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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2 (08: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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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미국시인 7인의 시   

             

                2.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 뉴햄프셔의 농부

 

   나  이제 가서 목장의 샘을 치려고 해요:

잠간 가서 칼퀴로 낙엽만 긁어내면 되는데

(그리고 물이 맑아질 때까지 기다릴 거예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함께 가지 않을래요.

 

가서 어린 송아지를 데리고 오려고 해요

어미소 겉에 서 있는데 아직 너무 어려서

어미가 혀로 핥으면 비틀거린답니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 함께 가지 않을래요.

          

            I’m going out to clean the pasture spring:

            I’ll only stop to rake the leaves away

            (And wait to watch the water clear, I may):

            I shan’t be gone long. – You come too.

 

            I’m going out to fatch the little calf

            That’s standing by the mother. It’s so young.

            It totters when she licks it with her tongue.

            I shan’t be gone long. – You come too. 

                                                   -[목장](“The Pasture”) 전문

                                                      

                                            

               로버트 프르스트(Robert Frost 1875-1963)는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매우 친숙한 시인이다. 그것은 이 시인의 자연취미와 전원생활에 근거한 詩作이 우리나라 독자들의 구미에 맞았기 때문이리라. 우리 시의 근본은 자연에 있었고 우리 조상들은 무엇보다 자연을 노래하기를 즐겼었다. 하여 우리가 고등학교 다닐 때 국어 교과서에서 읽은 외국시 중에서 가장 우리의 심금을 울린 시 중의 하나가 로버트 프르스트의 시였다면 과히 과장은 아니리라. 위에서 인용한 시에서도 우리는 평화롭고 아늑한 전원생활의 전형을 상상할 수 있다.

                사실 자연을 詩化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오늘날에도 자연시인들은 많지만 그들 거의 대부분이 막연한 영탄이나 感傷에 흘려들고 있음은 이것이 얼마나 시화하기 어려운 소재인가를 알게 해준다. 자연에 대한 傾倒라면 영국의 낭만시인 워즈워드(W. Wordsworth)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 영문학을 공부한 이에게는 상식에 해당한다. 잉글랜드 서북부 호수지방에 은거하면서 아름다운 숲과 호수와 꽃들을 노래한 그는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라는 주장을 가장 잘 실천한 시인이었던 것이다. 워즈워드를 비롯한 영국 낭만시인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때가 19세기 초엽이었으니 프르스트와는 근 백년의 차이가 나는 셈이다. 그 백년간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대충 낭만시인이라는 사람들은 머리가 하늘에 닿고 발은 둥둥 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구름처럼 떠다니며 현실생활이나 세상의 욕심을 비웃으며 세상을바로 잡아야 한다는 선구자적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프랑스 혁명이 그들에게 큰 영감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은 낭만주의 사상이 무엇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 말해주는 것이다. 하여 가장 전형적인 낭만주의자는 바로 시인 바이런이었으며 그는 우수에 차있고 강한 힘을 가진 영웅적 인물, 바이러닉 히어로를 만들어내었다. 현실에 대해서는 초연하고 초인적 의지로 가득한 인물이 낭만주의자들이 추구한 이상적 인간상이였고, 그것은 지금도 서구 문학 곳곳에 맥이 닿고 있다. 프르스트는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 속에서 전원생활을 하며 그것을 詩化 했지만 그들과는 철저하게 다르다. 그는 바로 현실에 바탕을 둔 시인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시대적 흐름이 19세기의 영웅숭배적 흐름에서 20세기의 개개인의 작은 생활과 생각을 소중히 생각하게 되는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더 이상 영웅이 필요하지도 않고 영웅이 태어나지도 않을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프로스트는 이러한 흐름과 사상에 순응하는 시인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프로스트가 생활하고 시를 썼던 뉴잉글랜드라는 곳은 어떤 곳인가? 미국의 동부에서 최북단의 매사츄세츠, 뉴햄프셔, 메인, 이 세주를 일컬어 뉴잉글랜드라고 하는데 이곳은 영국 청교도들이 맨 처음 발을 딛은 곳이었던 것이다. 이 지역은 수목이 울창하고 기후가 적당히 따뜻하여 처음 이민자들이 살기에 알맞은 곳이었다. 특히 매사츄세츠의 보스턴을 중심으로 당대의 대시인, 에머슨(Emerson), 소설가 나다니엘 호돈(Nathaniel Hawthorn)등이 활약을 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큰 바위 얼굴도 뉴햄프셔의 마운틴 화이트에 실재하는 바위얼굴이다. 이 지역을 중심으로 초기의 미국문학이 꽃 피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초창기 미국 초절문학의 중심에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vid Thoreau)라는 인물이 있었다. 에머슨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던 소로우는 보스톤 서쪽에 위치한 월든이라는 호수 곁에 오두막을 짓고 2년간 명상생활을 했다. 그 결정판이 지금도 널리 읽히고 있는 [월든]((Walden)이다. 그럭저러한 전통의 자락을 잡고 시인 프로스트가 탄생했던 것이다. 뉴햄프셔에 데리라는 농장을 경영하면서 한편으로는 교편을 잡았던 그는 그 농장생활을 근거로 하여 생활시를 썼는데 이것이 그 당시로는 시단의 반역이었다. 당시 서구 시단을 풍미하던 것이 엘리엇과 파운드류의 문명비판 시였었고 그것은 동서의 고전에 대한 엄청난 지식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당시 시인들은 [황무지](“ The Waste Land”)에 인용된 그 수많은 인용과 해박함에 감탄했었다. 파운드나 엘리엇은 시인이면서 또 엄청난 독서가요 학자였다. 프르스트는 도저히 그들의 흉내를 낼 수 없었고 또 그쪽으로 승부를 낼 수 없음을 진작 알았다. 그리하여 그는 일찍부터 자신의 농장에 숨어들어 거기서 느껴지는 생활인으로서의 작은 기쁨들을 시화했던 것이다. 그러나 처음 프로스트가 시인으로 인정받기까지의 과정은 힘들었다. 고향에서 도저히 인정을 받지 못하자 그는 살림을 모두 정리하여 영국으로 건너갔었다. 거기서 첫 시집을 내고 약간의 인정을 받다 귀국하여 서서히 이름을 얻으며 마침내 네 번의 플리치상을 수상하게 이른다. 오늘날 프로스트의 시에 대해서 아무도 토를 다는 이는 없지만 처음 그가 시인으로 데뷔하는 데는 지난한 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프로스트의 엘리엇에 대한 질투에 가까운 경쟁의식은 재미있다. 자신이 도저히 엘리엇류의 시를 쓸 수 없음을 알고 있었던 프로스트는 엘리엇이 거시적, 우주적으로 나아가는데 반발하여 자신의 작은 농장과 주변의 작은 일들에 신경질적으로 몰입하였던 것이다. 우리에게 역시 잘 알려져 있으면서 생활의 냄새가 물신 나는 시 한 편을 읽어 보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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