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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7 (06: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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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소-개념의 여정(Yiso Bahc-Lines of Flight)전 소감

 

 

1.

은행나무 노란 잎들이 지천으로 가득한 지난 일요일, 아트선재센터에서 박이소전을 보았다.

박이소를 처음 알게 된 시기는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사이에 ‘박모’라는 이름으로 국내 미술잡지 등에 기고한 포스트모더니즘 관련 글을 통해서였다. 그의 작업은 2000년대 초반에 지면을 통해 처음 접했으며, 이번 전시회에 비치된 2006년 로댕 갤러리에서 열린 유작전 도록을 통해 2004년에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의 작품세계를 대략이나마 알게 되었다.

그의 작품을 실제로 처음 본 것은 지난 해 소마 미술관에서 열린 ‘한국드로잉 30년전’에서였다. 이 전시회에서 본 작품은 미술사 책의 특정 페이지를 연필로 필사한 후 도판 부분은 여백으로 비워 놓은 채 캡션만 쓴 일부 작업이었으며, 이번 전시회에서도 출품되어 있어 다시 볼 수 있었다.

이번 전시회에서, 특히 그의 초기 작업 중 당시 무명의 변방 이방인으로서 암중모색의 과정을 진솔하게 드러낸 작업일기와 드로잉 작업, 그리고 두 번이나 단식을 시도한 삶의 궤적을 통해, 이 땅에서든 이국에서든 이질적 요소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모순 속에서 갈등과 번뇌의 삶을 살다 표연히 떠난 인간으로서 자신에게조차 이방인이 된 그의 실존적 면모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2.

2층 전시장을 들어서자마자 200×643cm 크기의 거대한 종이 오른쪽 공간에 4개의 산을 연필로 그린 드로잉 작품이 눈앞에 나타났다. <Natural Drawing>이란 제목이 시사하듯, 긋는다는 행위를 숨 쉬듯이 수없이 반복한 드로잉 작업이었다. 가까이서 보면 산의 실체와는 동떨어진 회색조 연필의 담백하고도 건조한 느낌만이 두드러진 그림이었다. 그럼에도 멀리서 보면 나머지 여백과 묘한 조화를 이루어 마치 옛 문인화가가 그린 담백한 수묵산수화와 일맥상통하는 듯했다.

 

다음은 커피와 콜라와 간장으로 별을 그린 <쓰리 스타 쇼>와, 또한 이러한 각각의 용액을 혼합해서 그렸다는 <삼위일체>란 그림도 있었다. 주1)

별 그림으로는 북두칠성이 아닌 ‘북두팔성’을 그린 <팔방미인>같은 그림도 있는데다, 블랙홀을 연상케 하는 검은 원까지 그에게 별 또는 우주는 특별한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의 별은 작가 자신이 권력, 스타, 꿈, 생명, 전과 등으로 세분화했듯, ‘무엇하나 가능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이 주어진 우주’처럼 복합적이며 모순적 이미지로 보였다. 그리고 겸재 정선의 <총석정도>를 재구성하여 그린 듯한 <무제>도 독특한 그림이었는데, 화면을 상하로 분할한 후 그림 밑 검은 바탕에다 다음과 같이 써 놓았다.

 

나는 그림 그릴 때마다 이 그림이 딴 사람들 마음에 들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요즘 세상에 가만히 벽에 붙은 그림이 뭘 할 수 있을까 하며 자꾸 한심해 한다.

 

이어서 자신이 번역한 책,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의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의 12페이지를 이미지 없이 문자와 레이아웃만을 그린 드로잉과 젠슨, 곰브리치 등이 쓴 『서양미술사』 책의 첫 페이지를 도판만 비 워 둔 채 그대로 그린 <미술 그림>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자본=창의력>이란 작품은 가운데 부분에 투박하고 조악한 글씨체로 자본 =창의력이라 쓰고, 그 위 아래에다 ‘독일의 조셉 보이스의 그림을/내가 번역했다’는 것을 작은 글씨로 쓴 드로잉이었다. 이 작업의 제작년도가 1986년인 것으로 보아 당시 작가로 그 명성이 높았던 보이스의 작업 방식을 차용한 작품으로 다의적인 해석이 가능했다.

2층 마지막 벽 부분은 사군자 중 난초를 패러디한 잡풀을 그린 유사 문인화 2점을 볼 수 있었다. 이 그림들은 처음 붓을 잡은 어린아이의 필치로 난을 친 듯한 그림이어서 오히려 해학성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이처럼 2층의 작업들이 타자에 민감한 감수성을 드러내고, 자신이 표현한 이미지마다 특이성을 부여한 자기성찰의 작업들이었다면, 3층에서는 설치 포트폴리오를 위한 드로잉 작업 등 타자와의 차이를 포용하면서 공존을 모색하는 만년 작업들의 프로젝트를 볼 수 있었다.

이 중 2004년 열두 달이 명기된 드로잉이나, 작년, 1998년 같은 작업은 특히 특정 시간 속에서 부조리하게 존재하는 실존적 성찰이 두드러져 보였다. 이런 맥락에서 작가의 포트폴리오 3권과 21권의 작업노트, 현대미술 드로잉에 대한 교육(pedagogy)자료, 작품제작 및 설치관련 자료, 작가의 육필 원고 및 번역서, 개인전 도록은 부단히 작가가 자신의 삶과 예술세계를 형성해간 실존적 삶의 단서들이었다.

 

이 중에서도 이번 전시회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작업들은 3층 별실에서 볼 수 있었는데, GPS송신기가 달린 위치 추적 장치를 패트 병을 바다에 띄우려한 프로젝트가 특히 이색적이고 흥미로웠다. 그것은 <“무제(표류)를 위한 드로잉>인데, 병을 바다에 던진 다음 위치측정 장치가 보내오는 신호를 받아서 전시장에 설치한 지도에 병의 항로를 따라 표시하려는 프로젝트였다. 실제로 멕시코 만에서 띄워 보낸 이 병은 약 2시간만 신호를 보내고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작가는 무척 실망했다고 하지만 역설적으로 삶과 세계의 불확실성을 입증한 셈이다.

이 별실에서는 2000년 일본 요코하마 트리엔날레에서 전시장을 넘어뜨리고 그 위에 비디오 카메라로 찍은 하늘 이미지를 투사한 작업에 관한 드로잉 작업도 볼 수 있었다.

 

 

3.

이번 전시회는 기획 글에 나와 있듯, 박이소의 작업을 일반적 의미의 드로잉, 또는 확장된 회화라고도 할 수 있는 드로잉(Drawing), 작업의 개념적 측면을 구체적으로 표상하는 개념드로잉(Drawing Concept), 작품 제작과 설치를 상황에 맞게 반복적으로 수정한 설치를 위한 드로잉인 설치 포트폴리오(Installation Portfolio)로 구분하였다.

작가는 스스로 자신의 작업에 대해 ‘기존의 의미와 영역 들 사이에 펼쳐 있는 광대하고도 끝없는 틈을 거꾸로 여행하려는 것’이며, 동시에 ‘사람 저마다의 해석을 자극하며 심각한 농담을 하려는 유희적 소통의 의도’의 표현이라고 말한다.

현대미술에서의 개념미술, 또는 개념드로잉은 패러디, 또는 ‘맥락 뒤집기’ 같은 아이러니 속에서 그 주된 독특한 위상을 갖는다. 개념미술의 개념은 일반적 의미의 개념이 아니라 기존 미술의 존재방식을 부정하거나 뒤틀기 위한 반 개념적 차원의 개념인 셈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회의 주제인 개념의 여정은 오히려 반 개념의 여정이며, 이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회 주제의 진정한 의도는 괄호 안의 ‘Yiso Bahc-Lines of Flight’이라는 말이 더욱 적절하게 여겨진다.

 

그의 예술관은 그가 작업 모색기에 쓴 여러 글에서 잘 드러나는데, 첫 번 째 글은 “창의성에 대하여”이다.

나는 묻고 싶다.

* 예술행위는 ‘구축하는 일’인가 파괴하는 일인가?

* ‘창의성’에 대한 나의 욕망은 서구에서 유래한 ‘질병’에 의한 ‘감염’이나 ‘중독’이 아닐까?

* ‘나약함’ , ‘불가능성’ , ‘썰렁한 농담’ , ‘만들지 않기’ 등이, 지나치게 잘 마무리 된 제작물 들이나 짐짓 심오함을 가장한 ‘동양성’보다 오히려 한국 작가들에게 더 나은 수단이 아닐 까?

* 하지만 고급예술이건 경제발전이건 간에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욕망은 결국 낭 비이고 허망한 일일지도 모른다. 주2)

 

좋은 예술작품은 불교 승려의 깨달음과 같다. 승려의 큰 어려움은 최초의 깨달음을 얻는 것보다 오히려 그 깨달음을 유지하고 갱신하는 것이다. 좋은 예술작품을 생산하기 위해 작가는 불교승려처럼 영구적인 자기혁명을 연관시켜야 한다. 승려든 작가든 간에 자신이 이룬 바에 지나치게 만족하는 순간부터 작가는 퇴보하기 시작한다.

 

나의 사적인 가장 커다란 욕망은 끊임없이 걸작품을 만들어내는 무지무지 창의적인 작가가 되는 일이다. 고대 중국이나 그리스 철학에 의하면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들이 있다고 하는데, 쇠, 불, 물, 나무, 흙, 바람이 그것이다. 이 요소 중에 나는 ‘바람’이 창의성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강한 바람이 되고 싶다……

내가 스스로 나 자신이 바람을 많이 만들어내고 있다고 자꾸 생각을 하면 훌륭한 작가가 되 고 싶어 하는 나의 문제점을 극복하는데 실제로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주3)

 

삶에 대한 그의 실존적 태도는 2차례의 단식과, 그리고 첫 번째 단식 사흘 째 되는 날에 큰 솥을 끌고 부르클린 다리를 건너는 장면에 집약되어 나타난다. 무엇보다 단식이 ‘정말로는 아무 이유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함으로써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같은 삶의 태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2000년대에 이르면, 박이소는 초기의 치열한 탐색을 바탕으로 시공간적 폭을 넓이면서도 여전히 현실이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모색한다. 예컨대 <Wide World Wide>란 작품을 그 한 예로 꼽을 수 있다. 주4)

 

그의 유작인 <우리는 행복해요>라는 대형 설치작업의 작품계획서에서도 그의 작가로서의 일관된 비판적 정신과 함께 다의적인 콘텍스트를 드러낸다. 북한을 소개하는 책자에서 본 대형 선전광고를 패러디한 작업이면서도 박이소가 죽은 후 실제 이 작품이 전시된 부산이라는 시공간적 상황에 새로운 맥락으로 성립한다. 그의 작품계획서를 보자.

 

“행복을 위한 보편적 열망과, 행복해하지 못하는 온갖 모습의 좌절과, 행복에 대한 다양한 가치관과 오해의 접점과 겹침과 빈틈을 관객의 가슴 안에 한 순간 스치게 하면서, 그래도 어쨌든 행복이 어딘가 있기는 있음을 심란한 희망의 메시지로 광대막막하게 보여주려는 것이다.”

 

이 작품의 글씨 바탕인 밝은 주황색(해바라기색)은 그 분위기로 보아 반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처럼 ‘행복에 대한 열망’을 나타낸 듯 보였는데, 무엇보다 초기 그림들의 어둡고 음울한 색조와는 매우 대비되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 작품이 전시된 기간에 두 번이나 태풍에 의해 훼손됐다는 우연적 사실은, 또한 우리 삶의 불확실성과 여러 외적 변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가 그토록 좋아한 ‘바람’이 그렇게 한 것이 아닌가.

 

 

4.

박이소가 남긴 삶의 편린들은 대부분 A4 용지 한 장의 크기인 종이 위에 남아 있었다. 이처럼 그의 삶과 작업은 대부분 무수한 개념과 이미지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 텍스트 속의 콘택스트 즉 맥락을 들여다보면 그의 작업들은 자신의 존재양식에 대한 집요한 성찰과 탐색, 즉 생을 마감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무언가 계획하고 실천하고자 한 과정의 흔적이다.

특히 유사 문인화 같은 서툰 붓질과 글씨의 생경함은 아웃사이더로서의 반골기질을 역력히 보여준다. 이런 맥락에서 박이소의 예술세계의 특색은 작품 자체에 있다기보다, 이 세계 외피 이면의 불확실하고도 적나라한 현실과 내면 사이의 괴리와 모순 같은 시공간적 부조리를 드러낸다.

전시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는 저마다 자신의 욕망으로 바쁜 사람들이 가득했다. 박이소의 작업은 이러한 타자에 대한, ‘responsibility’, 즉 ‘책임’의 관계를 일깨운다. 이 ‘책임’은 나의 행동에 책임을 진다는 식의 일반적 의미가 아니라 ‘대응하거나 반응하는 것response'이 '가능ability’하다는 뜻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가 그토록 열망한 타자와의 소통의 가능성은 여전히 가능성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이상 대응하고 반응하는 존재가 아니므로 이 ‘가능성’은 살아남은 자의 문제이다.

 

2011년 10월 25일

도 병 훈

 

 

주1) <쓰리 스타 쇼>에 대해 저자는 「오각형의 자백」(『예술적 영혼에 상처 받은 꿈을 위하여』,재원 2000)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그림의 별 셋을 그리는데 쓰인 세 가지 액체가-왼쪽부터 커피, 콜라, 간장-나란히 보여주는 색깔의 유사성은 그야말로 ‘유사성’에 관한 것이며, 나는 구별할 수 있고 너희들은 구별할 수 없음에 대한 약올리기이다. 언어와 언어간의 이질성 만큼이나 나란히 손잡고 있음은 이질성과 동질성이 엇갈리며 공존하고 있는 ‘민족적’ 또는 ‘인류적’ 상황이다. 평화적 공존의 정치적 상황이 갈등 없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듯, 이 그림은 아슬아슬하게 공존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각 별의 비슷함과 서로 다름에 대한 보고서 제출이다. 개념의 여정 박이소,

아르선재센터, 2011, 10쪽에서 재인용

주2) 박이소, 로댕갤러리, 2006, 정헌이,「박이소의 즐거운 바캉스」, 28쪽에서 재인용

주3) 박이소, 같은 책, 32쪽

주4) 이 작업에 대한 작가의 메모는 다음과 같다.

드넓은 세상 Wide World Wide,2003. 이 작품의 제목은 Wide World Web을 패러디한 것이다. 세계화니 신자유주의니 인터넷이니 하는 말들이 현실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 사람들의 삶은 언제나 그랬듯 세상에 대해서 아는 것도 거의 없으며, 너절하고 사소하고 표피적이며 요점도 없다.

드넓고 넓은 세상을 어설픈 세계지도의 형태로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원시적인 매체인 대형회화와 그 앞 마루바닥에 마치 촛불처럼 설치되는 조명들로서 이루어진다. 그림은 창백한 하늘색 바탕 위에 아무도 모르는 작은 도시들의 기묘한 실제 이름들을 서툴게 써 내려가면서 이루어지는데, 그 느낌은 막막한 하늘이나 바다 위에 떠돌아다니는 휴지조각과 비슷하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그리고 아무도 가지 않을 못간 도시 이름들 - 아라와쿠아라Araraquara, 팍팍Fakfak, 누나추악Nunachuak, 께잘테낭고Quezaltenango 등등- 의 공허함이 표류하는 기표가 되어 현실과 세계와 소통과 장소와 정체성의 의미들을 반추하고 또 회상한다. 텅 비어 있으며, 빼곡이 차 있는 이름들의 세계지도 앞에서 등대같이 배치된 창백한 푸른 색 조명들은 관객의 시야를 방해하는 듯 하지만, 사실은 드넓은 세상의 드넓음과 삶의 초라함의 관계를 기념하면서 동시에 추모한다.

알면서도 모르는 것과, 모르면서도 아는 것과, 지금도 모르면서 앞으로도 모를 것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이자, 자포자기적인 모름의 증언이면서도 센티멘탈한 추억이기도 하다. 내가 모르는, 평행으로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paralled universe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사실은 이미 여기에 나와 같이 있음을 이야기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박이소. 같은 책, 185쪽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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