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 6866
2012.05.17 (10:3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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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여행-길 떠난 예술가 이야기’전 출품 소감

 

 

도 병 훈(작가)

 

언제나 반복되는 일상의 삶이란 틀을 운명처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면 자발적으로 새로운 삶을 살기는 불가능하다. 동일 공간 속에서 동어반복의 삶을 살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여행은 우리 삶의 반경을 확장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갖고 있는 ‘틀’에 대한 근원적 자각의 계기가 된다.

 

지난 5월 4일부터 7월 15일까지 경기도미술관에서는 열리는 생각여행-길 떠난 예술가 이야기 전이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 나는 ‘슈룹’의 작가로 출품하였으며, 실로 오랜만에 규모 있는 전시회에 국내 유명작가들과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슈룹은 특정 지역의 미술가 단체도, 고정된 회원이 있는 그룹도 아니다. 훈민정음에 나오는 순 우리말인 슈룹은 산스크리트어로 ‘높은 곳에서 전체를 조망한다’는 의미가 있으며, 이런 차원에서 슈룹이란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융합성으로 새로운 비전을 구상하고 실천하는 지향성에 그 특색이 있다.

   

이번 전시회에 출품한 나의 두 그림은 둘 다 폭이 450cm가 넘는 광목천 드로잉 두 점이다. 한 그림은 지난 1998년에 3박 4일간 진주 대원사에서 노고단에 이르기까지 약 100Km 지리산 공간의 주요 능선을 종주한 체험을 토대로 2000년에 그린 <백두대간-지리산00124>이다. 이 그림을 그리기 이전에는 주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집약된 고지도의 특성을 선택과 확장의 방식으로 대형 광목천에 드로잉 하는 작업을 했다. <대동여지도>는 각 지역에서 한반도의 실제 모습을 그린 많은 고지도들을 김정호가 종합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백두대간 - 지리산00124>는 이 땅의 유구한 전통적 세계관이 담긴 <대동여지도>의 복합적 리얼리티를 연원으로 삼으면서도 예술적 감응affect을 유발하는 조형적 측면에서는 분청사기에 나타나는 자유분방한 그림, 겸재 정선의 필력과 추사 김정희의 서예 및 그림의 구성력에서 영향 받아 질료적 강도의 차이로 표현한 그림이다. 그러나 전통회화와 내 그림이 확연히 다른 것은 서구의 현대드로잉 기법의 영향도 있지만,‘인간이란 그가 목적하는 것이고, 자기 자신을 실현시키는 한 존재하며, 따라서 자기 행동의 총체 이상도 아니며, 그의 생애 이상도 아니다.’라는 실존적 태도로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다른 한 점은 <그토록 단순한 시작으로부터- 소쇄원에서 만난 은하>란 그림이다. 5년 전인 2007년에 답사한 호남 지역의 대표적 전통 원림園林인 소쇄원 일대의 공간을 전시회를 하기 직전에 그린 것이다. 소쇄원은 급진적 개혁을 시도하다 좌절된 조광조의 제자인 양산보가 조성한 공간이다.

 

소쇄원을 이루는 건물인 광풍각光風閣과 제월당霽月堂은 햇빛, 바람, 달빛의 치유 공간이다. 그렇지만 잠시 스쳐갈 뿐 결코 닿을 수 없는 행성처럼, ‘근접함’과 ‘거리’ 사이의 측량할 수 없는 공간이기도 하다. 즉 이번 나의 그림은 자연의 특성을 치유 공간으로 살린 장소와 나선형 은하처럼 현대 천문학적 시공을 중첩한 이미지이다. 소쇄원 일대의 정경을 묘사하는 대신 약 20년 전부터 거의 무의식적으로 써온 짙은 청색으로 행성 같은 여러 점의 형태를 그려 은하의 형상으로 표현한 것이다.

 

피상적 체험으로는 작은 공간에 지나지 않은 소쇄원 일대를 우주적 광년의 시공으로 그린 것은 그 작은 공간에서 무한 공간을 발견하고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토록 작은 공간을 무한 공간처럼 느낀 까닭은 거의 황금비로 동선을 형성하는 진입 공간의 긴 담과 소쇄원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의 프랙탈fractal한 다양한 층위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내 그림은 광목천이란 여백 위에 나의 신체적 에너지로 구현된 물질이 선적이면서도 비선형적인 이미지로 구현된 운동학적 응축으로서 에너지 - 힘 - 공간 이미지를 집약한 드로잉이다. 허공을 극極함으로 삼아 담백하게 환하면서도 ‘깊은 심심함’의 공간으로 진입하는 매개체가 되길 바라는…

   

 

살아갈수록 늘 마주치는 사람들조차 거리를 좁힐 수 없는 타인임을 절감하게 된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욕망으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행이 이전과 다른 삶을 살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준다면, 예술은 우리의 삶에 대해 좀 더 깊은 느낌과 생각을 하게 하는 매개체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모두는 좀 더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이다. 그러므로 여행과 예술은 더 나은 삶을 형성하기 위한 과정이자 실재인 셈이다.(2012.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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