물이 유리처럼 단단한 투명한 고체덩어리로 존재하고, 무엇보다 설치된 장소와 시간에 따라, 보는 각도에 따라 작품에 투영된 색상과 이미지가 미세한 변화를 드러내려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이기도 했지만, 나에게는 이 작업이 수 십 년 전 이 땅에서의 선구적 현대미술의 한 장면인 김구림의 얼음 작업과 비교되었다. 로니 혼과 달리 김구림은 진짜 얼음 덩어리를 전시했다. 그래서 얼음이 녹아버린 후 그 위에 덮인 하얀 종이만 흥건히 녹아버린 물 위에 떠 있는 작업이었다. 이는 이제 아득한 신화처럼 빛바랜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이미지이지만 보이는 것의 덧없음, 또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의 메시지는 로니 혼의 'Two pink tons'보다 김구림의 작업이 더욱 강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 작가 스스로 자신의 모든 작업의 기초적 핵심이라 말한 드로잉 3점을 볼 수 있었다.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다는 그녀의 드로잉 작업은 처음 접시라 이름 붙인 두 개의 유사한 형태를 그리는 작업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이 두 개의 접시는 예리한 칼로 자르고 붙이는 과정을 거치면서 점차 새로운 형태와 특징을 만들어 마치 증식하는 세포처럼 점차 커지고 더 복잡한 형태를 띠는 이미지였다. 이번에 전시된 드로잉 작업은 마치 푸른색의 지도 같기도 하고 뇌의 표면 같기도 했는데 나에게는 이 드로잉 작품들이 그녀의 작업 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다. 미술관 자료에 의하면 사진과 조각 작품과 마찬가지로 드로잉 작업들 또한 쌍, 짝지어진 형태, 반복의 과정을 거치면서 정체성의 문제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들로 보였다. 이어 벽면에 세워진 막대 조각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그것들은 알루미늄과 플라스틱을 재료로 해서 만든 막대 형상이었지만 그 안에 서로 다른 경구들이 고딕체 알파벳 대문자로 입체적인 형상을 이루며 존재하는 모습이었다. 이런 작업은 이번 전시회에서 4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들 작품은 이른바 ‘White Dickinson’ 시리즈 연작들로서 에밀리 디킨슨이란 미국 여류 시인의 시 구절을 입체적으로 형상화한 작업이었다. 주2) 그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THE MOST INTANGIBLE THING IS THE MOST ADHESIVE(*가장 만질 수 없는 것이 접착력이 강하다) RESTORED IN ARCTIC CONFIDENCE TO THE INVISIBLE (*보이지 않은 것으로부터의 절대적 확실성의 회복) IS IT OBLIVION OR ABSORPTION WHEN THINGS PASS FROM OUR MINDS?(*사물들이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지나갈 때 망각되는 것인가 또는 흡수되는 것인가?) A BLOSSOM PERHAPS IS AN INTRODUCTION, TO WHOM-NONE INFER-(*꽃의 개화는 아마 누구에게도 추론이 불가능한 입문이다. 주3) 2층에서는 거의 같은 표정을 반복해서 찍은 듯한 여인의 얼굴 사진들이 갤러리 네 벽면에 나란히 전시된 것을 볼 수 있었다. 영화배우`이자벨 위페르의 초상Portrait of an Image (with Isabelle Huppert, 5c prints 38.1*31.75cm, 2005)으로 각 5개의 사진을 한 시퀀스로 구성하여 전시한 것이다. 일정한 간격으로 나열된 이 작품은 이자벨 위페르의 다양한 표정을 몇 초 간격으로 찍은 연작으로, 그야말로 ‘동일한 대상의 같음과 다름에 대한 탐구’와 ‘하나로 정의내릴 수 없는 다양한 정체성’을 느끼게 하였다. 2. 미술관 자료에 의하면 작가는 1975년 대학 졸업 직후 방문한 아이슬란드에 매료되었으며, 원시 자연, 그리고 홀로 여행하며 느낀 절대 고독은 그의 정신세계를 이룬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이번에 전시되지 않았던 그의 작업들을 볼 수 있었다. 그 중에서 노란 바탕의 흰 글씨로 된 실크스크린 작품은 약간은 끊어졌다 다시 이어지는 나선형으로 감아 들어간 경구들도 인상적이었다. 대략 해석 해보니 다음과 같은 뜻이었다. 제비꽃은 마음을 안으로 향하게 하고 매우 심오한 자기성찰을 하게 한다, 그들은 겸손함 때문에 숨은 채 말한다. 그것은 그 자신의 비밀을 소유하거나 붙잡기 위하여 숨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거의 억제된 향기의 절정이어서 사람들이 그것을 찾아내는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 향기는 결코 큰소리로 말하지 않는다. 제비꽃은 말없이 아주 사소한 것으로 말한다.주4) 이와 유사한 형식의 작품으로 그의 <Agua Viva: The dense jungle...2004>란 작품은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었다. The dense jungle of words wraps itself thickly around what I feel and live, and, Transforms everything I am into something of my own that remains beyond me(*단어의 두텁게 농축된 복잡함 그 자체는 나의 느낌과 삶을 두껍게 감싼다. 그리고 남아 있는 나를 넘어서 나 자신의 무언가로 모두를 변형시킨다) 이처럼 그녀의 작업은 그 단순 명쾌한 전시방식에도 불구하고, 단적으로 말해서 "나는 과연 누구이고, 어디서 왔을까?"라는 정체성에 대한 철학적 성찰과 함께 세계의 변화에 대한 감지와 그에 대한 불확실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맺음말 “0에서 시작하여, 또 다시, 그리고 다시”라는 그녀의 말은 그녀의 작업관을 잘 알게 한다. 이처럼 그녀의 작업은 세계와 자연의 불확실성에 대한 매 순간 매순간 깊은 응시와 집중력을 드러내지만 전시 공간의 여백을 최대한 살리는 매우 간결하고 개념적이기까지 명료한 전시 방식으로 관람자의 재량권(empowerment)을 많이 부여한다. 그녀는 동일한 작업을 각각 다른 벽에, 혹은 다른 전시장에 설치하여 왔다. 이를 통해 장소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사물에 대한 인식을 제시하고자 함을 알 수 있다. 이는 사물의 ‘동일한 경험’이란 정의를 전복시키는 의도의 표명이다. 시간과 장소에 따라 인간의 지각 활동이 달라지고 그에 따른 작품의 이해 또한 달라짐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점이 그녀의 작업이 나름대로 독특한 위상을 갖는 주된 이유 중 한 면으로 해석된다. 결국 로니 혼은 자연의 변화에 매우 민감한 작가로 보인다. 특히 영감의 고향인 아이슬란드에서의 경험이 큰 비중을 갖는 그녀의 작품들은 대개 시각적 명쾌함이나 간결성을 드러내는 것과 달리 매우 명상적이거나 철학적이며, 자연, 그 중에서도 물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타오이즘Taoism, 즉 노자적인 사유가 반영된 듯하다. 무엇보다 작업 과정이 잘 드러나는 드로잉 그림에서 느낄 수 있는 변화에 대한 깊은 응시와 불확실성은 바로 "고정된 자아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불교적 사유를 느끼게 한다. 2010년 9월 26일 도 병 훈 주1)도록에는 그의 작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었다. Horn explores the mutable nature of art through sculptures, works on paper, photography, and books. She describes drawing as the key activity in all her work because drawing is about composing relationships. Horn’s drawings concentrate on the materiality of the objects depicted. She also uses words as the basis for drawings and other works. Horn crafts complex relationships between the viewer and her work by installing a single piece on opposing walls, in adjoining rooms, or throughout a series of buildings. She subverts the notion of ‘identical experience’, insisting that one’s sense of self is marked by a place in the here-and-there, and by time in the now-and-then. She describes her artworks as site-dependent, expanding upon the idea of site-specificity associated with Minimalism. Horn’s work also embodies the cyclical relationship between humankind and nature—a mirror-like relationship in which we attempt to remake nature in our own image. For the past 30 years, the work of Roni Horn has been intimately involved with the singular geography, geology, climate and culture of Iceland. Since her first encounter with the island as a young arts graduate visiting from the United States, Horn has returned to Iceland frequently over the years. Iceland has been muse and medium to Roni Horn. 주2) 에밀리 디킨슨(Emily Elizabeth Dickinson, 1830년 - 1886년)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그녀는 당대의 관습을 거부한 시인으로 그녀는 생전에 7편 가량의 시를 발표했다. 그녀는 당시로서는 매우 이채로운 독특한 스타일 - 즉 dash의 사용과 대문자의 사용, 또 행과 연의 특이한 구분 따위 - 의 시를 썼다. 그녀는 1700 여 편의 원고만 남긴 채 생을 마감했다. 주3)지난 번 전시 도록에서 다음과 같은 이전 작업들을 볼 수 있었다. TO COWER BEFORE A FLOWER IS PERHAPS UNWISE(*꽃 앞에서 위축되는 것은 아마 지혜가 없어서일 것이다), Key and Cue, No. 1206: THE SHOW IS NOT THE SHOW(*보여주는 것은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AN HOUR IS A SEA(*시간은 바다이다) NATURE IS SO SUDDEN SHE MAKES US ALL ANTIQUE-(자연은 우리 모두를 갑자기 골동품으로 만들어버린다. 주4)The violet is introverted and its introspection is of the deepest sort, they say hides because it's modest. Thats not it, it hides to be able to capture its own secret. Its almost-not-perfume is muffled glory but it demands that people seek it out, it never ever shouts its perfume. The violet says frivolous things that cannot be said.
114 no image 실재성에 대한 존재론적 물음과 예술
도병훈
5808 2010-09-07
여러 잡다한 일이 많은 매우 바쁜 일상 속에 살다가 오랜만에(?) 글을 올립니다. 실재성에 대한 존재론적 물음과 예술 초가을 이맘때는 한 입 베어 먹는 풋 사과를 통해서도 사물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살을 꼬집으면 아프듯,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통해 엄연한 현실을 느낄 수 있다. 오래 전부터 철학자들은 이 세계가 정말 실재하는 것인가? 라는 물음을 가졌지만 지금도 대개의 일반사람들은 이 세상이 정말 실재하느냐? 라니 이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냐고 이 세계의 실재성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존재론적 의문을 가진 철학자들이나 볼교의 논사論師들은 세계와 사물의 실재성에 대해 치열하게 탐구해왔다. 또한 어떤 예술가는 나무를 타오르는 불꽃처럼 그리고, 어떤 화가는 ‘40년 동안의 긴 분투 끝에’ 한 개의 사과를 여러 색채의 차이로 구성된 덩어리로 단순하게 묘사했는데, ‘실제적 물질real substance로 즉 대상적 물질로 향하는 첫 번째 작은 발걸음을 뗐다’고 한다. 주1) 존재란 무엇이며, 왜 철학자들이나 예술가들은 실재성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새롭게 기술하고 표현하는 것일까? 주2) 근대철학에서 존재론적 실재성을 화두로 한 양극은 실재론realism과 관념론idealism이다. 이 두 개념은 우리가 몸의 감각기관을 통해 세상을 지각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상호 대립적이다. 실재론은 물질적 세계Matter or Material substance가 먼저 존재하고 그 세계를 지각함으로써 우리의 의식이 생성된다는 생각이지만 관념론은 이와 정반대다. 세계는 우리의 관념 즉, 의식이 만들었다는 것이다. 주3) 서양 철학사에서 이처럼 양립할 수 없는 주장이 첨예하게 맞섰을 때 18세기 독일의 한 지방 도시에서 새로운 인식론적 존재론적 지평을 연 사상가가 바로 칸트다. 그에 의하면 우리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감성의 형식과 범주라는 형식을 통해서만 세상을 경험한다. 밀가루 반죽의 형태와 상관없이 붕어빵틀 안에 들어가면 밀가루 반죽이 붕어빵으로 구워지듯, 우리는 일정한 인식의 틀로 세상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구성설로서, ‘경험적 실재론’이라 하기도 한다. 반면에 나의 인식이 세계를 구성하기 이전과 이후, 즉 초월적 세계는 우리가 경험하는 방식으로 실재할 수 없다는 그의 주장은 ‘초월적 관념론’이다. 그래서 칸트는 이러한 초월적 세계에 대해서는 불가지론적 입장을 취했다. 칸트는 그 자신의 종교적 신념 때문에 이처럼 경험적 세계와 초월적 세계를 나눌 수밖에 없었지만, 인식이 세계를 구성한다는 그의 생각은 우리 인간의 인식의 한계와 함께 역설적으로 관점의 객관성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갖게 해주었다. 실제로 쇼펜하우어는 칸트의 ‘불가지론’을 ‘가지론’으로 해결한다. 그것은 생에 대한 맹목적 의지Blind Will다. 세계의 객관성은 나의 의지의 표상representation이며 관념ideas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니체는 관념과 실재라는 이분법을 넘어 전혀 새로운 차원의 세계인식을 보여준다. 우리의 세계를 관념과 실재의 차원이 아닌 생물학적 욕망과 의지의 차원에서 논함으로서 서양철학의 오랜 존재론적 틀에서 벗어나는 선구자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논의 이전에 고대 인도의 고타마 싯다르타, 즉 석가모니는 세계의 실재성에 대한 존재론적 깨달음으로 붓다, 즉 ‘바로 아는자’란 칭호를 얻었다. 그의 사상은 모든 것은 개별자로서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제법무아諸法無我’로 집약된다. 독립된 개체, 즉 개별자로서의 나를 부정하는 ‘무아론’이 초기 불교의 핵심 사상인 것이다. 이처럼 개별적으로 독립된 실체를 부정하는 이른바 ‘연기론’적 세계관은 석가 사후 700여년이 지나 나가르쥬나(용수)의 공空사상으로 심화된다. 주4) 그는《중론(中論)》에서 일체의 모든 세계를 공空으로 보는 공사상을 펼친다. 그러나 바수반두의 유식사상에서는 공사상을 인정하되 허망분별이나 공성은 공으로 보지 않음으로써 이후 불교사상의 양대 산맥을 이룬다. 이후 진나, 다르마키르티, 지의, 현장, 원효, 법장 등에 의해 이들 양대 산맥을 통섭하려는 새로운 사상을 고도의 논리로 정립하게 되는 데, 그 네트워크의 정점에서 우리는 원효의 《판비량론》과 화쟁 사상을 만날 수 있다. 이처럼 나가르주나 이래 원효에 이르기까지 불교의 대표적 논사들은 세상에 대해 ‘있다有’고도 하지 않고 ‘없다無’고도 하지 않았다. 이는 결코 세상과의 두루뭉술한 타협이거나 언어유희가 아니다. 실재에 대한 물음을 고도의 논리로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원효의 경우 불유지법 불즉주무 불무지상 불즉주유不有之法 不卽住無, 不無之相 不卽主有, 즉 있음도 없음도 아닌 것은 고정된 상태일 수 없고 끊임없이 서로 부정하는 생성의 과정이라 하여 ‘있지 않음不有’을 무로 해석하거나 ‘없지 않음不無’을 있음으로 이해하는 것을 강하게 부정하였다.주5) 그리고 현대 물리학인 양자역학은 서구의 전통적 존재론적 사고와 정면충돌한다. 양자역학이 설명하는 이 세계는 우리가 경험하는 일상적 실재와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모든 물체를 구성하는 미립자corpucle를 지각하기에는 인지수단이 너무 무디기도 하지만, 전통적인 철학의 존재론적 언어로는 이러한 세계를 기술하고 상상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술의 역사를 통해서도 의식의 진화과정을 고찰할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적으로 획기적인 평가를 받는 그림은 그러한 진화과정이 집약된 콘텍스트라 할 수 있다. 일견 사실적으로 보이는, 즉 피상적으로 보면 의심할 바 없이 세계를 실재를 드러내거나 모방하고 복제한 듯한 그림조차 문화적 관습이나, 신념 등에 의한 선택적인 집중과 조정이 개입되어 있다. 주6) 새로운 관점의 발명에서 새로운 미술 양식과 이즘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술가들, 그중에서도 인상주의 화가들이 본 세계의 실재성을 의심한 화가들인 반 고흐나 고갱, 그리고 세잔은 우연적 순간의 겉모양이 아닌 세계의 실재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특히 세잔이 그린 사과나 생트 빅투아르 산 연작들을 보면 그가 사물의 실재성을 어떻게 드러내고자 했는지 알 수 있다.주7) 이와는 크게 다른 방식의 표현이지만 반 고흐가 요동치는 물결이나 타오르는 불길처럼 그린 사이프러스 나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당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은 시대를 지배하는 관습적 인식과 맞서 자유로운 상상적 이미지를 통해 관념적 틀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이런 점에서 겸재 정선의 후기 산수화. 그 중에서도 《관동명승첩》은 가장 유동적이고 포괄적인 관점을 통해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는 동해안의 맑은 풍광 아래 환한 세계의 광경을 보여준다. 겸재의 낙천적이고 해맑은 풍광은 소멸과 생성의 선적 변주와 리듬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그의 그러한 그림은 서구와는 크게 다른 관점에서 세계의 실재성을 떠올리게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가시적이고도 비가시적인 실재성을 동시에 넉넉한 마음으로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아주 수 천 년부터 실재론은 철학의 핵심이었으며, 특히 근대 서구에서는 철학의 첨예한 쟁점이 되었으며, 석가 이래 바른 앎을 추구한 불교에서도 이는 근본적 문제였다. 이러한 철학적 물음은 삶과 예술에 대한 고찰의 힘을 길러준다. 실재에 대한 물음을 통해 우리는 실재 그 자체보다 세상을 보는 관점과 이와 연관된 상식적 의식이나 신념조차 누군가에 발명되었다는 점을 알게 된다. 또한 이로 인해 삶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좀 더 철저하게 자각할 수 있다. 이러한 세계인식의 지적 형성과정에 대한 깨달음은 매우 중요하다. 인식의 틀은 절대적일 수 없으며, 신념과 제도가 인식의 틀에서 나온 것임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존재론적 신념은 수 십 년 동안 특정 문화권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기 때문에 기존의 가치관을 스스로 부정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이 세계는 서로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런 차원에서 한시적으로 사는 개체로서의 생명체란 고립된 실체적 존재라기보다는 자연의 한 속성에 지나지 않음을 햇빛, 바람. 물, 또는 인간과의 능동적 관계 속에서 알 수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미술의 역사는 그 어떤 영역보다도 능동적 관계맺음의 다양성과 복합성을 생생히 보여 준다. 이 때문에 예술적 감성을 통해 우리의 삶은 좀 더 풍요롭게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2010년 9월 5일 도 병 훈 1) 소설가 로렌스는 1929년 「이 그림들에 대한 소개」라는 세잔 회화에 대한 논고에서 주로 세잔의 사과를 중심으로 이러한 글을 남겼다. 전영백 지음, 『세잔의 사과』, 한길아트, 2008, 237쪽 2) 존재론적 철학의 선구자는 파르메니데스이다. 그는 아낙시만더의 자연철학을 존재론적 철학으로 변환시킨 철학자이다. 그의 ‘존재(있는 것)는 존재하고(있고), 비존재(없는 것)는 존재하지 않는다(없다).(Being is, and Nonbeing is not.)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의 존재론은 지순, 지속, 불변이 핵심이다. 양자물리와 철학적 전통, Aage Petersen 지음, 오채환, 김희봉 옮김, 청음사, 45쪽 참조 3) “존재는 지각된 것”(esse est percipi)이라는 도발적 명제를 남겼던 버클리는 실재는 물체가 아니라 관념이라 말하고, 이 관념이 “마음 안에” 있다고 주장했다. 버클리에 의하면 주사위라는 사물자체가 있고, 그 주사위의 속성이 실제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언어의 용법에 기만당하는 것이다. 즉 ‘주사위’는 낱말일 뿐이고, 그것의 특성으로 여겨지는 색깔 등이 관념으로 내마음 속에 존재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그는 오직 경험하는 지각내용만을 인정했다. 주4)나가르주나에 의하면, 모든 사물은 상호 의존의 연기 관계에 있으므로(緣起) 고정불변의 자성을 갖지 못하며(無自性), 공이란 이처럼 일체의 사물이 고정 불변의 자성을 갖지 못한다(空). 이때 일체의 사물은 다만 연에 의해서 임시로 지칭하는 명칭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된다(假名). 그러므로 어떤 사물이 생하고 소멸할 때, 정말로 발생하고 소멸하는 것은 명칭일 뿐이다. 이처럼 일체의 사물은 다만 명칭으로서 발생하고 소멸하는 것이므로, 고정 불변의 존재성도 고정 불변의 비존재성도 갖지 못한다. 일체의 사물은 궁극적으로는 존재도 아니고 비존재도 아니라는(中道) 것이다.(나가르주나의 『중론』 24장 게18, 19참조) 주5)원효, 『원효성사전서 권2』, 원효전서국역간행회, , 1987, 239~241쪽 참조 주6) 곰브리치는 『미술과 환영』에서 “왜 눈에 보이는 세계는 서로 다른 시대, 다른 민족들에 의해 그처럼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어 왔던 것일까? 라는 물음아래 이 책 첫 장에서 가장 고전적이며 서정적인 그림으로 보이는 콘스터블의 <와이벤호 공원>도 그것이 당대의 자연과학(철학)적 실험성의 산물임을 드러낸다. 주7) 라캉은 세잔의 사과에 대해 “대상에 정결하게 나타나게 하는 순간에 실재와의 관계가 다시 새로워진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세잔의 그림에 대한 논고를 남긴 로렌스는 세잔의 사과에 대해 “인간이 수 천 년 만에, 사물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기꺼이 인정하려는 진정한 첫 징조”로 보았다, 전영백 지음, 같은 책, 239~241쪽 참조
113 no image ‘다르마키르티와 불교인식론’을 읽고
도병훈
6264 2010-07-01
‘다르마키르티와 불교인식론’을 읽고 최근 다르마키르티(Dharmakrīti,600~660년경, 한자 이름은 법칭法稱임)의 사상을 다룬 책인『다르마키르티와 불교인식론』이란 책이 출간되었다. 다르마키르티는 현재 유럽·미국·일본에서는 학회가 구성되어 연구될 정도로 불교사상사에서 큰 비중을 갖는 인물이지만, 이번에 권서용이란 학자가 다르마키르티 철학의 핵심인 <프라마나바르티카>를 번역함으로써 국내에 처음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이다. 오늘날, 고도의 논증적 사고인 후기 불교인식논리학과 인도와 티베트 불교를 이해하는 데는 그의 사상이 관건 구실을 하며, 7세기 이후 인도 철학사 연구는 다르마키르티 사상의 각주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그의 영향은 심대했다고 한다. 이처럼 다르마키르티의 사상이 붓다 이후 특히 2세기 이후 논리학적 사유로 심화된 인도 불교사상의 정점이라면, 7세기 동아시아 불교사상의 정점으로 원효元曉(617~686)의 사상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원효이후 동아시아에서는 언어와 논리를 부정하는 선불교적 경향으로 급격히 진화 함으로써 점차 불교사상은 쇠퇴하며, 이후 불교는 직관적 수행 및 기복신앙으로 경도되어버린다. 바로 이 때문에 다르마키르티, 또는 원효에서 정점을 형성하는 전성기 불교논리인식학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르네상스 이후 근대 서구 문명은 현대에 이르러 세계적 질서를 주도해왔지만 20세기 후반이후 근현대 서양이 주도해온 가치체계만으로는 새로운 방향성 모색이 지난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르마키르티가 활동하던 7세기 전반의 인도는 ‘육파(여섯 학파) 철학’과 같은 비불교적 사상들이 득세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다르마키르티가 인도 육파의 하나인 ‘미망사’의 저명한 학자 쿠마릴라Kumarila와 벌인 논쟁에 관한 신화적인 이야기는 다르마키르티가 어떤 식으로 공부하고 활약했는지 잘 알게 해준다. 당시 실체론적인 사유가 지배하고 있었던 7세기 인도에서 다르마키르티는 불교인식논리학을 통해 이러한 사유체계를 혁파한 것이다. 당시 인도에서 불교인식논리학이 고도로 발달할 수 있었던 근원적 배경은 무엇보다 인도의 산스크리트어가 인도 유럽어족에 속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이나 인도 인식논리학은 모두 동일한 언어적 벨트 속에서 일어난 것으로써, 즉 동류의 사유패턴에서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근대 이후 귀납적 사유를 통해 과학적, 합리적 논증으로 전개되었지만 동양에서는 7세기 원효를 정점으로 사실상 더 이상 논리학은 발달하지 않게 되며, 이는 역시 언어를 부정하는 것이 근본인 선불교의 성립에서 알 수 있듯, 인도불교가 비논리적 언어인 한자 문화권에 수용되면서 결국 그러한 언어적 특성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토착화되었기 때문이다. <다르마키르티와 불교인식론>을 쓴 저자는 다르마키르티 사상의 특징을 그 인식론의 ‘합리성’에서 찾는다. 종교의 가르침은 많은 경우에 신비적·초월적 인식을 강조하는데, 다르마키무르티의 사상은 그런 비합리적 인식을 배격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합리성’을 기반으로 다르마키르티의 사상을 해석하며, 논의의 중심은 ‘무아無我’사상이다. 다르마키르티의 사상과 인도 육파철학이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무아냐 유아냐’에 있다는 것이다. 즉 이 세계의 현상 아래 불변하는 본질적 실체가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대립을 말한다. 주2) 그런 실체가 있다고 믿는 학파는 그 실체를 아트만(아·我)이라고 부른다. 석가모니의 불교사상이 획기적인 이유는 바로 이 불변의 실체인 아트만이 없다는 ‘무아론’을 펼쳤기 때문이다. 다르마키르티의 사상 역시 무아론으로 집약되며, 이 과정에서 그는 대승불교의 기초를 확립한 나가르주나(용수, 150~250년께)의 무자성․공空사상과 바수반두(세친, 320∼400년께)의 유식唯識사상을 흡수하고, 특히 바수반두의 4대 제자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디그나가Dignāga,진나(陳那,480-540년경)가 세운 불교논리학을 받아들여 방대한 불교인식론의 사유체계를 완성했다. 다르마키르티는 모두 일곱 권의 저서를 남겼는데, 그중 디그나가 사상의 주석서인 <프라마나바르티카>는 그의 사상의 핵심을 보여준다. 이 책의 저자는 다르마키르티의 철학을 ‘무상無常’이라는 존재론적 원리와 ‘연기緣起’라는 상대성 원리를 근간으로 한 ‘무아론’으로 본다. 이 무아론에 입각해 밖으로는 아트만이라는 영원한 실체를 주장하는 비불교적 학설을 혁파하고, 안으로는 불교의 무아론에 내재하는 허무주의적인 사유를 극복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무아견, 또는 공견이라 하며, 그 인식수단은 프라마나pramāna이다. 프라마나란 자기 자신을 알 수 있는 올바른 두 가지 수단으로, 하나는 ‘지각’이며 다른 하나는 ‘추리’다.”주3) 개념구성을 떠난 인식인 지각과 언어와 결합한 개념구성(분별)에 의한 인식인 추리를 통해 바른 인식, 곧 무아無我와 공空의 인식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 다르마키르티의 인식론이다. 더불어 그러한 사고방식은 인식론적인 차원에서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어떤 사태의 원인을 명백하게 지각하게끔 하고 실천적으로는 삶의 능동성, 변화 가능성에 주목하도록 요구한다. 이처럼 불교사상이 생성을 본질로 하는 것은 다르마키르티 이전에는 법法,dhrama이였지만 다르마키르티는 현실적 존재vastu, actual entity로 명명한다. 주4) 다르마키르티에 의하면 현실적 존재는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생성하자마자 소멸하는 찰나적 존재이다. 그런데 현실적 존재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한 찰나 이상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 존재가 생성하자마자 소멸한다고 하는 것은 자신 속에 자기동일성self identity이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기를 소멸하는 자기차이성(self difference)이 내재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주5) ‘자기차이성’은 이렇게 이전과 다른 상태로 끊임없이 이행해 가는 사태를 뜻한다. 지금 이 순간의 ‘나’는 다음 순간의 ‘나’와 다른 존재고, 이전까지의 나는 이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소멸해가므로 당연히 새로 태어나는 ‘나’가 이전 것과 같은 것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허무한 것이 아니라 늘 새로운 의미, 다른 의미를 만들어 간다는 점에서 허무하다기 보다는 생생하게 약동하는 사태를 보여 준다는 것이다. 결국『다르마키르티와 불교인식론』은 끊임없이 자기와 차이나는 존재로 바뀌어 가는, 즉 실체론적으로 불변하는 ‘자아’의 개념을 해체하고, 늘 새롭게 갱신하면서 지각하고 자신의 인식을 정련해 가는 존재에 관해 현대의 합리적 관점에서 역설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르마키르티의 말처럼 인간의 모든 진정한 목적 성취에는 '바른 인식'이 선행되어햐 한다. 이 바른 인식의 기저에는 인식논리학 이전의 문제, 즉 개념구성을 떠난 인식이자 지각적 체험의 문제가 가로 놓여 있다. 이처럼 다르마키르티는 존재와 인식이 상호 내재적 ․ 본질적 관계에 있다는 논증하고자 했다. 이것이 바로 무아견이자 공견이며, 이를 통해 논증적 진술의 중요성을 자각할 수 있다. 물론 미적, 또는 예술적 가치는 논증을 넘어서는 메타언어임에 분명하지만, 그 가치를 입증하는 방법은 역시 논증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대는 다르마키르티와 원효, 그리고 서양의 근현대 철학과 예술에 이르기까지 그 모두를 회통하고 통섭할 수 있는 시대이다. 이처럼 다층적으로 교섭하며 진화하는 인류 문명의 연장선에서, 즉 동서 문명을 종합적으로 통관하는 관점에서 새로운 미술을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은 좀 더 객관적이고도 유연한 관점을 갖게 한다. 2010년 6월 도 병 훈 주1) 인도의 논리학을 중국에서 수용한 당시에는 인명학이라 하였으며, 현대는 불교인식논리학으로 번역된다. 원효의 불교인식논리학 저서인『판비량론』은 다르마키르티가 주석을 단 사상가인 디그나가의 논리학을 토대로 중국 당나라 현장의 인명학을 비판한 것이다. 이처럼 원효는 다르마키르티 직전까지의 인도불교사상에 정통하였지만, 그의 저서에 다르마키르티의 사상은 언급되지 않고 있다. 원효가 『판비량론』을 쓴 671년까지는 다르마키르티의 사상이 중국이나 동아시아에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두 사상가의 논리전개 중에서 환위법, 즉 주부와 술부를 바꾸는 논리전개의 유사성은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향후 양 사상가의 사상 비교를 통해 새로운 철학의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 주2)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형이상학』에서 모든 현상의 근저에 잇는 궁극적 실재를, 스스로는 운동하지만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자라는 의미에서 부동의 원동자Unmoved Mover 혹은 제1실체라 한다. 이는 주어와 술어의 언어 형식에 의해 귀결되는 실체와 속성의 사유도식에 기반 하는 데, 이러한 사유도식은 인도에서는 석가의 연기와 무아론에 의해 부정되지만 서양에서는 그들의 정신문명을 2천 년 간 지배한 바탕이 된다. 주3) 현장의『인명정리문론』이나 원효의『판비량론』에서는 지각을 ‘현량’, 추리는 ‘비량’이라 한다. 주4) 이 책의 저자는 vastu를 ‘현실적 존재’로 번역하였는데, 이 말은 화이트헤드 철학의 핵심적 개념 중의 하나이다. 화이트헤드는 나의 존재방식을 모든 존재자의 존재방식으로 유비적으로 다음과 같이 일반화시킨다. 진정한 의미의 모든 존재는 경험을 통해 자기를 구성하는 주체적 과정으로 존립하고, 이 경험의 과정을 떠나서는 더 이상 진정한 의미의 존재일 수 없다. 이 주체적 존재는 경험과 더불어 생성하고 경험과 더불어 소멸한다. 화이트헤드는 현실태의 관념이 탄생하는 배경을 설명하면서 이에 대해 말하는 데, 여기서 현실태란 자기구성의 활동 중에 있는 존재이다. 현실세계는 이런 단위 존재의 구성체이며, 이를 화이트헤드는 “현실적 존재actual entity” 또는 현실적 계기actual occasion라 부른다. 문창옥 지음,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의 이해, 통나무, 1999, 39쪽 참조 주5) 다르마키르티와 불교인식론, 그린비, 2010, 22쪽
112 no image ‘젊은 모색2010전’에 대한 존재론적 성찰
도병훈
5585 2010-06-12
‘젊은 모색2010전’에 대한 존재론적 성찰 일전에 조규현 선생님과 함께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젊은 모색'전을 둘러보았다. 이번 전시회는 81년부터 1989년까지의 청년작가전과 1990년부터 최근까지 개최된 젊은 모색전 출품작가와 작품을 다시 선별하여 기획한 대규모 회고전이다. 이번 전시에 선정된 작가들 대다수는 젊은 시절 촉망 받던 작가로서 주목을 받았으며, 현재 한국미술계의 중견작가로서, 또한 대학에서 교수직을 겸한 사람들이다. 이러한 인적 구성은 이번 전시회의 성향을 어느 정도 짐작케 한다. 전시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며, 또한 각 섹션마다 작가별로 공간이 할당되어 있어 당대, 또는 신작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업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래서 특정 시기마다 일종의 트렌드 경향과, 각 장르별로 또 세대별 작품들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었다. 서양에서는 근대이후 예술가가 개별화된 ‘나’로서 절대적 존재인 시기가 있었지만, 현대에 들어 이러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관점이 대두된다. 이런 관점에서 예술가란 사회적, 문화적 차원의 가상의 존재이며, 예술 작품 또한 독립된 실체적 대상으로 볼 수 없음을 의미한다. 현대는 근대의 연장선에 있으므로 예술가들에 대한 위와 같은 양극적 관점은 우리 자신, 또는 예술적 대상에 대한 존재론적 물음을 갖게 한다. 이번 전시회 출품작가 중 가장 윗세대 작가들은 1981년 덕수궁 미술관에서 개최된 ‘청년작가전’에 선정된 작가들이다. 필자는 이번 전시회를 통해 그들의 당시 작품을 거의 30년 만에 다시 보았다. 이들의 작품은 주로 ‘극사실(?)’ 계열이거나, 오브제, 또는 드로잉 작업이다. 이러한 작업은 당시에는 새로운 경향의 표현으로, 특히 극사실 계열의 경우 특정 대상을 선택하여 계속 집요하게 반복적으로 그린 것이다. 이들 중 대다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특정 소재를 묘사하는 틀을 고수하는 바, 그만큼 오늘의 다변화된 성향들과는 대조적이었다. 그리고 '오브제'를 대상화한 작업이라든가 드로잉 작업들도 이제는 당시의 역사를 증언하듯 역사적 실재물로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러한 양상들에 내포된 함의를 짐작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이른바 당시 특정한 경향의 표현 양식으로 이해한 서구 현대미술에 대한 동경과 엘리트 의식이 빚어낸 '제스추어'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전통회화에 기반을 둔 작품들의 경우도 전통회화의 기반인 근본적 세계관이나 우리 전통 특유의 독특한 특성보다 기법을 트렌드화하거나, 표현주의적 거친 표현이 착종된 현상처럼 보였다. 그리고 90년대 이후 당대의 트렌드를 급속하게 수용한 경향을 보여주는 영상매체를 위주로 한 작업이라든가, 설치작업들에서는 원래 이러한 작업의 태생적 기반인 급진적이고도 첨예한 정신보다 볼거리나 인상적 경험을 유도하는 연출 효과만이 공허하고도 맥 빠진 양상으로 표출된 느낌이었다. 더욱 안쓰러운(?) 작업은 실제로는 아무 것도 아니면서 세련된(?) 형식으로 위장하는 작업이다. 법당은 화려한데 부처는 존재하지 않은, 즉 텍스트 속에 콘텍스트가 부재한 작업들이다.(*굳이 누구 작품이라 실명을 밝히지 않아도 조금만 주의 깊게 본다면 이에 해당하는 작품을 바로 알 수 있다) 이처럼 통시적 차원에서 이번 전시의 실상을 보면 선별된 작가들 중에서도 정작 존재론적 성찰이라든가 미적, 예술적 가치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제기하면서 그 영역을 심화 확장하는 작업은 지금까지 언급한 진술 밖의 작품들에 국한되며, 이는 매우 드물다. 왜,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는가라는 자기 나름의 내적 필연성, 즉 스스로 묻고 답하는 현대미술의 특성은 심미적 차원의 감각적 표현에 국한되지 않으며, 특별한 볼거리 제시는 더더욱 아니다. 현대미술의 제반 양상이 그토록 난해하고 급진적이기까지 한 것은 기존의 미술영역을 훨씬 넘어선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차원에서 어떤 방식의 작업이라 하더라도 왜, 무슨 가치를 바탕으로 한 것인지에 대한 근원적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삶의 축’이 문제다. 이런 맥락에서 스킬이나 테크닉보다 존재론적 물음이 전제된 방향성Direction이 사실상 작품의 특성과 가치를 결정짓는다고 할 수 있다. 이번 기획전은 선정의 객관성 여부를 떠나 30년이란 결코 짧지 않은 현대사를 미술이라는 채널을 통해 바라보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함과 동시에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의 예술세계를 다시 보게 해주었다. 단편적이나마 역사적 시공간이란 차원에서 특정시기의 미술을 비교적 다양한 표현 형식에 걸쳐 재조명함으로써 좀 더 근본적이고도 종합적인 관점에서 그 가치를 분별할 수 있는 전시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개별 작가별로 심층 분석한다면 ‘별것 아니거나’ 또는 ‘아무 것도 아닌 작품’들은 반면교사로 삼게 되며, 그렇지 않은 작업에서는 감응과 지각을 통해 거기에 내포된 콘텍스트의 가치를 탐색할 수 있었다. 이처럼 어떠한 전람회든 각각의 작품은 삶의 이면이나 역사의 지층과 단면을 읽은 하나의 텍스트이다. 이런 관점에서 예술의 ‘명明’과 ‘암暗’에 대한 탐색은 특정한 관점에서의 흑백논리적 단정이 아니라 삶에 대한 존재론적 성찰일 뿐이다. 예술가로서의 삶, 또는 예술적 가치는 ‘빛과도 어울리고 먼지와도 동거和光同塵’하며, 스스로 끊임없이 성찰한 탐색의 흔적들을 공유하고자 하는 진정성을 통해 형성되거나 입증된다는 것이다. 2010. 6. 12 도 병 훈
111 no image 예술과 그 가치(2) - 2장 미의 부활
도병훈
6804 2010-05-19
2장 미의 부활 미의 죽음? 저자는 서두에서 현대예술은 아름다움 추구를 단념했고, 비웃었으며, 홀대했으나 ‘미의 환기’라는 목표를 위해 헌신한 화가나 미술운동의 한 예로 마티스를 꼽는다. 마티스는 젊은 '야수fauve' 시절부터 평생 아름다움을 추구하여, 그의 작품 <분홍누드(1935)>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영속적이며, 자기충족적이며, 세상사와는 무관한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표현주의, 다다, 초현실주의, 추상주의를 거쳐 팝아트, 개념미술 등은 반미적(anti-aesthetic) 감수성을 지향했다고 본다. 그 이유는 이중적인 데, 미가 하찮은 즐거움 너머 예술의 가치와 무관하다는 생각과 함께 타성에 빠진 무딘 잠에서 사람들을 깨워서 진짜 세계를 제대로 보게 하려는 경향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편 미가 실용적인 관심사들, 특히 사회정치적인 관심사들과 따로 떨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환상에 불과한 것이라는 생각의 예로 저자는 ‘신경 쓸 가치가 있는 유일한 예술은 우리의 자기인식과 세계 이해에 도전하는 혁명적 예술’라는 앙드레 브르통의 말로 대신한다. 감각적인 것, 아름다운 것, 좋은 것 저자는 철학자들이 미와 미의 속성, 감상을 위한 조건들에 관심을 갖게 된 기원을 칸트의『판단력 비판 (1790)』으로 본다. 칸트는 미적 판단aesthetic judgement의 중심사례를 ‘미beauty’로 간주하고 탐구했다는 것이다. 칸트는 어떤 것이 아름답다는 주장을 주관적으로 보았으며, 이는 미가 ‘쾌’에 근거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어떤 것이 아름답다는 판단은 객관성이 요청되는데, 이는 다른 사람들도 이런 판단에 동의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며, 칸트는 이 모순적 가정이 어떻게 양립가능한 지 밝히고 참된 미의 본성을 설명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먼저 칸트 미학의 핵심으로 미적 판단을 선(좋음, goodness)에 대한 판단 및 단순히 쾌적한 것(merely agreeble)에 대한 판단, 양자 모두와 근본적으로 다른 종류인 것으로 구별해낸 것으로 본다. 이어 저자는 칸트가 어떤 것을 미적으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이용해서 얻는 목적에 관심을 갖지 말고 형식을 감상해야 한다는 주장을 기술한다. 이와 달리 개개인의 욕구와 관심과 기호에 따라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고 보며 이런 선호는 전적으로 우연적인 것으로 본다.(마티스의 색상, 이브 클랭의 인터내셔널 클랭 블루) 이와 대조적으로 진정 아름다운 것, 미적으로 부를 수 있는 것에서 얻는 쾌는 우리 모두가 이성적 존재인 덕분에 공유하는 마음의 구조들이 관계되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어서 저자는 칸트의 진정한 미적 판단을 만족시키는 미학을 탐구한다. 그것은 (1) 미적 판단은 무관심적disinterested이어야 한다. (2) 미적 판단은, 어떤 것을 아름답다고 판단한다면 다른 모든 사람들도 그것을 관조하면서 그런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는 점을 함축한다면 의미에서 보편성을 지닌다. (3) 즐거움은 합목적성form of finality으로부터 온다. 대상이 제공하는 경험 그 자체의 합목적적 형식purposive form에 관심을 가지며, 그 대상이 무슨 이론적, 실용적 목적에 기여하도록 만들어졌는지, 그것이 어떤 목표를 위한 것이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4)즐거움의 보편성은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필연적이다. 그 즐거움은 인간이 공유하는 마음의 작용operations of the mind 의 결과이기 때문이며, 이러한 조건을 통해 칸트는 취미의 ‘주관적 보편성’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이런 관점은 1913년 클라이브 벨, 형식주의 옹호자, 1960년대 클리멘트 그린버그에 의해서도 옹호된다. 벨은 ‘의미 있는 형식’을 만들어주는 것은 오직 선과 색의 조합뿐이며, 재현적 내용은 전적으로 무관하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이어 저자는 칸트의 자유미free beauty와 종속미dependent를 언급한다. 자유미는 풍경이든 캔버스 위의 자국이든 형식들 간의 상호관계에서 생겨나며, 종속미는 개념을 통해 작품에 주목하는 경우로 대다수 재현적 작품이 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한 사례로 저자는 피카소의 <우는 여인(1937)>을 꼽는다. (슬픔이란 개념을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칸트에 따르면 미에 대한 판단의 불일치는 미적인 즐거움을 감각적이고 실용적인 즐거움과 혼동하거나, 자유미를 종속미에 대한 판단과 비교하거나 아니면 작품을 관련된 개념을 통해 보는 것에 실패할 때 생긴다고 본다. 저자는 마티스의 <분홍누드>를 예로 들어 그 형상이 여성의 몸을 자연주의적으로 재현한 것으로 본다면, 작은 머리와 길쭉하게 늘려진 몸통, 그리고 뻗혀진 팔들은 추한 변형으로만 보일 것이며, 메시지가 없어 불만이라면 실용적 관심을 충족시키는 것이 실패한 데서 온 실망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특정 시점에서 사랑한 작품의 경우 그 정도로 좋은 작품이 아닌데 당시 유행 때문에 과대평가한 것으로 본다. 심미주의의 미덕 저자는 이 글 서두에서 칸트 이론이 여러 면에서 매력적이며, 한 작품의 가치가 그 내용으로만 환원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고 본다. 바바라 크루거의 작품 <무제(당신은 사로잡힌 관객이다)(1992)>는 남성의 손이 여성의 손가락에 결혼반지를 끼우고 있는 사진 위에 'You are a captive audience'라는 문구가 쓰여 있는 작품인데, 저자에 의하면 이 작품은 설명적 삽화에 지나지 않는다. 칸트는 이 같은 설명적 삽화와 예술작품을 구분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중요한 것은 작품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형성될 때 작품이 제공하는 독특한 미적인 경험과 작품 내용간의 상호침투라고 주장한다. 그 예로 크루거의 작품과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의 처형(1814)>을 대조한다. 고야의 이 작품은 물감의 자국조차 시각적 인지적 반응을 형성한다고 본다. 거칠게 처리된 표면, 전경에 있는 군인이 차고 있는 칼집의 번개모양의 줄무늬, 긁힌 흔적과 함께 말라붙은 어두운 심홍색 핏자국들, 그리고 맨 앞에 쓰러져 있는 인물의 얼굴 특징들이 분간할 수 없게 지워져서 특정인임을 알 수 없게 그려졌다는 것에도 눈이 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무자비한 행위들의 잔혹성, 전쟁무기의 날카로운 정확함, 말라붙은 피의 모양과 감촉, 그리고 손상된 사람들의 뭉크러진 형체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단지 교훈적인 작품이 아니라 개인 생명에 대한 잔인한 말살이 사무치도록 가슴을 때리는, 깊이 소름끼치게 하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물론 저자는 크루거의 작품도 형식의 중요성이 있다고 본다. 그가 자신의 메시지를 광고와 수사라는 수단을 통해 전달하는 방식이 작품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데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고야 작품만큼 감동적이지 못한 것은 고야의 경우 내용에 맞추어 작품의 미적인 측면을 수립하여 상호침투하는 데 사용한 예술적 수단들이 여러 층위에서 작용하기 때문으로 본다. 이어 저자는 칸트의 견해가 또한 동의할 수 없는 관점을 담고 있는 작품에 대해서도 어떻게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지 설명해준다고 기술한다. 저자는 먼저 마사초의 작품 <아담과 이브의 추방(1426-7)>, <실낙원>을 예로 들며,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삼차원을 그림의 평면 위에 재현하는 것이었고, 그에 따라 그는 원근법에 정통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심오한 표현적 울림과 미적 웅장함도 지닌다고 본다. <추방>은 아담과 이브가 추방당해 절망한 상태로 에덴동산으로부터 걸어 나오는 장면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육체적 유혹에 대한 엄격한 종교적 백안시, 신체적 자각에서 오는 부끄러움에 대한 권장, 인류가 천상의 상태로부터 추방된 사실로 본다. 이런 사실은 기독교적 메시지나 믿음과 상관없이 그 구조적인 구성과 표현적 특질과 형식의 내용의 상호침투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칸트의 견해가 예술감상을 독특한 종류의 행위로 특징짓는다고 본다. 작품에 대한 적극적 감상을 하는 것은 미적 특질들에 대한 특별한 종류의 주목을 요구하며, 이것이 진정한 예술을 기능적 문화적 상품과 구별해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칸트의 미적 판단에 반론으로 저자는 (1) 미적 감상은 컬트다. (2) 추하고 징그러워도 즐겁다. (3) 의미도 중요하다를 꼽으면서, 그런데도 미적 감상에 대한 칸트의 설명에는 지킬만한 무언가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 미적 감상은 컬트다 먼저 저자는 칸트에 대한 반론으로 미적 감상은 무관심적일 수 없다는 주장을 검토 한다. 예컨대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의 처형>이 스페인 전쟁의 참상을 유사하게 묘사하는 지 아닌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그림에 대한 미적감상도 이런 관심으로만 완전히 환원될 수 없다고 본다. 한편 저자는 미적 감상이 진정 무관심적 일 수 없는 이유가, 작품에서 즐거움을 얻는지의 여부에 늘 관심을 갖기 때문이라 생각한다면 칸트의 무관심설을 오해한 것으로 본다. 무관심성이란 우리의 즐거움이 어떠한 감각적, 실용적, 이론적으로 관심으로도 환원될 수 없음을 의미할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20세기 초 칸트 미학에 대한 강력한 반론이 제기된 바, 칸트의 무관심성이 심리학적으로 변모되며, 그 결과 이는 지각을 통해 주목하는 특별한 방식으로 간주되었다고 본다. 예컨대 손가락에서 피가 흘러나올 때 피가 퍼져나가는 모양을 감상할 수 있겠지만, 통증으로 인해 오래 감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의 기원은 에드워드 벨로프로, 그는 미적 감상을 위해서는 감상자 자신의 당면한 염려와 관심들로부터 일종의 심리적 거리가 요구된다고 보고 ‘심적 거리’라는 용어를 도입했다고 본다. (이에 대한 철학적 버전으로 제롬 스톨니츠가 제안한 것임) 저자에 의하면 미적 무관심성에 대한 이런 개념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게슈탈트 심리학을 동원했으며, 그 예는 ‘오리토끼 그림’이다. 이 그림을 토끼로도 오리로도 볼 수 있는데, 이 같은 방식으로 관심을 갖는 방식을 미적, 실용적, 이론적 방식들 사이에서 전환할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심리적으로 변모된 무관심성 개념은 미적 감상을 다른 주목 형식과 차별화하기 위해 이것이 특별한 종류의 지각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얘기한다. 우리가 취하는 태도가 무엇이냐에 따라 무엇을 알아보고 어떻게 그것에 반응하는지 측면에서 지각이 인도된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의 태도는 실용적, 이론적 관심의 태도다. 그러나 미적인 경우 대상의 모양과 구조에 대한 우리의 주목이 즐거움을 주는지 여부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본다. 이에 대해 저자는 정원수를 예로 든다. 정원수를 보고 무슨 종인지(이론적 관심), 햇빛을 가리고 있어 잘라내야 하는지(실용적 관심) 관심을 갖기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줄기와 가지의 윤곽, 나무의 결, 나뭇잎이 바람에 살랑거리면서 흔들리는 모습, 가지에 드리운 얼룩진 그림자. 뻗어나가다가 사람 팔 모양으로 구부러진 가지 등에 주목하는 경우는 무관심적이라 할 수 있다고 기술한다. 마찬가지로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의 처형>을 역사적 관심의 측면에서 볼 수도 있으며, 그것은 실제로 행해진 처형을 재현할 것인가? 그때의 처형은 전형적으로 이런 식으로 진행되었는가? 라는 의문보다 흰옷을 입은 중심인물로 시선을 이끄는 구조적 구성에 주목하거나, 또는 응고되고, 매대기쳐지고, 마치 수은처럼 흐르기도 하는 피가 어떻게 반짝거리기도 하고 어두워지기도 하는지에 주목한다면 이는 미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 저자는 미적 태도는 작품에 주목하는 특별한 동기의 측면에서 그 특징을 찾는다. 하지만 동기가 다르다고 지각적 주목의 종류가 달라지지 않는다. 작품에 접근할 때 관심이 다양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서로 다른 동기의 문제로 본다. 어떤 사람이 역사적 관심에서 고야 작품을 보러 갔지만 막상 보는 순간에는 미적으로 감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갑자기 다른 주목방식으로 전환하지는 않으므로 미적 태도라는 개념은 신화로 본다. 이 개념을 적용하면 예술에 가해지는 교훈적, 도덕적, 상업적 압력에 맞서, 이들과 구별되고 이들 모두를 넘어서 있는 예술 감상의 우위를 강조할 수 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그래도 이 개념은 환상이라는 것이다. 이어 칸트 이후 그의 무관심성 개념을 심리학적으로 만들어버린 사람들의 이론은 이런 반론에 취약해보일지라도 원래 칸트 이론이 그런지는 분명치 않다고 저자는 기술한다. 칸트는 미적 경험이 일상적인 지각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각상태로의 급작스러운 전환을 포함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칸트의 무관심성은 심리적인 상태의 특징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미적판단이 이루어질 때, 대상에 대한 반응의 근거를 특징짓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제대로 된 미적 판단이라면 즐거움은 작품에 대한 어떤 특정한 관심에 의존해서는 안 되며, 작품의 형식에 주목한 결과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애초 관심적인 이유로 작품에 주목한 사람의 경우에도 사실일 수 있으며, 칸트의 ‘무관심성’이란 이론적, 실용적 관심에서 자유로운 그런 관심에 의해 제약 받지 않는 주목을 말한다고 본다. 어쨌든 저자는 미적으로 감상으로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대상을 지각적으로 처리하고 대상에 반응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으며 이 차이가 무관심적 상태의 표지라고 주장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고 본다. 그 예로 세 명의 수습 사진기자의 과제에 대해 언급한다. 그들에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전시회를 다녀오라는 과제를 주었는데, 카르티에-브레송은 매그넘 사진작가협회 설립자 중 한 명이며, 그는 대상들의 움직임의 순간적인 인상을 잘 잡아낸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자코메티 사진 앞에서 세 사람은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인다. 한사람; 왜 이것들이 다 미술갤러리에 있지? 사진은 좋지만 왜 이게 미적 감상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미술관에 걸려 있지 않은 다른 것들도 얼마든지 즐거울 수 있어. 두 번째 사람 : 저 구조를 봐, 조각과 함께 있는 자코메티를 찍었다고 해서 다 이것처럼 좋지는 않을 거야...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복잡한 시각적 관계의 상호작용을 언급한다. 세 번 째 사람 : 나는 네가 이 사진에 대해 설명한 것은 동의하지만, 하지만 나는 이 사진에서 아무런 감흥을 느낄 수 없다.. 내가 이 그림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인식뿐이다. 저자에 의하면 마지막 두 사람 모두 미적인 관심을 가졌지만 오직 두 번째 사람만이 즐거움을 얻었으며, 따라서 미적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는 작품에 미적 관심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지만 충분하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칸트에 따르면 진정으로 미적인 판단은 단지 무관심적이기만 할 것이 아니라 보편적이고 필연적이며, 대상의 형식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여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사람과는 다른 세 번째 사람 같은 경우가 있다면 칸트가 말하는 조건들 사이의 관련성은 의심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 사람은 작품이 아름답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은 작품을 보는 것으로부터 어떤 즐거움도 얻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이는 칸트에 의하면 취향의 문제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칸트와 견해 차이를 보인다.(저자는 이 책 마지막 장에서, 미와 예술적 가치의 관한 판단에서 얻는 즐거움이 정말로 보편적이어야 하는가를 고찰하며 이 점을 제안한다. 저자는 거기서 미에 대한 판단을 포함하는 예술적 가치에 대한 판단은 부분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사람의 성품이 표현된 것으로 보아야 하는데 우리의 성품에는 비난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는 점을 이유로 하여 칸트와 다른 제안을 한다) 저자는 이와 별도로 중요한 것은 이미지를 보는 방식에서 첫 번째 사람과 뒤의 두 사람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로 본다. 뒤의 두 사람만 사진을 미적으로 보는데, 일부 사람들은 이런 감상을 무관심적이라고 말하겠지만 이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방식으로 시각적 관계를 찾고 그 찾아낸 것들에 반응하는 것은 단지 무엇을 묘사하는 이미지인지를 시각을 통해 알아채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저자는 일상적 대상이나 이미지를 어떻게 인식하는가를 고찰해보면 이런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본다. 지각perception이 하는 일에 대해,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가공되지 않은 정보와 감각데이터를 시각, 청각 등의 서로 다른 감각 양상을 통해 개념화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각의 상태perceptual state가 그것이 표상하는represent 바에 의해 정상적으로 야기된 경우일지라도, 예컨대 ‘연기를 봄’이라는 지각 상태이고 그것이 실제로 불에서 나오는 연기를 데에서 야기된 경우라도, 지각 상태의 정보는 연기를 표상으로 경험하는 것에 비해 덜 구체적이고 정보량만 헤프게 많다는 특징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이라는 개념도 함께 갖고 있지 않는 한 연기를 본다고 무언가 탄다는 믿음을 갖지는 못한 것이고, 운동, 깊이, 색조의 변화를 포착하는 시각적 처리 과정이 있지 않는 한 연기를 다른 것과 다름으로 인식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리라 본다. 지각적인 경험의 역할은 믿음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지만 그러려면 주어지는 가공되지 않은 정보 역시, 가공되지 않았음에도, 형식을 제공받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시각의 경우 지각은 시지각적 처리과정, 도식schema, 범주에 의해 형식을 부여 받아야 형성된다. 일상적 지각의 경우 지각 형성을 의식하지 않고 그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미적 관심이 있는 경우에는 경험에 무언가 더 포함된다는 것이다. 이미지 지각 방식은 예컨대 보는 이미지들이 명료해지고 부분들이 관련을 맺다가 갑자기 이미지 전체를 통해 두드러지는 시각적 관계들이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이미지가 이런 일을 하려면 대상의 일상적 인식을 위한 표준적인 인식과정과 도식에 도전해야 한다. 즉 그것들을 전도시키거나 생생하게 만들거나 뜻대로 잘되지 못하게 하거나 또는 서로 다른 도식들 사이를 오락가락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상에 대한 주목이 이런 식으로 이루어짐으로써 우리가 즐거움을 얻느냐는 질문은 이미지들이 지각경험을 형성하는 방식, 지각 경험에 구조를 제공하고 불명료함을 제거하고 확장시키고 보다 생생하게 바꾸는 방식에서 즐거움을 얻는가로 간주하면 된다는 것이다. 피카소의 파편화된 입체주의 시기, 카르티에-브레송의 사진에서 알 수 있듯, 미적감상은 우리가 경험에 형식을 부여하는 방식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이는 미적 관심이라는 개념을 옹호하려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보다는 약화된 형태의 미적 관심이지만 예술과 자연경관, 또는 디자인된 사물 등의 감상에서는 이 개념을 견지하는 것이 중요하며, 미적 감상 개념 전체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저자는 미적 감상 개념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제한 조건들이 더 있어야 한다고 본다. 칸트의 미적 판단에 대한 설명은 일반적으로 경험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칸트에 대한 표준적 해석에 의하면 아름다움의 판단, 나아가 미적 감상 일반은 대상을 경험하면서 지각하게 되는 바로서의 대상의 형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고 본다. 일부 사람들이 개념미술에 대해 가지는 우려의 바탕에는 이런 생각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개념예술처럼 작품을 경험한다고 해서 더해지는 것이 없거나, 물질적인 대상이 작품의 핵심이 아닌 경우, 그런 작품에는 미적이라고 구분해서 부를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고, 따라서 그런 작품은 나쁜 예술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에 의하면 이런 생각은 개념미술에게도 칸트에게도 부당하다. 그 예로 종종 어떤 생각들로부터도 미적인 이끌림을 느끼는 사실을 예로 든다. 어떤 과학적 증명이나 공식이 지닌 매력, 예를 들어 e=mc2의 매력에는 그것의 아름다움도 한몫하고 있다는 곳이다. 비슷한 경우로 어떤 종교적 세계관이나 철학적 아이디어들이 지닌 매력은 종종 그것들의 우아함과 설명의 복합성, 그리고 일관성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이런 경우 지각적인 형식이 그 일을 해준다고 볼 수는 없으며, 이것은 세계에 대한 특정한 개념화를 구성하는 도식, 범주, 믿음, 태도들의 개념적인 형식과 관련된 것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독교의 매력은 그것이 인류의 사악함과 오류 가능성과 고귀함 간의 조화를 추구하는 방식과, 그런 생각하에서 사랑과 용서와 자비를 강조하는 것, 그리고 그럼으로써 인간의 전 경험에 형식을 부여하는 것으로 일부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칸트의 용어를 빌리면 종속적으로 아름다울 수 있으며, 그의 미적이념에 대한 생각은 덜 전통적인 용어들을 사용해서 개념예술의 미적 장점을 이해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해준다는 것이다.(칸트에 의하면 미적 이념은 생각들과 마음의 패턴을 자극하는 상상력의 표상이라고 제안했기 때문에) 그 예로 저자는 정원 잔디 위에 선을 만들기 위해 걷기를 반복한 리처드 롱의 <걸어서 만든 선(1967)>은 걷는다는 관념, 환경으로부터의 분리, 풍경에 자국을 낸다는, 또는 풍경의 일부가 된다는 생각 같은 것들을 반추해보도록 자극한다고 본다. 또한 사이먼 패터슨의 <큰곰자리(1992)>는 런던 지하철 노선도의 역명을 칼 마르크스에서 오드리 헵번에 이르는 문화인사들의 이름으로 바꾼 작품인데, 이것을 보면서 문화적 공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 서로 다른 개인들의 공통의 문화 속에서 서로 다른 노선을 따라 걷는다는 것이 어떤 식인지, 같은 문화의 부분들인데도 거의 만날 수 없어 보인다는 것이 어떤 식인지, 그리고 문화속에서 움직여 다닌다는 것이 어느 정도까지 개인적 선택에 달린 문제인지, 또는 어느 정도까지 그것에 달린 문제가 아닌지 등을 반추해볼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이런 생각이 칸트에 대한 전형적 해석은 아니지만 미적 이념들이 그 차제로 감상될 수 있음을, 즉 생각에 대해서도 우리가 미적 관심을 취할 수 있음을 인정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저자는 개념미술에 대한 조롱의 많은 부분이 사물은 지각을 통한 관조에서만 아름다울 수 있다는 틀린 가정으로부터 형성되었다고 본다. 결국 칸트의 무관심성 개념을 독특한 지각적 태도로 이해하는 것은 미적 감상에 대한 너무나 강한 요구이기 때문에 매력적이지 않으며 올바른 이해도 아니다. 무관심적인지 아닌지는 반응의 근거를 통해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반드시 즐거움을 느끼지 않고서도 작품을 아름답다고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무관심성이 미적 판단의 다른 조건들과 반드시 관련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이론에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보며, 이는 칸트가 근본적이라 여겼던 미적 판단의 보편성을 위협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추한 것, 기괴한 것. 혐오스러운 것 저자는 이글에서 먼저 20세기 예술의 발전은 칸트의 생각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시사하는 듯하다고 문제제기를 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을 분석하는 것으로 시작, 이것을 일반화, 미적감상을 설명해준다는 칸트의 생각이 미친 영향력은 과소평가할 수 없으며, 작품은 우아함, 고상함, 활기, 박력 같은 성질을 지닐 수 있는데, 이것들이 결합되어 조화로운 통일성을 이루고, 복잡해지고 일관성 있는 구성을 갖추게 되고, 강렬하게 되면 그것이 미적으로 매력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미적 가치란 아름다움이 지닌 매력을 일반화시킨 것으로 다뤄진다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여기서 중심생각은 즐거움을 취하는 대상은 그것 자체가 즐거운 대상이라는 것이다. 칸트는 묘사 대상 자체는 추하더라도 그것이 아름답게 묘사될 수 있음을, 따라서 이미지 재현 대상은 즐겁지 않더라도 그것에 대한 이미지는 즐거움을 줄 수 있음을 인지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존 컨스터블의 “추한 것은 없다, 나는 살면서 추한 것을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대상의 형태가 어떠하든 간에 빛과 그림자, 그리고 선택된 시점이 언제나 그것을 아름답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고 말한 점을 언급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추함과 기괴함, 뒤죽박죽이고 혐오스러운 것들은 그 자체로는 언제나 미적으로 불쾌하다고 여겨지며, 칸트도 단 한 종류의 추만은 모든 미적 만족, 따라서 예술적 아름다움을 파괴하지 않고서는 자연 그대로 표현될 수 없는데 바로 혐오스러움disgust일 일깨우는 추이다“라고 말했다는 점을 저자는 상기한다. 그런데도 실제 대상이건 상상 속 대상이건 기괴, 혐오, 부패, 완전 추함을 묘사하는 것은 시각 예술의 오랜 전통이었다고 본다. 20세기에도 이 전통은 유례없는 열정으로 계속되었고, 심지어 혼란스럽고 비정합적이고 완전히 부조화스런 것을 추구하라는 것이 예술의 강령으로 등장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미켈란젤로 이전 시대 북해 연안의 피에타 들은 예수의 죽음이 갖는 끔찍한 성격을 괴기스럽게 강조했다는 것이다. 히에로니무스 보슈의 <쾌락의 동산(1500)>은 고문에서부터 사람의 몸을 삼키는 것에 이르기까지, 많은 혐오스러운 장면들을 보여주며, 퀸틴 마시스의 <늙은 여인(1520)>은 극도로 추한 여인의 모습을 그린 예로 든다. 20세기의 예로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에 나오는 왜곡, 타락, 부패한 형상을 저자는 떠올린다. 기형, 불구, 토막난 신체에 대한 강박적인 관심을 부추기는 작업을 한 사진작가 조엘 피터 윗킨의 작품과 성기 모양으로 왜곡된 얼굴 형상을 가진 어린이 마네킹들이 서로 붙어 있는 제이크와 디노스 체프먼 형제의 작품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1928년 부뉴엘과 달리가 만든 영화인 <안달루시아의 개>는 같은 배우가 여러 역을 연기하고 바깥 장면은 풍경이었다가 곧 도시 경관으로 제멋대로 바뀌며, 안구를 베는 것과 같은 초현실주의 이미지들이 병치되며 편집은 경직되어 있는데, 이 모든 것들은 영화 내러티브 앞뒤가 맞지 않게 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실제로 많은 작품들은 단지 혐오스러운 것을 묘사하거나 불쾌한 감정을 부추길 뿐 만 아니라 불쾌한 재료를 사용함을 언급한다. 특히 신디셔먼, 마이크 켈리, 폴 매커시, 카키 스미스, 제닌 안토니와 같은 작가들은 이른바 '비속예술abject art' 에 관심도 이런 같은 흐름에서 고려되어야 한다고 본다. 신체의 대사과정에서 나온 것들, 체액, 구토, 월경혈, 대변과 같은 것들에 대한 몰두와 저급하고 혐오스럽거나 금기를 위반하는 것에 대한 관심을 고려한다면, 이는 마치 혐오란 미적 반응의 울타리 밖에 있다는 칸트의 주장을 시험하는 예술운동인 듯하다는 것이다.103 <무제 167>(1986)과 <무제 175>(1987)로 대표되는 이 시기 신디 셔먼의 혐오스러운 사진 중에는 여성의 몸과 연관된 소품들과 다양한 신체부분들이 포함되어 있고, 이들이 오물 속에 흩뿌려져 있으며, <무제 172>(1987)에는 더러운 접시들과 녹슨 학스로 어질러진 식탁이 있고, 전경에는 벌레들을 담은 접시가 반짝거린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작품이 불쾌한 재료들로 구성되거나 변태적인 장면을 묘사하고 불쾌한 반응을 일으키더라도 그것을 미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칸트의 관전에서는 이런 예는 미적 감상 영역으로 보이지만, 저자는 이 추함, 혐오스러움, 뒤죽박죽임이 미적으로 매력적인 이유의 일부로 본다. 또한 저자는 실제로 예술적 관심이 미적 영역 밖에 있을 때가 있다고 본다. 다다 운동은 감상자의 경험을 혼동시키기 위해 급진적 테크닉을 추구했으며, 이들은 의식적으로 반미적anti-aesthetic이고자 했다는 것이다. 다다이즘은 예술적 관습과 불변의 가치라는 신념에 도전했다는 것이다. R. Mutt라고 사인된 뒤집어진 소변기인 마르셀 뒤샹의 <샘>(1917)은 고전주의를 배경으로 고려할 때 예술은 어떤 본질적인 미적 속성을 드러내야 한다는 가정에 대한 익살스런 반박으로서 의미를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기괴하고 혐오스럽고 추하고 뒤죽박죽인 것이 일반적으로 불쾌하더라도 특정한 맥락에서 어떤 관계가 주어진다면 즐거운 것으로 바뀔 수 있다는 주장을 언급한다. 루시안 프로이드의 누드 그림은 종종 대상의 신체를 마치 두터운 고기조각처럼 묘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리 보워리를 모델로 한 연작은 살의 얼룩덜룩한 톤, 그 윤곽과 넓은 면적에 주목하게 하며, 그래서 몸은 그 본성이 물질적이라는 사실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그림의 특성들이 미적인 매력(장점)으로 변화됨을 느낄 수 있으며, 제니 샤빌의 작품<폐쇠된 접촉#14>(1995)도 유사한 예로 본다. 이어 저자는 어떤 특정한 종류의 미적 감수성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혐오스럽고 불쾌하고 추한 것들이 표준적인 미적 특질일 수 않을까? 라는 의문을 제기하며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레온티온 이야기(시체의 모습에서 즐거움을 얻는다는 내용임)를 예로 든다. 이런 관심을 보여주는 예술의 예로 보슈의 작품이 있으며, 그뤼네발트의 <십자가 책형>(1515)은 황량하며 잔인하며 공포스럽다고 본다 . 또한 저자는 20세기 후반에 와서 <시체공시소>(1992)라고 명명한 안드레 세라노의 사진 연작, 부검과정을 추적한 수 폭스의 무제 작품들(1996) 그리고 리처드 소던 스미스의 <증상>(1997)연작은 모두 인간육체의 색과 형태, 그리고 그 육체가 치명적으로 훼손되었음에 중점을 둔 작품으로 본다. 데미언 허스트의 <1000년>(1990)도 구더기가 들어 있는 부패하는 소의 머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속에서 구더기는 파리가 되고 그 파리는 다시 구더기가 될 알을 낳은 끝없는 순환과정이 반복되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또한 프란시스 베이컨의 울부짖는 형상들 중 많은 수가 육체와 영혼의 영속적 타락과 저열한 부패를 다루었다고 본다. 그러나 이런 작품들이 전형적인 미적 장점은 아니며, 이런 경향들만 강박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심각한 의미의 도착倒錯으로 본다. 이런 경향들은 그 시도가 잘 이루어졌을 때는 미적으로 가치 있을 수 있지만, 동물적 본성들을 승화시키지 못할 경우 인간들을 피폐하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저자는 칸트의 생각과 달리 추하고 기괴한 것도 미적인 성질일 수 있고 긍정적 가치일 수 있다고 본다. 의미가 중요하다. 저자는 최근 ‘미’나 ‘미적인 것’이라는 개념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났지만 부정확한 것도 많다고 본다. 그런데도 미와 미적인 개념에 대한 질문 중 많은 것들은 흥미로우며, 특히 작품의 미가 작품의 의미에 대해 외적인 경우와 내적인 경우를 구분해야 한다는 아서 단토의 최근 제안이 그러하다고 본다. 단토는 작품에 구현된 의미embodied meaning를 중시했으며, 미가 작품의 의미에 대해 내적인 경우라야만 작품의 미적 속성들이 예술로서의 작품에 대한 평가와 적절하게 관련된다고 본다. ‘의미가 중요하다’는 슬로건이 대두되는 이유는 우리가 작품의 맥락과 내용에 대한 지식에 의존하여 작품을 감상하는 일이 자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단토는 “어떤 것을 예술로 보는 것은 눈이 알아보지 못하는 무엇-예술이론의 분위기와 예술사에 대한 지식, 즉 예술계artworld를 요구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그의 고전적 예는 앤디 워홀이 복제한 브릴로 상자들인데, 이 상자들은 실재 브릴로 상자들과 조금도 달라 보이지 않지만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들은 예술로 간주한다. 단토에 따르면 예술과 예술 아닌 것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1960년대 들어 이전과 다른 관점으로 예술로서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작품 감상이 지식에 의존하는 경우도 있으며, 예술과 비예술의 차이가 만들어진다고 본다. 이어 저자는 칸트의 설명에 따라 내용이 문제가 되는 경우 작품 형식이 어떻게 재현하는 내용을 그려내는 것이 미적으로 적합한 수단이 되느냐 하는 방식에서 즐거움을 얻는다고 본다. 이런 시각에서 작품에 내용이 있는 경우,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이 얼마나 솜씨 있게 전달되는가를 주목함으로써 즐거움을 얻는지의 여부이며, 그러므로 칸트는 작품 내용 또한 의미가 작품의 미적 가치와 관련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간접 부수효과로서만 그러하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작품 메시지 그 자체는 작품의 가치와 무관한 것으로 보고, 메시지는 내용의 미적인 장점의 성취를 도와주거나 방해하는 경우가 되어야만 드러난다는 것이다. 저자는 칸트의 이 이론이 어느 측면에서는 정말로 예술에서 의미가 수행하는 역할을 무시하는 이론일 수 있다고 본다. 안드레 세라노의 <오줌예수>(1987)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가 오줌 속에 담긴 채 빛을 받고 있는 사진인데, 이 작품의 시각적인 겉모습은 반미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핵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매체가 무엇인지 아는 것-제목을 알아야 함-이 필요할 뿐 만 아니라 그 사실이 작품의 중요성을 드러내는 데 중요성을 가지는가를 파악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작품이 제공하는 경험의 성격을 그것이 가진 감정적인 깊이와 통찰력 또는 이해의 측면에서 볼 때, 그것으로부터 작품의 순수하게 미적인 가치를 뚜렷하게 분리해낸다는 것은 유지되기 힘든 주장으로 본다. 홀바인의 <대사들>(1533)은 영국왕실에 파견된 두 명의 대사들을, 그들 각자의 역할과 그에 따르는 특권을 나타내는 도구들에 둘러싸인 채 로 묘사한 작품인데, 이 그림의 주인공이 누구인가는 그림의 본질적 의미를 파악하는 데에는 부수적 사실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자신감 넘치는 포즈, 류트, 풀루트, 천체구, 휴대용 해시계, 찬송가 책, 그리고 다양한 항해도구, 기하각 기구들은 인류의 지식과 예술을 상징하며, 동시에 서양문화가 정복한 전세계의 영토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을 토대로 저자는 그들 옷의 재질과 화려함은 이러한 성취에서 오는 물질적 보상을 암시하지만 그림 전면의 해골이 등장한다.(정면에서는 식별할 수 없다) 이는 전도서의 한 구절 “헛되도다,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임을 기술한다. 이런 관점에서는 대사들의 분별없는 긍지와 자기만족에 그림자를 드리운 죽음이 중요한 주제로 등장하며, 그래서 배경의 커튼조차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고 본다. 커튼 뒤에는 우리 모두를 기다리는 어둠이 있으며, (대사들은 커튼에 등을 돌린 채 이를 못 깨닫음) 이 그림은 대사들이 죽음의 견지에선 삶을 숙고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주목해야할 것은 대사들을 통해 이해하게 된 것이 회화적인 수단을 통해 그림 속에 내포된 것이라는 점으로 본다. 인간의 조건에 대한 이런 태도, 열망에 대한 깊은 시사점을 지닌 관점을 회화적으로 구현한 것이 이 작품을 훌륭한 작품으로 변모시킨다는 것이다. 이어 저자는 매우 깊이 있는 지각, 태도, 또는 반응을 구현한 것으로 인해 작품의 예술적 가치가 증진되는 일은 재현적 예술에서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20세기의 시각예술은 형식과 구조에 대한 관심, 예술의 물질성, 색과 평면과 질감 간의 관계를 중요한 특성으로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이들 추상예술이 순수하게 미적인 장점들과만 관계되는 것은 아니며, 일견 내용 없는 추상미술, 또는 추상미술, 또는 추상조각이라도 그러 단지 고도의 표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태도, 반응, 지각과도 관계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몬드리안의 작품) 마크 로드코와 같은 작품의 경우 서로 대비되거나 상보적인 또는 미묘하게 다른 색들의 블록과 층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그림을 그렸는데, 색을 얇은 층으로 만들어 겹쳐서 여러 번 칠한 결과 서로 다른 각도나 조명의 차이에 따라 미묘하게 반응하는 강렬한 색채감을 만들어냈다고 본다. 저자는 그의 작품이 지나치게 찬사 받는 경우도, 실패한 허세를 보여주는 작품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의 작품 중 잘된 것은 아름다운 것 이상이며, 로스코는 그가 근대의 정신이라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받아들였던 소외, 절망, 그리고 의심의 느낌을 전달하고자 했다고 본다. 그의 변화하면서 뒤로 멀어지는 색으로 이루어진 작품은 불확정의 세계 속에서 혼자인 경험하게 하여 고독한 존재로서 세계 속의 우리 위치를 어떻게 이해하고 반응할 것인지 알게 해준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장 끝부분에서 작품이 얼마나 훌륭한가는 주된 목적이 예술적으로 가공된 미적 특질들을 보여주거나, 아니면 도덕적 통찰, 종교적 헌신, 또는 아첨을 보여주는 것에 달려 있지 않다고 본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미적 특질들이 얼마나 잘 만들어졌는지가 좋은 작품인가에 영향을 미치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작품에 대한 적극적 감상을 할 때 드러나는 반응이나 통찰, 이해가 가치 있느냐의 문제이며, 이런 작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반면 그것이 심오하거나 흥미롭거나 시사적이거나 삶에 진실하거나 통찰력이 있다면 좋은 작품으로 본다. 아름다움과 미적 관심을 통해 얻게 되는 것을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그것이 예술 가치에 대한 이야기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다음에 실을 예정인 3장은 ‘예술에 들어 있는 통찰’입니다)
110 no image 2010작업일기2
도병훈
5500 2010-04-27
2010 작업일기2 5월초부터 안산에 위치한 경기도 미술관에서 개최되는 ‘경기도의 힘’전에 ‘슈룹’에서의 전시 활동과 관련, 김성배, 이윤숙 선생과 함께 전시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두 분의 권유로 이번에 전시하게 된 나의 작품은 지난 1995년 슈룹에서 기획한 <아리랑, 이어지는 자서展>출품작이다. 이 그림은 가로 400cm×세로 436cm 크기의 올이 굵은 광목천에 황토색으로 물들인 후 경상도 지역의 <대동여지도>를 확대하여 목탄, 먹,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작품으로 당시 커다란 ‘말벌집’과 함께 설치된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임자병향壬坐丙向>이란 풍수지리적 제목으로 화성 봉담리 소재의 이윤숙 선생의 당시 작업실 겸 전시장에 전시되었는데, 2층 높이의 층고를 가진 공간 덕분에 좁은 작업실에서 본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이러한 작업을 할 당시의 세계관은 고산자 김정호가 말한 ‘산(산마루)은 땅의 살(근육)이자 뼈이며, 물(물의 흐름)은 땅의 피이자 혈맥山脊水派爲 地面之筋骨血脈 산척수파위 지면지근골혈맥’ 이라는 구절이었다. 주1) 요즘 4대강 개발과 관련하여 대두되는 논란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구절을 처음 대하던 때 느꼈던 감동이 아직도 어제의 일 같다. 이 그림은 1994년 6월에 제작한 것이므로 어느 덧 16년이 넘은 작업이다. 나에게 이 작품은 특히 바깥세계를 탐구하는 '타자언급other-reference'이면서 동시에 나의 삶을 주체로 한 자기언급self-reference의 매개체라고 할 수 있다. 나로서는 이 작업이 르네상스 이래 서구의 근현대미술이 구축하거나 해체해온 특성과는 다른 예술을 지향하고자 했던 ‘증표’ 와 같은 작업인 셈이다. 지난 일요일, 나는 출품을 앞두고 그간 고이 접어서 모셔(?) 두었던 이 작품을 펼쳐 놓고 원 대동여지도 복사본과 비교하면서 하루 종일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작업을 했다. 그러면서 이 지역 중 포항 근처인 운제산 오어사 주2)에서의 원효의 행적을 더듬어보기도 하고, 수운 최제우와 해월 최시형이 수도하고 활동하던 곳 등을 탐색해보았다. 그리고 겸재 정선 예술세계의 획기적 분기점이 되는 <내연삼용추도>를 그린 곳인 내연산 지역을 좀 더 자세히 그리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들은 1994년 당시만 하더라도 모르는 사실들이었다. 어제 저녁 다시 내가 그린 부분의 <대동여지도>를 다시 찬찬히 살펴보니, 겸재가 <쌍계입암도>을 그린 지역의 산세와 물의 흐름이 자세히 나와 있었다. <쌍계 입암도>는 필력이나 지역적 인근성으로 보아 <내연삼용추도>를 그린 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인데 대지에 불쑥 쏟아오른 거대한 남근처럼 묘사하여 거침없고도 기세 넘치는 화풍을 보여준다. 이 그림은 경북 영양의 청기천과 대천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입압과 그 주변을 그린 것이다. 그리고 입암 인근에 위치한 영남 지역 사대부의 정원을 대표하는 ‘서석지’를 주변도 어느 곳일까 가늠해보았다. 언젠가 ‘서석지’에 갔을 때 그곳을 바라보는 정자 마루에 그 지역의 전체 산세가 그려진 고지도 복사본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번에 대동여지도를 보며 우리 선조들의 세계관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누가 말했듯 지도를 보고도 새소리 물소리를 듣는 경지는 아니지만 지난 수 년 전 겸재 정선의 행적을 더듬으며 가본 곳이라 당시의 경험과 지도를 통해 주변 광경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로서는 실용적 관점에서 만들어졌을 이 지도에 정자나 누각까지 표기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안동의 영호루와 동해 현종산 자락에 위치한 망양정이었다. 주3) 내가 그린 이 지역은 삼국시대 때만 하더라도 한반도에서도 가장 낙후된,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의식이나 문화가 때때로 매우 빈한했던 후진적인 곳인데, 원효에서 최시형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이처럼 협소한 공간에서 깊고도 넓은 정신적 맥락이 형성되고, 나아가 역사적 전환을 이루는 계기가 조성되었는지, 나는 이번에도 오랫동안 지도들 들여다보며 생각해보았다. 오늘 같은 글로벌 시대, 또는 노마디즘의 시대에 이러한 지역적 탐색행위는 과연 무의미한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것은 단지 지역적 고유성에 대한 관심이 아닌 정신적, 사상적 측면에서 그 단서를 찾는 모티브로서 의미가 더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번에 나는 작품의 제목도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가>로 바꾸었다. 최근에 와서 예술적 가치는 그 어떤 경험으로도 사상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영역임을 새삼 절감한다. 그래서 나에게 예술이란 언제나 탐구의 매개체이자 수단일 뿐이다. 나는 예술이 그저 감성적 유희이거나 장인적 수련의 결과물이거나 혹은 세련된 감각과 기술의 영역이라보지 않는다. 바로 이 때문에 16전이나 지금이나 이 뜬금없는(?) 탐색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역사의 흐름은 도도하고 냉혹할 뿐이다. 최근에 안 사실이지만 지난 19세기 초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서구의 유례없는 비약의 시기에도 수많은 화가들이 시대착오적인 작업을 하였으며, 심지어 당시 진취적 기상이 넘치던 미국에서도 수많은 화가지망생들이 이미 황혼에 접어든 서구 근대 미학의 강령과 오랜 전통을 동경하며 ‘떼거리’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나는 그러한 사실을 접하며, 여름날 가로등 불빛으로 모여들다 불에 타죽은 수많은 나방들이 떠올랐다. 이는 물론 새로운 정신적 지평(통찰)이나 관점이 아니라면 평생을 바쳐 작업한 들, 그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와 가치가 있는가를 회의하기 때문이다. 내가 ‘앎과 삶의 괴리’ 사이에서 어떤 유기적이며 합일적인 세계를 지향하고자 하는 것도 이런 생각이 그 바탕에 있는 셈이다. 2010년 4월 27일 도 병 훈 주1)이번 전시 출품을 앞두고 김정호,『청구도靑丘圖(乾)』,「범례」, 고전국역총서47, 민족문화추진위원회, 1971년, p.15(원문p.4)에서 이 원문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이 구절의 원문은 최원석이 쓴『풍수의 입장에서 본 한민족의 산 관념』에서 인용된 구절을 통해 알게 되었다.(서울대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92, 32쪽 참조) 주2) 삼국유사에 이 절에 얽힌 원효의 행적이 나오며. 당시에는 항사사라고 하였다. 주3)현재의 망양정은 1860년에 울진군 산포리로 이전하여 원래의 자리가 아니 곳에 지난 2005년 신축된 건물이다. 원래의 망양정은 관동팔경 중에서도 첫 번째로 그 풍광이 아름다운 곳으로 꼽혔으며, 이를 짐작할 수 있는 겸재의 <망양정도>가 전한다.
109 no image 예술과 그 가치(1)
도병훈
6954 2010-04-21
이 책은 영미 분석철학 계통의 예술철학자인 매튜 키이란이 2005년에 'Revealing Art'란 제목으로 출간한 저서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예술의 가치라는 주제와 관련된 핵심적인 의문에 대해 비평과 철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근 현대의 여러 예술작품들을 통해 탐구한다. 즉 근현대예술 작품이 과연 어떤 식으로, 또 어떤 이유로, 심오해지고 당혹스럽게 하고, 우리의 상상력을 넓힐 수 있는가의 문제를 탐색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인문주의적 다원주의 입장에서 단일하고 중심적인 예술의 가치를 부정한다. 즉 단일한 하나의 예술적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작품이 실현할 수 있는 가치들은 여럿이 있고, 이들 가치들이 미묘하고 복잡한 상호관계를 이룬다는 것이다. 저자와 견해를 달리하는 부분도 있지만, 예술의 가치에 대한 진지한 탐색과정을 드러내는 텍스트로 간주하여, 각 장의 소주제 별로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예술과 그 가치(매튜 키이란 지음, 이해완 옮김) 1장 원본, 독창성, 그리고 예술적 표현 원작의 가치 이 장 서두는 예술의 가치가 그것이 주는 경험의 가치로 모두 환원될 수 있는가? 를 화두로 먼저 원작과 복제 작품을 예로 들며, 우리가 예술작품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게 되는 방식들에 집중한다. 저자는 전통적으로 원본이나 독창성을 중시하는 것은 낭만주의 시대에 행해진 예술가의 이상화와 연관된 것이라 진술한다. 예술로서 달성한 독특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표현이 인간의 가장 고귀한 성취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낭만주의 시대에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오늘날 이런 전통은 거의 사라졌다고 본다. 가짜 이 부분에서 저자는 먼저 19세기 후반 이래 1920년대, 특히 다다이스트와 초현실주의자들은 사진을 두드러지게 사용한 예를 든다. 막스 에른스트는 보는 이를 불편하게 하는 효과를 얻기 위해 포토몽타주를 사용했으며, (*폰 하트 필트도 이러한 예에 해당) 뒤샹과 만 레이에서 제프 윌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작품은 원본이 무의미함은 시사하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원본이건 아니건 간에 당신이 보는 것이 원본과 같은 가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가의 여부가 문제라는 것이다. 이어 저자는 발터 벤야민의 말을 예로 들면서 예술작품이 기계복제 시대로 진입했음을 언급한다. 그리고 저자는 1947년 앙드레 말로가 전 예술작품을 사진으로 찍은 가상 미술관을 언급한다. 또한 모네 수련 복사본은 너무나 흔한 예가 되어버려 위대한 예술적 성취조차 진부한 것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인 것 같지만 대량복제로 인해 예술 감상이 꼭 싸구려가 되는 건 아니다 라고 주장하며, 그럼에도 원작을 보러 가는 목적은 무엇일까? 라고 자문한다. 이에 대해 먼저 빌 브란트의 사진에 대해 기술하며, 그것은 인화본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다고 본다. 이처럼 서로 다른 버전이난 제한된 인화본으로 인해 희소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작은 거리(1657-8)를 예로 든다. 이 그림은 정교한 그림으로 복제본이나 위작은 이 같은 원본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림과 사진 모두 완벽한 복제가 가능하다면 그래도 원작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치를 가질 이유가 있을까? 라는 물음을 제기한 저자는 ‘있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로는 곧 기원이 본질essentiality of origin이라는 생각을 전제로 삼는다. 그 예로 예술세계를 복제 인간들에 비유한다. 가령 한 명은 진짜 딸이고, 한 명은 그 딸의 복제 인간일 경우 그들을 똑같이 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같은 식으로 어떤 작품이 겉모습으로는 똑같다 해도 이는 원작의 또 다른 버전이 아닌 원작의 복제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어떤 특정한 작품이 맺고 있는 관계들이 그 작품의 본성에 본질적인 차이를 만들고 그에 따라 그 작품이 어떻게 대우 받는가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즉 작품과 창조자 간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독창성 저자에 이 제목의 글에서 먼저 좋은 작품, 또는 위대한 예술작품을 높이 평가하는 것들 중 하나는 독창성임을 언급한다. (여기서 말하는 독창성이란 특정한 종류의 예술적 성취로 이루어짐) 저자는 카라바조의 작품을 예로 들어 형식적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생한 명암효과chiaroscuro을 통한 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비이며, 가장 혁신적인 측면은 성서의 인물이 평범한 동시대의 사람으로 재현된 점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패스티시는 다른 작품에서 베낀 요소들로 이루어진 작품 또는 다른 예술가의 스타일을 의도적으로 흉내낸 작품이지만 원작 같은 가치를 갖지 않는다며, 그 예로 반 고흐 그림 복제품을 든다. 이런 복제품은 개성적인 표현도 아니고 원작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시도했을 예술적인 발전이나 해결을 위한 작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반 고흐가 아를Arles에서 제작한 원작들을 보면 개성적인 양식에 도달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엿볼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은 신선하고 독창적인 양식- 할퀴고 베고, 내려찍은 듯한 선적 표현을 개발한 점, 그리고 자신이 주변의 풍경을 어떻게 보고 이해하고 반응했는가를 미묘하고도 대담한 방식 등이라는 것이며, 이처럼 원작만이 무언가 성취할 수 있다고 논증한다. 예술적 성취 서두에서 저자는 예술이 추구하는 특별한 종류의 가치 있는 경험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시각차가 크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들 견해들은 예술작품이 가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한에서 가치가 있다는 기본가정을 공유한다고 본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다른 관점을 제기한다. 예술적 가치를 결정하는 많은 부분이 경험의 가치와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예술적 가치가 곧 경험의 가치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말로의 가상의 미술관을 예로 든다. 커다란 밀폐된 방에 지금까지 보지 못한 서구 근대 예술가들의 원작들이 보관되어 있는데, 문을 열 경우 이 작품은 완전히 파괴되도록 건물이 지어졌다. 아무도 이 작품들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이젤 위버튼은 이와 유사한 사고 실험을 제안하면서 이 사고 실험이 그 작품들이 아무런 가치를 지니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는데, 저자는 이는 잘못된 추론으로 본다. 좋은 소식에 기뻐하는 것이든 그림에 담긴 통찰력에 감탄하는 것까지 특정한 경험들은 뭔가 가치 있는 일이 일어났다거나 달성되었다는, 경험보다 앞선 믿음이 있어야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때 근본적으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그 좋은 일이지 그 좋은 일들이 제공하는 경험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저자는 니콜라 푸생의 고전주의 그림을 예로 든다. 푸생이 색의 우선성에 반대하여 회화적인 디자인과 형태적 유형의 중요성을 강조한 점을 꼽은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삶에서 가치란 가치 있는 것들이 실현되거나 상실되는 데 달린 문제일 경우가 대부분이지, 단지 그것들의 경험이 즐겁거나 값지기 때문에 가치 있다고 하거나 그런 경험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가치 없다고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예술의 가치를 값진 경험을 제공하는 잠재적인 성향으로 환원시키는 견해를 가지고서는 작품의 평가방식과 높은 가치평가의 이유를 알 수 없는 몇몇 종류의 예술작품의 예로 저자는 20세기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입체주의를 예로 든다. 이어 저자는 오직 경험에만 근거해서 예술적 가치를 설명하는 것과 관련된 또 다른 결점은, 가령 모든 면에서 정확히 똑같아 보이는 두 개의 캔버스가 전시되어 있다는 점을 가정하면 시각적으로 구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떤 감상자든지 이 두 작품에 대해 가질 경험은 정확히 같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러나 하나는 100년 전에 만들어져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불러일으켰으며, 그 이후에 오는 몇몇 중요한 발전의 전조가 되었지만 다른 작품은 그렇지 않으므로 두 작품이 각각 이전, 이후의 작품들과 맺고 있는 관계에서 드러나는 차이는 그들의 본성과 가치에 근본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그리고 저자는 현대예술들 중, 마르셀 뒤샹의 개념적 오브제, 흙이나 나뭇잎 같은 ‘가치 없는’ 재료로 작품을 만든 아르테 포베라 운동, 영미의 예술과 언어 운동, 라우센버그의 지워진 드 쿠닝 그림, 코넬리아 파커의 간격: 끈달린 입맞춤 등도 이들의 작품의 가치가 경험으로 완전히 환원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예로 제시한다. 이런 논증을 통해 저자는 결국 예술적 가치가 전적으로 감상자의 경험에 의존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그것이 조잡한 버전이든 세련된 버전이든 간에 항상 잘못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근본적인 예술적 성취들과 예술작품에 대한 경험들은 그것이 가져오는 즐거움이나 값진 경험과는 독립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적 상상력의 승리 앞에 언급한 관점에서 저자는 예술창작과 감상에 대해 근본적으로 생각해보면 어떤 작품들은 그 본질적 특성이 예술가의 상상적인 표현과 관련됨을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생각은 낭만주의에서 유래하는데. 낭만주의는 ‘진정한’ 인간 행위란 상상력이 마음껏 발휘되도록 하는 것이라 간주하여 예술이 그러한 자기표현의 가장 높고 순수한 형식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콜링우드의 예술관을 빌리는데, 그가 진정한 예술은 예술적 표현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생각과 느낌과 태도를 의식 속으로 가져온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서 “예술은 정신의 가장 심각한 병인 의식의 타락을 고치는 치료제”라는 것이다. 저자는 콜링우드의 이러한 관점에 대해 예술가의 상상적 창조와 감상자 입장에서의 상상적 참여를 강조한 것으로 해석한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상상적인 예술적 표현이 모두 의사소통을 위한 행위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 예로 저자는 예술적 스케치, 로댕의 드로잉, 루벤스, 콘스터블, 피카소 등을 작가의 흥미와 관심을 상상적으로 표현 예로 꼽지만, 특히 몬드리안의 구성 연작들이 이런 관점의 적절한 예임을 다룬다. 몬드리안이 자신의 예술을 발전시켜 나가는 데 있어 주안점을 둔 것은 그가 사물의 실체라고 여겼던 것을 포착해내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그에게 시각적 세계란 근본적인 세계를 숨기고 있는 외양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래서 몬드리안은 일상적 경험을 통해서는 포착될 수 없는 근본적 형식적 세계를 추구한 것이라 본다. 저자는 이 장 말미에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부터 2003년 베네주엘라의 페드로 모랄레스의 전시와 관련된 일화를 사례로 들며, 예술의 가치가 감상자의 경험으로만 환원될 수 없음을 역설한다. 그리고 이 장 마지막 부분에서 다시 한 번 예술가의 창조적 역할을 강조하고 예술이 인간 정신의 가장 뛰어난 상상력의 표현이 되기를 요구한 낭만주의적 관점을 비판적으로 계승하여 독창성과 독특한 표현은 그 작품에 대한 경험의 총합만으로는 포착될 수 없는 가치임을 주장한다.
108 no image 원근법과 관점perspective에 대한 단상
도병훈
8472 2010-04-14
원근법과 관점perspective에 대한 단상 이집트 벽화의 정면성 원리, 동양 전통회화의 삼원법, 한 동물의 형상을 좌우 양쪽으로 분리하여 마치 두 마리처럼 그린 아메리카 원주민 회화, 모든 사물이 소실점으로 수렴되는 르네상스 시대의 투시법(원근법), 그리고 여러 개의 시점이 공존하는 세잔의 그림과 입체주의 등은 인간의 ‘관점perspective’이 문화적으로 진화해왔음을 입증한다. 지역이나 문명권에 따라 인간들은 각각의 관점으로 세계를 보아왔다는 것이다. '보는 것이 믿는 것To see is to believe'이란 말이 있듯, 관점은 세계관의 바탕으로써 인간의 존재양식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이 세계나 사물을 특정한 방식으로 보게 하는 관점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삶과 사유방식을 결정짓는 암묵적 권력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관점 중에서도 세계관적 측면에서 가장 획기적이면서도 그만큼 특정한 방식으로 보게 만든 ‘시선의 체제regime’로써 후대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투시법, 즉 원근법perspective의 발명이다. 오늘날 ‘관점’과 원근법이 영어로는 동의어인 사실에서도 원근법의 발명이 얼마나 획기적인 시선의 체제인가를 짐작케 한다. 이처럼 원근법의 발명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이상의 문화사적 사건이지만 일반적으로 미술사와 관련지어, 그것도 순전히 기법적 차원에서 단편적으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근대 과학의 전위 역할은 과학자가 아닌 화가들이 했는데, 이는 그 첫 방법론이 바로 투시법, 즉 원근법이었다는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다. 원근법이란 화면의 모든 요소들이 소실점을 중심으로 2차원적 공간에 3차원적 통일감 있는 공간감을 표현하는 기술이다. 즉 가까운 것은 크게 그리고 먼 것은 작게 그리는 데, 단축의 정도에 직선적인 일관성을 부여한 것이다. 이러한 기법은 자연에 대한 탐구를 통해 발명하게 되며. 바로 르네상스시대의 예술가들이 그 주역이었다. ‘빗자루 타고 하늘을 날아다닌 죄’, 아니 정확히 말해서 ‘빗자루 타고 하늘로 날아가서 악마가 주재한 회의에 참석한 죄’로 수십, 또는 수백만의 여자를 마녀로 몰아 재판을 하고 화형을 시킨 시대가 중세였는데, 이러한 무지와 미신의 타파는 물론 근대 과학의 힘으로 이루어졌으며, 이 때문에 인류 역사상 근대의 여명기인 르네상스 시대는 인간의 의식의 변천 또는 진화과정에서 특별한 비약의 시기가 된다. 마사초(1401~1428?)가 최초로 그림에 기하학적 투시도법을 적용한 <성삼위일체>를 그린 이후 이미 1430년대부터 우첼로(1397~1475)등의 당시 진보적인 화가들은 적극적으로 원근법을 적용하게 된다. 특히 인류역사상 르네상스 그중에서도 르네상스 예술가들이 활동한 16세기야말로 서구 지식세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서구과학사에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난 시기였다. 오늘날 현대문명의 바탕인 과학기술이 왜 근대 서양에서 시작됐는지를 알려면 16세기를 제대로 들여다보아야 하며,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정량적이고 실증적인 탐구의 기원으로써 근대과학혁명의 전위역할을 원근법의 발명이 있다는 것이다. 원근법이 발명된 이후 미술가의 지위에도 획기적 변화가 생긴다. 중세 때까지 예술가는 비천한 지위의 장인에 지나지 않았으나 르네상스 이후 점차 미술가의 지위는 격상되며, 이 역시 원근법과 깊은 관련이 있다. 사진을 찍듯 대상의 실재감을 정교하게 재현하는 수단으로써 19세기 말 투시적 공간 개념이 요구하는 깊이를 부정함과 동시에 여러 관점이 충돌하는 그림이 나오기 전까지 원근법은 근대적인 그림을 특징짓는 가장 근본적인 ‘제도’이자 ‘규범’이 된다. 바로 이 때문에 ‘실재에 대한 환상’을 심어준 원근법은 결국 관점의 다양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사실 원근법은 누가 어떤 관점에서 보는가에 따라 소실점이 달라지므로 객관적 관점이 아니라 자연을 대상화한 주관적 관점이다. 원근법으로부터 비롯된 서구의 ‘근대적 시선’은 자연을 관찰 가능한 것으로 ‘대상화’하는 초기 단계를 드러낸다. 그래서 이는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이용하는 자연수탈과 이어져 제국주의 침탈, 환경파괴에 전지구적 위기상황을 초래하는 양면성의 근본이 되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원근법이란 ‘자연의 인간화’를 가져온 바탕이기도 하다. 그리고 계속된 근대과학문명의 진화는 새로운 과학과 철학으로 이어어지고, 미술에서도 반원근법적 예술로 그 주된 경향이 달라진다. 특히 19세기말 이후 원근법은 미술에서 더 이상 중요한 기법이 될 수 없었으며, 현대에 들어서는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에서 예술의 가치를 논하는 차원에까지 이른다. 과학적 탐구 정신을 지닌 원근법을 거쳐 단일한 시점이 아닌 지각적 감응이 중시되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예술세계는 끊임없이 시대와 지역에 따라 새로운 진화를 거듭해왔다. 이런 맥락에서 중세적 가치를 종식시킨 탐구활동으로서 원근법의 의의는 과소평가 할 수 없다. 원근법의 발명을 기점으로 ‘근대적 시선’이 형성되고 이러한 시선의 체제를 바탕으로 결국 근대과학 문명이 태동하며, 또한 이러한 대상에 대한 탐구심을 바탕으로 한 모험과 도전의 역사가 근 현대미술사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19세기 말 이후 현대미술의 역사는 공간감을 재현하는 숙련된 기법인 ‘실재에 대한 환상’을 낳은 원근법에 대한 극복의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결과 현대에 이르러 더 이상 단일한 시점이 객관적 규범이 될 수 없는 관점의 다양성을 갖게 되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동양의 전통회화에서 볼 수 있는 다시점적 표현 또한 재해석의 여지가 있으며, 이제는 다차원적인 통찰력과 분별력으로 인간의 의식을 확장함으로써 우리 자신과 세계에 대한 통찰을 풍부하게 하는 관점이 화두인 것이다. 2010년 4월 14일 도 병 훈
Selected no image 법정스님 추모 현상에 대한 단상
도병훈
5864 2010-03-25
법정스님 추모 현상에 대한 단상 얼마 전,《무소유》란 책의 저자로서 남다른 외모로서 대중적 인지도를 가진 법정 스님(이하 존칭 생략)이 길상사에서 입적했다. 그는 생전 사리도 찾지 말고, 탑도 세우지 말고, 그간의 ‘말빚’을 언급하며 모든 자신의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라는 유언을 문도들에게 남겼다고 한다. 그가 입적한 이후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각계각층의 지식인들이 관심을 표하거나, 약속이나 한 듯 한결 같은 목소리로 망자를 기리는 글들을 대중매체를 통해 발표했다. 또한 각 언론 방송 기자들도 그의 삶과 저서들에 나오는 글의 내용들을 화제로 삼아 연일 대대적으로 그의 삶과 죽음에 대해 큰 뉴스로 다루거나 칼럼으로 다루었다 . 이런 현상 속에서 그간 법정이 출간한 모든 책들은 독자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른바《무소유》를 소유하려는 아이러니한 현상까지 벌어졌으며, 심지어 그가 만년에 거처한 강원도 산골짝의 오두막집까지 사람들이 찾는 기현상까지 생겨났다. 나는 최근 이런 사회현상을 지켜보면서 이 땅에서의 대중매체의 속성과, 요즘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주로 언급하는 ‘관점perspective’, 또는 他者性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법정은 생전 많은 저술을 남겼다. 나는 대학재학시절부터 그의 저서인《무소유》,《산방 한담》,《텅 빈 충만》,《서 있는 자리》등을 읽으며, 때로는 그러한 생활을 동경하기도 했다. 또한 수년 전엔 겸재 정선 그림이 전시된 간송미술관에서 짧게나마 직접 그를 대면한 적도 있다. 그 후 법정의 무소유 정신으로 인한 인연이 계기가 되어 세우게 된 길상사에 얽힌 이야기도 쓴 적이 있다. 주1) 그는 저술을 통해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와 같은 글을 썼다. 이런 자신의 언급을 입증하듯, 그는 실제로 자신이 수행하는 장소에서 계절마다 대면한 자연이나 식물, 꽃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적지 않은 예찬의 글을 남겼다. 그리고 그는 "빈 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빈 마음이 곧 우리의 본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 있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러한 법정의 글과 삶 이면엔 동양의 전통사상이나 한국 불교의 전통이 있으며, 특히 그의 스승인 효봉 주2)스님(이하 존칭 생략)이 있다. 효봉은 특히 ‘계戒 .정定. 혜慧’ 삼학三學을 매우 엄격하게 실천하고자 한 고승으로서 근현대 한국 불교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계.정.혜’란 고려의 보조 지눌이 제창한 정혜쌍수‘定慧雙修’의 근간이다. 먼저 ‘계’란 계율의 준말로 규칙적인 생활을, ‘정’은 ‘선정’ 즉 고도의 집중을 뜻하며, ‘혜’는 ‘지혜’, 곧 ‘바른 앎’, 또는 ‘깨달음’을 의미한다. 요컨대 계정혜란 불교의 수행(공부)과정이 집약된 말이다. 법정은 이러한 한국불교의 전통적 사상과 다른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거나 스승의 생각을 넘어선 다른 사상을 제창하지 않았다. 법정의 ‘무소유’ 정신 또한 동양에서만 독특하게 형성된 삶의 가치가 아니다. 중세 수도원에서의 수도사들이나 미국의 헨리 데이빗 소로우, 《소유나 존재냐》의 에리히 프롬은 무소유의 삶을 지향하거나 역설하였다. ‘무소유’ 정신은 법정만이 새롭게 주창한 가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무소유’ 하면 법정을 떠올리는 것은 순전히 그의 대중적 인지도 때문이다. ‘앎과 삶의 괴리’라는 실존주의적 부조리에서 자각할 수 있듯, 인간은 누구나 근본적으로는 자신이 가진 일정한 틀(관점)으로 자연이나, 인간, 사상 및 예술을 인지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이런 차원에서 우리는 엄밀한 의미에서 그 누구도 타자성他者性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 바로 이 때문에 어떤 대상이나 사람에 대한 이미지는 그렇게 바라보는 자의 욕망과 인식의 틀에 의해 ‘구성’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현시대는 대중매체의 영향이 워낙 지배적인 시대여서 대중들의 의식에 직 간접적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최근 법정 스님에 대한 대중들의 큰 관심은 실제 법정의 삶과는 거리가 먼, 즉 타자의 삶에 대한 자신의 피상적 견해와 대중의 욕망이 결부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자신이 알고 있는 선입견으로 타인을 규정하고 심지어 함부로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례로 지난 2007년, 장애인 자녀에게 성장 억제 호르몬을 투여한 미국 부모 이야기가 뉴스로 나와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해 윤리적 여부를 떠나 부모 당사자가 아닌 이상 무조건 비난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져본다면, 우리가 자신의 잣대로 타자를 규정하는 일이 도리어 무지와 오만의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임을 자각할 수 있다. 법정 사후의 추모 현상은 법정의 삶의 실체보다 그러한 현상에 의문을 갖게 한다. 개개인들의 느낌과 생각의 틀을 구성하는 바탕은 욕망이며, 이는 타자의 고유성이나 정체성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그 어떤 대상에 대한 아쉬움도 허전함도 실제로는 그 존재의 부재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결국 그러한 마음을 가진 이들의 욕망이 반영된 현상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현대는 대중매체에 의해 개인의 욕망조차 확대 재생산되는 시대이다. 우리가 아는 타자는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가공의 이미지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모든 타자는 타자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가 대하는 ‘타자는 과연 무엇이며 누구인가’라는 근본적 물음이 중요하며. 이는 결국 ‘나’, 즉 자기 자신의 문제인 것이다. 2009. 3. 25 도 병 훈 주1) 지난 2007년에 ‘길상사를 다녀와서’란 글을 쓴 바 있다. 주2)효봉(曉峰, 1888년~1966년)은 평안남도 평양에서 출생하였으며 평양고보를 거쳐 일본 와세다 대학 법과를 졸업하였다. 그 후 판사가 되어 6년간 법관 생활을 하였다. 이때 한 죄수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것이 잘못으로 밝혀지자, 양심의 가책과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전국을 방랑하다가, 1925년 금강산 신계사로 들어가 승려가 되었다고 한다. 1929년 순천 송광사에서 불교 최고의 과정인 대교과를 공부하였다. 그 후 상원사 등 여러 절을 돌아다니며 불법을 편다. 1954년 불교 종단 정화 준비위원이 되어 불교 정화운동에 앞장섰으며, 1958년 대한민국 불교계의 최고 지도자가 되어 여러 파로 갈라져 있는 불교계의 통합을 위해 노력했으며, 1966년 밀양 표충사에서 입적하였다. 그의 열반송은 아래와 같은데, 나는 법정의 그 어떤 책이나 글도 이 열반송이 주는 임팩트의 강렬함에는 못 미친다고 생각한다. 나의 졸저,《나와 너의 세계, 미술》에필로그에도 이 시를 인용한 바 있다. 내가 말한 모든 법 그거 다 군더더기 누가 오늘 일을 묻는가 달이 일천 강에 비치리
106 no image ‘미술 그 친숙하고도 낯선’ 에 대해
도병훈
5714 2010-03-06
미술, 그 친숙하고도 낯선’ 에 대해 이제 예술은 고정된 기준으로 가치 정립할 수 없는 것이 되었고, 무엇이 미술인가? 라는 물음에 대응하여 작품의 가치를 규명할 수 있는 분별력의 필요에 따라 대면하게 되었다. 보기에 편안하고 익숙한 ‘예술스러운 그 무엇’이 아니라, 기존의 시각에 물음표를 찍는 ‘낯선 그 무엇’이기에 과연 그것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가를 규명하는 일은 예술 시스템 안에서 매우 중요한 과정이 된 것이다. 위 글은 최근 문화예술 NGO 《예술과 시민사회》에서 출간한 ‘미술 그 친숙하고도 낯선’ 이란 책의 앞부분에 쓴 김도희의 글로, 이 책이 다루는 내용이나 주된 특성을 예감케 한다. 이 책의 앞 부분은 2006년 7월 8일부터 2007년 7월 21일까지 약 13개월 동안 운영했던 시민을 위한 온라인 미술강좌를 정리한 것이다. 이 강좌는 권이중, 김도희, 사혜정, 오상길, 육순호, 전상민, 정승채, 최선, 그리고 필자 등 9인이 26개의 강좌를 나누어 맡았다. 강좌는 크게 서양미술과 한국미술로 나누어,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르네상스 미술‘부터 미니멀 아트와 개념미술’에 이르는 서양미술사의 ‘전반적 흐름과 전통의 단절과 서구화로의 비약’으로부터 ‘1980년대의 미술상황’에 이르기까지의 한국 근현대미술을 다루었다.(*이 중 필자가 다룬 강좌는 서양미술 중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탐구정신과 회화’, ‘대상의 단순화와 색채의 화가 앙리 마티스’, 그리고 ‘미술의 존재방식을 바꾼 아웃사이더 마르셀 뒤샹’임) 이처럼 이 책은 르네상스 시대 이후 미술문화의 실상과 미술의 존재방식, 그리고 이에 대한 접근 방법을 다루었으며, 한국미술 부분은 일제 강점기 하에서 왜곡된 근대화 과정을 거치고, 전란 후 서구문화와 제도의 이식과정을 통해 현대화를 이룬 우리 미술이 역사성과 서구미술의 이해에 각각 문제점과 과제를 남겼음을 비판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특히 60, 70년대 현대미술에 대한 예리한 진술들은 미술의 진정한 가치가 어떻게 성립하는지 잘 알게 한다. 이어 그간 《예술과 시민사회》의 활동 보고서가 책 뒷부분을 이루는데, 《예술과 시민사회》의 발족취지와 현재까지 펼쳐 온 사업들에 대한 간략하면서도 총체적인 보고서라 할 수 있다. 그 주된 내용은 200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파행운영실태, 2007년 제1차 미술계 논문표절 행태 조사 발표, 2008년 제2차 미술계 논문 표절 행태 조사 발표, 2008-2009년 문화부 정책 토론 참여 등이다. 이 중 특히 그 조사 과정의 어려움이 행간에서 느껴지는 논문 표절 행태에 대한 부분은 단지 몇 몇 특정 미술인에 국한된 사안이 아니라는 점에서, 명백한 낱낱의 사실 만큼이나 우리 미술계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또한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한국 언론계의 기회주의적 처신은 사회 전반에 만연된 부도덕성에 대해 뼈아프게 각성케 한다. 이 책은 미술에서 왜, 무엇이 쟁점이 되어야 하는지, 어떤 작품과 예술 활동들이 가치가 있으며, 그 가치와 의미는 어떻게 성립하는지에 대해 핵심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 주된 특성이다. 이 책은 시중에 넘쳐나는 일반적인 미술 책들과는 확연히 차별화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책은 시민강좌인 만큼 일체의 상투적 진술을 배제하고 간결하게 그 내용을 기술한 것이 특색이다. 현대미술의 존재방식과 한국현대미술사에 대해 주체적인 관점으로 기술한 내용들은 그 만큼 이 책의 가치를 더욱 높이는 핵심적인 부분이다. 또한 책 뒷부분의 활동보고서 부분도 사이비가 횡행하는 우리 미술계를 반성하는 거울이다. 이처럼 각 필진들이 제시한 논거들이 무엇보다 예술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과 역사적 성찰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술 본연의 창작 활동에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 책이 우리 미술계는 물론 관심 있는 미술관련 젊은 학도들에게도 강한 임팩트를 주었으면 한다. 그 파장의 진폭만큼 ‘역사적 주체의식과 미래의 방향성’을 찾는 길잡이가 될 것이므로. 2010년 3월 5일 도 병 훈 PS : 표지 디자인은 물론 편집의 특성, 그리고 필진들의 약력 부분에서도 이 책의 성격이 드러난다. 그 중 육모(?)씨의 약력은 생물학적 진술로 일관되어 있어 웃음을 머금게 하는데, 조금이라도 자신의 이력을 치장하려는 사람을 부끄럽게 만드는 내용이다... 이 책을 만드느라 애쓴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105 no image 2010작업일기1
도병훈
5465 2010-01-21
2010작업일기1 작년 말 새 아파트에 입주 한 후 최근 한 쪽 벽에 그림을 걸었다. 이 그림은 이미 수 년 전에 그린 것이었지만 부분적으로 다시 손을 보게 되었는데, 전면적 덧칠이나 부분적 가필이 아니라 주로 그림의 한 부분을 닦아내거나 아예 캔버스 천을 벗겨서 여러 부분을 씻어내고 말리는 작업이었다. 이 과정에서 오래 전에 그린 그림임에도 마치 며칠 전에 그린 듯, 한 부분 부분마다 그리던 당시의 감흥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리고 목공소에서 새로 그림틀을 짜서 다시 캔버스를 만든 후 액자 없이 벽에 걸었지만 때때로 지켜보는 과정에서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림틀에서 광목천을 다시 떼어내어 또 한 번 화면을 물로 닦고 씻어내는 작업을 했다. 지난 1990년대 이후 내 그림은 주로 뜨겁게 끓인 물에 푼 짙은 청색 염료에 밀가루로 쑨 풀을 섞어 그리는 것이다. 주된 이미지는 넉넉한 크기의 올이 굵은 광목천에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같은 산山줄기와 물水줄기 중심의 세계를 간결한 드로잉으로 그리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미지는 단지 추상적 이미지가 아니라 내가 태어나고 자란, 또는 직접 산하를 답사하며 체험한 세계를 리드미컬한 진폭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는 과정도 물을 많이 섞은 매우 옅은 청색부터 광목천을 물들이거나 아니면 물기가 적은 짙은 염료로서 화면의 부분 부분을 때로는 비백飛白이 보일 정도로 속도감 있게 문지른 것이다. 그래서 화면은 표현된 부분보다 표현하지 않은 부분이 더 많으며, 이들 가시적 비가시적 공간 전체는 과정에 따른 변주를 나타낸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의 곡진함 자체가 그림을 형성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전통 수묵화는 종이나 비단에 먹으로 옷감에 물들이듯 그림을 그렸다. 먹에 물을 묻힌 붓을 대면 종이나 비단에 스며드는 과정에 따라 먹물이나 물감의 농도가 달라지는 것이 수묵화의 특성인 것이다. 조선시대 초상화의 배채법이나 전통 옷감의 은은한 색감도 바로 이러한 염染, 즉 ‘물들임’의 미학이 깔려있다. 아산 현충사에 보관 중인 이순신 장군의 칼에 새겨진 검명에도 물들일 염染자가 나온다. 이순신의 검명은 “석자 길이의 칼을 들어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물이 떨고,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三尺誓天 山河動色, 一輝掃蕩, 血染山河”이다. 이순신이 당시 나라 안팎으로 고립된 상황에서 때로는 백의종군하면서까지 왜적과 맞서 싸운 고독한 상황을 돌이켜보면 그의 전체 시 구절 중에서도 이 ‘염’자는 고뇌가 집약된 핵심어이다. 당시의 정황을 생각할수록 가슴이 먹먹해지는 글자인 것이다. . 나의 그림은 주로 천을 푸른 색 염료로 물들이는 과정이어서 그릇닦는 수세미로 박박 문질러야 짙게 칠한 부분이 조금씩 옅어졌다. 이런 작업을 여러 번 되풀이 한 것이 이번 수정 작업의 핵심이었다. 그래서 바탕 흰 부분은 더욱 희게 변하고 그림의 농담農談 변화는 더욱 풍부해졌다. 그래서 시시각각 행위의 과정에 따라 물질이 생성되고 소멸하는 가역성을 띤 공간과 함께 그 세계로부터 나의 느낌이 확장되는 듯한 새로운 체험을 누릴 수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이러한 그림을 그리면서 주로 계룡산 근처 출토 분청사기나 겸재 정선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대담하고도 낙천적인 필치와 추사 김정희의 제주 해배解配 이후의 글씨와 그림에 보이는 서릿발 같은 결기를 그림에 담고자 했다. 이들 예술세계에서 드러나는 두드러진 특색들이 내가 지향하는 관점을 표현하는데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근현대의 과학과 철학에서 뿐 만 아니라 근현대 미술의 역사는 서구의 지각 및 의식적 전통인 세계관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잘 보여 준다. 특히 관찰자의 인식의 틀로 대상세계를 하나의 소실점을 기준으로 구축한 관점인 싱글 퍼스펙티브 single perspective에서 20세기 초 미술의 특징인 다시점의 멀티플 퍼스펙티브multiple perspective에 이르기까지의 관점의 변화는 인간이 특정 관점을 문화적으로 구성하고 나아가 확장하였음을 깨닫게 하며, 그만큼 예술의 특성과 가치에 눈뜨게 한다. 그러나 기술의 발달로 이제는 얼마든지 관점을 편집하고 조작하는 단계에까지 도달하여 대중들도 기술에 의해 굴절되고 조작된 관점을 향유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문제는 이러한 기술이 지나치게 말초적 재미에 치우치고 무엇보다 자본주의적 논리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나에게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관점이란 단지 재미를 위해 조작된 관점이 아니라 더욱 폭 넓은 관점의 자각을 바탕으로 한 감동의 진폭인 것이다. 지난 2000년대 초반 이후 주로 미술판의 문제점이나 비평적 글, 그리고 문화유산에 대한 글을 쓰고, 그래서 책들도 출간했지만 지금도 그 어떤 일보다 그림 그리기를 가장 좋아 한다. 나에게 그림은 체험적 삶의 과정을 풍성하게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자 영역이다. 물론 직접 그리기보다 마음의 붓으로 허공에다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훨씬 더 많지만... 기획전이었던 2000년의 개인전 이후 전시다운 전시를 한 적이 없다. 누가 나 보고 전시회를 하자는 특별한 요청도 없었지만, 우리 미술계의 풍토를 지켜보며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상이 나의 예술세계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결코 서운해 하거나 원망한 적도 없다. 참된 예술적 가치란 불변의 실체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지만 시대적 상황에 따라서는 그 진가가 쉽게 드러나지 않는 면이 있다. 그 이유는 그러한 가치가 지각 있는 감상자에 의해 발견되거나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대중들에 의해 우상화되거나 신화화된 예술가의 존재란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그간 우리 미술계에서 반면교사의 사례를 숱하게 보았으며, 그 때마다 적어도 그렇게 살지는 않겠다는 다짐을 해왔다. 그 누구의 예술세계든 살아생전 성취한 성과로 평가될 뿐이다. 마르셀 뒤샹이 레디메이드인 소변기에 남의 이름을 서명한 이후 미술 장르에서 그림이 갖는 절대적 위상은 물론 근대적 의미의 예술적 가치는 회의의 대상이 되었다. 이는 눈 밝은 사람들이 역설하듯, 마르셀 뒤샹의 의도를 넘어 그림을 포함한 예술 활동이 저마다 원점에서 출발해야하는 상황을 시사한다. 최근 수년간 유례없는 한파와 함께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린 이번 겨울동안, 틈 날 때마다 내 그림을 지켜보며 그간 내가 추구해온 관점을 다시 성찰하는 기회를 가졌다. 역시 근본적 화두는 근대이후 서구적 미술이 성취해 온 예술적 틀과 다른 관점이다. 새해 원단(2010. 1. 21)에 도 병 훈 PS :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 작업일기란 자화자찬이 되거나 또 진의가 잘못 전달될 수도 있어 가능한 한 공개하지 않은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작업일기에 따라서는 소통과 담론의 매개체로서 역능을 가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싣습니다.
104 no image 누구 없는가? 라는 화두
도병훈
6084 2009-12-21
일주일 째 한파가 맹위를 떨치는 한겨울입니다. 누군가 글쓰기에 대해 ‘빈병에 편지를 넣어 바다에 띄워 보내는 것과 같은, 또는 어둠을 향해 돌을 던지는 것과 같은 행위’로 비유한 이가 있습니다. ‘반향’을 기대하며 미지의 독자를 향해 말하는 것이 글쓰기의 본질이라는 뜻이겠지요. 한 해를 마감하는 이 시점에서 또 다시 빈 병에 편지를 넣어 차디찬 겨울 바다에 띄웁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 잘 되시길 기원합니다. 누구 없는가? 라는 화두 최근 조계종 종정 법전法傳 스님의 자서전이 출간되었는데, 책 제목이 ‘누구 없는가’다. 이 제목은 그의 스승인 성철 스님의 말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성철 스님은 법문을 하기 전, 때때로 수행자들이나 후학들을 향해 주장자를 휘두르며 “누구 없나?”라고 외쳤다는 것이다. 푸른 하늘을 가르는 벼락이나 천둥소리를 연상케 하는 이 말은 ‘공부 제대로 한 사람은 누구인가?’, 또는 온전히 사람답게 사는 사람은 누구인가? 등을 묻는 화두다. 이런 화두를 자서전이란 형식을 빌려 세상에 던진 법전 스님의 행적도 예사롭지 않다. 법전 스님은 서른 즈음 됐을 무렵 문경에 위치한 봉암사를 거쳐 묘적암에 올라간 후 자주 울었다고 한다. “마음을 밝히지 못하고 죽으면 법전이란 존재를 태평양 한가운데 어디 가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라는 생각에 그 망망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성철 스님이 아들을 찾으러 온 어머니에게 돌을 던졌듯, 법전 스님은 죽어가는 어머니의 마지막 부탁을 거절했다고 한다. 이러한 자신의 삶을 법전 스님은 새끼를 키울 때가 아니면 늘 홀로 산정 높이 올라가 고독과 싸우는 ‘표범’에 비유했다. 이런 서슬 푸른 삶의 궤적을 가진 이답게 법전 스님은 책의 서문을 통해 “허공을 나는 새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선사들의 본래적 삶의 모습인데(중략) 내키지 않았지만 그래도 구술하게 되었고, 그걸 문자로 옮긴 탓에 세상에 또 한 점의 땟자국을 남기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런 언사는 우리 삶의 근원적 부조리(앎과 삶의 괴리)를 생각해볼 때 겉치레 말처럼 여겨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누구 없는가?’ 라는 화두 못지않게 ‘또 한 점의 땟자국’이란 말에서도 삶의 진정성을 느끼게 된다. 삶에 대한 이런 태도는 유구한 연원이 있다. 동북아 문명권의 노장사상이나 선불교의 전통은 20세기 초에 성립한 서구의 분석철학과는 또 다른 맥락에서 극단적으로 언어를 부정함으로써 삶의 진정성을 추구했다. 이런 맥락에서 ‘누구 없는가?’라는 화두는 치열한 실존적 물음이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언어를 부정하는 것이 핵심인 동북아 특유의 치열한 삶의 흔적도 ‘책’이나 ‘언어’라는 수단을 통해서 전해진다. 그래서 이를 잘못 읽은 이들에게는 ‘득’이 아닌 ‘독’이 되기도 한다. 특히 선불교는 후대에 형식화 ․ 교조화되는 말폐를 드러내기도 했지만 의연하기 그지없는 수행승들의 삶의 태도만큼은 오늘의 현실에 교훈을 준다. 특히 사이비, 또는 스노브(속물)들이 더 설치고 행세하는 오늘의 미술계에 경종을 울린다. 사실 미술계에 횡행하는 사이비 미술을 매개로 한 스노비즘 양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현상의 근저에는 한국미술계의 오랜 관행이자 고질병인 외국 작가 작품 베끼기와 미술 본연의 가치와 진정성을 제대로 못 보는 비평 활동이 있다. 요즘 회자된 ‘학동마을’이란 그림의 매매사건을 통해 단적으로 알 수 있듯, 이러한 사태의 이면은 천민자본주의 논리만이 있을 뿐이다. 가진 자와 그림을 거래하는 자들의 담합으로 평범한 그림이 일반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고가의 상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의 미술의 상품적 가치는 예(미)술 본연의 진정성이나 가치와는 별개의 가치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언제까지 이런 기형적 풍조를 묵인할 수 있는가이다. 요즘 같은 혹한의 겨울은 우리 인간이 원래 어떤 세계 속에서 살아왔는지, 내가 누구인지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는 시기다. 눈보라가 몰아쳐 그야말로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는 단 몇 분조차 발가벗은 채로는 제대로 서 있을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각적 체험은 인류가 문명화의 길을 걸으며 망각한 세계의 진실을 느끼게 한다. 따라서 예술이 이러한 체험과 무관하다면 무슨 가치가 있을까 싶다. 결국 ‘누구 없는가?’는 ‘나는 누구인가’, 또는 ‘나는 어떻게 사는 존재인가’를 묻는 근원적 화두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누구 없는가? 는 우리 자신이 살아있는 존재인 한 모두 피할 수 없는 화살인 셈이다. 2009년 12월 20일 도 병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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