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전원길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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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17일 화요일

 

야투 및 비엔날레 자료전시

 

아침 식사 후 호텔에서 식당으로 이어지는, 열차에서 떼어낸 의자로 인테리어를 한 휴식공간에서 통로 휴게실에 우리가 가지고간 야투와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자료를 전시했다. 그동안 서로 작품 관련 자료를 주고받을 기회가 없었다. 일종의 대회이다 보니 작가들 간의 교류라는 측면은 소홀한 감이 없지 않다. 작가들은 주의 깊게 한권씩 페이지를 넘겨가면서 내용을 살펴보다가 궁금한 내용은 질문을 하기도 했다.

해외에서의 미술 행사에 참가하는 야투의 회원들은 한국의 자연미술운동을 책자 혹은 프레젠테이션을 통해서 소개하고 알린다. 이러한 활동은 한국에서 자생적 발전을 이룩한 자연미술을 국제화하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고 있다.

 

오후에는 얼음 조각을 위해서 교외에 있는 식료품 보관 냉동 창고로 이동하였다. 북구 쪽에서 들여왔다는 얼음이 20여 덩어리가 쌓여 있었다. 긴 쪽이 2미터 짧은 쪽은 1미터 두께는 50센티 정도 되는 얼음이었다. 다른 팀들은 미술관 관람 일정에 합류한 탓에 우리 셋만이 얼음의 위치를 잡고 제작을 위한 준비를 하였다. 얼음 조각을 주관하고 진행하는 티유가 작업에 필요한 사항을 이야기해주고 내일은 얼음조각을 위한 끌을 갈아다 주기로 하였다. 오늘은 전기톱으로 큰 형태를 잡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한국 팀은 토끼와 호랑이를 제작하기로 이미 정해져 있었다. 고 선생님과 강 선생님이 조각을 위해서 필요한 이미지 자료를 준비해왔다.

냉동 창고는 -2도에서 -4도를 항상 유지한다. 기온이 올라가면 윙 소리를 내면서 찬바람이 나온다. 마치 냉장고 속에서 작업하는 것과 같다. 작업을 안 하고 있으면 추어서 견딜 수가 없다. 방수 털 장화가 위력을 발휘한다. 둔하던 점퍼가 가볍다. 점심은 외부에서 배달된 것을 교대로 먹었다.

얼음이 깎는 느낌은 뭐라고 말 할 수 없을 만큼 새롭다. 단단해진 물을 깍는 흥미로운 작업이다. 돌같이 단단하지만 자유자재로 원하는 형태를 만들 수 있다. 적당한 저항이 있으면서 경쾌하게 부서지고, 아주 얇게 벗겨지기도 한다. 불조각과 얼음조각이라는 아주 상반된 요소를 가지고 작업하는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저녁 식사 후 사우나 일정이 잡혔다. 고 선생님이 에스토니아 전통식 사우나 할 수 있는 곳이 어디 없는지 물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전통식 사우나는 근처에서 찾을 수 없어 일반적인 대중 사우나탕에 원하는 작가들과 함께 갔다. 우리나라 대중목욕탕 분위기다. 대부분 각각의 집에 사우나가 있기 때문에 대중 사우나탕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습식사우나탕과 건식으로 나누어져 있다. 불에 달군 돌에 물을 뿌려가며 실내온도를 올리고 자작나무가지를 불려서 몸을 두드리며 사우나를 한다. 러시아 작가들은 이런 사우나에 아주 익숙한 듯했다. 자작나무로 몸을 두드리니 시원하다. 맥주를 마시면서 땀을 뺀다고 하는데 우리 일행은 그냥 물을 마시며 사우나를 했다. 추위에 움츠렸던 몸이 확 풀리는 듯하다. 호텔로 돌아와 그대로 골아 떨어졌다.

  2011년 1월18일수요일-19일 목요일

 

이튿날부터 본격적으로 얼음 조각에 들어갔다. 얼음 조각이 처음이라 걱정을 했지만 재료를 다루는 것이 까다롭지 않아서 그리 어렵지 않게 진도가 나갔다. 예정보다 하루 일찍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른 팀들은 얼음 조각에 있어서도 많은 경험이 있어 보였다. 조금은 디자인적인 단순화와 변형을 시도한 다른 팀과 달리 우리는 사실적인 접근을 시도하여 다른 팀과의 차별성을 살릴 수 있었다. 강 선생님은 역시 조각 전공자답게 과감하게 모델링을 해나가면서 빠른 진행을 보였고 호랑이의 표정을 잘 표현하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면을 잡아 외곽을 마무리하는 작업을 하였다. 다른 팀과는 다른 표현적 특성을 보인 것에 대하여 진행자인 티유가 만족하였다. 우리는 전시되는 작품을 볼 수 없지만 우리가 온 후에 탈린시민들이 즐겁게 감상하기를 바랐다.

 

탈린 시내 공원에 전시중인 작품

19일 작업이 일찍 끝나 조금 일찍 엘로(Elo)라는 에스토니아 여성 조각가의 차를 타고 나오게 되었다. 네 아이의 어머니로서 자녀의 양육과 작가로서의 길을 어렵게 그러나 뚝심 있게 이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와 대화하는 중에 흥미로운 사실을 알았다. 그것은 에스토니아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유럽피안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일부사람들은 자신의 뿌리를 아시안 으로 생각하고 아시아 문화와 철학, 언어에 관심을 가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다는 것이다. 이번 불 조각에 함께 참여한 친구도 아시아의 철학과 언어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탈린미술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그녀는 우리가 가지고 온 자료에 관심이 많았다. 우리는 그녀의 요청대로 우리가 가져온 야투의 자료와 비엔날레 카탈로그들을 탈린대학 도서관에 기증하기로 하였다.

  2011년 1월 20일 목요일

 

 

얼음 조각을 마친 다음 날 우리는 에스토니아 작가이며 이번 불조각대회에 심사위원으로도 참가했던 페터(Peeter Laurit)와 만났다. 고승현 선생님과는 2002년 한번 만난 적이 있는 사진작가이다. 핀란드 한국 대사관의 이상훈 영사의 소개로 알게 된 탈린의 유일한 한국식당 ‘고추’를 찾아 나섰다. 주인장과 페터가 통화하니 식당 위치가 확인된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일치하니 코스가 좋다. 번화하지 않은 지하의 작은 식당이다. 젊은 친구 둘이서 운영하고 있는데 학교 다닐 때부터 유럽에서 한국음식점을 하고 싶은 두 젊은이가 의기투합해서 먼 나라 그리고 한국 사람도 많지 않은 이곳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고 선생님은 파리에서 음식점으로 성공한 친구의 예를 들면서, 완성된 요리가 접시에 담겨 나오는 서양식요리 스타일 보다는 테이블에서 직접 끓여서 먹는 따끈한 메뉴를 개발하면 좋겠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아무튼 특별한 삶을 기획하고 실천하는 두 젊은이들의 식당이 번창하길 바래본다.

 

세라믹 벽 난로

식당에서 나와 피터의 안내를 받아 17-18세기 미술을 전시하고 있는 카드리오르그 공원내에 있는 에스토니아 미술관으로 갔다. 인터넷의 사진 자료를 보면 근사한 공원에 자리 잡은 미술관인데 겨울이라 공원의 아름다움은 즐길 수 없었다. 근대이전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이 미술관은 과거 러시아 통치시절 러시아 황제의 궁으로 이탈리라 건축가에 의하여 바로크 양식으로 1718년에 지어졌었다고 한다. 실제로 러시아 황제는 단 한 번도 머문 적이 없는 그곳이 지금은 미술관으로 쓰이고 있다. 나는 전형적인 서구스타일의 유화 작품들 보다는 각 방에 설치되어있는 세라믹 벽난로에 눈이 간다. 같은 이미지를 반복해서 그린 푸른색 타일 그림들이 재미있어서 사진 몇 장을 찍었다.

현대미술관으로 이동하는 중간에 대통령 궁이 있었다. 문지기 한 명만이 현관에 서있을 뿐이다. 담도 없고 대문도 없다. 주적을 근거리에 두고 있는 나라의 백성으로서는 특별해 보이는 장면이었다.

현대미술관(Kumu Art Museum)은 건축적으로도 현대성을 살린 건물로서 규모도 상당했다. “For Love not for Money”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탈린프린트트리엔날레(Tallin Print Triennial) 오픈식에서는 주요 인사들의 인사말이 번갈아 가며 길게 이어졌다. 오픈식이 열리는 한편에서는 관객 참여프로그램이 일종의 퍼포먼스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관객들이 앞뒤로 움직이는 놀이기구를 타면서 판화를 찍어내는 프로그램으로서 약간은 소란스러웠지만 상투적인 오픈식 분위기에 활력을 주는 듯 했다. 그래픽, 판화, 일러스트, 사진 비디오 등을 망라한 꽤 규모가 큰 국제전이었는데 한국작가의 작품은 없었다. 전시장의 구성을 입체적으로 터프하게 구성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현대미술관(Kumu Art Museum) 탈린프린트트리엔날레

 

더불어 다른 층에서 열리는 컨스터블을 비롯한 19세기 자연주의 작가들의 작품도 인상적이었다. 컨스터블의 작품은 인쇄물로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른 필치의 자유로움과 활달함이 느껴져 인상주의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을지 가늠해 볼 수 있었다.

현대미술관에서 나와 우리는 먼저 루시앙 프로이드의 작품전 오픈식이 있다는 올드타운의 작은 갤러리를 방문하였다. 익히 그의 명성과 작품의 내용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에스토니아에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전시장으로 향했다. 루시앙 프로이드는 철학자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손자로서 독일에서 출생하였지만 영국에서 성장하여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이다. 현대미술의 다양한 방법론이 주목을 받고 있는 이 시대에 루시앙 프로이드 만큼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구상 화가는 보기 힘들다. 말이 필요 없이 그림은 어떻게 그려야하는지 보여주는 화가이다.

갤러리에 도착해보니 그의 작품은 단 두 점 그것도 달랑 판화 두 점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작은 개인 화랑에서 젊은 오너가 그의 작품을 전시 하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판매를 주로 하는 상업 화랑으로서 에스토니아 작가들의 작품을 해외에 많이 소개하고 판매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페터로 부터 들었다. 작가로서 자신의 작품에 진심으로 관심을 가진 능력 있고 믿을 만한 갤러리스트를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 젊은 화랑주인의 진지하고 겸손한 매너가 보기 좋았다.

갤러리에서 나와서 우리는 근처에 있는 중세식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탈린 올드타운에서 가장 싼 레스토랑이면서도 가장 중세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장소이다. 일 유로 스프에 일 유로 맥주, 일 유로짜리 파이를 먹을 수 있는 일품요리 식당이다. 식사를 마친 후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페터가 내일을 위해서 일어나야 하지 않겠냐고 하면서 우리를 배려하듯이 떠날 것을 권고하였다.

우리는 주어진 불조각 대회 안내문을 다시 찬찬히 읽기 전까지 결선이 내일 부터 진행되는지 몰랐다. 페터의 말을 아무래도 심상치 않게 여긴 고 선생님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진행 일정표를 다시 살펴본다. 함께 다시 읽어 보니 결선은 이 틀 동안 진행되며 내일 부터 작업 시작이었다.

큰일 날 뻔 했다. 함께 결선 작업 내용을 점검하였다. 토끼 이미지의 뒷 판은 원형으로 하여 자연스럽게 이미지와 매치 시키고 토끼의 몸체는 일정한 간격으로 각목을 고정시켜 나무가 타면서 일정한 가로 무늬패턴이 보이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합의를 보았다. 결국 이번에도 뒷 판의 분리와 귀의 움직임이 중요하며 이 부분에 신경을 써야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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