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병훈
조회 수 : 6637
2010.04.27 (12:3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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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작업일기2


5월초부터 안산에 위치한 경기도 미술관에서 개최되는 ‘경기도의 힘’전에 ‘슈룹’에서의 전시 활동과 관련, 김성배, 이윤숙 선생과 함께 전시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두 분의 권유로 이번에 전시하게 된 나의 작품은 지난 1995년 슈룹에서 기획한 <아리랑, 이어지는 자서展>출품작이다.
이 그림은 가로 400cm×세로 436cm 크기의 올이 굵은 광목천에 황토색으로 물들인 후 경상도 지역의 <대동여지도>를 확대하여 목탄, 먹,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작품으로 당시 커다란 ‘말벌집’과 함께 설치된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임자병향壬坐丙向>이란 풍수지리적 제목으로 화성 봉담리 소재의 이윤숙 선생의 당시 작업실 겸 전시장에 전시되었는데, 2층 높이의 층고를 가진 공간 덕분에 좁은 작업실에서 본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이러한 작업을 할 당시의 세계관은 고산자 김정호가 말한 ‘산(산마루)은 땅의 살(근육)이자 뼈이며, 물(물의 흐름)은 땅의 피이자 혈맥山脊水派爲 地面之筋骨血脈 산척수파위 지면지근골혈맥’ 이라는 구절이었다. 주1) 요즘 4대강 개발과 관련하여 대두되는 논란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구절을 처음 대하던 때 느꼈던 감동이 아직도 어제의 일 같다.      

이 그림은 1994년 6월에 제작한 것이므로 어느 덧 16년이 넘은 작업이다. 나에게 이 작품은 특히 바깥세계를 탐구하는 '타자언급other-reference'이면서 동시에 나의 삶을 주체로 한 자기언급self-reference의 매개체라고 할 수 있다. 나로서는 이 작업이 르네상스 이래 서구의 근현대미술이 구축하거나 해체해온 특성과는 다른 예술을 지향하고자 했던 ‘증표’ 와 같은 작업인 셈이다.  
          
지난 일요일, 나는 출품을 앞두고 그간 고이 접어서 모셔(?) 두었던 이 작품을 펼쳐 놓고 원 대동여지도 복사본과 비교하면서  하루 종일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작업을 했다. 그러면서 이 지역 중 포항 근처인 운제산 오어사 주2)에서의 원효의 행적을 더듬어보기도 하고, 수운 최제우와 해월 최시형이 수도하고 활동하던 곳 등을 탐색해보았다. 그리고 겸재 정선 예술세계의 획기적 분기점이 되는 <내연삼용추도>를 그린 곳인 내연산 지역을 좀 더 자세히 그리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들은 1994년 당시만 하더라도 모르는 사실들이었다.
어제 저녁 다시 내가 그린 부분의 <대동여지도>를 다시 찬찬히 살펴보니, 겸재가 <쌍계입암도>을 그린 지역의 산세와 물의 흐름이 자세히 나와 있었다. <쌍계 입암도>는 필력이나 지역적 인근성으로 보아 <내연삼용추도>를 그린 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인데 대지에 불쑥 쏟아오른 거대한 남근처럼 묘사하여 거침없고도 기세 넘치는 화풍을 보여준다. 이 그림은 경북 영양의 청기천과 대천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입압과 그 주변을 그린 것이다. 그리고 입암 인근에 위치한 영남 지역 사대부의 정원을 대표하는 ‘서석지’를 주변도 어느 곳일까 가늠해보았다. 언젠가 ‘서석지’에 갔을 때 그곳을 바라보는 정자 마루에 그 지역의 전체 산세가 그려진 고지도 복사본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번에 대동여지도를 보며 우리 선조들의 세계관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누가 말했듯 지도를 보고도 새소리 물소리를 듣는 경지는 아니지만 지난 수 년 전 겸재 정선의 행적을 더듬으며 가본 곳이라 당시의 경험과 지도를 통해 주변 광경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로서는 실용적 관점에서 만들어졌을 이 지도에 정자나 누각까지 표기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안동의 영호루와 동해 현종산 자락에 위치한 망양정이었다. 주3)
내가 그린 이 지역은 삼국시대 때만 하더라도 한반도에서도 가장 낙후된,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의식이나 문화가 때때로 매우 빈한했던 후진적인 곳인데, 원효에서 최시형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이처럼 협소한 공간에서 깊고도 넓은 정신적 맥락이 형성되고, 나아가 역사적 전환을 이루는 계기가 조성되었는지, 나는 이번에도 오랫동안 지도들 들여다보며 생각해보았다.
오늘 같은 글로벌 시대, 또는 노마디즘의 시대에 이러한 지역적 탐색행위는 과연 무의미한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것은 단지 지역적 고유성에 대한 관심이 아닌 정신적, 사상적 측면에서 그 단서를 찾는 모티브로서 의미가 더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번에 나는 작품의 제목도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가>로 바꾸었다.

최근에 와서 예술적 가치는 그 어떤 경험으로도 사상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영역임을 새삼 절감한다. 그래서 나에게 예술이란 언제나 탐구의 매개체이자 수단일 뿐이다. 나는 예술이 그저 감성적 유희이거나 장인적 수련의 결과물이거나 혹은 세련된 감각과 기술의 영역이라보지 않는다. 바로 이 때문에 16전이나 지금이나 이 뜬금없는(?) 탐색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역사의 흐름은 도도하고 냉혹할 뿐이다. 최근에 안 사실이지만 지난 19세기 초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서구의 유례없는 비약의 시기에도 수많은 화가들이 시대착오적인 작업을 하였으며, 심지어 당시 진취적 기상이 넘치던 미국에서도 수많은 화가지망생들이 이미 황혼에 접어든 서구 근대 미학의 강령과 오랜 전통을 동경하며 ‘떼거리’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나는 그러한 사실을 접하며, 여름날 가로등 불빛으로 모여들다 불에 타죽은 수많은 나방들이 떠올랐다. 이는 물론 새로운 정신적 지평(통찰)이나 관점이 아니라면 평생을 바쳐 작업한 들, 그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와 가치가 있는가를 회의하기 때문이다.  내가   ‘앎과 삶의 괴리’ 사이에서 어떤 유기적이며 합일적인 세계를 지향하고자 하는 것도 이런 생각이 그 바탕에 있는 셈이다.      
                               2010년 4월 27일
                                   도 병 훈
    

주1)이번 전시 출품을 앞두고 김정호,『청구도靑丘圖(乾)』,「범례」, 고전국역총서47, 민족문화추진위원회, 1971년, p.15(원문p.4)에서 이 원문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이 구절의 원문은 최원석이 쓴『풍수의 입장에서 본 한민족의 산 관념』에서 인용된 구절을 통해 알게 되었다.(서울대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92, 32쪽 참조)
주2) 삼국유사에 이 절에 얽힌 원효의 행적이 나오며. 당시에는 항사사라고 하였다.
주3)현재의 망양정은 1860년에 울진군 산포리로 이전하여 원래의 자리가 아니 곳에 지난 2005년 신축된 건물이다. 원래의 망양정은 관동팔경 중에서도 첫 번째로 그 풍광이 아름다운 곳으로 꼽혔으며, 이를 짐작할 수 있는 겸재의 <망양정도>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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