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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6 (19:5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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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대나무 그림으로부터, 2인전 소감

 

 

지난 수 십 년 사이 우리 사회가 급속하게 도시화 ·기계화 되면서 그만큼 편리해졌지만 몸과 심리적 내면은 병적인 징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삶을 살면서도 마음의 상처로 힘들어하는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삶에 대한 근본적 물음과 예술적 치유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최근의 국제적인 갈등사태라든가 우리 사회의 정치사회적 이슈인 이념논쟁을 보면 타자를 적으로 규정하는 선명한 논리가 오히려 갈등 국면을 낳는 프레임이 됨을 알 수 있다. 과연 삶을 재단하는 절대적이고 명백한 잣대가 있을까? 자신의 승리를 위해 타자는 희생되어야 하고, 자신의 편이 아니면 적대시하는 이분법적이고 극단적인 단순논리로는 결코 세상과 삶을 이해할 수 없으며, 오히려 그러한 논리가 생존을 위협하는 폭력이 되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 어떤 잣대와 논리로도 재단할 수 없는 예술 앞에서는 겸허해지거나 자유로워질 수밖에 없다.

 

전시장에 있으면 각기 다른 감상자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주마간산 식으로 휙 둘러보고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는 사람부터 순수한 마음이 느껴지는 태도로 조심스럽게 보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시 둘째 날, 밝은 미소가 인상적인 교양 있어 보이는 한 나이 지긋한 여자 분이 전시장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림에 대해 물어보고 찬찬히 감상하더니 조금 전 가까이서 본 그림을 5m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다시 보며 멈춰 섰다. 그리고 연신 ‘이 그림이 정말 좋은 데요’ 라는 감탄사와 함께 호기심 많은 어린이처럼 순수한 눈으로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그러면서 그 그림이 주는 맑음과 떨림 같은 느낌에 대해 조심스럽게 한 마디씩 하는데, 마치 내 마음 속을 들여다보는 듯 했다. 그것은 그리다 만 듯한 미완의 상태가 야기하는 붓질의 긴장감과 파장이었다. 그래서 이 분과 이 그림을 매개물로 삼아 미진한 부분을 채워가며 완성해가듯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처럼 작가도 평론가로 아닌 사람과의 예기치 않은 소통과 교감은 예술영역이 갖는 가치와 의미를 새삼 깊게 느끼게 해주었다.

 

때마침 전시회를 준비하는 기간이 방학이라 충분한 작업시간이 있었고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러 점의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여자 분이 본 그림은 전시 오픈 날 오전에 그린 그림이었다. 전시회 개막 전날 디스플레이를 하면서 그림들을 전시 공간 벽에 부착해놓고 보니 한 점이 약해 보였고, 한 쪽 벽면이 비어 보였다. 그래서 디스플레이를 한 후 집에 와서 새벽까지 가로 세로 각각 200×148cm 크기의 한지 두 장을 펼쳐놓고 그림을 그렸는데, 결국 둘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아침에 학교에 출근한 후 미술실에서 다시 같은 크기로 두 점의 그림을 시도했는데, 몇 개의 대나무 잎을 흰 한지에다 그린 후, 짙고 옅은 청색 염료를 묻힌 평 붓으로 마치 하얀 여백에다 서예의 선을 긋듯 그리거나 댓잎을 지우기도 하고 겹쳐서 투명성을 강조하기도 해서 긴장감과 공간감을 조성하고자 했다. 둘 다 얼핏 보면 워낙 담백하고 간결해서 가벼운 드로잉처럼 보였다. 감상자와 같이 오랫동안 지켜보며, 여러 이야기를 나눈 것은 이 두 그림 중 한 그림이었다.

대화 중 그 여자 분은 이 그림을 이 장소 말고 다른 곳에 붙여놓고 앞에서 차를 마시면 참 좋겠다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몇 번이나 발걸음을 옮기려다 다시 보며 머물며 그림을 지켜보더니 예의를 표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이번 전시회를 앞두고 전시장에 작품을 배열하고 붙이는 디스플레이 과정에서도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포스터 이미지로 삼은 푸른 점 속의 흰 대나무 그림을 벽에 걸었는데, 그림을 중심으로 왼쪽으로는 전시장 바깥 정원의 오죽(烏竹)과 오른쪽으로는 가로 100cm 세로 20cm 크기의 창틀 없이 벽만 뚫린 작은 창문과 어우러져 이 전체가 하나의 작품처럼 보인 것이다. 이처럼 삶에 충실하면서 무언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그래서 또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가는 과정적 삶에서 나는 우리 삶의 단면을 자각하게 된다.

 

함께 전시 중인 최선의 ‘가시박’이란 외래 덩굴식물 무더기 설치 작업인 <본능이 각인된 선의 임의적인 뒤틀림>이란 제목의 작업은 난마(亂麻)처럼 뒤얽힌 우리의 현실을 집약한 듯하다.

최선은 구제역 파동 때 수 백 만 마리의 돼지 숫자를 세는 일만 뉴스 화면에서 반복했던 살 처분, 즉 생명유린의 광경을 다룬 거대한 <자홍색 족자>, 구미 불산 누출 사건시 그 황폐화된 숲 속에 놓았다가 가져온 흰 천, 그리고 흐르지 않아 ‘녹조라테’가 되어버린 강물에 적셨다가 건져 올린 녹색 천과 같은 작업을 해왔다.

이러한 작업의 연장선에서 최선은 이번 전시회에서 저마다의 욕망으로 뒤엉킨 불인(不仁)한 자연으로부터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예민한 감성으로 드러낸다. 이번 작업은 넝쿨 식물의 본성인 뒤틀림과 작가에 의한 인위적 설치 작업이 혼재된 것이지만 얼핏 보면 자연 상태로만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식물이 뜻밖에도 전시 공간을 상당한 부피로 점유하며 자연 상태와는 다른 어떤 양태로 존재한다. 또한 전시기간 동안 덩굴 굵기와 냄새, 색 등이 점차 변화하므로 그 순간마다 감상자에게 새로운 대상으로 변하는 데, 이러한 변화는 자연스러우면서도 유도된 것이다. 이처럼 자연 그자체로는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으며, 그것을 인위적으로 선택하거나 조성하여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찾는 것에서 예술적 가치가 생겨난다.

 

내 그림은 자극적 볼거리가 아니다. 다만 살아 있는 내 몸의 에너지와 물질과 고정관념을 지양하려는 정신이 서로 어우러져 빚어내는 불완전하고 완결되지 않은 그림을 그리고자 할 뿐이다. 덩굴 식물을 설치한 최선의 이번 작업 또한 그럴듯하게 치장하는 작품과는 거리가 멀다.

이러한 작업은 합리주의란 미명하에 획일적 잣대로 재단하는 세상의 폭력성을 부정하며 이와 다른 깊이와 넓이를 지향하고자 한다. 이를테면 먼 우주 속에서는 티끌 한 점, 또는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에 지나지 않는 지구를 보는 관점에서부터 가까이는 내가 발 딛고 선 땅 위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며 이전보다 좀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고 할 수 있다.

 

2013. 9. 6.

도 병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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