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전원길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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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3 (00: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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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현의 '백년의 소리-가야금'을 통한 기도

 

전원길/ 작가, 야투아이프로젝트 디렉터

 

I

고승현은 20여점이 넘는 가야금 작업 ‘백년의 소리’를 한데 모아 책으로 엮는다. 10여 년간 묵묵히 작업해온 가야금 시리즈를 하나의 책으로 편집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개별 작품을 볼 때와는 다른 감동을 받았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 담긴 작업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나는 그간의 작품 사진들을 보면서 이 작품집의 서문을 쓰겠노라고 자처하였다.

한 작가가 같은 유형의 작업을 지속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반복’이라는 말로 정의된다면 작가의 역량 부족을 드러내는 것이겠지만, ‘심화’의 과정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작가의 집요한 집중력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나는 고승현의 계속되는 가야금 작업을 이와는 다르게 읽고 싶다.

 

II

고승현이 그동안 제작한 가야금 작업들이 11개국 30여 곳의 각기 다른 지역에서 제작되었음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작품 제목에 ‘아비코의 가야금’ ‘리코로데 가야금’ ‘마술레의 가야금’ 등과 같이 제작된 지역의 이름을 붙인다. 그가 사용하는 나무들은 벼락을 맞아 운명을 다한 나무, 비바람에 쓰러진 나무 혹은 도로 공사로 인해 베어진 나무 등 어쩔 수 없이 쓰러지거나 베어진 나무들이 대부분이다. 소나무, 체리나무, 은행나무, 자작나무, 오동나무, 감나무 등 수종도 다양하다.

가야금의 구조를 응용한 그의 작업은 완성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여전히 나무 그대로의 자연 형태를 유지한다. 조금 거리를 두고 보면 그저 기다란 나무가 놓여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나무에 다가가듯이 작품에 다가가고 악기를 대하듯 작품에 손을 올려 소리를 낸다. 그의 가야금 작업이 어디서든 관객들의 즉각적인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면서 인기를 누리고 있음은 이렇듯 그의 작업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 앞에 존재하기보다는 자연으로서 그리고 관객의 관심을 유발시키는 일상의 악기처럼 관객들에게 다가가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의 작품이 탁 트인 풍경 속에 놓이는 것이 제격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조형물들이 자연을 밀어내고 자랑하듯 우뚝 서는 반면에 그의 가야금 작업은 자연 풍경 속에서 산과 들의 능선과 어우러진다.

한편 그의 작품은 그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손길과 그 소리를 듣는 이와 함께 어우러지는 미술이다. 사실 고승현의 ‘백년의 소리’는 누군가의 ‘연주하기(소리내기)’를 통한 개입이 일어나기 전에는 작품으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말했듯이, 몸체에 매어진 줄을 손끝으로 튕기는 순간 울려 나오는 소리가 그 나무의 나이테 속에 배어든 갖가지 소리를 불러내어 함께 어우러진다는, 관념적이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작용이 일어나는 순간에 비로소 완성된 작품으로 승화되기 때문이다.

고승현이 작업을 시작하는 순간 그의 마음은 언제나 처음 가야금 작업을 할 때와 똑같은 설렘과 기대감으로 충만하다. 마침내 죽은 나무에서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난 고승현의 가야금은 모양새와 그 소리의 울림이 언제나 새롭다.

III

고승현이 ‘소리’라는 재료를 이용하고 있는 사실은 그와 함께 작업하고 있는 다른 야투 회원들과의 차별성을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시각 미술이 다양한 장르의 예술과 혼합되고 응용되는 이 시대의 미술에서 소리를 다룬다는 것 자체가 그리 특별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고승현의 가야금 작업이 갖는 작품으로서의 독특성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가 자신의 책자의 제목을 ‘백년의 소리-가야금’이라는 제목을 사용하고 있듯이 가야금이라는 특정한 악기는 고승현의 작업에서 중요한 모티브이다. 줄을 매는 방법이나 구조도 가야금의 그것과 아주 흡사하다. 가야금의 구조를 나무 위에 재현하는 것 이외에 소리를 다루는 작가로서의 독특한 관점이나 그것을 표현하는 미술적 방법이 무엇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다.

고승현의 가야금이 자연 재료를 이용하여 소리를 내는 현대적인 설치(installation) 작업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방법론적 새로움을 추구하는 다른 현대 미술가 혹은 자연물을 이용해서 어떤 조형적 작업을 시도하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같은 선상에서 접근해서는 고승현의 작품 세계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힘들다는 것이 나의 소견이다.

그의 작품 속에 내재된 의미를 충실히 알기 위해서는 그가 기독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자연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예술관을 형성시켰으며, 그를 바탕으로 그의 작업이 전개되고 있음을 아는 것이 얼마간 필요하다. 그는 세상의 다른 어떤 미술품과도 견줄 수 없는 아름다운 자연에 감동했고, 그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의 솜씨에 굴복했다. 또한 그 아름답고 신비한 자연 속에서 살아감을 감사하면서 살아있는 자연과의 대화를 통해서 그가 어떤 미술을 해야 하는지를 배웠다.

고승현에게 자연은 이미 아름다움 그 자체이고 절대적인 상태로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그에게 미술은 더 이상 아름다운 것 혹은 새로운 것을 내보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좋을지, 저렇게 하는 것이 아름다울지 미학적 고민을 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있는 그대로의 자연 상태에서 그것의 아름다움의 최대치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고승현의 작품을 잘 조율된 장인의 실제 가야금에 비하면 엉터리 악기에 불과할 것이고, 고상하고 아름다운 조각 작품에 익숙한 어떤 이들에게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쓸모없는 물건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승현의 가야금은 우리의 감각적 판단을 내려놓을 때, 그리고 여타의 이론적 질문을 접어두고 그가 지시하는 자연의 모습을 제대로 바라볼 때 마침내 그가 서있는 자리에서 그의 가야금을 대할 수 있다.

 

IV

그는 자연을 보여주기 위해서 나무의 생김새를 최대한 원래 상태로 유지하는 가운데 작업을 지속한다. 그가 유독 가야금의 형식을 빌려온 것도 가야금의 구조가 나무의 몸통 모양과 닮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의 작업은 나무 한 부분의 속을 파내고 줄을 매어 공명하게 함으로써 소리를 내는 아주 간단한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가 작품의 구조에서 큰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연 형태를 살리되 조작적 조형을 피하기 위한 기본 입장을 견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가야금은 나무에 따라서 눕히거나 세우는 정도의 변화 이외에는 초창기의 것이나 지금의 것이나 조형적인 변화가 거의 없다.

울림통을 만들기 위하여 나무를 따내고 홈을 파내는 과정은 상당한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이다. 자칫 구멍이 나거나 쪼개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고승현이 나무에 울림통을 만드는 이 과정을 나무와의 일체감 즉 자연과의 합일의 심정으로 작업하는 핵심적인 순간이 라고 생각한다. 칼끝에서 전해오는 나무의 육질을 자신의 몸으로 교감하며 백년 동안 나무속에 배어든 소리들을 상상하는 순간이기도 할 것이다.

울림통이 만들어지고 한쪽에 줄들을 나란히 끼어서 당기면 그 모양새는 영락없는 가야금이다. 나는 고승현이 가야금이라는 특정한 악기의 형태를 따르는 것은 그의 작업의 내용에서 중요한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작가가 독특하게 상상해낸 고유한 형태 만들기가 아니라, 실제의 가야금이라는 오브제를 차용해서 자신의 작품에 합성해 놓은 것과 같은 이미지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고승현의 이런 제작 태도는 조형적 독특성을 추구하기보다는 자연을 보여주는 데 더욱 마음을 쓰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는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오히려 내려놓고 만물을 지으신 조물주의 솜씨를 더욱 귀히 여기는 지음 받은 자로서의 겸손이자 용기라고, 나는 힘써 이야기하고 싶다.

나무 몸통의 중간에 위치한 그의 가야금은 음의 높낮이를 조율하여 실제 연주가 가능하다. 사람들은 때로 나무의 가지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듣는다. 나무를 통해 들리는 소리는 공기로 전달되는 소리보다 더욱 깊고 생생하다. 사람들이 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 이러한 장면은 자연과 미술 그리고 인간이 하나 되기를 바라는 자연미술의 정신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지난 30여 년간 야투를 중심으로 한 한국 자연미술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한 그가, 실현하고자 하는 자연미술의 정신을 말이 아닌 작품으로서 그 실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지금까지 서술해오던 어설픈 나의 작품 해설보다 그의 작업노트에서 발견한 짧고 명료한 글이 그가 왜 가야금을 만드는지에 대한 답을 들려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간다. 자연 안에서의 호흡은 곧 나의 기도이며, 그 시간들은 나의 신앙생활이다. 나는 자연의 섭리와 그 순리를 좇아 순응하고자 노력한다. 자연 속에서의 나의 작업은 내 자존감의 회복이며 정체성의 확인 과정이다.”

 

나는 자연과 하나님 그리고 자신의 미술 행위가 하나로 연결된 그의 신앙 즉 자신을 내려놓고 자연 속에 내재한 신의 섭리에 순응하는 가운데 자신을 찾아나가려는 고승현의 마음이 가야금 작업에도 그대로 담겨 있으며 그것이 작가로서의 그의 태도이며 목적인 동시에 의미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가 자연 속에서 나무와 만나고, 그 속에 담겨 있는 오랜 소리를 상상하면서 소리를 울려내는 통을 만들며, 거기에 줄을 매어 손가락으로 그것을 퉁길 때 자신에게 전해져 오는 소리는 그저 단순히 가야금과 유사한, 나무에서 생성되는 소리가 아니다. 이는 자연 속에 내재된 신의 소리를 자연인이요 또한 작가로서 듣고자 함이요 그 소리의 울림 속에서 신의 섭리를 따라 살아가려는 바램을 담아내는 미술이다. 어쩌면 그것은 예술로서의 미술을 지나서 다다르려는 그의 기도이다.

 

V

나는 고승현의 이러한 마음가짐이 그의 작품을 특정 종교인의 미술이라는 협소한 테두리 안에 가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과 자연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신의 존재에 대한 그의 깊은 믿음이 바탕이 되어 마음에 거리낌 없이 예술혼이 그대로 솟아오른 너무나도 당당하고 아름다운 작품임을 이 책을 통해서 보게 된다. 그의 작업은 숙련된 작가로서의 섬세한 기술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으면서도 자연을 벗어나지 않는다. 보는 이의 마음을 끌어당겨 그의 가야금 앞에 서게 하여 마침내 그가 사랑하는 그분의 솜씨를 함께 노래하게 하는 것이 고승현의 작품 ‘백년의 소리’이다.

이 작품집은 고승현의 10여 년간의 가야금 작업의 기록을 넘어서 그야말로 백년의 깊이를 담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는 그의 잔잔하면서도 뜨거운 열정과 진정성을 함께 볼 수 있는 책이다. 앞으로 고승현의 가야금이 세계 곳곳에서 자연과 인간 사이의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작업으로 완성되길 바라며, 그의 작품을 대하는 사람들마다 닫힌 귀를 열어 자연 속의 수많은 생명의 다채로운 소리를 새롭게 듣도록 하는 일에 기여할 수 있기를 함께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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