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전원길 칼럼입니다.
소나무
조회 수 : 5290
2007.06.05 (13:3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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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 징 과  예 술

        


                                                                              박  성  우(철학박사)



  1. 무의식과 예술


예술은 자연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자연’을 재현하는 것이다. 이때 이미지는 단순한 사물의 어떤 것을 나타내는 재현적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감정적 에너지의 표현이어서 거기에는 의식화되지 않은 수많은 감정의 요소들도 잠재되어 있다. 그러므로 예술은 우리의 무의식에서 나온 내적인 생명이라고 할 수 있다.

피카소는 위대한 걸작 작품을 몇 점을 사서 자기 스튜디오에 보관했는데, 그 작품들의 힘이 워낙 강력해서 천으로 가려놓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예술작품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방법은 외양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정신으로 느끼는 것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예술 작품 앞에서 우리는 주관적인 의식 세계와 무의식 세계 사이의 분리를 느끼지 않는다. 예술 작품의 메시지는 깨어 있는 상태에서 무의식의 영역으로 들어가서 깊은 희열의 영역으로 전달되는데, 이 메시지는 그곳에서 에너지를 건드리고, 깨우고, 불러낸다. 이런 무의식의 세계는 의식 너머의 차원이어서 인간의 개인적 의지에 의해 지배되는 영역이 아니다. 개인들의 전체 집단에 속한 것이며, 일반적으로 하나의 민족 전체, 심지어 인류 전체에 속한 것이기도 하다. 무의식의 세계는 전 인류의 심리적 기능의 저장소이며 예술적 모티브들의 보물창고이기도 하다.


 

                                                                                                                     피카소의 <게르니카>



괴테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예술은 넓이와 깊이에 있어서 자연과 경쟁할 것을 시도하지 않는다. 예술은 자연 현상의 표면에 집착하지만, 그 자체의 깊이, 그 자신의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이 표면적 현상 속에 합법성의 성격, 조화적 비례의 완전, 미의 극치, 의미의 존엄성, 열정의 높이를 인지함으로써 이 표면적 현상들의 최고의 계기들을 결정화한다.” 여기에서 ‘최고의 계기들을 결정화’한다는 것은 현실의 개념에 의한 해석이 아니라 직관에 의한 해석이며, 사고를 매개로 한 것이 아니라 감각적 형태에 의해 빚어진 상징을 매개로 한 것이다. 인간은 명료하게 드러나지 않는 무의식의 심층적 내용을 상징이라는 매개물을 통해 경험하게 된다. 인간은 상징적 이미지를 통해 비합리성과 화해한다. 상징은 의식세계와 무의식의 세계라는 합리적인 영역과 비합리적 영역에 걸쳐 있기 때문에 양쪽을 매개할 수 있다. 상상의 세계와 객관적 현실의 세계는 상징을 통해 만난다. 인간이 직접적으로 파악하지 못하는 저 너머의 것들은 상징적인 방식으로 인간에게 나타난다. 그리고 상징적인 세계가 직접 드러내지 않고 감추고 있는 영역을 직관적으로 형상화하는 능력이 바로 인간의 예술적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술은 근본적으로 무의식에서 나온 상징의 세계와 관련을 갖는다.


  2. 상징과 예술


상징은 본래, 대상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재단하는 의식적인 의미와, 무의식의 깊은 곳으로부터 떠오르는 상을 함께 포착하는 기능이다. 상징은 두 극에 의해서 경험되고 해석되며, 동시에 두 극 사이의 적대적 협력이라는 힘에 의해서 형성된다. 그러므로 무의식은 상징 기능이며 인간 특유의 것이고, 만인에게 있어서 동일한 법칙에 따라 작용한다. 상징적 이미지가 지닌 알 수 없는 영적인 분위기는 우리 내면에 숨겨진 영혼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영혼으로 상징에 감응하는 것이다. 상징은 인간의 무의식에 담겨있는 이미지를 전달한다고 본다. 상징은 인간의 무의식에 담겨 있는 감정적 에너지가 상상력으로 이미지를 만들면서 생겨난다. 상징은 표면의식의 정보뿐만 아니라 무의식의 심층에 가라앉아 있는 여러 가지 내용을 한꺼번에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은 그 나름의 경험을 한다. 질서의 경험일 수도 있고, 공포의 경험일 수도 있고, 아름다움의 경험일 수도 있다. 심지어 단순한 환희의 경험일 수도 있다. 개인은 이것을 상징을 통하여 전달하려고 한다. 만일 그 깨달음이 어떤 깊이와 의미를 가진 것이라면, 그가 전달하는 것은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들에게 살아있는 예술로서 가치와 힘을 가지게 된다.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들은 강제 없이, 스스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반응한다. 우리는 이런 상징들과 조화를 이루어 갈 때에만 가장 충만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지혜란 그 상징들로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예술 형식은 정신과 상징의 새로운 관계에서 출발한다. 신화와 종교에서 정신이 상징에 고착되어 있다면 예술에서 정신은 상징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다. 상징세계가 가상의 세계임을 아는 것이다. 상징은 대상이 의식에다 만든 인상을 정신이 다시 감각적인 기호와 그림을 통해 표현한 것이다.


 

    

우로보로스(자기 꼬리를 물고 있는 뱀, 혼돈을 상징한다)

 



예술은 자연이라는 영원한 운동 기구를 꽁꽁 묶어두려는 의식적 노력이다. 고정은 예술의 핵심이다. 모든 개념화는 자연 상태에서 제멋대로 있는 존재들에게 의미의 틀을 씌우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자를 볼 때는 단순한 의자로서 어떤 유용성, 정서, 실용적인 면에서 관찰한다. 그러나 화가는 의자를 의자 본래의 상태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색깔과 모양을 관찰하여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가 있으며, 시인은 눈에 보이는 자연의 광경과 소리와 정서적 경험들을 모아 낱말을 상징적으로 지시할 수 있다.

상징은 인간 의식의 흐름을 표출시켜 고정할 수 있는 감각적 수단인 동시에 상징화한다는 의미에서 문화형성의 수단이자 방법이다. 다양한 상징형식의 근본현상은 인간이 외부 세계의 인상을 단순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 표현들 가운데 외부 세계의 실재는 정신의 자발적 기호나 그림이라는 ‘매개’ 속에 고정된다. 여기서 기호나 그림, 언어라는 상징은 표현에 의해 외부대상을 고정시키는 수단일 뿐 아니라 이것을 통해 다시 외부 세계를 바라본다는 것에 매개로서의 진정한 의미가 있다. 이 매개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즉 문화적인 삶을 살게 하는 결정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인간이 외부 대상에 대해 매개를 형성함으로써 인식하고, 다시 형성된 매개를 통해 외부 대상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시간적으로 문화 축적의 성과를 이어 받을 수 있고 타인의 성과를 받아들일 수도 있다. 감각적인 것은 상징을 통해 정신적이고 보편적인 것을 획득하고 정신적인 것은 다시 상징을 통해 감각적인 세계로 나아간다. 그러므로 인간은 상징적 동물이며 상징 형성의 힘으로 세계를 만들어 간다. 이 상징 형성의 힘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연에 있는 무의식에 깔려있는 힘에서 나올 때 자연에 배치되지 않으면서 자유와 개성을 표현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힘이라고 하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는 어떤 실체가 현상적으로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 우리에게 창조하도록 충동질하는 어떤 힘, 바로 그러한 자극이야말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실재하는 또 다른 하나의 힘이다. 추상적인 차원에서 상징을 고안하고 조종하고 파악하는 능력은, 인간을 우리의 친척 영장류 동물과 구분시켜주는 주요 특징들 중의 하나이다. 논리학, 창조력, 미학, 모두가 이 능력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므로, 이 능력이야말로 인류학적 개념의 예술의 주춧돌이다. 그러므로 예술은 인간의 뇌 안에서 존재한다. 예술은 인간의 뇌에 호소하며 인간의 뇌만이 예술을 생산해 낼 수 있다. 예술 작품은 ‘예술가’의 뇌 속에 구상된 내적 표상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타자’를 대상으로 한 외적 표현이다. 예술은 자연으로부터가 아니라 예술 자체로부터 탄생한다는 말은, 예를 들어 그림을 그리는 데에는 자연관찰보다 이미 존재하는 다른 그림이 보다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을 보고 완성된 예술 작품은 결코 어떤 장면의 사실적 묘사나 삽화 따위를 단순히 모방한 것이 아니라 늘 변화하고 살아있는 구도를 가진다. 본질에 더 가까운 방법으로 무의식의 저편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어 자연을 묘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과 함께 그것을 온전히 나누어 가질 수 있게 될 때 회화는 말없는 시가 될 수 있으며, 시는 말하는 그림이 되어 말 뒤에서 말이 울리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언어, 예술, 신화, 종교는 고립되어 있거나 제멋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것들은 하나의 공통적인 유대에 의하여 결합되어 있다. 언어와 신화와 예술과 종교의 근본 기능이야말로 우리가 이것들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형태와 표현의 배후 깊숙이 찾아 들어가야 할 바로 그것이요, 또 최후 분석에서 우리가 하나의 공통 기원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려고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될 바로 그것이다.


  3. 나가는 글


예술 작품을 창조하는 일은 외부의 물질적 세계를 단순히 복사해내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물질적 세계를 통해서 물질 너머의 세계와 조응하는 일이며, 모든 인간과 세계 내에 구현되어 있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 장과 교류하는 일이 된다. 인간이 대우주와 감응하고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 그것이 예술이 지향하는 하나의 이상이다. 그리고 그것은 잃어버린 자연과 우주 전체와의 연대를 회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인간의 내면에 깃들여 보이지 않는 잠재된 세계, 동시에 한 개인의 내면에 있지만 전일적인 우주 전체가 함께 호흡하는 세계를 드러내고 그 세계를 교감하게 하는 것이 예술의 의미이다. 예술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잃어버린, 또는 깊숙한 곳에 잠재되어 있는 영적인 감수성을 먼저 회복시켜야 한다. 예술이 이미지로 보여주는 세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무엇보다도 개인이 지닌 감수성의 몫이다. 영적 감응 능력이 가로막혀 있는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영성의 씨앗을 키워나가는 일이다. 굳게 닫혀 있는 개인의 완강한 성채를 무너뜨릴 때 예술은 동굴에서 나와 우주와 하나임을 알려주는 매개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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