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현
조회 수 : 1301
2018.03.13 (11:5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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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미학  10

      b  예술의 규범적개념

   여기까지는 주로, 화상의 상상적 존재방식, 즉 화상의 상황분절적 존재방식에 대한 것의 해석을 언급했다. 이 작품 여시, 그것에 의해 만들어진 지적상황의 묘사이다. 그것은 疑裝 된 상황의 분절화가 아니고, 분절화된 상황의 허구인것이다. 우리들은 어느 한 객체, 예술작품과 만나는데, 그것은 그 객체와 우리들과의 만남의 인지에로 우리들을 이끌어 가는 것이며, 그것은 그 객체가 그기서 출발하는 생활세계의 도상기호를, 복잡한 미적상황의 예술적기호로 변화시키며, 그 상황에서 우리들은 흔해빠진 것이나 숭고한 것의 동시적인 긍정에로 재촉받는 것이다. 예술작품의 이러한 [1] 개념은 물론 예술작품의 미적통일성에 지나지 않는다. 이 통일성은 그 처리방법의 총체에 있어, 확립되는 표현연관 혹은 제시연관에서 성립한다. 그것은 작품내의 미적의미의 통일성이다. 그럼으로서 이 상상적통일성에 의해, 1의 명제는 이를 굳건하게 보지하는데, 예술작품은 타의 종류의 모-든 미적인 제객체로부터 스스로를 구별하는 것이다. 예술작품이란 순수한 관조의 객체와 같은, 감각적으로 분절된 객체인것이다. 예술작품이란, 단지 조응의 객체와 같은, 살아 있는 세계의 지평의 내측에 있어, 만들어지는 강조. 두드로지는 형태. 장식된 몸짓. 의미있는 형식은 결코 아니다. 예술작품이란 항상 세계의 의미형성적이며 그로 인하여 의의깊은 제지평을 직관시키는 표현풍부한 묘개물이다. 그 이름에 값하는 모든 예술은 세계로 향하는 통로의 생동적인 묘사를 성취함으로 해서 세계에의 통로를 만드는 것이다.

   허나 대개의 예술작품의 예술작품으로써의 자기동일성은, 이 상상적통일성에서는 나타나오지 않는다. 만일 그 깃발의 그림이 뉴-욕근대미술관의 중립적 공간이 아니고, 안전의 나의 방에 직접으로, 자연에의 눈짓를 대신하여, 내가 소유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여기서는 단순히 상상적인 객체뿐 아니라, 같은 조응적인 객체가 문제되고 있다고 하는 것이 이내 밝혀 지는 것이다. 나의 방에 걸려 있는 그 그림은, 던슌히 그것이 묘사하고 있는 역설적인 지각상황을 제시하고 있을 뿐 아니라, 방 전체의 분위기를 바뀌 놓는다. 허나 그 그림은 이 사실을 단순화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 그림의 표면은 그 장식적 윈형을 갖고 있으며, 혹은 또한 상징적으로 나의 동경의 국토를 가르키고 있는바, 만일 진짜의 기를 나의 벽에 걸수 있다면, 그 기 역시 이 이양의 특질을 갖고 있게 될것이다. 오히려, 이 그림은 그 상상적인 잠세력을 통해 나에 어울리는 의미있는 공간을 만들고 있다. 이 조형적인 역할중에, 그 그림은, 그 상상적인 표현으로는 다시 듸돌아 갈 수 업슨 어떤 고유한, 2의 의미를 획득하고 있다. 공간에 있어서의 객체로써, 이 그림은 심히 세속적인 회화의 목인이 된다. 그것은 이 그림이 그 그림을 여기에 걸어 놓은 나를, 어느 국토의 애국자로 제1의적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 아니라, 예술이란 국토의 애국자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 깃발 --- 회화의 조응적인 의미란, 근대적 --- 허나 다시 근대미국적인 유-럽적 전통에서 벗어난 --- 예술의 이콘 바로 그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회화의 조응적 또는 상상적인 힘은, 그 회화가 그 이외에, 최초의 해석에 있어 --- 회화의 [흔들리는 화상적 움직임]에 대한 지적에서 --- 이미 언급한바 있는 회화에 있어 존중되어야할 모-든 의미로부터 더욱 우리들의 눈을 가리는 관조적인 마술을 갖지 않는다면 이내 고갈되어 버릴 것이다. 이 마술의 힘에 의해 색채나 형태의 동적인 관계는, 관습적인 상징에 있어 그것들의 정해진 위치에서 밖으로 벗어 나올뿐 아니라, 예술적수단의 상상적이며 조응적인 활동으로부터도 밖으로 삐저 나온다. 이 이중의 화상감각은 순수한 화상감각성에로 해소된다. 형식연관적인 반사성, 미적도덕, 화상의 실존적몸짓은 사라진다. 그기서는 감각적인 물질적제관계이외의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감각적이해이외의 것은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 허나 또한 작품의 관례적인 의미나 제시적의미, 수행적인 의미는 다음의 순간에서는 이내 다시 그기에 있게 된다. 바로 그것은, 관조적인 화상현출의 순간을 그만큼 자극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동시적의미기능에서의 이탈인것이다. 바로 그것은 다중의 화상감각에 고갈되지 않는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 즉 그 화상감각은, 돌연한 부재의 제상태에서 항상 새롭게 성립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그것은 상상적인 화상파악이나 조응적인 화상파악을 항상 새롭게 관조적인 례외적상태로 치겨 세우는 것이다. 즉 화상파악이라는 것은 미적감각의 소멸에 있어, 물질과 맺으저 있는 이 감각의 개체성을 확인하고, 또한 동시에 발견적인 감각형성에의 화상파악의 자유를 확인하려 하는 것이다. 이 삼중의 미적분절화의 이 과정을 작품에로 착정하는 것은, 우리들의 화상의 본래적인 예술에 속한다. 또한 대우 잘 알려어 있는 평탄한 도형기호에서 이 작품을 탄생시키는 것은 예술가 쟈스파. 죤즈의 특수성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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