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ra_vars1:  ||||||||||||||||||||| 
extra_vars2:  ||||||||||||||||||||||||||||||||||||||||||||||||||||||||||||||||||||||||||||||||| 
          사물, 이미지, 개념과 불확실한 정체성 탐색 -로니 혼의 전시회를 보고  



지난 9월 18일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 신관에서 로니 혼(Roni Horn 1955~)전 (2010.08.31-10.03)을 보았다. 원래는 다른 전시회를 보러 갔으나 민족의 명절인 추석 직전이라 그 갤러리는 문이 닫혀 있었다. 그래서 뜻밖에도 그 주변에 있는 전시관에서 그의 작업을 보게 된 것이다.
로니 혼은 70년대 중반부터 사진, 조각,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로 작업을 해온 세계적 명성을 지닌 작가이다. 미술관 자료에 의하면, 그녀의 작업은 자연의 순환적 주기와 그 영원한 흐름의 현상을 조명하면서 같음과 다름(유사성과 상이성), 성과 양성성, 언어와 텍스트 등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며, 이때 작가가 일관되게 관심을 가지는 주제는 특수한 장소와 특수한 시간, 그리고 그것을 경험하는 인간의 기억과 관련된 것이었다. 주1)  
로니 혼의 개인전은 2007년에 이어 한국에서 두 번째였으며, 이번 전시에서는 그녀 특유의 개념적 막대(?) 작업과 <이자벨 위페르의 초상>이외에도 형태를 해체하고 오려붙여 또 다른 형태를 만든 3점의 대형 드로잉 작품을 함께 볼 수 있었다.


1.
전시장에 들어서자 먼저 두 개의 얼음 덩어리를 나란히 바닥에 놓아 둔 조각 작품을 볼 수 있었는데, 제목이 'Two pink tons'이었다.(*집에 와서 보니 사진이나 조각을 이란성 쌍둥이처럼 만드는 것이 그의 작업에서 매우 중요한 형식이었다) 이 작품은 유리로 만든 것으로 은은하고 옅은 연한 핑크 빛 얼음덩어리를 연상케 하면서도 그 투명한 존재감이 낯설었다. 가장 가변적인 사물이 유리처럼 단단한 투명한 고체덩어리로 존재하고, 무엇보다 설치된 장소와 시간에 따라, 보는 각도에 따라 작품에 투영된 색상과 이미지가 미세한 변화를 드러내려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이기도 했지만, 나에게는 이 작업이 수 십 년 전 이 땅에서의 선구적 현대미술의 한 장면인 김구림의 얼음 작업과 비교되었다.
로니 혼과 달리 김구림은 진짜 얼음 덩어리를 전시했다. 그래서 얼음이 녹아버린 후 그 위에 덮인 하얀 종이만 흥건히 녹아버린 물 위에 떠 있는 작업이었다. 이는 이제 아득한 신화처럼 빛바랜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이미지이지만 보이는 것의 덧없음, 또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의 메시지는 로니 혼의 'Two pink tons'보다 김구림의 작업이 더욱 강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 작가 스스로 자신의 모든 작업의 기초적 핵심이라 말한 드로잉 3점을 볼 수 있었다.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다는 그녀의 드로잉 작업은 처음 접시라 이름 붙인 두 개의 유사한 형태를 그리는 작업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이 두 개의 접시는 예리한 칼로 자르고 붙이는 과정을 거치면서 점차 새로운 형태와 특징을 만들어 마치 증식하는 세포처럼 점차 커지고 더 복잡한 형태를 띠는 이미지였다. 이번에 전시된 드로잉 작업은 마치 푸른색의 지도 같기도 하고 뇌의 표면 같기도 했는데 나에게는 이 드로잉 작품들이 그녀의 작업 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다.    
미술관 자료에 의하면 사진과 조각 작품과 마찬가지로 드로잉 작업들 또한 쌍, 짝지어진 형태, 반복의 과정을 거치면서 정체성의 문제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들로 보였다.  

이어 벽면에 세워진 막대 조각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그것들은 알루미늄과 플라스틱을 재료로 해서 만든 막대 형상이었지만 그 안에 서로 다른 경구들이 고딕체 알파벳 대문자로 입체적인 형상을 이루며 존재하는 모습이었다. 이런 작업은 이번 전시회에서 4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들 작품은 이른바 ‘White Dickinson’ 시리즈 연작들로서 에밀리 디킨슨이란 미국 여류 시인의 시 구절을 입체적으로 형상화한 작업이었다. 주2) 그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THE MOST INTANGIBLE THING IS THE MOST ADHESIVE(*가장 만질 수 없는 것이 접착력이 강하다)
RESTORED IN ARCTIC CONFIDENCE TO THE INVISIBLE (*보이지 않은 것으로부터의 절대적 확실성의 회복)
IS IT OBLIVION OR ABSORPTION WHEN THINGS PASS FROM OUR MINDS?(*사물들이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지나갈 때 망각되는 것인가 또는 흡수되는 것인가?)
A BLOSSOM PERHAPS IS AN INTRODUCTION, TO WHOM-NONE INFER-(*꽃의 개화는 아마 누구에게도 추론이 불가능한 입문이다. 주3)

2층에서는 거의 같은 표정을 반복해서 찍은 듯한 여인의 얼굴 사진들이 갤러리 네 벽면에 나란히 전시된 것을 볼 수 있었다. 영화배우`이자벨 위페르의 초상Portrait of an Image (with Isabelle Huppert, 5c prints  38.1*31.75cm, 2005)으로 각 5개의 사진을 한 시퀀스로 구성하여 전시한 것이다. 일정한 간격으로 나열된 이 작품은 이자벨 위페르의 다양한 표정을 몇 초 간격으로 찍은 연작으로, 그야말로 ‘동일한 대상의 같음과 다름에 대한 탐구’와 ‘하나로 정의내릴 수 없는 다양한 정체성’을 느끼게 하였다.


2.
미술관 자료에 의하면 작가는 1975년 대학 졸업 직후 방문한 아이슬란드에 매료되었으며, 원시 자연, 그리고 홀로 여행하며 느낀 절대 고독은 그의 정신세계를 이룬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이번에 전시되지 않았던 그의 작업들을 볼 수 있었다. 그 중에서 노란 바탕의 흰 글씨로 된 실크스크린 작품은 약간은 끊어졌다 다시 이어지는 나선형으로 감아 들어간 경구들도 인상적이었다. 대략 해석 해보니 다음과 같은 뜻이었다.

제비꽃은 마음을 안으로 향하게 하고 매우 심오한 자기성찰을 하게 한다, 그들은 겸손함 때문에 숨은 채 말한다. 그것은 그 자신의 비밀을 소유하거나 붙잡기 위하여 숨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거의 억제된 향기의 절정이어서 사람들이 그것을 찾아내는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 향기는 결코 큰소리로 말하지 않는다. 제비꽃은 말없이 아주 사소한 것으로 말한다.주4)

이와 유사한 형식의 작품으로 그의 <Agua Viva: The dense jungle...2004>란 작품은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었다.  

The dense jungle of words wraps itself thickly around what I feel and live, and, Transforms everything I am into something of my own that remains beyond me(*단어의 두텁게 농축된 복잡함 그 자체는 나의 느낌과 삶을 두껍게 감싼다. 그리고 남아 있는 나를 넘어서 나 자신의 무언가로 모두를 변형시킨다)

이처럼 그녀의 작업은 그 단순 명쾌한 전시방식에도 불구하고, 단적으로 말해서 "나는 과연 누구이고, 어디서 왔을까?"라는 정체성에 대한 철학적 성찰과 함께 세계의 변화에 대한 감지와 그에 대한 불확실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맺음말

“0에서 시작하여, 또 다시, 그리고 다시”라는 그녀의 말은 그녀의 작업관을 잘 알게 한다.   이처럼 그녀의 작업은 세계와 자연의 불확실성에 대한 매 순간 매순간 깊은 응시와 집중력을 드러내지만 전시 공간의 여백을 최대한 살리는 매우 간결하고 개념적이기까지 명료한 전시 방식으로 관람자의 재량권(empowerment)을 많이 부여한다.
그녀는 동일한 작업을 각각 다른 벽에, 혹은 다른 전시장에 설치하여 왔다. 이를 통해 장소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사물에 대한 인식을 제시하고자 함을 알 수 있다. 이는 사물의 ‘동일한 경험’이란 정의를 전복시키는 의도의 표명이다. 시간과 장소에 따라 인간의 지각 활동이 달라지고 그에 따른 작품의 이해 또한 달라짐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점이 그녀의 작업이 나름대로 독특한 위상을 갖는 주된 이유 중 한 면으로 해석된다.  
결국 로니 혼은 자연의 변화에 매우 민감한 작가로 보인다. 특히 영감의 고향인 아이슬란드에서의 경험이 큰 비중을 갖는 그녀의 작품들은 대개 시각적 명쾌함이나 간결성을 드러내는 것과 달리 매우 명상적이거나 철학적이며, 자연, 그 중에서도 물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타오이즘Taoism, 즉 노자적인 사유가 반영된 듯하다. 무엇보다 작업 과정이 잘 드러나는 드로잉 그림에서 느낄 수 있는 변화에 대한 깊은 응시와 불확실성은 바로 "고정된 자아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불교적 사유를 느끼게 한다.

  

                                  2010년 9월 26일  
                                      도 병 훈


주1)도록에는 그의 작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었다.
Horn explores the mutable nature of art through sculptures, works on paper, photography, and books. She describes drawing as the key activity in all her work because drawing is about composing relationships. Horn’s drawings concentrate on the materiality of the objects depicted. She also uses words as the basis for drawings and other works. Horn crafts complex relationships between the viewer and her work by installing a single piece on opposing walls, in adjoining rooms, or throughout a series of buildings.
She subverts the notion of ‘identical experience’, insisting that one’s sense of self is marked by a place in the here-and-there, and by time in the now-and-then. She describes her artworks as site-dependent, expanding upon the idea of site-specificity associated with Minimalism. Horn’s work also embodies the cyclical relationship between humankind and nature—a mirror-like relationship in which we attempt to remake nature in our own image.
For the past 30 years, the work of Roni Horn has been intimately involved with the singular geography, geology, climate and culture of Iceland. Since her first encounter with the island as a young arts graduate visiting from the United States, Horn has returned to Iceland frequently over the years. Iceland has been muse and medium to Roni Horn.
주2) 에밀리 디킨슨(Emily Elizabeth Dickinson, 1830년 - 1886년)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그녀는 당대의 관습을 거부한 시인으로 그녀는 생전에 7편 가량의 시를 발표했다. 그녀는 당시로서는 매우 이채로운 독특한 스타일 - 즉 dash의 사용과 대문자의 사용, 또 행과 연의 특이한 구분 따위 - 의 시를 썼다. 그녀는 1700 여 편의 원고만 남긴 채 생을 마감했다.
주3)지난 번 전시 도록에서 다음과 같은 이전 작업들을 볼 수 있었다.
TO COWER BEFORE A FLOWER IS PERHAPS UNWISE(*꽃 앞에서 위축되는 것은 아마 지혜가 없어서일 것이다),
Key and Cue, No. 1206: THE SHOW IS NOT THE SHOW(*보여주는 것은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AN HOUR IS A SEA(*시간은 바다이다)
NATURE IS SO SUDDEN SHE MAKES US ALL ANTIQUE-(자연은 우리 모두를 갑자기 골동품으로 만들어버린다.

주4)The violet is introverted and its introspection is of the deepest sort, they say hides because it's modest. Thats not it, it hides to be able to capture its own secret. Its almost-not-perfume is muffled glory but it demands that people seek it out, it never ever shouts its perfume. The violet says frivolous things that cannot be said.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Selected 사물, 이미지, 개념과 불확실한 정체성 탐색 -로니 혼의 전시회를 보고
도병훈
5786 2010-09-27
114 실재성에 대한 존재론적 물음과 예술
도병훈
5227 2010-09-07
113 ‘다르마키르티와 불교인식론’을 읽고
도병훈
5737 2010-07-01
112 ‘젊은 모색2010전’에 대한 존재론적 성찰
도병훈
5162 2010-06-12
111 예술과 그 가치(2) - 2장 미의 부활
도병훈
6225 2010-05-19
110 2010작업일기2
도병훈
5114 2010-04-27
109 예술과 그 가치(1)
도병훈
6283 2010-04-21
108 원근법과 관점perspective에 대한 단상
도병훈
6998 2010-04-14
107 법정스님 추모 현상에 대한 단상
도병훈
5023 2010-03-25
106 ‘미술 그 친숙하고도 낯선’ 에 대해
도병훈
5181 2010-03-06
105 2010작업일기1
도병훈
5012 2010-01-21
104 누구 없는가? 라는 화두
도병훈
5585 2009-12-21
Tag List
 

17598 경기도 안성시 미양면 이박골길 75-33 | Tel. 031-673-0904 | Fax. 03030-673-0905 | Email: sonahmoo@hanmail.net

Copyright ⓒ 2002- Alternative Art Space Sonahmoo all right reserved.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