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전원길 칼럼입니다.
조회 수 : 5238
2007.06.05 (13:4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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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이소의 유작 전시회 ‘탈속의 코메디’

전원길

2006/4/14 (20:9)

박이소의 유작 전시회 ‘탈속의 코메디’
로댕갤러리 3.10-5.14

2년전 어느날 신문에서 미술작가 박이소 사망소식이 실렸다. 여느 사망소식과는 다르게 이미 장례를 치룬지 한 달이 훨씬 지난 후에 알려졌다. 그의 사망소식이 알려진지 3달후 월간미술에는 박이소와 관련한 특집기사를 통해 그와 알고 지내던 미술계 인사들의 글들이 실렸다. 그의 작가적인 면모와 아울러 그의 길지않은 삶의 여정 속에 보여 주었던 이야기들이 추모의 마음과 함께 소개되고 있었다. 그리고 2년 후 당시에 글을 썼던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인 이영철씨가 로댕갤러리를 통해 그의 유작전을 기획하였고 동시대를 살았던 한 작가의 진지한 삶과 작품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도슨트의 친절한 설명을 통하여 로댕갤러리의 상설전시작인 로댕의 ‘지옥의 문’ 그리고 지옥의 문의 배경이 되었던 단테의 신곡 Divine Comedy 등이 전시 타이틀(탈속의 코메디)과 전시구성에 있어서  박이소의 작품과 서로 관련을 맺으며 의미를 갖도록 연출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기획자와 작가가 미국에서의 유학 중 서로 만나 미술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공동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가까운 사이였기에 이번 전시회는 작가의 삶과 상당히 밀착된 느낌을 주는 기획 유작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이소를 평가하는 글들을 읽어보면 그가 미술전반의 이론에 밝은 작가였으며 그러한 개인적 능력을 바탕으로 미술관련 서적을 번역하거나 미국유학시 다양한 글들을 한국의 잡지에 기고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또한 그가 제3세계 예술가들을 위한 미술공간으로 운영되었던 마이너 인저리라는 대안공간을 미국에서 얼마간 운영했다는 사실도 그의 중요한 이력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아마도 그는 단지 작업에만 몰두하는 작가로서 보다는 미술계 전반을 읽어내고 자신의 위치를 찾아나가는 전략적 포지션닝(positioning)을 할 수 있는 우리나라에 몇 안되는 작가 군 중의 한 인물로 분류 될 수 있는 작가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사디SADI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학생들과 인상적인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던것도 그의 전략적 사고 능력이 학생들의 작업의 위치를 평가하고 나아갈 방향을 잡아줄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였을까 생각한다.

재치와 의미

그의 삶이 길지 않았다고 전제 하더라도 그가 남긴 작업은 그리 많은 편이 아닌 것 같다.  일반적인 작가들의 작업량에 비하면 다작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작업이 간단한 드로잉이든 꽤 공이 들어간 설치작업이든 태작의 흔적이나 과욕의 흔적을 보이지 않으며 일정한 집중도를 보이는 작업들이다. 그만큼 각각의 작품들이 오랫동안 머릿속을 돌아나온 듯한 작품들로 보여진다. 우연히 즉발적인 아이디어에 의해 제작된 작업이라하더라도 사후 의미부여와 연작들을 통해 의미를 확장해 나가는 계기를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작업들 중 눈에 들어오는 것은 ‘북두팔성’1997-99 이라는 작품이다. 이 작업은 다시 ‘팔방미인’2002 로 이어지고 다시 팔방미인의 둥글둥글한 형태들은 ‘오공계’2002와 관련이 있어보인다. 팔방미인의 푸른색은 ‘드넓은 세상’ 2003으로 옮겨온 듯하다. 여기서 별은 다섯 개의 전구로 대치되고 하얀 종이 라벨들은 세상에 뿌려진 별들처럼 반짝인다. 처음 북두팔성은 칠성이 되어야하는데 우연한 실수로 팔성이 되었고 팔성의 의미를 나의 별의 추가 개념으로, 그리고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나는 북투팔성을 그린 작가의 환생으로 자의적 해석을 함으로서 자신의 작업에 대한 의미를 부가시켜나가면서 작품 전체의 개념적 의미의 틀을 잡아나가고 있다.
야구방망이를 간장에 절이는 작업 ‘무제’1994 와 ‘식탁용의자’1994는 밥맛을 돋우는 간장졸임고추나 마늘 반찬처럼 계속해서 의미를 생성해내는 재미있는 작업이다. 간결하면서도 많은 의미를 스스로 물고 들어와서 문화의 이질성과 혼존 혹은 공존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한편 미국의 스포츠와 한국의 음식 문화를 의미적으로 꼴라쥬 시켜놓음으로서 의외의 상황에 맞닥뜨리게 한다.
그의 작업 전반에는 창의적 재치가 무겁게든 가볍게든 배어있다. 그것이 개념적 구조로서 작업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보는 작품이라기 보다는 뇌에서 뇌로 전달되는 이른바 개념미술의 속성이 강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오브제과 이미지 그리고 텍스트등이 어우러져 예술적 방식으로 무엇인가에 대하여 전달하려고하는, 이 세상과 삶의 ‘어떠함’에 대하여 진술하려는 강력한 의지가 드러나 보이는 작업들이다. 말하자면 그의 작업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발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발언들을 전달하는 미술적 방식의 의외성과 창의성이 우리의 머리에 남게된다는데서 작업에 대한 그의 균형감각을 볼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재치가  개념미술1)가들의 작업 방식과 일별되는 강한 특징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삶과 세상에 대한 정직한 반응을 미술을 통해 겉치레를 피우지 않고 해냈다는데 그의 작업 성과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재료

그가 주로 사용하는 재료가 그의 작업의 외형적 특성을 이루는 동시에  작업의 중요한 내용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는 시멘트, 베이너합판, 각목등 허술한 건축자재들을 즐겨사용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한국 사회의 허약함을 상징적으로 사용했다.’ ‘값이 싼 재료를 선택했다.’  ‘그러한 재료에서 어떤 미적 가치를 발견했다.’ ‘개념을 담아내는 재료에 큰 비중을 두지않았다.’ 중에서 어떤 것이 딱들어 맞는 답이라고 말 할 수는 없을 것이나 재료 사용에 있어서 드러나는 수작업의 거친 완성도가 그의 작업에서 풍기는 매력임은 분명하다. 마감이 안된 듯한 그의 재료사용법은 미술관의 말끔한 장소와 대비되어 오히려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데, 재료를 떠나 그의 작업의 내용으로부터 오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장소적 대비에 의한 것인지에 대하여 생각하게 한다. 한편 그의 드로잉에 근거해서 제작된 <팔라야바다FALLAYABADA>는  숙련된 목수의 손에 의해 사후 제작 된 작품이다. 비록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반영한 재현물이지만 그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허술함의 일관성을 놓쳐버린 완벽함으로 인하여 오히려 허술하게 느껴지는 것은 왠일인지 모르겠다.

건강

그레고리 마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건강에 대한 이야기에 비중을 두고 이야기 하고 있다. 실제로 그의 목소리를 통해 그가 건강치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마치 밤새 구토와 복통으로 시달리면서 속에 것을 다 토해내고 겨우 진정된 상태의 탈진상태를 느끼게하는 그런 ‘힘없음’이 느껴진다.
그는 항상 아팟던 옥타비아누스가 가장 긴 기간 동안 로마를 통치하면서 많은 일을 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대화 속에 생략된 많은 이야기를 추리해 본다면 박이소는 자신의 상황을 직시하고 다시 그것을 절망으로서가 아닌 예술적 방식으로 인식하는 본능적 예술가가 아니였을까?    
그의 작업들이 자고, 쉬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육체적인 에너지가 충진되고 예술적 아이디어가 완성되는 순간에 이루어졌으리라. 즉 그는 자신의 허약함을 일종의 예술을 위한 도구로 치환 한다. 단지 쉬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갈아내는 과정으로서 의미를 갖게 되고 몸은 몸대로 원기를 회복하며 아이디어의 숙성을 기다렸던 것이다.

자살충동

“나는 알게 모르게 자살 충동이 있는 것 같다. 몇 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것 같은데, 별 이유없이 어떤 위기상황에 내 몸을 내던지고 무슨 일이 나든 방관하고 싶은 욕구 같은 것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별로 위험하지 않은 ‘먹지않기’를 택했으니 억제된 자살 충동이 갑자기 가스 유출되듯 한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그런 충동을 미리 예방하는 백신 주사로서, 궁극적으로는 자기 보호를 위해 실행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까 득과 실이 미리 계산된 정신적 육체적 충격을 부여함으로써 정말로 무책임한 자살 충동의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해 버리려는 경험적 지혜 같은 것일까?” 박이소<오각형의 자백중>
예술가는 때로 사회적 허용치를 넘는 상상을 예술적으로 변용하여 안전하게 자신을 분출시킴으로서 자신을 보호하고 사회를 보호(유지)한다. 그러나 예술이라는 양식의 틀이 굳건하면 굳건 할수록 예술가들은 그러한 해소책이 싱거워진다. 미지의 세계로 유영해 들어가는 긴장감을 느끼기위한 갈망은 때로 형식의 탈피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기존의 방법론과 예술적 가치에 대한 인식의 틀을 벗어나야만 신대륙의 위험스런 탐험의 즐거움을 맛보게 된다. 박이소의 자살충동 혹은 위기상황에 자신을 방치하고 싶은 욕구는 예술에 대한  창조적 욕구와도 관련이 있지않을까? 자신을 위기상황에 던져 놓지 않고서는 삶의 새로운 측면을 볼 수 없고 다시 예술의 새로운 관점을 가질 수 없도 없기 때문이다.
그가 여기서 ‘먹지않기’를 택하고 3일 간 단식을 하고 자신이 만든 밥솥을 걸고 거리를 행진해서 목적지 까지 가는 행위작업2) 은 그가 자살충동을 제한된 단식행위를 통해 해소하고 여기서 다시 삶과 죽음의 문제를 배경으로한 창조적 예술행위로 승화시켜내고 있다. 이것은 그가 대면했던 이 세상이 절망이라는 결론으로 다가올 때마다 그 절망의 상황에 힘입어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전법을 구사했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나는 박이소의 전시회를 보면서 뜬금없이 이 시대의 미술의 새로움은 어디서 비롯되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하게된다. 현대미술의 새로운 정보들은 쏟아지는데 그것의 출처는 감추어져있다. 정보를 쫒기보다는 출처를 쫒는 일이 당연이 필요한데 그 출처를 정확하게 집어내기는 힘들기도 하거니와 잡아도 우리와는 상관없는 이야기가 되기 일쑤다.
온갖 새로움으로 뒤덮힌 미술계에서 요란한 뒷북소리를 잠재우면 조용히 움직이는 몇몇의 작가들만이 조명아래 있다. 나는 이 조용한 움직임을 어떻게 창출할 것인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한한 창의적 에너지를 공급 할 새로운 동력원을 지향하는 초전략적 태도를 가져야만 무한한 에너지를 품은 시도가 될 것이다.
아직은 그의 체온이 이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가시지 않은 탓일까? 나는 그의 작품과 더불어 맴도는 생각들을 정리하기에는 왠지 이르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작품은 이제 제작되어 세상에 선보인지 몇 년이 지나지 않은 작업들도 있고 그의 죽음도 아직은 끝나지 않은 진행형으로 느껴진다. 그의 작품이 과거로 분리되지 않았고 그도 이 세상으로부터 아직 완전히 이탈되기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아마도 그와 함께 살았던 작가들과 함께 그의 작업도 다시 조명되는 때가 오리라고 생각한다. 한 작가의 진정성이 일구어 놓은 일보의 전진이 밑걸음이 되어 많은 자들이 따르는 커다란 길로 나가게 되길 바란다.




1)개념미술은 형태나 재료에 관한 것이 아니라 개념과 의미에 관한 것이며 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개념미술은 독창적이고 수집 및 매매 될 수 있는 미술 대상의 전통적인 존재방식에 도전한다. 개념미술은 작품이 전통적인 형태를 지니지 않기 때문에 관람자에게 좀더 적극적인 반응을 요구한다.(실제로 개념적인 미술작품은 관람자의 정신적인 참여를 통해서만 존재한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개념미술은 다양한 형태를 취한다. 일상적인 오브제, 사진, 지도, 비디오, 차트 그리고 언어 그 자체를 이용한다. 종종 그러한 형태들의 복합이 있을 수도 있다.  <개념미술, 토니 고드프리지음>에서 인용


2) 이 작업은 그보다 연배가 한참 위이지만 죽음에 있어서는 후배인 백남준선생의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확연이 다른 출발점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바이올린에 줄을 매어가지고 끌고가는 작품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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