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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01 (23:5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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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마키르티와 불교인식론’을 읽고



최근 다르마키르티(Dharmakrīti,600~660년경, 한자 이름은 법칭法稱임)의 사상을 다룬 책인『다르마키르티와 불교인식론』이란 책이 출간되었다. 다르마키르티는 현재 유럽·미국·일본에서는 학회가 구성되어 연구될 정도로 불교사상사에서 큰 비중을 갖는 인물이지만, 이번에 권서용이란 학자가 다르마키르티 철학의 핵심인 <프라마나바르티카>를 번역함으로써 국내에 처음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이다.
오늘날, 고도의 논증적 사고인 후기 불교인식논리학과 인도와 티베트 불교를 이해하는 데는 그의 사상이 관건 구실을 하며, 7세기 이후 인도 철학사 연구는 다르마키르티 사상의 각주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그의 영향은 심대했다고 한다. 이처럼 다르마키르티의 사상이 붓다 이후 특히 2세기 이후 논리학적 사유로 심화된 인도 불교사상의 정점이라면, 7세기 동아시아 불교사상의 정점으로 원효元曉(617~686)의 사상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원효이후 동아시아에서는 언어와 논리를 부정하는 선불교적 경향으로 급격히 진화 함으로써 점차 불교사상은 쇠퇴하며, 이후 불교는 직관적 수행 및 기복신앙으로 경도되어버린다. 바로 이 때문에 다르마키르티, 또는 원효에서 정점을 형성하는 전성기 불교논리인식학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르네상스 이후 근대 서구 문명은 현대에 이르러 세계적 질서를 주도해왔지만 20세기 후반이후 근현대 서양이 주도해온 가치체계만으로는 새로운 방향성 모색이 지난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르마키르티가 활동하던 7세기 전반의 인도는 ‘육파(여섯 학파) 철학’과 같은 비불교적 사상들이 득세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다르마키르티가 인도 육파의 하나인 ‘미망사’의 저명한 학자 쿠마릴라Kumarila와 벌인 논쟁에 관한 신화적인 이야기는 다르마키르티가 어떤 식으로 공부하고 활약했는지 잘 알게 해준다. 당시 실체론적인 사유가 지배하고 있었던 7세기 인도에서 다르마키르티는 불교인식논리학을 통해 이러한 사유체계를 혁파한 것이다.
당시 인도에서 불교인식논리학이 고도로 발달할 수 있었던 근원적 배경은 무엇보다 인도의 산스크리트어가 인도 유럽어족에 속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이나 인도 인식논리학은 모두 동일한 언어적 벨트 속에서 일어난 것으로써, 즉 동류의 사유패턴에서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근대 이후 귀납적 사유를 통해 과학적, 합리적 논증으로 전개되었지만 동양에서는 7세기 원효를 정점으로 사실상 더 이상 논리학은 발달하지 않게 되며, 이는 역시 언어를 부정하는 것이 근본인 선불교의 성립에서 알 수 있듯, 인도불교가 비논리적 언어인 한자 문화권에 수용되면서 결국 그러한 언어적 특성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토착화되었기 때문이다.  

<다르마키르티와 불교인식론>을 쓴 저자는 다르마키르티 사상의 특징을 그 인식론의 ‘합리성’에서 찾는다. 종교의 가르침은 많은 경우에 신비적·초월적 인식을 강조하는데, 다르마키무르티의 사상은 그런 비합리적 인식을 배격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합리성’을 기반으로 다르마키르티의 사상을 해석하며, 논의의 중심은 ‘무아無我’사상이다. 다르마키르티의 사상과 인도 육파철학이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무아냐 유아냐’에 있다는 것이다. 즉 이 세계의 현상 아래 불변하는 본질적 실체가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대립을 말한다. 주2) 그런 실체가 있다고 믿는 학파는 그 실체를 아트만(아·我)이라고 부른다. 석가모니의 불교사상이 획기적인 이유는 바로 이 불변의 실체인 아트만이 없다는 ‘무아론’을 펼쳤기 때문이다. 다르마키르티의 사상 역시 무아론으로 집약되며, 이 과정에서 그는 대승불교의 기초를 확립한 나가르주나(용수, 150~250년께)의 무자성․공空사상과 바수반두(세친, 320∼400년께)의 유식唯識사상을 흡수하고, 특히 바수반두의 4대 제자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디그나가Dignāga,진나(陳那,480-540년경)가 세운 불교논리학을 받아들여 방대한 불교인식론의 사유체계를 완성했다. 다르마키르티는 모두 일곱 권의 저서를 남겼는데, 그중 디그나가 사상의 주석서인 <프라마나바르티카>는 그의 사상의 핵심을 보여준다.

이 책의 저자는 다르마키르티의 철학을 ‘무상無常’이라는 존재론적 원리와 ‘연기緣起’라는 상대성 원리를 근간으로 한 ‘무아론’으로 본다. 이 무아론에 입각해 밖으로는 아트만이라는 영원한 실체를 주장하는 비불교적 학설을 혁파하고, 안으로는 불교의 무아론에 내재하는 허무주의적인 사유를 극복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무아견, 또는 공견이라 하며, 그 인식수단은 프라마나pramāna이다.  
프라마나란 자기 자신을 알 수 있는 올바른 두 가지 수단으로, 하나는 ‘지각’이며 다른 하나는 ‘추리’다.”주3) 개념구성을 떠난 인식인 지각과 언어와 결합한 개념구성(분별)에 의한 인식인 추리를 통해 바른 인식, 곧 무아無我와 공空의 인식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 다르마키르티의 인식론이다. 더불어 그러한 사고방식은 인식론적인 차원에서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어떤 사태의 원인을 명백하게 지각하게끔 하고 실천적으로는 삶의 능동성, 변화 가능성에 주목하도록 요구한다.  
이처럼 불교사상이 생성을 본질로 하는 것은 다르마키르티 이전에는 법法,dhrama이였지만 다르마키르티는 현실적 존재vastu, actual entity로 명명한다. 주4) 다르마키르티에 의하면 현실적 존재는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생성하자마자 소멸하는 찰나적 존재이다.
그런데 현실적 존재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한 찰나 이상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 존재가 생성하자마자 소멸한다고 하는 것은 자신 속에 자기동일성self identity이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기를 소멸하는 자기차이성(self difference)이 내재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주5)                                            
‘자기차이성’은 이렇게 이전과 다른 상태로 끊임없이 이행해 가는 사태를 뜻한다. 지금 이 순간의 ‘나’는 다음 순간의 ‘나’와 다른 존재고, 이전까지의 나는 이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소멸해가므로 당연히 새로 태어나는 ‘나’가 이전 것과 같은 것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허무한 것이 아니라 늘 새로운 의미, 다른 의미를 만들어 간다는 점에서 허무하다기 보다는 생생하게 약동하는 사태를 보여 준다는 것이다.
결국『다르마키르티와 불교인식론』은 끊임없이 자기와 차이나는 존재로 바뀌어 가는, 즉 실체론적으로 불변하는 ‘자아’의 개념을 해체하고, 늘 새롭게 갱신하면서 지각하고 자신의 인식을 정련해 가는 존재에 관해 현대의 합리적 관점에서 역설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르마키르티의 말처럼 인간의 모든 진정한 목적 성취에는 '바른 인식'이 선행되어햐 한다. 이 바른 인식의 기저에는 인식논리학 이전의 문제, 즉 개념구성을 떠난 인식이자 지각적 체험의 문제가 가로 놓여 있다. 이처럼 다르마키르티는 존재와 인식이 상호 내재적 ․ 본질적 관계에 있다는 논증하고자 했다. 이것이 바로 무아견이자 공견이며, 이를 통해 논증적 진술의 중요성을 자각할 수 있다. 물론 미적, 또는 예술적 가치는 논증을 넘어서는 메타언어임에 분명하지만, 그 가치를 입증하는 방법은 역시 논증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대는 다르마키르티와 원효, 그리고 서양의 근현대  철학과 예술에 이르기까지 그 모두를 회통하고 통섭할 수 있는 시대이다. 이처럼 다층적으로 교섭하며 진화하는 인류 문명의 연장선에서, 즉 동서 문명을 종합적으로 통관하는 관점에서 새로운 미술을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은 좀 더 객관적이고도 유연한 관점을 갖게 한다.  

                                        2010년 6월    
                                          도 병 훈


주1) 인도의 논리학을 중국에서 수용한 당시에는 인명학이라 하였으며, 현대는 불교인식논리학으로 번역된다. 원효의 불교인식논리학 저서인『판비량론』은 다르마키르티가 주석을 단 사상가인 디그나가의 논리학을 토대로 중국 당나라 현장의 인명학을 비판한 것이다.
이처럼 원효는 다르마키르티 직전까지의 인도불교사상에 정통하였지만, 그의 저서에 다르마키르티의 사상은 언급되지 않고 있다. 원효가 『판비량론』을 쓴 671년까지는 다르마키르티의 사상이 중국이나 동아시아에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두 사상가의 논리전개 중에서 환위법, 즉 주부와 술부를 바꾸는 논리전개의 유사성은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향후 양 사상가의 사상 비교를 통해 새로운 철학의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    
주2)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형이상학』에서 모든 현상의 근저에 잇는 궁극적 실재를, 스스로는 운동하지만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자라는 의미에서 부동의 원동자Unmoved Mover 혹은 제1실체라 한다. 이는 주어와 술어의 언어 형식에 의해 귀결되는 실체와 속성의 사유도식에 기반 하는 데, 이러한 사유도식은 인도에서는 석가의 연기와 무아론에 의해 부정되지만 서양에서는 그들의 정신문명을 2천 년 간 지배한 바탕이 된다.
주3) 현장의『인명정리문론』이나 원효의『판비량론』에서는 지각을 ‘현량’, 추리는 ‘비량’이라 한다.
주4) 이 책의 저자는 vastu를 ‘현실적 존재’로 번역하였는데, 이 말은 화이트헤드 철학의 핵심적 개념 중의 하나이다. 화이트헤드는 나의 존재방식을 모든 존재자의 존재방식으로 유비적으로 다음과 같이 일반화시킨다.
진정한 의미의 모든 존재는 경험을 통해 자기를 구성하는 주체적 과정으로 존립하고, 이 경험의 과정을 떠나서는 더 이상 진정한 의미의 존재일 수 없다. 이 주체적 존재는 경험과 더불어 생성하고 경험과 더불어 소멸한다. 화이트헤드는 현실태의 관념이 탄생하는 배경을 설명하면서 이에 대해 말하는 데, 여기서 현실태란 자기구성의 활동 중에 있는 존재이다. 현실세계는 이런 단위 존재의 구성체이며, 이를 화이트헤드는 “현실적 존재actual entity” 또는 현실적 계기actual occasion라 부른다. 문창옥 지음,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의 이해, 통나무, 1999, 39쪽 참조          
주5) 다르마키르티와 불교인식론, 그린비, 2010,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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