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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4 (11:3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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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근법과  관점perspective에 대한 단상


이집트 벽화의 정면성 원리, 동양 전통회화의 삼원법, 한 동물의 형상을 좌우 양쪽으로 분리하여 마치 두 마리처럼 그린 아메리카 원주민 회화, 모든 사물이 소실점으로 수렴되는 르네상스 시대의 투시법(원근법), 그리고 여러 개의 시점이 공존하는 세잔의 그림과 입체주의 등은 인간의 ‘관점perspective’이 문화적으로 진화해왔음을 입증한다. 지역이나 문명권에 따라 인간들은 각각의 관점으로 세계를 보아왔다는 것이다. '보는 것이 믿는 것To see is to believe'이란 말이 있듯, 관점은 세계관의 바탕으로써 인간의 존재양식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이 세계나 사물을 특정한 방식으로 보게 하는 관점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삶과 사유방식을 결정짓는 암묵적 권력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관점 중에서도 세계관적 측면에서 가장 획기적이면서도 그만큼 특정한 방식으로 보게 만든 ‘시선의 체제regime’로써 후대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투시법, 즉 원근법perspective의 발명이다. 오늘날 ‘관점’과 원근법이 영어로는 동의어인 사실에서도 원근법의 발명이 얼마나 획기적인 시선의 체제인가를 짐작케 한다. 이처럼 원근법의 발명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이상의 문화사적 사건이지만 일반적으로 미술사와 관련지어, 그것도 순전히 기법적 차원에서 단편적으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근대 과학의 전위 역할은 과학자가 아닌 화가들이 했는데, 이는 그 첫 방법론이 바로 투시법, 즉 원근법이었다는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다. 원근법이란 화면의 모든 요소들이 소실점을 중심으로 2차원적 공간에 3차원적 통일감 있는 공간감을 표현하는 기술이다. 즉 가까운 것은 크게 그리고 먼 것은 작게 그리는 데, 단축의 정도에 직선적인 일관성을 부여한 것이다. 이러한 기법은 자연에 대한 탐구를 통해 발명하게 되며. 바로 르네상스시대의 예술가들이 그 주역이었다.  
‘빗자루 타고 하늘을 날아다닌 죄’, 아니 정확히 말해서 ‘빗자루 타고 하늘로 날아가서 악마가 주재한 회의에 참석한 죄’로 수십, 또는 수백만의 여자를 마녀로 몰아 재판을 하고 화형을 시킨 시대가 중세였는데, 이러한 무지와 미신의 타파는 물론 근대 과학의 힘으로 이루어졌으며, 이 때문에 인류 역사상 근대의 여명기인 르네상스 시대는 인간의 의식의 변천 또는 진화과정에서 특별한 비약의 시기가 된다.    
마사초(1401~1428?)가 최초로 그림에 기하학적 투시도법을 적용한 <성삼위일체>를 그린 이후 이미 1430년대부터 우첼로(1397~1475)등의 당시 진보적인 화가들은 적극적으로 원근법을 적용하게 된다. 특히 인류역사상 르네상스 그중에서도 르네상스 예술가들이 활동한 16세기야말로 서구 지식세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서구과학사에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난 시기였다. 오늘날 현대문명의 바탕인 과학기술이 왜 근대 서양에서 시작됐는지를 알려면 16세기를 제대로 들여다보아야 하며,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정량적이고 실증적인 탐구의 기원으로써 근대과학혁명의 전위역할을 원근법의 발명이 있다는 것이다.
원근법이 발명된 이후 미술가의 지위에도 획기적 변화가 생긴다. 중세 때까지 예술가는 비천한 지위의 장인에 지나지 않았으나 르네상스 이후 점차 미술가의 지위는 격상되며, 이 역시 원근법과 깊은 관련이 있다.

사진을 찍듯 대상의 실재감을 정교하게 재현하는 수단으로써 19세기 말 투시적 공간 개념이 요구하는 깊이를 부정함과 동시에 여러 관점이 충돌하는 그림이 나오기 전까지 원근법은 근대적인 그림을 특징짓는 가장 근본적인 ‘제도’이자 ‘규범’이 된다. 바로 이 때문에 ‘실재에 대한 환상’을 심어준 원근법은 결국 관점의 다양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사실 원근법은 누가 어떤 관점에서 보는가에 따라 소실점이 달라지므로 객관적 관점이 아니라 자연을 대상화한 주관적 관점이다.
원근법으로부터 비롯된 서구의 ‘근대적 시선’은 자연을 관찰 가능한 것으로 ‘대상화’하는 초기 단계를 드러낸다. 그래서 이는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이용하는 자연수탈과 이어져 제국주의 침탈, 환경파괴에 전지구적 위기상황을 초래하는 양면성의 근본이 되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원근법이란 ‘자연의 인간화’를 가져온 바탕이기도 하다.
그리고 계속된 근대과학문명의 진화는 새로운 과학과 철학으로 이어어지고, 미술에서도 반원근법적 예술로 그 주된 경향이 달라진다. 특히 19세기말 이후 원근법은 미술에서 더 이상 중요한 기법이 될 수 없었으며, 현대에 들어서는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에서 예술의 가치를 논하는 차원에까지 이른다.

과학적 탐구 정신을 지닌 원근법을 거쳐 단일한 시점이 아닌 지각적 감응이 중시되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예술세계는 끊임없이 시대와 지역에 따라 새로운 진화를 거듭해왔다.
이런 맥락에서 중세적 가치를 종식시킨 탐구활동으로서 원근법의 의의는 과소평가 할 수 없다. 원근법의 발명을 기점으로 ‘근대적 시선’이 형성되고 이러한 시선의 체제를 바탕으로 결국 근대과학 문명이 태동하며, 또한 이러한 대상에 대한 탐구심을 바탕으로 한 모험과 도전의 역사가 근 현대미술사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19세기 말 이후 현대미술의 역사는 공간감을 재현하는 숙련된 기법인 ‘실재에 대한 환상’을 낳은 원근법에 대한 극복의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결과 현대에 이르러 더 이상 단일한 시점이 객관적 규범이 될 수 없는 관점의 다양성을 갖게 되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동양의 전통회화에서 볼 수 있는 다시점적 표현 또한 재해석의 여지가 있으며, 이제는 다차원적인 통찰력과 분별력으로 인간의 의식을 확장함으로써 우리 자신과 세계에 대한 통찰을 풍부하게 하는 관점이 화두인 것이다.  
  
                                 2010년 4월 14일
                                      도 병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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