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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63
도병훈
조회 수 : 10392
2012.07.03 (06:01:02)
‘피로사회’와 무용지용의 삶 재독 철학자인 한병철 교수가 쓴『피로사회』를 읽었다. 2010년 가을 독일에서 출간되면서 ‘동아시아를 통한 서양문화의 비판’이라는 찬사를 받은 이 책은 뒷부분 실린 다른 글을 제외하면 불과 약 60여 쪽의 분량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은 독일어로 된 원서를 다른 한국인이 번역한 것인데다 인문학적 성찰의 글이어서 단 번에 읽을 수는 없다. 저자는 이 책에서 미셀 푸코, 보드리야르, 알랭 에랭베르, 한나 아렌트, 아감벤의 사상을 인용하면서 이들의 견해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인간이 직면한 사회의 병리적 현상에는 적용될 수 없다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패러다임 전환의 관점에서 그는 지난 세기를 푸코가 정의한 ‘규율사회’로 보며, 이 시대를 지배했던 건 나와 남 사이의 경계선이 뚜렷한 면역학적 사고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면역학적 행동의 본질은 공격과 방어이고 그 대상은 타자성 자체이다. 그런데 21세기에 이르러 규율사회가 성과사회로 바뀌었다는 것이 한 교수의 관점이다. 그 결과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이질성’은 아무 반응도 일으키지 않는 ‘차이’로, 날카로운 반응을 촉발하는 ‘타자성’은 상투적인 소비주의로 전락하며, 낯선 것은 관광 대상인 ‘이국적인 것’으로 변질됐다고 본다. 이처럼 ‘면역학적 주체’가 사라지면서 책의 저자는 부정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긍정성 과잉’의 사회로 바뀌었다고 보는데, 여기서 보드리야르의 사상을 인용하면서 폭력은 부정성에서 뿐만 아니라 긍정성에서도 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잉생산, 과잉가동, 과잉커뮤니케이션이 초래하는 긍정성의 폭력은 ‘바이러스적’이지 않으므로 면역학적 관점에서 서술한 보드리야르의 견해도 이론적 약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긍정성의 과잉에 대한 반발은 면역 저항이 아니라 소화 신경적 해소 내지 거부 반응’으로, ‘과다에 따른 소진, 피로, 질식 역시 신경성 폭력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규율사회의 부정성은 광인과 범죄자를 낳는 반면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이다. 이로부터 저자는 우울증을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의 이행기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과도한 책임에 부응하려다 지쳐버린 현상으로 규정한 알랭 에랭베르의 견해를 인용하면서도 우울증을 초래하는 요인에서는 사회의 원자화와 파편화로 인한 인간적 유대의 결핍, 즉 성과사회에 내재하는 시스템의 폭력을 간과한 그의 견해를 비판한다. 이런 관점에서 “우울증은 성과주체가 더 이상 할 수 있을 수 없을 때 발발한다"며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라고 본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는 자발적인 나의 자유의지로 일중독자가 된다. 이 때문에 사람들 스스로가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되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스스로를 소진burnout)하는 것이 바로 성과사회이며, 그래서 우울증, 성격장애 등 신경성 질환들은 성과사회의 폐해라고 주장한다. 이런 시대 진단을 전제로 한 교수는 ‘깊은 심심함’이라는 처방을 제시한다. 여기서 그는 적절한 예로 사물의 향기도 볼 수 있노라고 말한 폴 세잔을 예로 든다. 그는 세잔을 깊이 연구한 메를로 퐁티의 논리를 빌어 풍경에 대한 세잔의 사색적 관찰을 ‘외화’ 또는 ‘탈 내면화’로 본다. 이것은 세잔 그림의 주된 특성을 만든 “눈의 부산한 움직임”을 중단시킨 집중 상태를 말한다. 주1) 이러한 논거를 통해 다음 장에서 그는 한나 아렌트가 주장한 ‘활동적 삶’을 비판한다. 그리고 다음 장인「보는 법의 교육」에서 한 교수는 “인간은 어떤 자극에 즉시 반응하지 않고 속도를 늦추고 중단하는 본능을 발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며, “머뭇거림이 노동의 수준으로 내려가는 것을 막는 데 필요불가결한 요소”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저자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만 있고 하지 않을 힘은 없다면 우리는 치명적인 활동 과잉 상태에 빠지고 말 것이다”라고 본다. 바로 이 부분이 동양의 ‘무위(無爲)의 부정성’을 재조명한 해석으로, 이 책의 핵심인 셈이다. 이는 저자가 어느 대담에서도 밝혔듯, 동양사상, 그중에서도『장자』의 ‘무용지용(無用之用·쓸모없는 것의 쓸모)’을 전제로 한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다음 장에서 허먼 멜빌의 단편 「필경사 바틀비」를 병리학적으로 독해한다. 이런 관점에서 규율사회의 복종적 주체로 탈진하며 죽어간 바틀비를 존재신학적으로 해석한 아감벤도 비판의 대상이 된다. 저자는 이 글 마지막 장에서 도핑사회로 발전해가는 성과사회를 비판하며 한트케의 관점을 빌려 피로를 새로운 차원으로 해석한다. 저자는 피로가 과잉활동에 대한 욕망을 억제하며, 자아의 성과에 대한 집착을 완화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런 피로를 부정적 의미의 '자아 피로'와 다른, 한트케가 말한 '근본적인 피로'로 구분한다. 근본적인 피로를 통해 자신의 성공을 위해 채찍질하는 대신 타자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새로운 정신이 태어나게 하는 영감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저자는 이 책에서 니체와 한트케 사상과 동양사상을 바탕으로 성과사회를 살아가는 방법을 시대조류에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사색적 성찰로 깊은 주의력을 갖춘 유유자적한 예술가적 삶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피로사회』는 서양의 언어로 동양철학의 의미를 담은 책이다. 이 책은 한 편의 에세이지만 저자가 던진 화두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몇몇 철학자의 철학적 사유에 대한 분석이나 비판 차원이 아니라 거시적이고 문명적인 시각에서 시대와 삶을 진단하는 통찰력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사회는 여전히 규율사회의 특성은 물론 심지어 신화적 신념을 맹신하는 중세적 패러다임도 존재하지만, 최근 들어 급속하게 성과사회로 이행되는 복잡성의 징후를 드러낸다. 그래서 한 교수가 이 책에서 개개인의 반성과 자각을 통해 현시대의 질병을 극복할 대안을 제시하는 점에 대해 더욱 다각적 관점에서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무엇보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예술가적 삶의 태도에 대해 공감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2012. 7. 3) 주1)이 책에는 자세히 설명되지 않아 세잔의 그림을 모르는 독자에게는 이 부분이 난해하게 느껴 질수도 있을 것 같다. ‘현대회화의 아버지’라 평가되는 세잔도 초기에는 순간을 포착하는 인상주의적 그림을 그리다가 곧 지각의 한계를 인식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데 그것은 순간적이고 단편적인 인상주의적 시각과 대상의 견고함을 합리적으로 추구한 고전적 형식이란 지각과 인식의 모순을 통합하는 것이었다. 즉 세잔은 상투적인 보기를 거부하는 ‘감각의 논리’로 스스로 입법자가 되어 색채로 형태를 구축하는 새로운 방법을 통해 대상과 세계를 새롭게 보는 법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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