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전원길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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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관련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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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23일 일요일

 

 

루터란 교회 입구 (성 마리 교회)           러시아 정교회 입구(알렉산더 넵스키 성당) 

아침 10시, 고승현 선생님과 올드타운에 있는 루터란 처치에 갔다. 미리 10시 예배시간을 확인해 두었지만 어디서 착오가 있었는지 예배는 11시 부터라고 한다. 12시 티유와의 약속을 지키려면 예배 참석은 힘들 것 같다. 잠시 앉아 기도를 드렸다. 고승현 선생님의 기도가 길다. 기도가 끝나길 기다리면서 교회 안을 둘러보았다. 종교개혁의 선봉이었던 루터의 정신을 따르는 교회이지만 교회안의 장식은 여느 가톨릭 성당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장식물은 많이 있지만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 그리 복잡해 보이지 않고 예배에 집중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유지한다. 기본적으로 건물자체가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규범화된 법식을 따라 지어지고, 교회안의 인테리어에 사용된 색상들이 차분하고 조화롭게 배치된 까닭일 것이다.

관광지 내에 있는 교회로서 평일에도 개방되어있고 간단한 기념품도 판매하고 있다. 목사님이 예배 준비를 위하여 부지런히 왔다 갔다 하신다. 나이 드신 신도 한 분이 안내석에 자리 잡고 있다. 예배에 참석하는 교인 수 등 몇 가지를 묻고 싶었으나 영어를 사용하지 않으시는 관계로 대화는 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루터란 교회의 예배가 궁금했었는데 결국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교회를 나서니 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전에 들렸던 러시아 정교회에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다섯 개의 돔 지붕이 있는 아름다운 건물이다.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내부를 촬영 할 수는 없었지만 역시 아름답다. 비잔틴 양식의 교회들은 외부에는 장식이 많지 않아 수수하지만 내부는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교회 건물을 하나의 몸으로 생각하고 겉보다는 속사람 즉 영혼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생각을 담았기 때문 일 것이다. 마침 미사 중이어서 러시아 정교회의 예배의식을 볼 수 있었다. 예배를 위한 교회의 내부 구조는 4단계로 나뉘어져 있다. 제일 안쪽에는 문을 통해서만 들어 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예배를 집전하는 신부가 굵고 깊은 목소리로 찬송을 드리며 성호를 긋다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 단 아래에는 신자들이 서서 계속 허리를 굽혀 절을 하고 때로 초에 불을 붙여 꼽는 의식을 병행한다. 초는 현장에서 판매한다. 교회 입구 쪽은 손님들의 공간이다. 먼 나라에서 온 신자들이 함께 예배에 참가한다. 교회내부는 초에서 피어오른 연기와 냄새로 가득하다. 천정 중앙에 뚫린 구멍으로 연기가 배출되어 실내 공기는 아주 혼탁하지는 않다. 교회 문을 나서니 구걸하는 사람들이 일렬로 서있다. 마치 그 옛날 예루살렘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그 사람들이 연극 무대에 등장한 듯하다. 고승현 선생님이 동전 한 닢씩을 그들의 그릇에 담아 주었다.

12시에 티유를 올드타운 광장에서 만났다. 그녀는 근처에 있는 공예미술관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미술관을 돌아보면서 에스토니아 사람들의 미적 감각이 뛰어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현대 공예품 중에서는 숲의 나무를 표현한 유리공예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여러 동물들이 드로잉된 그림 속에서 동물을 찾아 색을 칠하도록 한 관객참여 프로그램도 흥미로웠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사실 벽이 든든하고 기둥에서 천정으로 이어지는 선이 아름다운 전시공간이 마음에 들었다. 시간의 깊은 관록이 느껴지는 공간과 대응하는 멋진 작품들이 조화를 이룬다면 더없이 아름다울 것이다.

미술관 내부 유리 공예품

 

페터와 들렸던 에스토니아 미술관이 있는 카드리오르그 공원에서 눈 조각 이벤트가 열린다. 티유는 이 행사의 기획자이면서 심사위원장이다. 티유가 심사 및 시상식 행사에 관여하는 동안 우리는 눈 조각하는 사람들과 작품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행사가 끝나고 티유와 거기서 만난 러시아 팀과 함께 멕시칸 식당에서 늦은 점심이자 이른 저녁을 먹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요리의 내용을 알 수 없으니 그냥 포크, 비프, 치킨, 생선 중에서 찍는다. 나는 무슨 무슨 치킨을 시켰는데 그런대로 괜찮았다. 러시안 친구는 고치구이 요리인데 근사하게 한 상을 받는다. 본인도 놀란다. 모두의 탄성을 들으며 먹은 요리가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멕시칸 식당에서

온가족이 함께 만들고 함께 사진을 찍는다

  눈 조각 현장에서 합류한 페터와 만나 우리는 티유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페터의 집(작업실)에 가서 차를 마시며 그의 최근 사진 작품을 보았다. 고대의 이야기를 패러디한 내러티브한 사진 작업이었다. 아직 진행 중의 그의 작업이 어떻게 끝날지 궁금하다. 그가 아주 진지하며 프로패션널한 사진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극 이론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그의 부인은 야투가 추진하고 있는 국제적인 네트워크 프로젝트를 소개하니 눈을 반짝이며 무척 흥미 있어 했다.

그와 아주 절친한 사진작가의 작업실로 자리를 옮겨 페터가 추천한 에니메이션 한편을 보았다. 에스토니아는 에니메이션에 있어서 특별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편배달부가 달에 소포를 전달하러 가는 이야기에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좋은 영화 한편을 감상했으나 몸이 고단하여 그가 마련한 특별한 자리를 살리지는 못했다.  

Sky Song/ Directed Mati Kutt

 에니메이션과 관련해서 인상 깊었던 작품은 영국시절 서펜타인 갤러리에서 본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윌리엄 캔트리지의 작품이었다. 페터에게 소개해주었다. 오늘 본 영화에 대해서는 다시 자료를 찾아보고 싶다.

긴 하루를 마감하는 인사를 나누고 호텔로 돌아왔다. 추운 날씨에 거의 하루 종일 밖으로 돌다 보니 체력 소모가 많은 것 같다. 기온은 아주 낮지 않지만 습도가 많은 바람에 몸속으로 파고드는 추위를 느낀다. 저녁때만 되면 피로감이 몰려오고 호텔로 돌아오면 씻자마자 눕게 된다.

2011년 1월 24일 월요일

케일라 조아 폭포 트립을 위한 페터의 메모 

공식적인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남은 소중한 하루다. 어제 페터를 통해서 근교에 기차를 타고 갈수 있는 좋은 곳이 있냐고 물었다. 친구 사진작가와 한참을 상의 한 끝에 알려준 곳이 케일라 조아라는 곳에 있는 폭포였다. 한겨울 폭포가 얼어붙어 장관일 테고 가까이에 발틱 해변을 구경할 수 있다고 했다. 교통편은 기차는 없고 호텔 바로 옆 버스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108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리면 되고 올 때도 126번과 108번을 타면 호텔 옆 종점에서 하차 할 수 있다고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를 교외로 달렸다. 시원하다. 아무리 둘러봐도 산은 없다. 국토전체가 평야지대라고 한다. 그리고 반쯤은 산림으로 덮여 있단다. 눈 쌓인 숲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한참을 달려 시골 정류장 같은 곳에서 하차했다. 이정표를 보고 폭포를 찾아 가다가 점심을 먹을 곳을 찾으니 월요일이라 문을 닫았다. 카페의 벽이 아름답다. 자연스럽게 보수하면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이 건물도 백년은 넘은 건물 같다. 아니 이백년은 되었을 찌도 모른다. 좀 더 들어가야 폭포가 나오겠지 하고 길을 되돌아 나오는데 경찰 후보생 같은 친구들이 아래쪽으로 내려갔다가 이내 돌아 나온다. 뭔가 볼거리가 있는가 하여 가보니 물이 떨어지는 폭포가 있기는 한데 폭포라고 하기엔 싱거운 물줄기가 얼어서 하얀 몸을 들어내고 있다.

케일라 폭포

폭포 앞 카페

 설마 하면서 지나는 수줍은 아주머니에게 어디가 물 떨어지는 폭포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아주머니는 우리에게 직접 길을 안내하여 우리가 갔던 곳으로 데려다 주었다. 아 여기란 말인가?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애써 온 곳이니 돌아가면서 서로 사진을 찍어 주었다.

그럼 해변으로 가는 길은 어디냐고 그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지금은 눈이 많이 쌓여 갈 수 없다고 손사래를 친다. 아무래도 아쉬워서 그냥 마을 구경이라도 하자면서 마을로 난 길을 따라가다 보니 소나무 숲길이 너무 아름답다. 혹시 하는 생각에 길을 따라 계속 내려갔다. 절경이다. 우리의 적송과 비슷한 색깔의 몸을 가졌으나 적송과는 다르게 미끈하게 쭉 자라 오른 소나무가 아름다웠다. 이리 저리 헤매다 결국 바다를 보았다. 길이 확실하지 않았지만 왠지 바다 냄새를 따라 움직이듯 큰길에서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내려오니 말로만 듣던 발틱 해안이다. 해변에 눈이 얼어서 얼음처럼 되어있기 때문에 물을 볼 수는 없다. 파도도 없고 물도 볼 수 없으니 그냥 고요하고 거대한 호수처럼 느껴진다.

     

     

       눈 쌓인 발틱 해안 

정막하고 쓸쓸해서 아름다운 회색빛 겨울 발틱 해변에서 우리 세 명의 작가들은 최초의 해외에서의 겨울 야투 작업을 했다. 돌아오는 숲길은 같은 길이지만 또 다른 풍광이다. 고 선생님의 발걸음이 갑자기 빨라졌다. 시간을 보니 우리가 타려고 했던 버스는 이미 지나갔고 다음 버스가 오려면 40분은 기다려야한다. 강 선생님과 나는 그냥 천천히 눈 쌓인 숲길을 걸어 버스정류장에 나왔다. 아직도 버스 올 시간은 멀었고 배는 고프고 우리는 근처 마켓에서 음료수와 요구르트 그리고 비스킷을 사서 먹었다. 바람을 피할 생각으로 버스정류장으로 갔으나 누구의 발길질에 깨졌는지 칸막이는 부서져 달아났다. 춥지만 맛있다. 맥주인 줄 알고 산 것인 저알콜 탄산 음료수다. 추위를 약간의 취기로 이겨 보려고 했던 생각은 실패였다.

동네 꼬마 녀석들 중 호기심 많은 한 녀석이 말을 시킨다. 아마도 한국 사람을 처음 볼 것이다.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마음 편하게 졸음이 쏟아진다.

 

2011년 1월 25일 화요일

 

오전에 탈린 시내 구경을 가기로 했다. 유럽의 어느 도시 못지않은 도심풍경이다. 근처에서 백화점에 들어가 보았다. 대부분의 매장들이 겨울 상품들을 처리하기위해 50-70% 세일 중이다. 교회아이들에게 줄 초콜릿 사탕을 좀 샀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목걸이가 있어 하나 집어 들었다. 강 선생님은 꽃향기 나는 허브 비누를 샀다. 고 선생님은 소시지 종류에 관심에 많았다. 돌아오는 길에 올드타운 선물가게에서 조그만 새와 개구리 모양의 소리 내는 나무인형과 풀과 동물모양을 간결하게 파낸 나무도장이 마음에 들어서 샀다. 에스토니아의 상징인 설형무늬의 간단하면서도 실용적인 기념품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물과 풀 모양 도장

점심은 자주 가던 본 크랄이라는 연극공연장 식당(Bar)에서 먹었다. 처음 이 곳을 소개해 준 것은 행사진행자인 엡 이었다. 주소를 들고 물어물어 찾아가니 지정된 주소에는 그 식당이 없고 바로 옆에 식당이 있어 들어가 확인하니 아니라고 한다. 다시 물어서 들어가니 극장 옷 맡아주는 사람이 이곳이 아니라고 한다. 다시 나갔다가 다시 물어서 극장입구 왼쪽으로 쭉 들어가니 거기가 식당이다. 아무런 표지판이 없는 식당이다. 현지인들과 극장 손님들만 아는 장소인 셈이다. 하지만 일단 가격이 싸고 음식도 먹을 만하다. 맥주는 한잔에 2유로 인데 두잔 시키면 한 잔은 덤으로 준다. 기본적으로 다른 곳의 반 값 인데 거기가 덤도 주니 많이 싸다. 에스토니아 탈린 올드 타운에서 경제적인 식사를 원하시는 분은 들러 보셔도 좋을 듯하다. (탈린 올드타운 Rataskaevu 10/12)주소가 써 있는 건물 문을 열고 들어가서 그냥 곧장 걸어서 다섯 계단 쯤 밑으로 내려가 안으로 들어서면 거기가 식당이다. 부분 이층으로 되어있어 천정이 높고 한쪽에는 작은 무대가 있는데 가끔 아마츄어 밴드가 와서 공연을 한다.

    Von Krahl Bar

  에스토니아에 있는 동안 아침식사를 제외한 점심 저녁 모두 사쿠(Saku)라는 생맥주를 곁들여 먹었다. 맥주 없이는 식사의 구색이 안 맞고 느끼한 기운을 씻어낼 수가 없다. 거의 2주간 매일 같이 술 마신 적은 평생 처음이다. 술과 음식 그리고 날씨 등은 아무래도 서로 관련이 있음에 분명하다.

짐을 꾸리고 주최 측에서 연결해준 자원봉사차량을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처음 탈린에 도착하여 공항에서 올 때도 이차를 타고 왔다. 운전자는 바뀌었다. 원래 운전하던 친구는 플룻을 전공한 뮤지션이었는데 지금을 다른 진로를 모색 중 이라고 했다. 강아지 한 마리를 매일 데리고 다녔는데 마치 가족처럼 여긴다. 얼음 조각하는 장소로 이동 할 때도 이 차를 이용했었다. 안전벨트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시야가 확 트인 앞자리가 좋아서 나는 무조건 조수석에 앉는다. 이름도 생각이 안 나는 친절한 이 친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좀 했다. 한국에 대해서도 좀 아는 듯 했다. 남한 북한으로 갈려있는 나라라는 것도 알고 김정일, 김정은도 안다. 최근에 있었던 연평도 사건도 안다. 알고 보니 그의 옛 여자 친구가 부산에 있는 무역회사에서 근무했었다고 한다. 이 나라에서 몇 사람 안가지고 있는 무슨 낚시허가증도 있고 보트도 있고, 여름 별장을 어딘가 가지고 있으며,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있는 지역은 부자들이 사는 동네라고 했다. 우리가 떠나는 날에는 어디 해외로 스키 타러 간다고 했다. 일 안해도 먹고 살 수 있는 부유한 신분의 자원봉사자임을 나에게 열심히 알려준(자랑한) 셈이다.

공항에 도착하여 바로 짐을 부치기 위해 체크인 카운터로 갔다. 왠지 표정이 밝지 않은 여직원이다. 옆쪽으로 갈 것을 하고 후회한건 바로 잠시 뒤였다. 고 선생님의 짐의 무게가 오버되어 40유로를 내야한다고 한다. 가지고간 작업도구들의 무게가 많이 나가기 때문이다. 결국 이리저리로 짐을 분산하고서야 겨우 통과했다. 하지만 노파심에 인천에서 짐을 찾게 되냐고 물었더니 아니란다. 북경서 짐을 찾아서 다시 체크인을 해야 한단다. 이런! 이러면 여행이 복잡해지는데... 올 때는 인천공항에서 짐마다 트랜스퍼(Transfer)라고 인쇄된 라벨을 붙여서 탈린에서 짐을 찾도록 친절하게 연결해 주었는데 여기서는 왜 안 되는 건지.. 이미 짐의 무게로 땀 빼며 씨름을 한터라 더 이상 따지기도 힘들고 도무지 말을 붙여볼 여유를 주지 않는 그녀의 태도에 어떻게 되겠지 하고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비행기는 금방 덴마크의 코펜하겐에 도착했다. 거기서 다시 베이징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기내식 먹고 잠이 들었다가 깨보니 두 번째 기내식을 먹을 시간이다. 한두 시간 정도만 더 가면 베이징이다. 뒷자리에 않은 나이 좀 드신 분과 의자 뒤로 저치는 문제를 가지고 신경전도 벌이고 화장실도 다녀오고하니 이젠 비행기가 착륙을 위해서 고도를 계속 낮춘다. 귀가 아프고 어느 순간은 아무소리도 안 들린다. 마치 비행기가 공중에 멈춰서 있는 듯하다. 나는 비행기가 뜨는 순간이 가장 짜릿하고 그 순간이 때로 그립다. 하지만 착륙을 위해 고도를 급속히 낮출 때 느껴지는 귀멍멍 상태는 언제나 별로다.

베이징에 도착해 짐 찾아서 다시 체크인하고 들어오면서 다시 몸수색당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생각 하면서 나오는데 어떤 항공사 직원인 듯한 여자가 내 이름과 고승현 선생님의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왜 그러냐고 하니까 짐 찾는 문제 때문에 그런다고 하면서 탈린의 데스크 직원의 실수가 있었다고 했다. 같이 간 강희준 선생님은 인천까지 짐이 연결되었고 우리 둘 짐만 다시 붙여야한단다. 인상 안 좋았던 그 여직원한테 골탕을 먹은 느낌이었다. 하여튼 나가서 다시 짐 붙이고 다시 들어와 아시아나를 탔다. 승무원들의 서비스 매너가 예전에 비해 한결 자연스러워진 느낌이다. 예정된 시간에 딱 맡게 인천에 도착했다. 짐 찾으면서 집에 도착 신고하고 마침 바로 연결되는 공항버스 타니 휴우 하는 안도와 편안한 한숨이 절로 난다. 공항버스는 좌석도 넓고 편안하여 마치 비즈니스 클래스 비행기 좌석에 앉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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