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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26 (14: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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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전花煎놀이날에 찍은 오래된 사진 1장

 

 

花開昨夜雨 花落今朝風(화개작야우 화락금조풍)

어젯밤 비에 꽃이 피더니 오늘 아침 바람에 꽃이 지는구나.....

 

최근, 모든 사물은 무한 관계 속에 무한히 변화함을 표현한 이 한시의 의미를 다각적으로 더 깊게 느끼고 생각하게 된 일이 있었다. 지난 토요일 수도권의 고향출신 모임에서 나 보다 연장자인 일가 조카로부터 사진 하단에 ‘乙未(을미) 四月(4월) 十二日(12일) 花煎(화전)’이라 적혀 있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1955년에 찍은 흑백사진 한 장을 받았다. 이 사진은 옛 사진을 최근에 확대하여 복원한 것으로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했다.

 

일견 구한말의 민속사진처럼 보이는 이 사진은 어릴 적 집성촌인 고향마을에서 본 대다수의 일가 아지매들과 소수의 남자 어른들, 그리고 어린 아이들이 모여 찍은 단체사진이었다.

남자 어른 6명, 여자 30명, 어린이 18명 총 54명인데, 군복을 입은 한 일가 아재의 모습과 남루한 차림의 어린이들의 모습에서 한국 전쟁 휴전 직후의 분위기를 보여줄 뿐, 쪽진 머리 혹은 머리를 땋고 한복을 입은 여인들은 휴전 직후임에도 모처럼 차려 입고 나온 듯 사진 속의 옷차림은 깨끗하다. 흑백사진이라 얼핏보면 흰 저고리에 검정치마 일색인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문양이 있는 저고리도 보여 모처럼 단장하고 화사하게 차려 입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뜻밖에도 사진 속에 세 살 아기의 모습인 누님을 안고 있는 스물 세 살의 꽃다운 어머니 모습이 있었다. 쪽진 까만 머리에 눈매와 입매까지 20대 초반의 젊음이 느껴지는 처음 본 어머니의 가장 젊은 모습이었다.(하필 사진을 찍으려는 결정적인 순간에 누나가 칭얼거리며 보채다가 울음을 터뜨리자, 어머니 특유의 “쯧 쯧 쯧”하면서 아기를 달래는 순간임을 여실히 알 수 있다)

어머니는 이 사진을 찍기 5년 전인 1950년에 18살의 나이로 부친과 결혼했는데, 당시 부친은 아직 군에서 제대하기 전이어서, 왜소하고 가녀린 몸으로 시어머니인 할매(할머니)를 모시고 온갖 집안일을 다하다가 모처럼 이날 시간을 내어 이 놀이에 참석하였고, 그래서 이 사진 속에 일가 아지매들과 함께 그 모습을 남긴 것이다. (사진 뒷줄의 둘째 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에 예쁘게 흰 이를 보이고 있는 처녀가 결혼 2년 전, 당시 꽃다운 18살의 막내 고모임)

 

사진에 찍힌 사람들 뒤쪽으로는 고향을 둘러싼 산줄기이자 우리 집 뒷산인 향계산 능선의 나무들과 ‘집뒤골’(=家後嶝 가후등 : 아마 종가집 뒤 등성이란 뜻인 듯)이란 골짜기와 우리 집 바로 뒷산 산줄기까지 선명하게 보였는데, 현재는 숲이 우거져 너무나 변해버린, 오래 잊고 살았던 고향 뒷산의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까지 바로 그 고향산천이었다.

사진을 찍은 장소는 마을을 둘러싼 앞산인 성째산 자락의 ‘당미’란 곳으로 근처에는 내가 어릴 적만 하더라도 노루밧골이란 곳으로 소풀 먹이러 다닐 때 자주 마시던 샘물이 있었는데,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 흙 구멍 속에서 언제나 풍부한 수량의 물이 작은 시내처럼 흘러나왔다.

 

사진 오른 쪽 앞면에는 군위군에서 1등상으로 받았다는 한자글씨가 적혀 있는 징과 징채, 징을 기대 놓은 것은 곡식을 담는 말로 보이며, 오른 쪽 끝에는 일가 어른들이 주전자로 막걸리를 놋쇠 술잔에 따르고 마시는 광경이 보인다.

남자 어른들은 어린이를 제외하고는 지금은 모두 별세하신 분들이다. 그리고 사진 속에 나오는 어린이 중에도 말로만 들었던, 한국 전쟁 직후라 포탄을 갖고 놀다가 사고로 죽었다던 일가의 형님뻘 되는 어린이를 포함하여 돌아가신 이들이 여럿 보였는데, 이들 또한 살아있으면 이미 일흔을 전후한 나이일 것이다. 여자 어른들과 어린이 가운데 아직 생존해 있는 분들이 많은데, 아지매로 불렀던 일가 아주머니들은 어린 시절에 본 바로 그 모습들이었다.

 

사진에 적혀 있는 ‘화전’이란 ‘꽃지짐’이란 뜻으로 화전놀이를 줄인 말이다. 화전놀이는 봄에 경치가 좋은 곳에서 부녀자들이 시집살이의 굴레를 벗어나 꽃잎을 따서 전을 부쳐 먹으며 노는 놀이를 말하는 데, 이 놀이는 통상 삼월 삼짇날, 즉 음력 3월 3일에 하였다. 사진을 찍은 이 장소는 모처럼 여인들이 사회적 제약에서 해방된 공간인 셈이다. 이번에 화전놀이에 대해 부친께 물어보는 과정에서 이 화전놀이를 고유어로는 ‘꽃달임’이라고도 한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전쟁 후의 참화와 삭막한 분위기를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평화롭게 봄날 하루 동안 이런 화전놀이를 즐겼다는 것이 특이하다.

사진 하단에 적힌 날짜는 양력으로, 음력으로는 3월 20일이다.(그 해에는 윤3월이 있었음) 장소와 방향으로 보아 사진을 찍은 시점은 화전놀이가 끝난 직후인 오후 1~2시 사이로 추정되고, 검은 천을 뒤집어 쓴 사진 기사가 뷰 카메라의 렌즈를 길게 앞으로 내밀고 유리 원판에 유제(AgCl 염화은)를 묻혀서 카메라에 끼우고 사진을 찍을 준비를 마친 뒤, “하나, 두울, 셋” 구령에 맞추어, 맨 오른쪽 새 신랑(천호양반)에게 도회풍의 세련된 헤어스타일과 조끼를 갖추어 입은 ‘삼만 할배(청년의 모습임)’가 막걸리 주전자를 기울이고, ‘천호양반’은 새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채 검은색 라이방(선글라스 생산 회사인 ‘레이밴RAYBAN’의 일본식 발음) 선글라스를 폼 나게 쓰고 어른들 중 유일하게 카메라를 90도로 외면하고 앉아서 입술을 뾰족하게 내밀고 술을 마시려는 모습에서 절로 웃음이 나오게 된다. 순간 사진 기사의 손은 이 멋진 포즈를 놓칠세라 고무공 같은 스위치를 눌렀고, 자칫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말았을 1955년 을미년 군위군 효령면 잣골( =성동)의 성주 도씨들의 화전놀이가 시공간을 초월하여 지금까지 전해지게 된 것이다.

선암 아재가 챙을 약간 뒤집어서 쓴 모자는 바로 뒤에 서있는 보이 아재(오동 아재의 동생)의 군인 모자이고, 연호아재(=점태 아재)가 쓴 모자는 아마도 세련된 도시 사나이 삼만 할배의 중절모인 것 같다.

 

이 사진이 나온 지 어언 6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아직 내가 태어나지도 않은 시점에서도 고향에는 사람들이 살았고, 그만큼 어머니는 젊은 시절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사실만으로도 자식된 자로서 무한한 감회에 젖게 만든다.

이러한 사진은 문화사적 자료로서 가치를 갖는다. 가족의 구성형태까지 달라지고 급기야 하루가 다르게 점점 무연(無緣)사회가 되어가는 지금과 달리 공동체 사회에 가까울 정도로 지역 특유의 문화가 지속되던 시기를 이 사진은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사진을 통해 아름다운 봄날의 한 순간을 즐기는 우리나라 특유의 전통적 삶과 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사진은 누구나 봄날에 핀 꽃 같은 젊은 시절이 있으며, 그 시절에는 다가올 미래에 어떤 희비극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음을 느끼게 된다.

나아가 우리는 이러한 사진에서 우리 삶의 바탕인 시공(時空)과 존재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다. 이날 한 자리에 모여 있던 사람들 중 대다수는 자신의 운명을 바꾼 문명과 문화의 급격한 변화 속에 고향을 떠나 어느 봄날에 분분히 흩날리는 꽃잎처럼, 푸른 하늘 한 점 구름처럼 흩어졌다. 이처럼 사진 속의 현존과 현실 속 부재는 그야말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삶의 무상함을 떠올리게 한다. 이 때문에 지각 있는 사람이라면 언제 어느 곳에서든 한순간 한 순간 더욱 더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즉 아름답게 살고자 한다. 부조리한 우리 삶의 실존의 양상들을 자각할 때 미학적 가치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2013.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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