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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no image ‘피로사회’와 무용지용의 삶
도병훈
7375 2012-07-03
‘피로사회’와 무용지용의 삶 재독 철학자인 한병철 교수가 쓴『피로사회』를 읽었다. 2010년 가을 독일에서 출간되면서 ‘동아시아를 통한 서양문화의 비판’이라는 찬사를 받은 이 책은 뒷부분 실린 다른 글을 제외하면 불과 약 60여 쪽의 분량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은 독일어로 된 원서를 다른 한국인이 번역한 것인데다 인문학적 성찰의 글이어서 단 번에 읽을 수는 없다. 저자는 이 책에서 미셀 푸코, 보드리야르, 알랭 에랭베르, 한나 아렌트, 아감벤의 사상을 인용하면서 이들의 견해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인간이 직면한 사회의 병리적 현상에는 적용될 수 없다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패러다임 전환의 관점에서 그는 지난 세기를 푸코가 정의한 ‘규율사회’로 보며, 이 시대를 지배했던 건 나와 남 사이의 경계선이 뚜렷한 면역학적 사고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면역학적 행동의 본질은 공격과 방어이고 그 대상은 타자성 자체이다. 그런데 21세기에 이르러 규율사회가 성과사회로 바뀌었다는 것이 한 교수의 관점이다. 그 결과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이질성’은 아무 반응도 일으키지 않는 ‘차이’로, 날카로운 반응을 촉발하는 ‘타자성’은 상투적인 소비주의로 전락하며, 낯선 것은 관광 대상인 ‘이국적인 것’으로 변질됐다고 본다. 이처럼 ‘면역학적 주체’가 사라지면서 책의 저자는 부정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긍정성 과잉’의 사회로 바뀌었다고 보는데, 여기서 보드리야르의 사상을 인용하면서 폭력은 부정성에서 뿐만 아니라 긍정성에서도 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잉생산, 과잉가동, 과잉커뮤니케이션이 초래하는 긍정성의 폭력은 ‘바이러스적’이지 않으므로 면역학적 관점에서 서술한 보드리야르의 견해도 이론적 약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긍정성의 과잉에 대한 반발은 면역 저항이 아니라 소화 신경적 해소 내지 거부 반응’으로, ‘과다에 따른 소진, 피로, 질식 역시 신경성 폭력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규율사회의 부정성은 광인과 범죄자를 낳는 반면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이다. 이로부터 저자는 우울증을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의 이행기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과도한 책임에 부응하려다 지쳐버린 현상으로 규정한 알랭 에랭베르의 견해를 인용하면서도 우울증을 초래하는 요인에서는 사회의 원자화와 파편화로 인한 인간적 유대의 결핍, 즉 성과사회에 내재하는 시스템의 폭력을 간과한 그의 견해를 비판한다. 이런 관점에서 “우울증은 성과주체가 더 이상 할 수 있을 수 없을 때 발발한다"며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라고 본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는 자발적인 나의 자유의지로 일중독자가 된다. 이 때문에 사람들 스스로가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되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스스로를 소진burnout)하는 것이 바로 성과사회이며, 그래서 우울증, 성격장애 등 신경성 질환들은 성과사회의 폐해라고 주장한다. 이런 시대 진단을 전제로 한 교수는 ‘깊은 심심함’이라는 처방을 제시한다. 여기서 그는 적절한 예로 사물의 향기도 볼 수 있노라고 말한 폴 세잔을 예로 든다. 그는 세잔을 깊이 연구한 메를로 퐁티의 논리를 빌어 풍경에 대한 세잔의 사색적 관찰을 ‘외화’ 또는 ‘탈 내면화’로 본다. 이것은 세잔 그림의 주된 특성을 만든 “눈의 부산한 움직임”을 중단시킨 집중 상태를 말한다. 주1) 이러한 논거를 통해 다음 장에서 그는 한나 아렌트가 주장한 ‘활동적 삶’을 비판한다. 그리고 다음 장인「보는 법의 교육」에서 한 교수는 “인간은 어떤 자극에 즉시 반응하지 않고 속도를 늦추고 중단하는 본능을 발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며, “머뭇거림이 노동의 수준으로 내려가는 것을 막는 데 필요불가결한 요소”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저자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만 있고 하지 않을 힘은 없다면 우리는 치명적인 활동 과잉 상태에 빠지고 말 것이다”라고 본다. 바로 이 부분이 동양의 ‘무위(無爲)의 부정성’을 재조명한 해석으로, 이 책의 핵심인 셈이다. 이는 저자가 어느 대담에서도 밝혔듯, 동양사상, 그중에서도『장자』의 ‘무용지용(無用之用·쓸모없는 것의 쓸모)’을 전제로 한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다음 장에서 허먼 멜빌의 단편 「필경사 바틀비」를 병리학적으로 독해한다. 이런 관점에서 규율사회의 복종적 주체로 탈진하며 죽어간 바틀비를 존재신학적으로 해석한 아감벤도 비판의 대상이 된다. 저자는 이 글 마지막 장에서 도핑사회로 발전해가는 성과사회를 비판하며 한트케의 관점을 빌려 피로를 새로운 차원으로 해석한다. 저자는 피로가 과잉활동에 대한 욕망을 억제하며, 자아의 성과에 대한 집착을 완화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런 피로를 부정적 의미의 '자아 피로'와 다른, 한트케가 말한 '근본적인 피로'로 구분한다. 근본적인 피로를 통해 자신의 성공을 위해 채찍질하는 대신 타자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새로운 정신이 태어나게 하는 영감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저자는 이 책에서 니체와 한트케 사상과 동양사상을 바탕으로 성과사회를 살아가는 방법을 시대조류에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사색적 성찰로 깊은 주의력을 갖춘 유유자적한 예술가적 삶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피로사회』는 서양의 언어로 동양철학의 의미를 담은 책이다. 이 책은 한 편의 에세이지만 저자가 던진 화두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몇몇 철학자의 철학적 사유에 대한 분석이나 비판 차원이 아니라 거시적이고 문명적인 시각에서 시대와 삶을 진단하는 통찰력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사회는 여전히 규율사회의 특성은 물론 심지어 신화적 신념을 맹신하는 중세적 패러다임도 존재하지만, 최근 들어 급속하게 성과사회로 이행되는 복잡성의 징후를 드러낸다. 그래서 한 교수가 이 책에서 개개인의 반성과 자각을 통해 현시대의 질병을 극복할 대안을 제시하는 점에 대해 더욱 다각적 관점에서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무엇보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예술가적 삶의 태도에 대해 공감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2012. 7. 3) 주1)이 책에는 자세히 설명되지 않아 세잔의 그림을 모르는 독자에게는 이 부분이 난해하게 느껴 질수도 있을 것 같다. ‘현대회화의 아버지’라 평가되는 세잔도 초기에는 순간을 포착하는 인상주의적 그림을 그리다가 곧 지각의 한계를 인식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데 그것은 순간적이고 단편적인 인상주의적 시각과 대상의 견고함을 합리적으로 추구한 고전적 형식이란 지각과 인식의 모순을 통합하는 것이었다. 즉 세잔은 상투적인 보기를 거부하는 ‘감각의 논리’로 스스로 입법자가 되어 색채로 형태를 구축하는 새로운 방법을 통해 대상과 세계를 새롭게 보는 법을 제시했다.
138 no image 생각여행-길 떠난 예술가 이야기전 출품 소감
도병훈
5781 2012-05-17
‘생각여행-길 떠난 예술가 이야기’전 출품 소감 도 병 훈(작가) 언제나 반복되는 일상의 삶이란 틀을 운명처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면 자발적으로 새로운 삶을 살기는 불가능하다. 동일 공간 속에서 동어반복의 삶을 살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여행은 우리 삶의 반경을 확장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갖고 있는 ‘틀’에 대한 근원적 자각의 계기가 된다. 지난 5월 4일부터 7월 15일까지 경기도미술관에서는 열리는 생각여행-길 떠난 예술가 이야기 전이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 나는 ‘슈룹’의 작가로 출품하였으며, 실로 오랜만에 규모 있는 전시회에 국내 유명작가들과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슈룹은 특정 지역의 미술가 단체도, 고정된 회원이 있는 그룹도 아니다. 훈민정음에 나오는 순 우리말인 슈룹은 산스크리트어로 ‘높은 곳에서 전체를 조망한다’는 의미가 있으며, 이런 차원에서 슈룹이란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융합성으로 새로운 비전을 구상하고 실천하는 지향성에 그 특색이 있다. 이번 전시회에 출품한 나의 두 그림은 둘 다 폭이 450cm가 넘는 광목천 드로잉 두 점이다. 한 그림은 지난 1998년에 3박 4일간 진주 대원사에서 노고단에 이르기까지 약 100Km 지리산 공간의 주요 능선을 종주한 체험을 토대로 2000년에 그린 <백두대간-지리산00124>이다. 이 그림을 그리기 이전에는 주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집약된 고지도의 특성을 선택과 확장의 방식으로 대형 광목천에 드로잉 하는 작업을 했다. <대동여지도>는 각 지역에서 한반도의 실제 모습을 그린 많은 고지도들을 김정호가 종합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백두대간 - 지리산00124>는 이 땅의 유구한 전통적 세계관이 담긴 <대동여지도>의 복합적 리얼리티를 연원으로 삼으면서도 예술적 감응affect을 유발하는 조형적 측면에서는 분청사기에 나타나는 자유분방한 그림, 겸재 정선의 필력과 추사 김정희의 서예 및 그림의 구성력에서 영향 받아 질료적 강도의 차이로 표현한 그림이다. 그러나 전통회화와 내 그림이 확연히 다른 것은 서구의 현대드로잉 기법의 영향도 있지만,‘인간이란 그가 목적하는 것이고, 자기 자신을 실현시키는 한 존재하며, 따라서 자기 행동의 총체 이상도 아니며, 그의 생애 이상도 아니다.’라는 실존적 태도로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다른 한 점은 <그토록 단순한 시작으로부터- 소쇄원에서 만난 은하>란 그림이다. 5년 전인 2007년에 답사한 호남 지역의 대표적 전통 원림園林인 소쇄원 일대의 공간을 전시회를 하기 직전에 그린 것이다. 소쇄원은 급진적 개혁을 시도하다 좌절된 조광조의 제자인 양산보가 조성한 공간이다. 소쇄원을 이루는 건물인 광풍각光風閣과 제월당霽月堂은 햇빛, 바람, 달빛의 치유 공간이다. 그렇지만 잠시 스쳐갈 뿐 결코 닿을 수 없는 행성처럼, ‘근접함’과 ‘거리’ 사이의 측량할 수 없는 공간이기도 하다. 즉 이번 나의 그림은 자연의 특성을 치유 공간으로 살린 장소와 나선형 은하처럼 현대 천문학적 시공을 중첩한 이미지이다. 소쇄원 일대의 정경을 묘사하는 대신 약 20년 전부터 거의 무의식적으로 써온 짙은 청색으로 행성 같은 여러 점의 형태를 그려 은하의 형상으로 표현한 것이다. 피상적 체험으로는 작은 공간에 지나지 않은 소쇄원 일대를 우주적 광년의 시공으로 그린 것은 그 작은 공간에서 무한 공간을 발견하고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토록 작은 공간을 무한 공간처럼 느낀 까닭은 거의 황금비로 동선을 형성하는 진입 공간의 긴 담과 소쇄원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의 프랙탈fractal한 다양한 층위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내 그림은 광목천이란 여백 위에 나의 신체적 에너지로 구현된 물질이 선적이면서도 비선형적인 이미지로 구현된 운동학적 응축으로서 에너지 - 힘 - 공간 이미지를 집약한 드로잉이다. 허공을 극極함으로 삼아 담백하게 환하면서도 ‘깊은 심심함’의 공간으로 진입하는 매개체가 되길 바라는… 살아갈수록 늘 마주치는 사람들조차 거리를 좁힐 수 없는 타인임을 절감하게 된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욕망으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행이 이전과 다른 삶을 살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준다면, 예술은 우리의 삶에 대해 좀 더 깊은 느낌과 생각을 하게 하는 매개체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모두는 좀 더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이다. 그러므로 여행과 예술은 더 나은 삶을 형성하기 위한 과정이자 실재인 셈이다.(2012. 5.17)
137 no image 여행, 그 비선형적 감응의 공간
도병훈
5238 2012-04-15
*5월 4일부터 7월 15일까지 경기도미술관에서 개최되는 <생각여행-길 떠난 예술가 이야기전>에 출품하는 작품에 대한 작가노트입니다.. 여행, 그 비선형적 감응의 공간 ‘의식consciousness은 뇌세포들의 단독공연이 아니라 뇌, 몸, 환경이 함께 연출하는 춤’이라는 말이 있다. 이런 차원에서 여행 또한 뇌, 몸, 새롭고 낯선 환경이 연출하는 춤이다. 우발적으로 마주치는 감각적 경험을 통해 자신을 가두는 의식적 틀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여행인 것이다. 이러한 감각적 경험이‘아펙트affect'이며, 해월 최시형 식으로 말하면 천지만물과의‘감응’이다. 여행은 종이나 캔버스 위에 선을 긋는 드로잉에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재질이든 물질성을 갖는 선을 그을 때 몸으로 느끼는 존재의 리얼리티와 두 발로 대지를 느끼는 과정은 공통점이 있다. 여행과 드로잉은 사유만으로는 알 수 없는 세계의 존재성을 몸으로 느끼는 과정이다. 거대한 히말라야 산맥과 장강대하, 다양한 생명의 진화와 인류문명도 최초에는 미미한 비선형적 에너지에서 시작되었다. 이 에너지를 선과 색채이미지로,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더욱 새로운 존재방식으로 진화해온 것이 미술의 역사이다. 우리의 탁월한 전통건축물이 있는 공간은 경계선 안의 폐쇄적 공간이 아닌 넉넉한 비움의 공간이다. 이러한 전통 건축은 절제된 독특한 균형감으로 가장 적절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부석사, 병산서원, 소쇄원, 서석지에서 느낄 수 있듯, 그곳들은 종교적 신념과 이데올로기만으로 규정할 수 없는 다질적 공간이기 때문에 몸과 마음으로 감응하게 된다. 굳이 말한다면 프랙털 기호처럼 나선형의 진입 동선으로 이어진 수렴공간이면서 동시에 확산되는 지층적 무한 공간이다. 현대 물리학적 우주관과 선조들의 세계관이 반영된 수묵산수화, 그리고 인식적 틀에서 벗어난 급진적 현대예술은 서로 공유하는 특성이 있다. 예를 들어 겸재 정선의 뛰어난 수묵산수화는 에너지-힘-이미지의 유동성으로 인해 기세 넘치는 역동적 이미지를 보여주는 감응의 공간이다. 이처럼 산수山水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수묵화의 어법을 융합하여 간결하면서도 함축적인 비선형적 현대드로잉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지난 수십 년간 추구해 온 나의 작업이다. 여행의 과정에서 존재를 뒤흔드는 마주침이 그러하듯 이 감응의 진폭에서 나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2012.4.15)
136 no image 장승업의 매 그림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도병훈
7398 2012-03-23
아래 글은 동서식품 사외보 격월간지 '맥스웰 향기' 3,4월호에 실린 저의 글입니다.(1,2월호에는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식사를 주제로 한 글이 실림) 장승업의 매 그림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는 오원 장승업(吾園 張承業, 1843∼1897년)하면 영화 <취화선>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장승업은 조선 말 예인(藝人)으로 그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자세히 남아 있지 않아 <취화선>의 내용은 대부분 만들어진 이야기다. 그가 활동하기 이전의 화단은 사대부 계층인 추사 김정희와 그 제자들이 주도한 심의(心意), 즉 마음의 뜻과 고담한 품격을 중시하는 문인화풍이 대세였다. 그런데 조선 말기에 사대부 중심의 신분질서가 붕괴되면서, 역관이나 중인 계층, 여항문인(閭巷文人)을 중심으로 시각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새로운 화풍이 유행하게 된다. 이에 따라 묘사적 필력이 뛰어난 장식적 그림이 주목받게 되며, 장승업은 바로 이 시기에 혜성같이 나타난 화가이다.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에 자신을 견주어 그들만 원(園)이냐 나(吾)도 원이라는 뜻에서 호를 ‘오원(吾園)’으로 지었다는 설도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준다. 오원의 이력은 흥미롭다. 그는 주인집에서 머슴으로 살면서 어깨너머로 서화를 익히며 화가의 길로 들어섰으며, 청나라 상하이 화단에서 발간된 화보를 포함, 다양한 화풍도 수용했다. 이후 화가로서 이름을 얻게 되면서 궁중에서 그림을 그리던 관청인 도화서 화원이 되기도 하는데, 의례적인 보수성이 강한 도화서 화원풍의 그림은 그의 방일(放逸)한 기질과 맞지 않아 왕실 병풍을 제작하라는 고종의 명을 받고 대궐에 불려갔을 때도 두 차례나 궁궐 담을 넘어 도피했다고 한다. 1890년대 전반에 장승업은 서울 광통교 부근에 위치한 육교화방이라는 개인화실에서 가장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는데, 당시 이곳은 지물포와 서화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1894년 갑오경장 이후에는 도화서가 폐지되고, 새롭게 부상한 상공인들과 부농들이 서화를 주문하는 주요계층이 되면서 이들 취향에 부합한 오원의 그림이 더욱 각광을 받게 된다. 그런데 그는 명성과 부(富)를 얻게 되자, 그림 판 돈을 술집에 맡겨놓고 매일 들러 술을 마시며 여색에 빠졌다고 한다. 장승업은 산수·인물·화훼․영모(翎毛)·기명절지(器皿折枝)·사군자 등 거의 모든 화과에 두루 능통했다. 특히 그는 새와 동물그림인 영모화를 즐겨 그렸으며, 그 중에서도 대표작으로 꼽히는 그림이《영모도 대련(對聯)》이다. 이 대련은 매와 꿩을 주제로 그린 한 벌의 그림을 말하는데, 이와 유사한 필치로 그린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소장의 <유묘도遊猫圖>와 개인소장의 말 그림도 있어, 총 4폭이 함께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각자 단폭으로도 완결성을 지닌 그림들이다. 영모도 대련 중 매 그림은 ‘사나운 독수리 그림’이란 뜻의 <호취도豪鷲圖〉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이 그림에 나오는 새는 그 모습과 깃털의 특징으로 보아 독수리가 아닌 ‘매(鷹) ’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그림을 보면 적절하게 공간을 배분한 화면 구성이 돋보이는데, 오원이 어떤 주제와 소재를 그리더라도 초본 없이 거의 즉흥적으로 그렸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욱 놀랍다. 또한 이 그림은 다양한 묵조(墨調)와 담채(淡彩)가 어우러져 화면의 생동감이 넘친다. 무엇보다 필치의 다양성이 마음을 끈다. 좌변의 굵은 나무줄기는 단숨에 농담을 구사하는 몰골법으로 호방하게 표현하면서도 매의 눈이나 매의 발톱은 극히 날카롭게 묘사하거나, 풀잎이나 깃털 같은 부분은 섬세한 필치로 그렸다. 이처럼 한 화면에 다질성이 융합되어 공존하는 필치와 화풍은 조선시대 다른 화가의 그림에는 그 유례가 없다. 이전의 문인화가 담백한 여백 속 겨울 소나무 한 가지라면 장승업의 그림은 가을의 다채로운 단풍나무숲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이는 오원 자신의 독창성이라기보다는 전통적 가치관이 해체되는 시대의 미의식의 변화와 함께 장식적 볼거리를 중시하게 된 문화 분위기에 기인한다. 그리고 장승업 제자 세대들이 활동하던 시기인 일제 강점기에 서양미술이 주로 일본을 통해 유입되면서 장승업 식의 화풍은 급격한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장승업이 문인화에서 벗어난 새로운 미감을 선보였듯, 새 시대는 또 다른 예술세계가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135 no image 철학과 예술세계에 대한 짧은 생각
도병훈
5909 2012-01-20
*아래 비트겐슈타인 철학 부분은 주로 k.T. Pann의「Language」를 요약한 것임 철학과 예술세계에 대한 짧은 생각 어제 저녁, 홍대 앞 작은 갤러리에서 개최된 세미나 뒤풀이 자리에서 마침 세미나에 참가한 사람의 작품이 벽에 걸려 있어 그 작품에 대해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런데 그 작품에 대한 대화가 끝날 무렵, 장소를 제공한 사람이자 세미나 발제자의 한 사람으로 참가한 나이 지긋한 미술비평가 한 분이 대화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간이 칠판에다 판서까지 하면서 강의를 시작했다. 그 분은 예술작업의 과정에 대해 칠판에다 몇 개의 개념으로 도식화한 후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와 아낙시만드로스의 철학개념까지 동원하여 설명했는데, 그 요지는 현대미술이 철학이란 학문을 바탕으로 성립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보며 ‘철학사적 사유’와 ‘철학적 사유가 도달할 수 있는 진정한 힘’의 차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에 의하면 철학적 사유의 목적은 더 이상 철학적 사유를 하지 않으려는 데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사유를 표현하는 언어에 한계를 긋고, 언어의 구조란 논리학에 의해 밝혀지며, 언어의 본래적인 기능은 세계를 묘사하거나 서술하는 것으로 본다. 이런 맥락에서 ‘논리학의 본질은 무엇인가?’ ‘언어는 세계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 라는 두 가지 물음이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핵심 과제가 된다. 논고에 나타난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이론은 ‘그림이론(picture theory)’과 ‘진리함수이론(truth-function theory)’ 두 가지로, 각각 ‘언어의 기능은 무엇인가’와 ‘언어의 구조란 무엇인가’라는 두 가지 물음에 대한 답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비트겐슈타인의 논고 4.001에 의하면 언어란 명제들의 총체이므로 위의 두 물음은 ‘명제들은 세계와 어떻게 관련되는가’와 ‘명제는 어떻게 서로 관련되는가’라는 물음으로 바뀐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러한 명제의 진위는 명제가 아닌 세계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생각했으며, 이를 ‘요소명제(elementary propositions)’라 했다. 그래서 모든 명제는 요소명제로 분석될 수 있으며, 요소명제의 진리함수이다. 이 요소명제가 원자적 사실(atomic fect)들의 논리적 그림이므로 원자적 사실들은 서로 결합하여 세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복합사실을 구성하며, 이 복합사실이 비로소 인식 가능한 세계를 구성한다. 비트겐슈타인이 “세계는 사실의 총체이지 사물의 총체가 아니다”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비트겐슈타인은 파리의 법정에서 교통사고현장이 인형과 장난감 자동차 등으로 재구성되는 것을 보고 이러한 발상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러므로 언어는 진리함수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것의 본질적 기능은 '있는 그대로의 세계(as they stand)'를 서술하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언어의 한계를 갖게 되며 동시에 세계의 한계를 갖게 된다. 우리는 언어의 한계 안에서만 사물에 대해 의미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언어의 의미(sense)는 무엇인가 지시reference할 수 있는 것에만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한계너머에 놓여있는 어떤 것을 말하고자 하면 결국 헛소리(nonsense가 된다. 이 때문에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형이상학, 윤리학, 종교, 그리고 예술은 모두 말할 수는 없고 단지 보여줄 수 있는 영역에 속한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사유할 수 있는 것을 통해서 사유할 수 없는 것을 드러내고자 한다. 말할 수 있는 것을 명백히 나타냄으로써 말할 수 없는 것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해야 한다”는 유명한 비트겐슈타인의 명제도 이러한 문맥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처럼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그 이전의 서구철학에 대한 엄밀한 사유로써 출발했지만 역설적으로 다른 영역의 가치와 특색을 드러낸다. 비트겐슈타인은 말년의 주저인 『철학적 탐구』에서는 더 이상 언어가 세계의 그림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는 '말놀이'와 '삶의 형식'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언어를 새롭게 조명했다. 그에 따르면, 언어는 놀이(게임)처럼 어떤 규칙에 의해 작동하며, 언어행위가 이러한 규칙에 따르는 행위라는 사실은 '사적 언어'가 불가능함을 뜻한다. 이 때 언어의 성격은 사용자인 인간의 삶의 양식과의 연관 속에서 규정된다. 동일한 언어라도 사용되는 맥락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르다는 것이다. 데카르트 이후의 현대철학에 이르기까지 획기적 패러다임의 전환은 장구한 시공간 속에 일어난 문명사적 사건이지만 개인적 차원에서 보면 자전적 체험의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나의 경우, 먼저 대학교 2학년 때 교양과목으로 만난 서양철학사, 그 중에서도 칸트와 니체, 특히 니체와의 만남은 당시 세상을 보는 시각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계기가 된 사건이었지만, 이어 불교 및 노장(老莊)과 같은 동양사상, 그리고 미셀 푸코와 자크 데리다, 질 들뢰즈로 대표되는 후기 구조주의 철학에 이르기까지 오랜 탐색과 사색의 여정을 거쳐야 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제반 철학들이 삶과 세계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제기하고, 무엇보다 근현대 철학자들 대다수는 철학의 중요한 과제의 하나로 예술 영역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철학도 어디까지나 언어로 기술된 개념인 만큼 가령 3차원의 실재를 재현하는 2차원의 그림의 경우에도 그 그림이 실재와 동일한 논리적 구조를 가지고 있을 때만이 서술이 가능하다. 이는 비재현적 그림, 이를테면 선 하나만 비선형적이어도 그것에 대한 언어적 기술은 불가능함을 뜻한다. 결국 개념화 차원이 아닌 어떤 감응(affect)을 유발하는 예술은 비트겐슈타인 철학이 도달한 지평처럼 사유될 수 없는 차원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각의 과정은 ‘심매(尋梅)행’에 비유할 수 있다. 봄을 찾아 산과 들을 헤맸으나 발견하지 못하고, 집에 돌아와서 매화 핀 나무 가지에서 봄을 느꼈다는 얘기 말이다. 철학에 대한 관심과 공부가 준 작은 깨달음은 불교 논리학의 정점에 도달한 원효가 어느 시기부터 저잣거리로 나와 박 바가지를 두드리며 춤추고 노래 불렀듯, 예술이란 사유나 철학적 사유의 한계 너머 추구되는 세계임을 알게 한다. 실제로 현대에 들어 철학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는 오히려 인식의 부조리함을 자각케 한다. 겸재 정선의 후기 진경산수화나 김정희의 추사체 글씨와 그림, 폴 세잔이 만년에 그린 정물이나 생트 빅투아르산 연작, 그리고 마티스의 푸른 누드, 마크 퀸의 자소상 등에 이르기까지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문제작은 한 결 같이 인간의 본능적 감각을 뒤흔들며 인간의 감수성에 호소하는 면이 두드러진다. 무엇보다 직관과 감성을 통해 감동, 즉 느낌이 움직이며, 언어적 서술인 철학적 개념화는 이 느낌이 촉발된 이후에 이루어지는 일이다. 2012년 1월 20일
134 no image 학교 폭력과 예술교육의 필요성
도병훈
6835 2012-01-14
학교 폭력과 예술교육의 중요성 ‘우리가 신체를 가지고 있는 한 폭력은 숙명이다’는 말은, 누구나 살면서 타자에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폭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학교폭력 또한 학교 안의 문제만이 아니다. 최근 폭력에 견디지 못해 한 중학생이 자살하면서 학교폭력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것은 그 폭력성이 매우 충격적이고, 빙산의 일각일 정도로 거의 전 학교에 만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요즘 우리나라 학생들의 사회성(주변사람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시민의식)이 세계 최하위 수준으로 나타난 것에서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이미 여러 실증적 연구결과에서 드러나듯, 학교폭력의 근본적 요인은 학교 밖에 있다. 최근의 한 연구결과는 소득 불평등이 높을수록 학교폭력이 더욱 빈번하게 나타난다고 보고 한다. 또한 학교폭력은 ‘학교 밖의 폭력’인 가정의 해체, ‘폭력적인 게임’ 등의 원인이 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이 정부 들어 더욱 입시 위주의 극심한 경쟁교육으로 치닫는 중등교육의 실태 또한 최근 교육현장에서 야기되는 폐해의 심각성을 각성케 하며, 동시에 예술교육 및 예술체험이 왜 중요한가를 생각하게 한다. 지난 1월 13일, MBC 9시 뉴스에서 학교폭력을 극복하는 처방으로 예술교육에 대해 심층보도로 다루었다. 먼저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의 사례가 나왔는데, 성격이 소극적이어서 초등학교 시절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지만 소외계층 아동들을 위한 예술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해 그림을 그려 조그만 상을 받게 되면서 용기와 자신감을 얻어 성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날 뉴스에 보도된 또 다른 사례인 한 남학생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친구들을 많이 때리고 못살게 굴었지만 1년 전부터 한 기업체의 도움으로 미술과 음악교육을 받으면서 크게 변화했다는 것이다. 그 학생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친구들이랑 싸워서 감정이 안 좋을 때요. 음악을 하고 나면 제가 먼저 사과의 말을 전하게 돼요. 기분이 좋아지고... 요즘은 '착한 어린이 상'까지 받았어요."라고. 이어 전에는 집중이 안 돼, 책을 읽지 않았는데 미술 수업을 받고 나서는 오랫동안 책을 붙을 수 있다고 자랑하는 장면이 나왔다. 또한 4,5년 전부터 대기업들이 사회공헌 활동으로 소외계층 아이들에게 예술교육을 시키고 나서 이 같은 사례는 점차 늘고 있다는 내용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전문가들의 공통 의견으로 제시된 내용 중 한 인터뷰는 ‘문제행동이 있다고 알려진 아이들의 특징적인 문제 중에 하나는 지나친 공격성을 발휘하는 것인데, 이 넘치는 에너지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창조적인 방향으로 돌려주는’ 역할을 예술이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미술, 음악, 무용, 연극 같은 예술 활동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로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것은 공격성을 줄여준다는 점이었다. 예술을 감상하고, 직접 참여해 즐기는 것은 두뇌에 '감정 이입'과 '표현 욕구', 특히 '환상' 작용을 불러일으키며, 이렇게 활발해진 우뇌적 활동은 균형 잡힌 사고와 통찰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 3년 동안 전국 초등학생 860여명을 대상으로 예술교육을 해오면서 면담조사 한 결과, 먼저 우울감은 활동기간 내내 꾸준히 낮아져 3년이 지났을 땐 처음의 60% 수준까지 떨어졌으며, 반면 친사회적인 성향은 크게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는데, 특히 3년 째 그 효과가 눈에 띄게 높아졌으며, 이런 결과는 예술교육이 정서발달에 도움을 주고, 더 나아가 학교생활 적응에도 큰 효과가 있음을 입증한다. 이어,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청소년 집단 괴롭힘에 대해서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 저하, 그리고 소통의 부재에서 그 원인을 찾는 경우가 있으며, 예술교육은 아이들의 정서와 행동을 다독여 줄 수 있는 또 하나의 소통방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예술 교육은 방송 멘트에서도 나왔듯, 무슨 거창한 교육이 아니다. 가령 각종 전시회를 구경하고 음악극을 감상하고 학교에선 합창단에 들어가 노래를 부르는 정도인데도 변화는 놀랍다는 것이다. 이처럼 순수한 예술적 활동은 폭력은 물론 학생들의 마음을 자본주의적 환경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삶의 맛과 멋을 그저 외형적 브랜드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발견하고 만들어가는 것임을 자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에 들어 분석심리학을 바탕으로 한 미술, 음악, 연극치료와 같은 수많은 사례도 예술교육의 힘을 입증한다. 또한 최근 예술과 시민사회에서 사회적 기업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미술을 매개로 한 조슈아 나무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아이들의 뜨거운 호응과 놀라운 성과도 예술교육의 중요성을 알게 한다. 이처럼 많은 사례에서 알 수 있듯, 훌륭한 예술교육 및 예술체험활동은 아이들에게 감성적인 체험활동의 기회를 제공하여 극심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게 하며, 각자의 소질과 적성을 계발하여 자아존중감을 키우는데 기여한다. 하지만 지금의 학교 현장은 오로지 입시 일변도의 교육이 행해지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우리의 학생들은 감성지능과 문화지능이 결여될 수밖에 없으며, 이런 기형적 교육현장에서는 제대로 세상을 보는 시각과 삶을 대하는 태도가 길러질 수 없다. 최근의 교육현장에서 빚어지는 폭력성의 심각성은 우리 교육의 방향성에 대해 성찰과 반성의 계기가 되고 있다. 지나치게 지식 경쟁에 치우친 현행 교육은 아이들의 감성과 건강한 삶을 억압하는 요인이 되며, 이 때문에 더불어 사는 존재로서의 인간이라는 최소한의 덕목조차 함양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바로 여기서 왜 예술교육이 필요한가를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예술적 체험은 왜 우리의 한 삶에서 감성이 중요한 지 머리가 아닌 몸으로 느끼게 한다. 이러한 감성은 타자에 대한 감수성에서 발현된다. 예술 체험은 정의적 감수성이 우리 삶의 바탕임을 알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감수성은 타자에 대한 섬세한 느낌을 말한다. 따라서 이러한 감성이 풍부할 때 타인의 마음과 아픔을 느끼고 공감할 수 있다. 바로 이 때문에 타자에 대해 함부로 폭력을 행사할 수 없으며, 타인에 대한 배려와 비폭력적 삶으로 이어진다. 스스로 교감할 수 있는 인문학적 독서를 통해서도 감수성을 깨울 수 있는 만큼, 예술 교육과 예술체험만이 폭력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아니다. 그렇지만 독서조차 입시를 위한 수단일 정도로 입시일변도 교육에 매몰된 한국적 교육현실이므로 무엇보다 예술체험과 예술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학교폭력, 나아가 세상을 보는 시각과 삶의 태도를 바꿀 수 있는 근본적인 처방이라 할 수 있다. 2012년 1월 14일
133 no image 3인의 전시회에 대한 새해 원단의 소감
도병훈
4369 2012-01-07
3인의 전시회에 대한 새해 원단의 소감 최근 들어 우리 미술 판은 이전보다 더욱 악화일로를 걷는 듯하다. 이런 이유로 근래에는 예전보다 전시회에 자주 가지 않은 편인데, 지난 세밑 차디 찬 겨울의 바람을 체감하며 한 주 동안 세 군데의 전시회를 다녀왔다. ‘3인행이면 그 가운데 반드시 스승이 있다’는 말이 있고, 세 살 먹은 어린 아이에게도 배워야 한다는 태도로부터 살아 숨 쉬며 움직이는 현실에 대해 다시 눈을 뜨는 계기가 마련될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본 것은 인사동의 갤러리 이즈에서 '이상한 가역반응Strange Reversible Reaction'이란 제목으로 열린 2011년 두 번째의 김도희 개인전(12.21-27)이었다. 그 다음은 금천예술공장에서 2011금천예술공장 해외예술가 교환프로그램 보고전2011. 12.28~2012. 1.10)의 참가 작가인 최선의 작업을 보았다. 최선은 작년 8월부터 두 달간 일본 요코하마 뱅크 아트1929에서 두 달간 레지던시 작가로 생활하고 돌아왔으며, 이번 전시는 당시 일본에서의 전시회를 국내에서 다시 한 것이다. 세 번 째는 은평구 진관동 북한산 아래에 위치한 갤러리 보라에서 열린 강석호 개인전(2011. 12.3~12.30)으로, ‘Hubris Disembodied’란 제목의 전시회였다. 김도희 개인전 김도희는 지난 2006년에 첫 개인전을 한 작가로 그간 예술로서의 형식적 ‘조형화’나 어법을 원천적으로 거부함으로써 예술적 의미와 가치조차 무화하려는 듯한 ‘비미술적인’(?) 작업을 해왔다. 그 중에서 장지 한 장만을 덮고 깔고 자며 생활한 후 그 흔적을 전시한 작품이 <신치로이드 60>이다. 그리고 김도희는 지난 5월말에서 6월까지 14일 동안 <콘크리트 시계>란 제목으로 스스로를 전시장에 유폐시키기도 했으며, 이 전시회에 대해 필자는 ‘프레임 해소를 위한 공간’이란 제목의 글을 썼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행인들의 발자국과 타이어 바퀴 궤적을 탁본처럼 종이에 떠낸 작업, 모기를 잡은 흔적과 종이배를 만들어 태운 자국을 드러낸 소품, 각종 채소류와 소뼈를 모아 놓은 쇼 케이스 오브제 작업, 작가 자신이 포함된 남녀가 각각 스스로 뺨을 때리는 장면을 두 개의 모니터로 보게 한 <대칭>, 그리고 작가 자신이 여러 개의 무의식적 꿈 이야기를 하는 장면을 오버랩 시킨 비디오 작업인 <회상몽>을 볼 수 있었다. 구스타프 융에 의하면 꿈이나 환영은 사실에 대한 심리적 상태이다. 실제로 전시장에서 그녀로부터 들은 <회상몽> 꿈 이야기들은 매우 초현실적일 정도로 섬뜩한 분열증적 양상과 같았다. 우리는 전시장에 갈 때 새로운 경험을 기대하며, 그것이 자신의 삶과 정신을 새롭게 하는 감응이기를 원한다. 그러나 대개는 형식적으로 매우 정제되고 무언가 세련된 형식 속에서 작품이 구성되어 있기를 원한다. 그러나 김도희의 개인전은 이런 기대를 여지없이 배반하고 날 것 그대로의, 때로는 생경하기 이를 데 없는 오브제를 그대로 제시함으로써 마치 오감으로 체험하기에는 다소 불편한 장소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이번 전시의 경우에도 각 작업에서 이런 특성이 드러나는데, 특히 소뼈와 오렌지 껍질을 모아 놓은 오브제 작업이 더욱 그러하다. 이 작업의 제목인 <오렌지껍질과 소뼈가 버려지는 곳은 동일하다>는 여행가인 후지와라 신야의 『동양기행』에 나오는 구절인 ‘이스탄불, 캘커타, 싱가포르, 홍콩, 혹은 도쿄나 로스앤젤레스라고 해도 오렌지 껍질과 돼지머리가 버려지는 것은 동일하다.’라는 구절에서 착안된 것으로, 돼지머리 대신 소뼈가, ‘것’이 ‘곳’으로 바뀌었다. 우리의 세계에서 감추어지고 격리된 리얼리티에 대한 그녀의 특별한 관심은 곧 인간의 신체와 심리에 대해 예민할 수밖에 없는 자전적 배경으로 인해 의식과 물질 사이에서 극도의 괴리감을 갖는 신경증적 증상으로 표출되는 듯하다. 물론 이러한 증상은 창작의 밑거름이자 중요한 요소임을 여러 현대예술가에서 발견할 수 있다. 다만 이를 바탕으로 한 상상력의 포획과 실천의 강도 면에서 그 차이가 있음을 현대예술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최선의 ‘실바람’ 최선의 작업은 대학시절 그림을 벗겨낸 작업에서부터 동냥젖을 캔버스에 바른 작업과 자신의 피를 썩혀 그린 드로잉 작업에 이르기까지 주요 작업 등을 보아 왔는데, 이 모든 그의 작업은 다다 이래 현대미술의 전위적 특성이나 기질과 매우 상통하는 급진적인 양상들이었다. 아직도 이런 작업에 대해 무조건 불쾌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바로 이런 통념과 선입견이야말로 이전의 미술과 확연히 다른 현대미술의 존재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담벼락이다. 최선은 이번 보고전에서 여러 사람들의 숨결의 흔적이 프랙탈 기호처럼 보이는 먹물 드로잉을 비롯해서 여러 작업들을 선보였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오감에 와 닿는 작업은 일본 요코하마에서 전시 준비를 하면서 어렵사리 얻은 사람의 유골 가루를 전시장 바닥에 뿌린 <실바람>이란 작업이었다. 작품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작가의 움직임과, 공기의 흐름, 말소리의 진동까지 작품에 영향을 미치고, 이어 관람객의 움직임 등에 의해 마치 살아있는 물질처럼 바닥에 일정한 형태 없이 번져 있는 그 하얀 탄소, 즉 뼈(유골)가루는 정제된 밀가루처럼 고운 가루여서 곧 증발할 듯한 느낌이었다. 실제로 이 작품을 작가와 함께 보며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한 여자가 하이힐을 신고 거침없이 유골 가루 위를 밟고 지나갔다. 그 장면은 깃털보다도 더 존재감이 없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떠올리게 했다. 이처럼 <실바람>은 유한한 개체의 종말인 죽음이 문화적 진화 과정 속에서 제도화되고 형식화된 의식 속에서 얼마나 관념화되어있는가를 일깨우며, 그만큼 살아 있는 존재자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생각하게 하는 작업이었다. 강석호의 개인전과 ‘Hubris Disembodied’ 강석호는 휴전선 철책선이 있는 GOP에서 육군 장교로 군 복무를 한 특이한 이력의 작가이다. 이번 개인전은 주로 이때의 체험 및 ‘사막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photo-documenting' 작업과 오브제 작업, 그리고 흰개미를 이용한 작업들이 출품되어 있었다. 눈 위의 빗자루로 쓴 자국을 사진으로 찍은 <호흡> 시리즈 중에는 마치 ‘설중매’와 같은 문기 가득한 문인화의 운필을 연상케 하면서도, 또한 귀얄로 대충 거칠게 마감한 분청사기를 연상케 하는 이미지도 볼 수 있었다. 특히 <날렵한 호흡 #3-Vivacissimo> 이미지는 역동적인 기세가 느껴지는 운필의 효과로 마치 추사 김정희가 만년에 쓴 글씨와 유사한 느낌을 주었는데, 우연적 행위의 결과에 대한 발견이라는 점에서 인문학적 문자향 서권기를 중시한 문인화와는 차이가 있다. <고장난 브레이크 #2>란 오브제 작업은 군복무 중 근무지에서 주운 전쟁의 여러 상흔과 철선 뭉치, 하얀 백자 대접, 안경의 표면에 실크스크린으로 찍힌 피난 장면과 전쟁터로 행군하는 군인들의 장면들이 인골 뼈와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이 모든 사물들은 전시장이란 공간에서 시간의 흔적이 담긴 물질감을 생생히 드러낸 텍스트로서 역사적 콘텍스트의 단서를 제공하고 있었다. 또 다른 작업은 오래된 영한사전 한 권을 산에서 채집한 흰 개미들과 함께 플라스틱 상자 안에 넣어 이 사전을 먹이 겸 집 삼아 살게 하여 그 흰 개미들에 의해 변형되는 사전의 모습을 찍은 사진 작업들이었다. 마침 흰 개미가 갉아먹은 사전의 한 부분에는 지도부분이 있어 마치 인간의 영토를 자연이나 생물이 잠식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의 작업들은 전시도록에 실린 비평 글의 제목인‘Hubris Disembodied’ 란 개념에서 드러나듯, 문명이나 인간의 생각이 자연이나 생물학적 진화과정 앞에 무력한 상황을 드러냄으로써 교만한 인간의 삶에 대한 회의를 담고자 한 것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Hubris Disembodied’란 제목은 그의 문제의식이 집약된 말이다. 이 개념은 우리말로 번역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말이지만 굳이 번역한다면 ‘현실을 떠난 인간의 오만, 또는 교만’이라 할 수 있다. 강석호는 연배가 젊은 작가임에도 한국 미술 판의 병폐나 상황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전시장 위 카페에서 작가와 함께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동안 시종일관 매우 진지하게 자신의 삶과 작업세계, 그리고 미술계의 여러 현상에 대해 조곤조곤 말하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3인의 작업에 대한 가치나 의미에 대해 재단하고 분석하는 것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지만, 이들의 태생적 기질과 삶의 태도를 직관하는 것은 한 시대를 지배하는 인식적 틀이나 외적 상황과는 다른 ‘깨달음’의 문제이다. 깨달음은 특정 종교가 추구하는 지고지순한 경지가 아니며, 삶으로서만 입증된다. 깨달음은 ‘깨닫다’에서 나온 말로, 현실에 다시 눈을 뜬다는 뜻의 ‘깨다’와 내달린다는 뜻인 ‘닫다’의 합성어이다. 작가든 감상자든 문제는 깨달음의 과정, 이를테면 타율적 ‘깨우침’에서 능동적 ․ 자발적 ‘깨침’에 이른 후 마침내 ‘깨달음’을 얻는 일이다. 이러한 깨달음만이 거친 세파 속에서도 '지금 이 순간'의 감성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만남과 소통은 타자에 대한 이러한 감성으로부터 이루어진다. 주요 현대예술가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듯, 이러한 감성은 문화적 진화과정에서 구축된 근대 미학적 관점의 차원을 넘어서며, 나아가 우주적인 시공간의 차원으로까지 그 영역과 느낌의 폭을 넓히는 차원에까지 이른다. 이런 맥락에서 예술적 작업이나 작품의 가치는 거시적인 역사의 긴 스팬 속에서 그 진가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2011년 1월 7일
132 no image 폴 세잔의 사과와 감각의 세계
도병훈
17812 2011-11-06
폴 세잔의 사과와 감각의 세계 1. 우리가 늘 대하는 어떤 사물이나 세계는 지각과 인식의 틀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어떤 대상이든 저마다의 프레임을 통해 본다는 것인데, 문제는 ‘클리셰’이다. 클리셰란 습관적인 생각의 틀로 세상을 인식하고 보는 것이며, 특별한 체험이나 계기가 없으면 이 사실을 깨닫기 어렵다.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화가의 그림은 우리의 삶과 세계에 대한 근본적 감각을 일깨우기도 한다. 이러한 예로 폴 세잔 Paul Cezanne(1839~ 1906) 의 사과가 유명하다. 주1) 누군가는 인류의 3대 사과로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세잔의 사과를 꼽았다. 이 세 개의 사과는 의식과 감성이 심화 확장되어 온 문화적 진화 과정을 집약한 말이다. 주2) 사물에 대한 재현적 묘사력은 15세기 얀 반 에이크 이래 17세기 네덜란드의 이른바 ‘오감 정물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손으로 만지는 듯한 질감을 묘사하는 수준에 도달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세잔의 사과는 잘 그린 것이 아니다. 그의 사과는 어설프게 미완성으로 끝난 듯이 보이기까지 한다. 세잔 생전 그의 그림이 출품되었을 때 처음에는 물감만 떡칠된 그림이라는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세잔의 사과’로 집약되는 세잔의 그림은 심층적으로 분석되면서 전인미답의 새로운 회화 원리를 추구한 그림으로 평가된다. 그가 도달하고자 한 새로운 회화는 과연 어떤 세계일까? 2. 아래 그림(*도판 생략)은 세잔이 그린《사과와 병》이다. 이 그림은 그저 평범한 정물화처럼 보이지만 주의 깊게 보면 이채로운 점이 눈에 띈다. 우선 음영이나 명암이 아닌 색채의 차이로 화면을 구성하거나 대상을 그렸음을 발견할 수 있다. 테이블도 천을 경계로 하여 좌우 높이가 다르다. 이러한 사실이 세잔의 그림을 이해하는 단서다. 먼저, 이 그림의 두드러진 색채효과는 인상파의 그림과 다르지 않다. 인상파 화가들은 이 세계의 순간을 포착하는 그림을 그렸다. 망막에 닿은 시각적 인상을 그린 인상파 화가들에게 자연의 현상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매 순간 변하는 것이었으므로 세계의 실제 모습이란 동일한 형태로 지속될 수 없다. 이러한 세계 인식은 고대 그리스 이래 고전적 미의식과는 상반된 미의식이다. 고전주의 미술에서는 시시각각 변하는 현상은 진정한 현실이 될 수 없었고, 진정한 아름다움은 어디까지나 이러한 감각적 현상을 초월하는 ‘이상미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상적 비례를 가진 형상을 잘 그리는 것이 근대 신고전주의 화가들에 이르기까지 그림의 주된 목적이었으며, 투시원근법과 명암법의 발견도 사물을 재현하기 위한 기법이었던 것이다. 반면 인상주의 화가들은 `순간`을 그리기 위하여 종래의 원근법과 명암법을 기조로 한 회화적 기법을 버리고 시시각각 현하는 세상의 모습- 빛이 빚어낸 색채의 차이일 수밖에 없는-사물과 세계를 온통 빛의 색채로 표현하는 방법을 통해 새로운 방식의 회화를 제시하였다. 그렇지만 세상은 이처럼 빛으로만 환원되는 대상이기 전에 근원적으로 무엇인가로 존재한다. 우리의 몸 덩어리는 물론 사과 하나라도 만져 보면 실체적 존재감이 느껴진다. 이러한 존재감은 그림이나 사진처럼 하나의 고정된 시점이 아닌 ‘행동 속에서’ 체험으로 느낀다. 그래서 세잔은 하나의 초점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세잔은 고정된 시점의 고전적 방법도 아닌 사물의 실체적 존재감이 없는 인상주의 방식도 아닌 새로운 방법으로 그림을 시도하며, 그것은 주위 세계와 구별되는 기본적인 형태를 다양한 관점을 공존시키되 색채로 형태를 구축하는 방법이었다. 그 결과 《사과와 병》과 같은 색채와 형태의 관계를 탐구하는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다. 세잔의 그림이 일견 서툴러 보이는 것은, 아니 ‘잘 그린 그림’이기를 거부한 것은 이 때문이다. 세잔에게는 사과처럼 단단하고 둥근 물체가 인상파 그림에 나타난 세계의 존재론적 상대성을 극복하고 물체의 입체감과 색채의 관계를 연구하는 데 가장 적절한 소재였다. 그래서 ‘세잔의 사과’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 그대로 세잔의 사과다. 다시 말해 세잔의 사과는 세잔과 사과, 둘 다 좀 더 종합적으로 포함된 것을 의미한다. 즉 세잔의 사과란 먹음직한 과일이란 대상으로서의 사과를 ‘재현(representation)’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사과를 체험한 세잔의 신체적 행동 속에서 경험한 것을 동시에 표현한 것이다. 즉 세잔의 그림은 “감각(sensation을 실현하는 것”이다. 주3) 그리고 세잔은 이 감각이 빛과 색 자체의 자유로운 유희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신체 속에 있다.”고 여겼다. 이러한 근본적인 미적 체험에 대해 D. H. 로렌스는 세잔의 ‘사과성(appleyness)’이라 불렀다. 그러므로 세잔의 감각, 즉 사과성은 세잔과 사과 어느 쪽도 아닌, 둘 다 이기 때문에, 현상학자들이 말하듯 ‘세상에 있음’이다. 이러한 그의 그림세계, 즉 어법(idiom)의 특성은 《생트빅투아르 산》연작에서도 드러난다. 주4) 세잔은 생트빅투아르 산을 60여 회나 그렸다. 이 그림(도판 생략)은 세잔의 만년 작품이다. 우선 납작납작한 붓 터치로써 대상의 입체감을 표현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터치 하나하나는 색으로 된 평면인데, 평면으로 또한 입체감을 표현했다. 부분적으로 보면 무수한 평면에 지나지 않은데 전체적으로 보면 입체이기도 한, 그래서 마치 화면이 이 양자 사이에서 진동하는 듯하다. 세잔이 그린 들판과 산은 그가 그린 정물화도 그러하듯 투시법적 일관성이 없다. 이처럼 세잔의 그림은 원근법이 적용되지 않은 공간이며, 데카르트적 명료함과 분명함을 배제하고 색채의 차이로써 사물과 세계를 표현한다. 그래서 세잔의 회화는 기하학적 공간에서의 단일한 균형이 아니라 무수한 순간을 고정시킨 다양한 관점들을 종합함으로써 평면과 입체 양자 사이의 긴장된 모순 속에 진동하는 화면으로 나타난다. 세잔이 이런 방법으로 그림을 그리려고 했던 이유는 당대 인상파의 영향으로 전통적 재현 회화의 방식인 명암법과 원근법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리면 대상이 갖고 있는 풍부한 색채감을 표현할 수가 없게 된다. 그렇지만 세잔은 실제 대상이 갖고 있는 입체적인 구조(원뿔과 원기둥)도 포기할 수 없었다. 대상은 분명 어떤 덩어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나하나의 터치는 대상의 실재감과 직결되는 만큼, 세잔은 하나의 터치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톤 하나 이상해도 그림의 전체 질서가 어긋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잔은 “색채와 데생은 결코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 색깔을 칠해감에 따라 데생은 견고해지고, 데생이 충실해짐에 따라 색채도 풍부해진다.”고 말했다. 세잔의 그림이 평범한 주제인데도 단지 대상을 재현하지 않는 그림인 것은 이 같은 비밀이 그림 속에 있어서다. 세잔은 하나의 정물화를 그리기 위해서도 오랜 작업 시간을 들였고, 인물화를 그리기 위해 모델을 150번이나 자리에 앉게 할 정도로 매우 까다로웠다. 그에게는 순간적인 대상의 생생한 실재는 물론 구조적 탐구가 다 같이 중요했던 것이다. 주5) 이외에도 그의 자화상이나 《수욕도》연작을 중심으로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하는 담론을 통해 현대미술의 깊이와 다양성을 이해하는 주된 단서가 되기도 한다. 이 모든 그의 작업은 회화란 무엇인가, 또는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새로운 모험이었다. 세잔이 세상을 떠난 지 1년 뒤 파리에서 열린 회고전은 그의 그림세계를 제대로 평가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 전시를 본 브라크와 피카소에게 영향을 주어 큐비즘cubism, 즉 ‘입체주의’ 그림에 성립에 기여한다. 또한 세잔의 그림은 입체파 이전에 성립한 야수주의를 대표하는 마티스의 예술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의 예술세계는 20세기의 현상학자인 메를로 퐁티와 후기 구조주의 철학을 대표하는 질 들뢰즈의 세계관 및 예술관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3. 세잔은 이전과 다른 방식의 그림을 그렸다. 세잔은 서양회화의 양면적 전통, 즉 고전적 구성과 인상주의적 현실감을 붓 터치마다 다른 색채의 차이로 표현하는 새로운 방식의 그림을 그렸다. ‘세잔의 사과’는 이러한 비밀을 아는 열쇠다. 예술가로서의 세잔의 일생은 한 알의 사과를 통해서도 클리셰를 배제한 감각을 실현하려 애쓴 과정이었다. 이처럼 회화의 길을 새롭게 추구한 세잔의 모험을 통해 서양근대회화는 비약적으로 달라지며, 이 때문에 그는 현대회화의 예언자, 입법자, 아버지로 평가된다. 후대의 평가에 의하면, 세잔에 이르러 서구미술은 지각과 두뇌를 바탕으로 주체가 대상을 재현하는 차원에서 벗어나, 즉 고정된 정신의 눈이 아니라 ‘행동 속에서’ 움직이는 육체의 안구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으며, 이는 대상과 주체가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 우리 삶의 실상 그 자체이며, 감각을 실현하는 것이다. 2011년 11월 6일 도 병 훈 주1)영국 출신의 소설가이자 아마추어 화가인 D. H. 로렌스는 세잔에 이르러 전통적 진부함에서 벗어난 스스로 존재하는 사과를 그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쓴 원문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40년의 악착같은 투쟁 끝에, 그는 마침내 어떤 사과 하나를 알 수 있었고 한두 개의 꽃병을 완전히 알 수 있었다. 이것이 그가 성공적으로 한 모든 것이었다. 이것은 거의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고 그는 쓸쓸하게 죽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첫 발자국이다. 세잔의 사과는 아주 중요하다. 플라톤의 생각보다 중요하다. … 때때로 세잔이 판에 박힌 것으로부터 완전히 빠져나가 실제적인 대상에 대해 전적으로 직관적인 해석을 한 곳은 바로 정물화 속에서이다. 주2)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랑의 여신 비너스는 파리스로부터 황금사과를 받는다. 이 사과는 여신 비너스의 신물神物이자 결혼 의식의 제의적인 징표다. 또한 성서의 사과는 선악과로 부르는 데서 알 수 있듯 헤브라이즘적 전통의 원류를 상징하는 사과다. 사과가 그림의 모티브로 등장하는 것은 17세기 들어 플랑드르 지역에서부터다. 이 지역은 15세기 유화의 창시자인 얀 반 에이크가 나온 이래 회화의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여 남쪽 이탈리아 지역의 르네상스 미술과 함께 18~19세기 유럽 미술을 주도한 프랑스 미술의 2대 원류가 된다. 곧 이러한 신화적(상징적) 사과가 쿠르베에 이르러 자연 속에 존재하는 일상적 사과로 변하지만 기법 면에서는 전대의 방법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주3) 질 들뢰즈는 세잔의 이 감각에 대해 H. 말디네의 말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감각이란 쉬운 것, 이미 된 것, 상투적인 것의 반대일 뿐만 아니라,‘피상적으로 감각적인 것’이나 자발적인 것과도 반대이다. 감각은 주체로 향한 면이 있고,(신경시스템, 생명의 움직임, ‘본능’, ‘기질’ 등 자연주의와 세잔 사이의 공통적인 어휘처럼) 대상으로 향한 면도 있다.(‘일’, 장소, 사건) 차라리 감각은 전혀 어느 쪽도 아니거나 불가분하게 둘 다이다. 감각은 현상학자들이 말하듯이 세상에 있음이다. 나는 감각 속에서 되고 동시에 무엇인가 일어난다. 하나가 다른 것에 의하여, 하나가 다른 것 속에서 일어난다. 결국은 동일한 신체가 감각을 주고 다시 그 감각을 받는다. 이 신체는 동시에 대상이고 주체이다. 관객으로서 나, 나는 그림 안에 들어감으로써만 감각을 느낀다. 그럼으로써 느끼는 자와 느껴지는 자의 통일성에 접근한다. 인상주의자를 뛰어넘은 세잔의 가르침은 바로 이것이다. 감각이란 빛과 색의 자유롭거나 대상을 떠난 유희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신체 속에 있다. 비록 그 신체가 사과의 신체라 할지라도 상관없다. 색은 신체 속에 있고 감각은 신체 속에 있다. 공중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려지는 것은 감각이다. 그림 속에서 그려지는 것은 신체이다. 그러나 신체는 대상으로서 재현된 것이 아니라, 그러한 감각을 느끼는 자로서 체험된 신체이다. 질 들뢰즈, 하태환 옮김, 감각의 논리, 민음사, 2010, 47-48쪽 주4)세잔이 《생트빅투아르 산》과 함께 만년에 많이 그린 그림으로는 《수욕도》 시리즈가 있다. 생트빅투아르 산은 세잔에게‘사랑하는 대상(the loved object)’이었다 특히 생트빅투아르 산은 전경의 녹색을 위주로 한 평면적 처리와 거리와 무한을 표현하는 푸른 색 사이에서 마치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욕망처럼 다가오듯 보이다가도 다시 멀어지는 대상으로 진동하듯 처리하여 깊이와 공간적 심도를 추구하는 세잔의 예술세계를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소재였다. 주5) 세잔은 많은 인물상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자신의 아내를 많이 그렸다. 그런데 대다수의 이 그림들은 ‘사진관에서 취하는 바보 같은 포즈’이며, 특히 얼굴은 마네킹처럼 무표정하게 묘사하여 대상에 대한 감정을 드러내거나 미화하는 상투적인 여인상과는 거리가 멀다. 세잔이 자신의 부인조차 이렇게 소원한 대상으로 그린 까닭은 그가 그린 ‘한 개의 사과’처럼 대상에 새롭게 다가가서 그 리얼리티를 자신만의 어법으로 표현하려 했기 때문이다.
131 no image 박이소-개념의 여정(Yiso Bahc-Lines of Flight)전 소감
도병훈
6338 2011-10-27
박이소-개념의 여정(Yiso Bahc-Lines of Flight)전 소감 1. 은행나무 노란 잎들이 지천으로 가득한 지난 일요일, 아트선재센터에서 박이소전을 보았다. 박이소를 처음 알게 된 시기는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사이에 ‘박모’라는 이름으로 국내 미술잡지 등에 기고한 포스트모더니즘 관련 글을 통해서였다. 그의 작업은 2000년대 초반에 지면을 통해 처음 접했으며, 이번 전시회에 비치된 2006년 로댕 갤러리에서 열린 유작전 도록을 통해 2004년에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의 작품세계를 대략이나마 알게 되었다. 그의 작품을 실제로 처음 본 것은 지난 해 소마 미술관에서 열린 ‘한국드로잉 30년전’에서였다. 이 전시회에서 본 작품은 미술사 책의 특정 페이지를 연필로 필사한 후 도판 부분은 여백으로 비워 놓은 채 캡션만 쓴 일부 작업이었으며, 이번 전시회에서도 출품되어 있어 다시 볼 수 있었다. 이번 전시회에서, 특히 그의 초기 작업 중 당시 무명의 변방 이방인으로서 암중모색의 과정을 진솔하게 드러낸 작업일기와 드로잉 작업, 그리고 두 번이나 단식을 시도한 삶의 궤적을 통해, 이 땅에서든 이국에서든 이질적 요소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모순 속에서 갈등과 번뇌의 삶을 살다 표연히 떠난 인간으로서 자신에게조차 이방인이 된 그의 실존적 면모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2. 2층 전시장을 들어서자마자 200×643cm 크기의 거대한 종이 오른쪽 공간에 4개의 산을 연필로 그린 드로잉 작품이 눈앞에 나타났다. <Natural Drawing>이란 제목이 시사하듯, 긋는다는 행위를 숨 쉬듯이 수없이 반복한 드로잉 작업이었다. 가까이서 보면 산의 실체와는 동떨어진 회색조 연필의 담백하고도 건조한 느낌만이 두드러진 그림이었다. 그럼에도 멀리서 보면 나머지 여백과 묘한 조화를 이루어 마치 옛 문인화가가 그린 담백한 수묵산수화와 일맥상통하는 듯했다. 다음은 커피와 콜라와 간장으로 별을 그린 <쓰리 스타 쇼>와, 또한 이러한 각각의 용액을 혼합해서 그렸다는 <삼위일체>란 그림도 있었다. 주1) 별 그림으로는 북두칠성이 아닌 ‘북두팔성’을 그린 <팔방미인>같은 그림도 있는데다, 블랙홀을 연상케 하는 검은 원까지 그에게 별 또는 우주는 특별한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의 별은 작가 자신이 권력, 스타, 꿈, 생명, 전과 등으로 세분화했듯, ‘무엇하나 가능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이 주어진 우주’처럼 복합적이며 모순적 이미지로 보였다. 그리고 겸재 정선의 <총석정도>를 재구성하여 그린 듯한 <무제>도 독특한 그림이었는데, 화면을 상하로 분할한 후 그림 밑 검은 바탕에다 다음과 같이 써 놓았다. 나는 그림 그릴 때마다 이 그림이 딴 사람들 마음에 들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요즘 세상에 가만히 벽에 붙은 그림이 뭘 할 수 있을까 하며 자꾸 한심해 한다. 이어서 자신이 번역한 책,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의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의 12페이지를 이미지 없이 문자와 레이아웃만을 그린 드로잉과 젠슨, 곰브리치 등이 쓴 『서양미술사』 책의 첫 페이지를 도판만 비 워 둔 채 그대로 그린 <미술 그림>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자본=창의력>이란 작품은 가운데 부분에 투박하고 조악한 글씨체로 자본 =창의력이라 쓰고, 그 위 아래에다 ‘독일의 조셉 보이스의 그림을/내가 번역했다’는 것을 작은 글씨로 쓴 드로잉이었다. 이 작업의 제작년도가 1986년인 것으로 보아 당시 작가로 그 명성이 높았던 보이스의 작업 방식을 차용한 작품으로 다의적인 해석이 가능했다. 2층 마지막 벽 부분은 사군자 중 난초를 패러디한 잡풀을 그린 유사 문인화 2점을 볼 수 있었다. 이 그림들은 처음 붓을 잡은 어린아이의 필치로 난을 친 듯한 그림이어서 오히려 해학성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이처럼 2층의 작업들이 타자에 민감한 감수성을 드러내고, 자신이 표현한 이미지마다 특이성을 부여한 자기성찰의 작업들이었다면, 3층에서는 설치 포트폴리오를 위한 드로잉 작업 등 타자와의 차이를 포용하면서 공존을 모색하는 만년 작업들의 프로젝트를 볼 수 있었다. 이 중 2004년 열두 달이 명기된 드로잉이나, 작년, 1998년 같은 작업은 특히 특정 시간 속에서 부조리하게 존재하는 실존적 성찰이 두드러져 보였다. 이런 맥락에서 작가의 포트폴리오 3권과 21권의 작업노트, 현대미술 드로잉에 대한 교육(pedagogy)자료, 작품제작 및 설치관련 자료, 작가의 육필 원고 및 번역서, 개인전 도록은 부단히 작가가 자신의 삶과 예술세계를 형성해간 실존적 삶의 단서들이었다. 이 중에서도 이번 전시회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작업들은 3층 별실에서 볼 수 있었는데, GPS송신기가 달린 위치 추적 장치를 패트 병을 바다에 띄우려한 프로젝트가 특히 이색적이고 흥미로웠다. 그것은 <“무제(표류)를 위한 드로잉>인데, 병을 바다에 던진 다음 위치측정 장치가 보내오는 신호를 받아서 전시장에 설치한 지도에 병의 항로를 따라 표시하려는 프로젝트였다. 실제로 멕시코 만에서 띄워 보낸 이 병은 약 2시간만 신호를 보내고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작가는 무척 실망했다고 하지만 역설적으로 삶과 세계의 불확실성을 입증한 셈이다. 이 별실에서는 2000년 일본 요코하마 트리엔날레에서 전시장을 넘어뜨리고 그 위에 비디오 카메라로 찍은 하늘 이미지를 투사한 작업에 관한 드로잉 작업도 볼 수 있었다. 3. 이번 전시회는 기획 글에 나와 있듯, 박이소의 작업을 일반적 의미의 드로잉, 또는 확장된 회화라고도 할 수 있는 드로잉(Drawing), 작업의 개념적 측면을 구체적으로 표상하는 개념드로잉(Drawing Concept), 작품 제작과 설치를 상황에 맞게 반복적으로 수정한 설치를 위한 드로잉인 설치 포트폴리오(Installation Portfolio)로 구분하였다. 작가는 스스로 자신의 작업에 대해 ‘기존의 의미와 영역 들 사이에 펼쳐 있는 광대하고도 끝없는 틈을 거꾸로 여행하려는 것’이며, 동시에 ‘사람 저마다의 해석을 자극하며 심각한 농담을 하려는 유희적 소통의 의도’의 표현이라고 말한다. 현대미술에서의 개념미술, 또는 개념드로잉은 패러디, 또는 ‘맥락 뒤집기’ 같은 아이러니 속에서 그 주된 독특한 위상을 갖는다. 개념미술의 개념은 일반적 의미의 개념이 아니라 기존 미술의 존재방식을 부정하거나 뒤틀기 위한 반 개념적 차원의 개념인 셈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회의 주제인 개념의 여정은 오히려 반 개념의 여정이며, 이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회 주제의 진정한 의도는 괄호 안의 ‘Yiso Bahc-Lines of Flight’이라는 말이 더욱 적절하게 여겨진다. 그의 예술관은 그가 작업 모색기에 쓴 여러 글에서 잘 드러나는데, 첫 번 째 글은 “창의성에 대하여”이다. … 나는 묻고 싶다. * 예술행위는 ‘구축하는 일’인가 파괴하는 일인가? * ‘창의성’에 대한 나의 욕망은 서구에서 유래한 ‘질병’에 의한 ‘감염’이나 ‘중독’이 아닐까? * ‘나약함’ , ‘불가능성’ , ‘썰렁한 농담’ , ‘만들지 않기’ 등이, 지나치게 잘 마무리 된 제작물 들이나 짐짓 심오함을 가장한 ‘동양성’보다 오히려 한국 작가들에게 더 나은 수단이 아닐 까? * 하지만 고급예술이건 경제발전이건 간에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욕망은 결국 낭 비이고 허망한 일일지도 모른다. 주2) 좋은 예술작품은 불교 승려의 깨달음과 같다. 승려의 큰 어려움은 최초의 깨달음을 얻는 것보다 오히려 그 깨달음을 유지하고 갱신하는 것이다. 좋은 예술작품을 생산하기 위해 작가는 불교승려처럼 영구적인 자기혁명을 연관시켜야 한다. 승려든 작가든 간에 자신이 이룬 바에 지나치게 만족하는 순간부터 작가는 퇴보하기 시작한다. 나의 사적인 가장 커다란 욕망은 끊임없이 걸작품을 만들어내는 무지무지 창의적인 작가가 되는 일이다. 고대 중국이나 그리스 철학에 의하면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들이 있다고 하는데, 쇠, 불, 물, 나무, 흙, 바람이 그것이다. 이 요소 중에 나는 ‘바람’이 창의성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강한 바람이 되고 싶다…… 내가 스스로 나 자신이 바람을 많이 만들어내고 있다고 자꾸 생각을 하면 훌륭한 작가가 되 고 싶어 하는 나의 문제점을 극복하는데 실제로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주3) 삶에 대한 그의 실존적 태도는 2차례의 단식과, 그리고 첫 번째 단식 사흘 째 되는 날에 큰 솥을 끌고 부르클린 다리를 건너는 장면에 집약되어 나타난다. 무엇보다 단식이 ‘정말로는 아무 이유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함으로써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같은 삶의 태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2000년대에 이르면, 박이소는 초기의 치열한 탐색을 바탕으로 시공간적 폭을 넓이면서도 여전히 현실이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모색한다. 예컨대 <Wide World Wide>란 작품을 그 한 예로 꼽을 수 있다. 주4) 그의 유작인 <우리는 행복해요>라는 대형 설치작업의 작품계획서에서도 그의 작가로서의 일관된 비판적 정신과 함께 다의적인 콘텍스트를 드러낸다. 북한을 소개하는 책자에서 본 대형 선전광고를 패러디한 작업이면서도 박이소가 죽은 후 실제 이 작품이 전시된 부산이라는 시공간적 상황에 새로운 맥락으로 성립한다. 그의 작품계획서를 보자. “행복을 위한 보편적 열망과, 행복해하지 못하는 온갖 모습의 좌절과, 행복에 대한 다양한 가치관과 오해의 접점과 겹침과 빈틈을 관객의 가슴 안에 한 순간 스치게 하면서, 그래도 어쨌든 행복이 어딘가 있기는 있음을 심란한 희망의 메시지로 광대막막하게 보여주려는 것이다.” 이 작품의 글씨 바탕인 밝은 주황색(해바라기색)은 그 분위기로 보아 반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처럼 ‘행복에 대한 열망’을 나타낸 듯 보였는데, 무엇보다 초기 그림들의 어둡고 음울한 색조와는 매우 대비되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 작품이 전시된 기간에 두 번이나 태풍에 의해 훼손됐다는 우연적 사실은, 또한 우리 삶의 불확실성과 여러 외적 변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가 그토록 좋아한 ‘바람’이 그렇게 한 것이 아닌가. 4. 박이소가 남긴 삶의 편린들은 대부분 A4 용지 한 장의 크기인 종이 위에 남아 있었다. 이처럼 그의 삶과 작업은 대부분 무수한 개념과 이미지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 텍스트 속의 콘택스트 즉 맥락을 들여다보면 그의 작업들은 자신의 존재양식에 대한 집요한 성찰과 탐색, 즉 생을 마감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무언가 계획하고 실천하고자 한 과정의 흔적이다. 특히 유사 문인화 같은 서툰 붓질과 글씨의 생경함은 아웃사이더로서의 반골기질을 역력히 보여준다. 이런 맥락에서 박이소의 예술세계의 특색은 작품 자체에 있다기보다, 이 세계 외피 이면의 불확실하고도 적나라한 현실과 내면 사이의 괴리와 모순 같은 시공간적 부조리를 드러낸다. 전시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는 저마다 자신의 욕망으로 바쁜 사람들이 가득했다. 박이소의 작업은 이러한 타자에 대한, ‘responsibility’, 즉 ‘책임’의 관계를 일깨운다. 이 ‘책임’은 나의 행동에 책임을 진다는 식의 일반적 의미가 아니라 ‘대응하거나 반응하는 것response'이 '가능ability’하다는 뜻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가 그토록 열망한 타자와의 소통의 가능성은 여전히 가능성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이상 대응하고 반응하는 존재가 아니므로 이 ‘가능성’은 살아남은 자의 문제이다. 2011년 10월 25일 도 병 훈 주1) <쓰리 스타 쇼>에 대해 저자는 「오각형의 자백」(『예술적 영혼에 상처 받은 꿈을 위하여』,재원 2000)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그림의 별 셋을 그리는데 쓰인 세 가지 액체가-왼쪽부터 커피, 콜라, 간장-나란히 보여주는 색깔의 유사성은 그야말로 ‘유사성’에 관한 것이며, 나는 구별할 수 있고 너희들은 구별할 수 없음에 대한 약올리기이다. 언어와 언어간의 이질성 만큼이나 나란히 손잡고 있음은 이질성과 동질성이 엇갈리며 공존하고 있는 ‘민족적’ 또는 ‘인류적’ 상황이다. 평화적 공존의 정치적 상황이 갈등 없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듯, 이 그림은 아슬아슬하게 공존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각 별의 비슷함과 서로 다름에 대한 보고서 제출이다. 개념의 여정 박이소, 아르선재센터, 2011, 10쪽에서 재인용 주2) 박이소, 로댕갤러리, 2006, 정헌이,「박이소의 즐거운 바캉스」, 28쪽에서 재인용 주3) 박이소, 같은 책, 32쪽 주4) 이 작업에 대한 작가의 메모는 다음과 같다. 드넓은 세상 Wide World Wide,2003. 이 작품의 제목은 Wide World Web을 패러디한 것이다. 세계화니 신자유주의니 인터넷이니 하는 말들이 현실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 사람들의 삶은 언제나 그랬듯 세상에 대해서 아는 것도 거의 없으며, 너절하고 사소하고 표피적이며 요점도 없다. 드넓고 넓은 세상을 어설픈 세계지도의 형태로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원시적인 매체인 대형회화와 그 앞 마루바닥에 마치 촛불처럼 설치되는 조명들로서 이루어진다. 그림은 창백한 하늘색 바탕 위에 아무도 모르는 작은 도시들의 기묘한 실제 이름들을 서툴게 써 내려가면서 이루어지는데, 그 느낌은 막막한 하늘이나 바다 위에 떠돌아다니는 휴지조각과 비슷하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그리고 아무도 가지 않을 못간 도시 이름들 - 아라와쿠아라Araraquara, 팍팍Fakfak, 누나추악Nunachuak, 께잘테낭고Quezaltenango 등등- 의 공허함이 표류하는 기표가 되어 현실과 세계와 소통과 장소와 정체성의 의미들을 반추하고 또 회상한다. 텅 비어 있으며, 빼곡이 차 있는 이름들의 세계지도 앞에서 등대같이 배치된 창백한 푸른 색 조명들은 관객의 시야를 방해하는 듯 하지만, 사실은 드넓은 세상의 드넓음과 삶의 초라함의 관계를 기념하면서 동시에 추모한다. 알면서도 모르는 것과, 모르면서도 아는 것과, 지금도 모르면서 앞으로도 모를 것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이자, 자포자기적인 모름의 증언이면서도 센티멘탈한 추억이기도 하다. 내가 모르는, 평행으로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paralled universe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사실은 이미 여기에 나와 같이 있음을 이야기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박이소. 같은 책, 185쪽에서 인용
130 no image 스탕달 신드롬과 미술 감상
도병훈
5991 2011-10-13
스탕달 신드롬과 미술 감상 삶은 만남의 과정이다. 여러 가지의 만남 중 삶과 사람을 바꾸는, 일생동안 잊을 수 없는 만남도 있다. 또한 예술작품과의 만남에서도 특별한 감응 사례가 있으며, 그 중에는 매우 강렬한 신비스런 체험도 있다. 나 역시 이러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대구 시민회관에서 개최된 로댕 특별전에서였다. 그곳에서 전시장을 둘러보는데, 유난히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특별 전시 공간이 있었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작품이기에 사람들이 몰려 있지? 하는 호기심으로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보았더니, 거대한 검은 몸체 위로 고개를 뒤로 젖힌 모습의 ‘발자크 상’이었다. 무심코 그 상을 보는 순간, 거대한 고목 둥치 같은 몸과 함께 여러 갈래의 수염이 두드러진 발자크의 고뇌어린 얼굴 표정에서 형언할 수 없는 전율감과 충격을 받았다. 그 엄청난 존재감과 경이로운 아우라로 인해 숭고하다는 느낌 이외에는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그야말로 마음이 요동치는 강렬한 감동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의 그 놀라운 경험은 10대 초중반의 순진하기 그지없는 청소년이 당시로서는 너무도 예상치 못한, 거대한 몸의 괴량감과 거친 마티에르의 대상을 만나면서 한 순간 넋이 나가 버린 일종의 신비체험이었다. 훨씬 훗날, 그 때 중학생 때의 강렬한 체험이 바로 어떤 예술작품을 보았을 때 순간적으로 느끼는 정신적 충동이나 분열증상인 이른바 ‘스탕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임을 알게 되었다. 스탕달 신드롬이란 프랑스의 소설가인 스탕달(Stendhal, 1783~1842)이 1817년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산타크로체성당에서 귀도 레니(Guido Reni, 1575~1642)가 그린 <베아트리체 첸치>작품을 감상하고 나오던 중 무릎에 힘이 빠지면서 황홀경을 경험했다는 사실을 자신의 일기에 적어 놓은 데서 유래한다. 르네상스 이후 고전주의나 바로크 화풍의 그림이 매우 많은 그 곳 피렌체에서 스탕달 뿐 만 아니라 집단적으로 이와 유사한 증상에 시달렸다는 보고서가 입수된 후 심리학자들이 스탕달의 이름을 사용해 '스탕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이라고 한 것이다. ‘Elevated Mental Disease’라고도 불리는 이 병은 뛰어난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느끼는 순간적인 압박감이나 정신적인 충격을 일컫는다. ‘신드롬’이란 증후군으로 번역되며, 원인이 명확하지 않지만 공통점을 가진 일련의 병적 증상을 총칭하는 용어다. 대사증후군, 다운증후군 등이 그런 예이며, 에이즈(AIDS)도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의 약자다. 사회학적 용어로는 소녀에 집착하는 롤리타 신드롬, 늙지 않고 젊게 살고 싶어 하는 샹 그릴라 신드롬 등이 있다. ‘스탕달 신드롬’ 대상으로 유명한 예로는 러시아 출신 미국의 색면 추상 화가인 마크 로스코(1903∼1970)의 그림이 꼽힌다. 그의 작품 중에서도 특히 직사각형의 화면에 검정과 빨강을 대비시킨 그의 대형 화폭을 감상하다가 졸도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귀도 레니(Guido Reni)가 그린 베아트리체 첸치(Beatrice Cenci)는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고전주의와 바로크 양식이 혼재된 평범한 그림이다. 그는 주로 종교와 신화를 주제로 고전주의적 구성과 바로크 미술의 부드럽고 화려한 색채를 구사한 화가였다. 그래서 미술사적으로는 특별한 위치를 점유하는 화가는 아니다. 그런데, 그가 베아트리체 첸치를 그린 이 그림에는 극적인 사연이 담겨 있다. 그림의 주인공인 베아트리체 첸치(1577-1599)는 16세기 당시 이탈리아의 귀족인 프란체스코 첸치의 딸로, 그녀의 아버지는 베아트리체를 아무도 보지 못하게 자기 저택의 어느 방에 가두어 놓았다고 한다. 매우 아름다웠던 그녀는 결국 14살 때 아버지에게 겁탈당하는 비극을 맞게 된다. 그 사건이후 2년이 지난 어느 날 밤, 베아트리체 첸지는 어머니와 오빠와 집사의 도움으로 아편으로 아버지를 잠재워 죽인 후 시체를 정원의 무성한 나무숲에 버린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체포되었고, 시의 공무원들이 정당방위라고 했음에도, 교황 클레멘스 8세는 그들을 사면을 하지 않고 모진 고문과 함께 처형을 명했다. 처형 당일 그녀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을 보기 위해 로마의 산 탄젤로교 앞의 광장에 설치된 단두대로 이탈리아 전역에서 많은 구경꾼이 모여들었다. 이 때 귀도 레니도 그곳에서 단두대에 오르기 직전 구경꾼을 돌아보는 베아트리체 첸치를 보게 되며, 그녀는 곧 참수형을 당한다. 그 때 귀도 레니가 집으로 돌아와서 그녀가 처형당하기 직전 돌아보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 스탕달이 본 바로 그 그림이었다. 스탕달도 이 그림을 보러 가기 전에 이미 이런 사연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 그녀의 애잔함이 바로크적으로 묘사된 그림을 보고서는 그 이미지의 힘으로 인해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스탕달 신드롬’을 통해 예술작품이 주는 감동이 병적일 정도로 신비스런 체험으로도 일어남을 알게 된다. 최근 한국 사회의 각종 신드롬 현상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이 현상이란 대상 그 자체의 고유성이나 특별한 가치에 의해서라기보다는 그 대상을 경험하는 당사자들에 의해 야기되는 심리적 현상이다. 미술작품의 미적 가치, 또는 예술적 가치는 이러한 신드롬 현상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미적 가치, 또는 예술적 가치를 알게 되는 계기로 삼을 수 있기도 하다. 지금의 나는 발자크 상 앞에서 선다 해도 당시의 강렬하고도 신비스런 체험을 할 수 없다. 그 대신 로댕의 조각을 고뇌어린 삶과 그 흔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날의 신비로운 체험 이후 너무도 다양한 존재방식의 미술가와 작품들을 체험하게 되면서 더욱 더 절박하고, 더욱 더 정신적 감동을 주는 작품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날의 경험은 로댕으로 대표되는 근대조각이 갖는 특성을 단 번에 알게 된 사건이기도 하다. 그 날 이후 적어도 발자크 상 정도의 조각이 아니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요컨대 예술세계는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할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느끼게 한다. 이런 차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어떤 사건으로부터의 촉발되는 계기이다. 미술에서는 감상(感想)에서 감상(鑑賞)으로, 즉 감상의 차원을 넘어선 감상이라 할 수 있다. 한자의 뜻풀이로도 전자의 감상은 그저 주관적, 감상적 느낌에 지나지 않는다면 후자는 사려 깊은 분별력을 바탕으로 한 즐김이다. 2011년 10월 13일 도 병 훈
129 no image 명성과 다른 현대미술의 단면
도병훈
4888 2011-10-08
명성과 다른 현대미술의 단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는 중앙 홀에 거대한 TV탑인 <다다익선>이 설치되어 있다. 개관 직후부터 존재하는 것이라서 지금은 마치 과천 국립현대박물관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유명한 작품이다. 그러나 다다익선을 볼 때마다 그곳에 없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란 상상을 하게 된다. 건물의 크기나 기능적 특성상 그 장소에 어울리지 않은 커다란 물체이기 때문이다. 수 년 전 광화문 광장 한 가운데 건립된 <세종대왕 동상>도 거대한 흉물이기는 마찬가지다. 우선 수도 서울 한 복판의 광장에 황금색으로 번쩍거리는 세종대왕의 상을 세우겠다는 발상 자체가 전근대적이다. 성숙한 시민의식과 모뉴멘탈한 상징적 대상은 배리적 레퍼런스이다. 우리의 삶과 미적, 예술적 가치에 대한 감응의 수준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주변에 당연하게 존재하는 듯한 인공적 사물에 대해 우상처럼 당연시 하는 것은 시민의식의 현주소를 드러낸다. 먼저 다다익선은 백남준의 예술 세계에 비추어 보아도 자기모순의 이율배반적 작품이다. 세상이 유동적이고 변한다는 메시지, 즉 근대의 합리적 질서를 전위적 실험으로 거부한 것이 그가 비디오 아트를 시작한 근원적 문제의식이며, 실제로 그가 초기에 행한 실험적 작업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그의 의도이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백남준은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로서 미술사적 위치를 갖는다. 그런데 백남준이 국제적으로 유명해지면서, TV 모니터 1대, 또는 마주 대하는 불상하나면 충분히 가능한 그의 작업이 점점 더 모뉴멘탈, 즉 기념비적인 형태로 규모가 커진다. 그러면서 결국 자신의 작업의 기본 컨셉마저도 스스로 배반해버린 형국이다.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 동상은 광장의 규모에 비해 크기부터 적절하지 못하여, 공간과 장소에 대한 이해 없이 만들어져 있다. 무엇보다 조형적 어법에서 독창성이 거의 없어 100년 전 로댕의 조각(가령 ‘칼레의 시민’을 떠올려보라!)보다도 더욱 진부하고 평범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차라리 그 자리에 없다고 상상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작품을 비판하게 된 것은 그래도 유명한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대형 빌딩마다 있는 조각품이나 벽화들 중 흉물이 아닌 경우가 거의 없다. 현대예술의 존재방식에 대한 기본적인 바탕이 결여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모두는 엄연히 수억, 수십억을 들여 제작하고 설치한 것이다. 만년으로 갈수록 더욱 작업이 나빠진 작가로는 피카소가, 실제 작품의 예술적 감응과는 무관하게 매우 유명하고 상품적 가치까지 가진 스타는 엔디워홀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작가에 대한 과대평가는 생전부터 천재성 및 상품성이 조작된 결과였다. 사실 현대의 문제작들은 일기일회의 극한적 정신과 야성의 산물이다. 이처럼 현대미술은 특정 종교와 이데올로기를 넘어 인간의 정신을 뒤흔드는 생명 본연의 기질적 열정의 흔적이거나, 아니면 역설적으로 유머러스하거나, 이러한 극단적 진폭 사이에서 표현됨으로써 다양한 개성을 드러낸다. 그래서 이와 비슷한 양태의 사이비 예술, 또한 넘쳐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미적, 예술적 가치를 새롭게 만들어가야 한다. 가짜는 가짜고 진짜는 진짜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한 때 사회 변혁의 선구자로서 일익을 담당했지만 스탈린 체제라는 외적요인에 의해 그 정신이 말살되었다. 그러나 전위예술정신을 유린하고 말살할 정도로 그토록 강고했던 체제는 불과 1세기도 넘기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지금은 물신과 자본이 스탈린 독재체제보다 더욱 위력적인 시대다. 그래서 이윤을 창출하는 대상으로 만들기 위해 얼마든지 평범한 작품도 비범한 작품으로 포장될 수 있다. 이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상품적 가치와 예술적 가치를 혼동한다. 그러나 우리가 미적 패러다임을 바꾼 수많은 역사적 예술가들에 확인하는 것은 현실과 쉽게 타협하지 않은 불굴의 정신이다. 전인미답의 수직 가파른 절벽을 한 걸음 한 걸음 등정하는 알피니스트처럼 순결할 정도로 우직하고도 무모한 정신과 물질, 또는 비물질의 만남에서 예술적 진정성이 생겨난다. 바로 이 때문에 예술적 감동이 유발되며, 이런 관점에서 진짜행세를 하는 수많은 가짜를 보게 된다. 2011년 10월 9일 도 병 훈
128 no image 김천 직지사에서 본 겸재와 마티스 그림?
도병훈
5789 2011-09-29
김천 직지사에서 본 겸재와 마티스 그림? 1. 지난 여름, 추풍령 고개 넘어 경상북도 김천 황악산(黃嶽山) 동쪽 기슭에 위치한 직지사(直指寺)에 다녀왔다. 고교 졸업이후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게 되면서 경부선을 타고 대구와 서울을 오르내리면 김천 근처에서 한적한 간이역인 직지사역을 볼 수 있었다. 1990년대 초반에는 최완수 선생이 쓴 『명찰순례』라는 책에서 직지사 편을 감명 깊게 읽었다. 오래된 절인 직지사는 시대를 달리한 정신과 물질의 연(緣)이 켜켜이 쌓인 퇴적층처럼 혼재된 공간이었다. 사찰의 건축이나 그림은 형식적인 속성을 가진 유산 또는 상징이기 전에 물질이며, 이 물질의 형(形)과 질(質)을 바탕으로 문화적 교배가 성립되며, 인간의 정신과 숨결을 드러낸다. 이번 직지사 탐방에서 뜻밖의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었는데, 그 단서는 사찰 당우들에 그려진 그림과 대웅전 안팎의 그림들이었다. 지금까지 이런 직지사 경내 회화들의 가치가 크게 주목받는 대상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 질 정도였다. 직지사의 불화들은 찬연한 우리 전통 불교미술의 정화(精華)로서, 조선시대의 바로크 미술이자, 또한 겸재와 마티스 그림의 특성도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불상 뒷벽, 그리고 그 뒷벽의 그림들에서 이러한 특색이 뚜렷했다. 2. 직지사가 자리한 황악산(黃岳山, 1111m)은 북쪽으로 추풍령을 넘으면 충청도(영동) 땅이고, 서쪽 삼도봉 너머는 전라도(무주) 땅, 이처럼 경상도와 충청도와 전라도의 경계에 자리 잡은 산이다. 바위산에 쓰이는 악(岳)자가 산 이름에 들어가 있지만 실상은 육산(肉山), 즉 흙산이다. 그래서 황악산 자락은 가파르지 않았으며, 깊고 넓었다. 절 이름, 즉 사명(寺名)에 불교의 본지(本旨)가 극명하게 나타나는 절 3개를 말하라면 해인사(海印寺)와 개심사(開心寺), 그리고 직지사(直指寺)를 꼽고 싶다. 해인사는 ‘해인삼매(海印三昧)’에 근거를 둔, 삼라만상이 고요한 바다에 세상의 실상이 비치듯이 깨달음의 세계는 번뇌가 끊어진 바다와 같다는 의미에서, 개심사는 마음을 연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직지사는 선불교 사상이 집약된 이름으로 강한 어감이 드러난다. 직지사의 절 이름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경전이나 다른 사람의 가르침에 기대지 않고 각자가 갖고 있는 참된 마음을 곧바로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선종(禪宗) 교리의 근간인,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에서 나온 말이다. 직지사는 유서 깊은 절이 대개 그러하듯 숲의 바다 속에 있었다. 주차장을 나와 절 입구에 들어서자 거대한 일주문에 ‘동국제일가람(東國第一伽藍)’이라 크게 쓰여 있었다. 대단한 자긍심과 위세를 드러낸 모습이다. 진입공간 길 양옆에는 숲 속에 있어 키가 큰 배롱나무들에 붉은 꽃들이 점점이 피어 있었다. 만세교를 건너자, 임진란의 병화(兵禍)에서도 화를 면했다는 고풍스런 일주문이 이번 비에 손상을 입었는지 수리 중이었다. 이어 대양문을 지났다. 일반절의 형식인 일주문 - 천왕문(또는 금강문) - 불이문(혹는 해탈문)으로 이어지는 삼문(三門)형식과 다른 문이다. 주1) 일주문, 대양문, 금강문을 지나 천왕문에 이르자, 천장의 비천상 그림이 매우 생기 넘치는 율동적 선으로 묘사되어 있어 그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불이문을 거쳐 만세루에 이르는 데, 이 모든 문이 거의 평지에 가까운 지세 위에 지어져 있었다. 만세루를 지나 계단을 올라서는 순간, 대웅전과 탑이 있는 넓은 마당이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사찰을 통틀어 국보와 보물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곳은 조계산 송광사이고, 그 다음이 통도사, 법주사, 해인사, 금산사, 화엄사, 그리고 이곳 직지사의 순이다. 국보 숫자만 통계내면 불국사도 많지만 보물까지 합하면 이 순서대로다. 그런데 직지사의 보유문화재는 다른 곳에서 반입된 유물들이 유달리 많다. 경내에 즐비한 4기의 석탑들도 반입문화재이고 성보박물관의 전시 유물들도 거의 말사들의 유물이다. 우선 대웅전 앞에 나란히 서 있는 2기의 삼층석탑(보물 제606호)은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 도천사터에서 1974년에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보물 제607호로 지정된 비로전 앞 삼층석탑도 도천사터에서 옮겨온 3기의 석탑 중 하나다.주2) 균형미와 세련된 조형미를 보여주는 청풍료(성보박물관)앞 삼층석탑(보물 제1186호)은 원래 구미 선산의 낙동강변 원동마을 강락사(江洛寺)터에 있던 것으로 일제강점기에 선산군청으로 옮겨졌던 것을 다시 옮겼다. 이들 탑신은 모두 불국사 석가탑과 거의 비슷한 형상인데, 좀 더 갸름하고 날씬한 형태였다. 불교의 공(空)사상을 빌리지 않아도 세상만물 모든 것은 기멸(起滅)하여, 고정 불변하는 사물은 없지만 아직 건재한 탑들이 이곳까지 옮겨지기까지는 그 타당성을 떠나 물리적 힘이 아니고선 불가능하다. 전 세계 박물관에 소장된 유물이 되게 그러하듯… 그래서 어떤 곡절과 이유가 있든 새로운 장소에 정착하게 되면, 그 내력만이 기록으로 남고, 실제는 그곳의 풍경이 되고, 마침내 역사로 고착됨을 여기서도 확인하게 된다. 직지사는 그 창건 설화로 보아 매우 오래된 절집이다. 직지사가 전환의 시기를 맞은 건 고려태조 왕건과의 인연에서다. 왕건과 견훤이 패권을 다투던 시기, 대구 팔공산 동수(桐藪)에서 패배해 달아나던 왕건은 이곳 황악산에서 능여(能如)대사를 만나, 그의 도움으로 견훤의 추격을 피해 사지를 벗어난다.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한 후 이곳 직지사에 전답을 하사하고 능여를 왕사로 삼아 직지사를 크게 중수한다. 이후 대찰의 면모를 갖추게 된 직지사는 조선 정종의 태를 묻은 태봉이 대웅전 뒷산에 모셔지는 인연으로 조선 초기 까지도 사세를 유지한다. 그리고 16세기 중반에 이르러 이 절이 낳은 대표적인 인물이 나오는데,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그 때 이 절에 주석하던 신묵(信黙)대사의 꿈에 절 입구의 큰 소나무 아래서 누런 용(黃龍) 한 마리가 하늘로 오른다. 그 날, 열세 살에 양친을 여의고 천애고아가 되어 떠돌던 남루한 행색의 어린소년이 절 입구의 편편한 바위 위에서 자고 있었다. 이 소년이 바로 사명당 유정(泗溟堂, 惟政, 1544~1610년)으로, 이곳 직지사에서 머리를 깎게 된 사연이다. 그는 서산대사 휴정(西山, 休靜, 1520~1604년)의 수좌(首座)로서 임진란 때 연로한 스승을 대신하여 승군을 지휘한 우두머리였다. 그러나 직지사도 임진란의 병화를 피할 수 없었다.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제1군은 대구를 지나 조령(문경 새재)을 넘고, 가토 키요마사(加藤淸正)가 이끄는 제2군은 경주를 거쳐 죽령을 넘고 쿠로타 나가마사(黑田長政)가 이끄는 제3군은 성주, 김천을 지나 추풍령 넘어 한양으로 진격했던 임진란 때 직지사는 이 주요 진격로 중 하나에 위치한 절이었다. 직지사 대웅전은 임진란 때 소실되었다가, 인조 27년(1649)에 사승, 상원, 계림 등이 중창하고 영조 11년(1735)에 다시 중건된 건물로, 조선 후기 건축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내ㆍ외부에 많은 벽화와 불단이 남아 있는 점 등이 두드러진 특색이다. 특히 정면 다포의 맨 위층은 다른 절과 달리 모두 용머리 장식으로 꾸며져 있다. 그리고 문살도 우물 정자형인데, 매우 단순하면서도 대범한 느낌이어서 아름답고 품격이 넘쳤다. 이 대웅전은 이러한 가치를 뒤늦게 인정받아 최근에야 보물 1576호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오늘의 직지사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건물들은 20세기에 들어 녹원(綠園)선사가 대대적 중창불사를 하면서 조성한 것이다. 직지사는 비로전 안쪽 선원으로 가는 길목, 누각 앞을 가로질러 흐르는 폭 40~50Cm의 세심천(洗心川)이 아름다웠다.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어 속세에서 선계에 이르는 상징적인 뜻이 담겼으며, 이곳 문화해설사에 의하면 이러한 세심천은 목조건물의 뒤틀림을 방지하는 역할도 한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직지사의 두드러진 특색이자 압권은 단연 불화, 즉 그림이었다. 보물 제670호로 지정된 3폭의 삼존탱화(영산대회탱, 약사대회탱, 미타대회탱)는 조선 후기문화의 전성기인 1744년 작으로 짙은 녹색과 붉은 색, 흰색 등의 채색 대비가 매우 아름다웠다. 조선시대에 지어진 내력 있는 다른 절도 대개 그러하듯, 이러한 탱화는 단지 불상의 배경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규모 및 이미지와 색채 측면에서는 오히려 불상보다 더욱 강렬한 대상으로 존재한다. 그래서일까? 탱화를 보는 순간 대담한 색조 구성 및 대비효과가 마티스의 그림을 연상케 했다. 내부 각 벽면과 천장의 단청과 벽화도 매우 화려한데, 특히 눈에 뛰는 것은 좌우 상벽에 문수, 보현, 관음 등 제 보살을 사자, 코끼리, 용 등의 관련 있는 동물에 태워 전진하는 동세를 강조한 것이다. 남순동자는 비룡을 타고 하늘을 난다. 이 대부분의 그림들이 자유자재의 대담한 구성과 함께 그 필세가 활달하고 색채 또한 화려했는데, 그 백미는 삼존불 뒤쪽 벽에 있는 거대한 크기의 남해관음의 좌상과 남해 용왕 및 선재동자(남순동자)상이었다. 마침 여름이라 환기를 하려는 지 뜻 밖에도 대웅전 뒷문이 열려 있어 평소에는 공개되지 않은 이 그림들을 볼 수 있었다. 이 뒷벽을 통해 불상과 불화가 있는 벽이 대웅전 뒷벽과 별도로 있어 그 사이가 통로를 이루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뒷벽의 그림은 고주로 분할된 세 칸의 벽면에 녹청과 먹을 주조로 매우 신비롭게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대웅전 뒷벽과의 사이 공간이 좁아 벽을 헐지 않고선 벽화의 전경을 제대로 볼 수 없으며, 그래서 관람객이나 순례객은 밑에서 위로 우러러 볼 수밖에 없어 더욱 종교적 이미지가 부각되어 보였다. 오른 쪽 선재동자상은 그 아래 넘실거리는 거친 파도를 나타낸 필세가 어제 그린 듯 생동감이 넘쳐 마치, 겸재 정선이 동해 파도를 그린 것 같았는데, 워낙 필세가 거침이 없어 오히려 겸재의 그림보다도 더욱 강렬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부분적으로만 보면 마치 그림의 그리는 과정이 그대로 거칠게 드러나는 현대의 드로잉 작품 같았다. 가운데는 수월관음상이 그려져 있었으며, 왼쪽 벽의 남해용왕 옷자락의 묘사는 정말 감탄을 금하지 못할 정도로 뛰어난 필치였다. 사찰 그림이 전반적으로 채색 위주여서 이렇게 필세가 강한 그림이 매우 드문 데, 선묘 위주로 강렬하게 표현된 것이 거친 흙벽과 어울려 더욱 상승효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이 그림들은 구태의연한 종교적 형상을 벗어나 있었다. 이번 여름에 경험한 최고의 발견이었으며, 새삼 이미지의 힘이 종교에서 얼마나 강력한 요소인가를 자각할 수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종교적 상징의 공간에서 자연과 인간의 숨결이 더욱 강하게 드러남을 절감하게 되었다. 중력의 법칙에 의하면 사과나무에 사과가 달려 있는 것이 경이로운 현상이듯, 인간의 정신과 손길의 힘으로 수백년을 유지해 온 물리적 대상들은 그 자체로 시간의 역사를 드러낸다. 서양문화의 기층에 크게 고전주의적 요소와 바로크적 두 축이 있듯, 우리 문화유산에도 이러한 특성이 보인다. 수덕사 대웅전이 고전적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면 화려한 사찰들의 경우 바로크인 경향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범주가 혼재하는 사찰들도 있다. 사찰은 자연환경과 인간환경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이념적 공간인 기독교의 교회나 이슬람 사원과 달리 정서적이고 감각적인 공간이다. 이처럼 한국의 불교는 구체적인 환경 속에서 형성되어 왔다. 그러다 보니 무엇보다 자연친화적 미의식이 두드러지지만 당대의 권력계층과 매우 긴밀한 연대를 드러낸다. 테크놀로지 문명이란 추상공간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이러한 사찰공간이란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한 청정한 공간이지만 시대를 초월하는 변함없는 유구한 자취란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 들어 대형사찰에서 진행되는 대대적 중창불사는 물질적 공세이며, 그만큼 불교의 본래적 정신과 거리가 멀다. 오늘의 사찰이 바른 앎을 추구하는 불교 본연의 지혜를 새롭게 형성하는 기반이 될 수 있는가를 반문해본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3. 여행은 발견이고 예기치 않은 경험이다. 이번에 가 보지 않았더라면 불상 뒤쪽과, 그 뒷벽에서 겸재와 마티스의 예술세계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종교적 순례의 장소로서만, 또는 건축학자의 입장에서만 이 공간을 들여다본다면 보이지 않은 부분이다. 사찰의 그림에서는 관념적, 상징적, 장식적, 주관적인 요소를 모두 종합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데, 그 바탕은 어디까지나 물적 토대이며, 또한 그 형질에서 이를 조성한 인간의 기질을 느낄 수 있다. 미술하는 사람으로서 사찰회화의 진면목은 바로 이러한 특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직지사에는 무엇보다 풍부한 색채와 거침없는 선의 변주가 있었으며, 이것은 환영이 아니다. 과거나 현재나 환영은 문명의 겉모습이다. 이러한 환영의 계기는 신념이지만 그 과정과 결과는 신념을 넘어선 광경이자 물리적 대상으로서의 세계다. 이런 차원에서 여행이란 외피의 환영을 넘어 본질적 실체와 대면하는 과정이다. 다채로운 종교적 상징 속에서 인간의 근원적 욕망을 본다. 이러한 욕망으로부터 깨달음을 추구한 붓다의 정신이 시대와 지역마다의 물질과 접점을 이루면서 다양한 변주를 이루는 것 이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물론 현대로 내려올수록 최근에 지은 것일수록 더욱 물질적 공세가 두드러진다. 자연과 매우 대립적인 이런 양상은 서양 물질주의의 잘못된 이입과 천박한 미의식의 산물이다. 세심천과 사찰 벽화라는 훌륭한 자산에서 알 수 있듯, 먼저 그 가치의 발견이 선행되어야 하며, 결국 무조건적 신앙의 대상이 아닌 불교 본연의 지혜로써 현재와 미래의 직지사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2011년 9월 30일 도 병 훈 주1)수 년 전, 일주문, 천왕문, 대웅전의 편액글씨가 친일파의 대표격인 이완용의 글씨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주2) 이처럼 3기로 조성한 탑은 통일신라 이후 유행한 동서 쌍 탑의 가람형에서 벗어난 특수한 가람 배치로 3탑 가람 구조의 형태를 보여주는 매우 드문 예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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